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즈오 이시구로(Kazuo Ishiguro)의 소설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이 화제가 됐다.
그는 일본 태생이지만 5살때 부모를 따라 영국으로 간 뒤로는 이름도 영어로만 표기하는 영국인이 됐다.
그의 대표작의 하나인 '남아있는 나날'은 1989년작이지만 나는 이 원작을 읽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이 소설은 1993년에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이 영화는 국내에도 개봉이 되어 본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제임스 아이보리(James Ivory)가 감독하고 주인공 집사역에는 안소니 홉킨스(Anthoney Hopkins)가 명연기를 펼쳤고
상대역에는 여우 엠마 톰슨(Emma Thompson)이 공연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남아있는 나날'의 원작 소설이나 영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아있는 나날'이란 제목만 빌리려는 것이다.
나를 비롯하여 우리 또래의 세대에게는 살아온 세월에 비하여 남아있는 나날이 길지 않다.
나도 남아있는 나날이 소중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으면서도 하루 하루를 어영부영 보내는 때가 많다.
며칠 전 도저이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나딴엔 용단을 내려 멀리 동해안의 양양(襄陽)을 항해 아내와 같이
달려간 것이다. 그래서 꿈같은(?) 2박3일을 지내고 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 것이다.
서울에서 양양까지는 교통편이 편리해졌다. 지난 6월 30일 개통한 서울~양양간 고속도로(151Km)로
가면 1시간 30분이면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시간 반은 잡아야 한다.
춘천까지는 경춘고속도로를 그대로 이용하고 춘천에서 양양까지만 새로 개통한 것인데, 요즈음같은
행락철에는 막히기 일수다.
하여간 11시에 출발한 우리는 중간의 홍천휴게소에서 내려 점심 식사를 하고 갔는데, 오후 2시경에
목적지인 대명콘도 쏠비치(Sol Beach)에 도착하여 체크 인을 했다. 다행히 아직 예약객이 많이 오지
않아 호텔의 바다쪽 512호실을 배정해주어 전망 좋고 아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양양하면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곳은 낙산사(洛山寺) 의상대(義湘臺)와 하조대(河趙臺)다.
그런데 옛날과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낙산사에 들어가려면 이젠 입구에서 내려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
오늘 따라 무슨 축제를 한다고 학생들을 비롯한 단체 입장객이 많은데다 우리 두 늙은 이의 걸음으로는
의상대까지 다녀올 자신이 없어 대문만 쳐다보고 입장은 포기하고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에는 김호상과 김능자 부부가 호텔로 찾아왔다.
이들 부부는 우리 부부와 각별한 관계가 있다. 김회장은 나와 국민학교 동기동창이고 집사람과
김능자여사는 중학교 동기동창생이다.
그래서 이들이 20년째 살고 있는 법수치리의 통나무 주택에 다녀가라고 여러번 요청을 받았지만
우리 사정으로 가지 못한 미안한 감이 있던 차에 이번에는 꼭 들리기로 사전 약속했던 것이 양양여행의
한가지 목적이기도 했다.
김회장은 어디를 먼저 가겠느냐고 물어 하조대(河趙台)로 가자고 했다.
걸음걸이가 다소 불편한 아내를 이들 부부가 양쪽에서 부축을 해서 꽤 높은 하조대 정자(六角亭)까지
올라갔다.
하조대는 아시겠지만 고려말과 조선조 초기에 활약한 하륜(河崙 1347~1416)과 조준(趙浚 1346~1405)
두사람이 만났던 곳이라고 하며, 정자는 조선 정종때 처음 세워졌다고 하고 여러차례 훼손된 것을 재건했다고
안내판에 적혀 있다.
드라마 '정도전'이나 '이성계' 등에 이 두 분이 등장하여 권력 교체기에 처신을 잘하는 인물로 부각되기도 했다.
다음 행선지는 법수치 계곡
김회장은 20년전에 이곳 법수치계곡에 터를 잡아 통나무집을 직접 지었다고 한다.
청정지역인 이곳에 몇해전부터 편션이 들어서기 시작하여 옆에 팬션 5동을 지어 소일거리로 운영한다고 ..
융숭한 대접을 받고 나왔는데 자고 가라고 했지만 2박 예약한 호텔에서 자는 것이 아내에겐 편해 하직인사를
하고 나왔다. 김회장이 또 직접 운전하여 대명 리즈트까지 태워다 주었다. 이래 저래 신세만 지고 나와서
고마음과 함께 마음속 부담감을 안고 와야했다.
다음날은 주말이라 도로가 막히기 전에 오려고 일찍 출발했다.
2박 3일이었지만 맑은 공기, 넉넉한 인심에 모처럼 심신의 피로를 잊고 기분전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첫댓글 다시봐도 그때 그시절이 그리워집니다. 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