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로마 6,19-23; 루카 12,49-53 /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2023.10.26.; 이기우 신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이라는 드라마가 전 세계를 강타할 무렵 뒤늦게 이 말이 울려 펴진 적이 있었습니다. 이 말은 본래 아이들이 골목 어귀에서 놀 때 술래가 노래하듯 외치는 말이었습니다. 술래가 눈을 감고 이 말을 노래하다가, 문장이 끝나는 순간에는 출발선으로부터 목표선까지 이동하던 모든 어린이들이 멈추어야 합니다. 움직이다가 술래의 눈에 뜨이면, 적발된 어린이가 새 술래가 되어 놀이가 이어집니다. 이 놀이의 노랫말에 ‘무궁화’가 들어가게 된 이유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간악한 통치로 우리 민족을 억누르던 시기에 어린이들에게 겨레의 얼을 잊지 않도록 해 주고 싶어서 고안된 노랫말이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지지요.
오늘 복음과 독서로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사도 바오로 모두 무궁화 놀이의 술래처럼 일담 멈추라고 급박하게 알리는 외침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잊어버린 세대를 향해서 사랑의 불을 지르러 왔다고 말씀하시고, 바오로는 더 이상 육의 나약성에 빠져 있지 말고 의로움을 배우고 거룩하게 살아가라고 권고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시기에 세상은 탐욕으로 가득차서 사랑이 메말랐으며 서로 갈라져 있습니다. 그래서 메시아적 백성을 모으시려는 예수님께서 그 사도가 되어야 할 제자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수칙은, 시대의 징표에 대해 깨어 있으면서 사랑의 불을 지르라는 말씀입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 교부도 말하기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종말의 불을 당기는 불쏘시개로 묘사하셨습니다. 이 불은 거룩한 세례 안에서 성령에 의하여 우리에게 오는 복음의 불”이라고 하였습니다. 따지고 보면, 시대의 징표에 따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은 세상의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물로 씻는 물의 세례만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로 악에 맞서는 하느님의 지혜를 보여주신 불의 세례야말로 그분을 그리스도로 믿고 따르는 메시아적 백성이 따라야 할 모범입니다.
로마 제국에 만연되어 있던 우상숭배에 신자들마저 물들었던 과거 행실에 대해 답답했던지 바오로는 눈높이를 아주 낮추어서 나지막히 그러나 단단히 경고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지닌 육의 나약성 때문에 여러분의 방식으로 말합니다. 여러분이 전에 자기 지체를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넘겨 불법에 빠져 있었듯이, 이제는 자기 지체를 의로움에 종으로 바쳐 성화에 이르십시오”(로마 6,19). 그러니까 성적 문란을 포함하여 온갖 더러움과 불법이 성행했었고 이에 물들었으니, 이제는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회개하라는 호소입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대놓고 현대인들과 특히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에게 시대의 징표를 들이밀었습니다. 현대인들이 아직도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회개하지 않고 있는 동안 가시화된 시대의 징표는 가난한 이들의 위기와 기후 위기라는 빨간 신호입니다.
현대사회 안에서 사람들은 노동을 하면서도 여전히 가난합니다. 이를 'Working Poor'라 합니다. 이농현상을 통한 도시빈민의 증가 현상이 그러하고,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정리해고와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또한 그러합니다. 가정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맞벌이 부부가 대세가 되어 가는 가운데 뒤따르는 양육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솟구치는 주택시장의 논리 앞에서 전·월세와 임대주택 등으로 분리되는 사람들의 모습이 오늘날 가난의 현 주소입니다. 성장 중심의 경제정책은 세계적으로도 ‘이주민 문제’라는 가난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은 가난을 탈피하기 위해 가족을 떠났지만 가족과 갈라져 살면서 더 많은 부작용을 안고 살아갑니다. 가장이 떠난 자리에 질병과 이혼, 사고 등이 더해져 한부모와 조손가정의 문제는 ‘가족 혼란현상’의 대표적 사례가 된지 오래입니다.
오늘날 경제 성장은 이처럼 먹고 살기 위한 기본적 순환경제의 모습이 아닌, ‘성장’을 위한 성장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경쟁에서 뒤쳐진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안전망이 구축되고 있지만, 이 또한 수량화되고 계량화돼 사람들을 등급으로 나누는 파렴치한 정책을 버젓이 펼치고 있습니다. 복지혜택을 기다리는 사람들조차 서로 경쟁을 해야 하고, 때로는 자신의 차례를 앞당기기 위해 서류를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구조적 가난’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셈입니다(복음의 기쁨).
가난한 이들의 위기를 초래한 데 따른 회개에 이어 요청되는 회개는 기후 위기에 빠진 지구와 멸종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기 위한 생태적 회심입니다.
○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 하느님께서는 저희를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시어, 모든 피조물의 동반자로 삼으시고, 복을 내리시어 저희 모두가 함께 자라게 하셨나이다.
● 저희 마음을 열어주시어 하느님의 선물인 피조물을 돌보게 하시고,우리 공동의 집인 지구가 모든 피조물의 집이요, 미래 세대가 살아갈 집임을 깨달아 이 집을 보존하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
○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어,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연대하고 공동선을 추구하는 구체적 노력을 기꺼이 받아들여 참된 생태적 회개를 이루게 하소서.
●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저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절감하여,지구의 울부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게 하소서.
그러니 의로움을 넘어 거룩함에 이르고자 하는 교우 여러분, 욕망에 흔들리는 세태에 휘둘리지 마시고 마음의 흔들림을 멈추고 가난과 기후에서 나타나는 시대의 징표를 보십시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