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심낙원(內心樂園)을 꼭 붙드시라
로마 12,5-16ㄴ; 루카 14,15-24
연중 제31주간 화요일; 2023.11.7.; 이기우 신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잔치에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 비유가 나오게 된 계기는 그분과 함께 식탁에 앉아 음식을 먹고 있던 사람이 느닷없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공생활 내내 백성에게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고, 그 다가온 하느님 나라를 때로는 치유로, 또 때로는 구마로, 또 잔치로 체험시켜 주신 예수님께서는 정작 하느님 나라를 체험해야 할 잔치 자리에서 그 자리가 이미 다가온 하느님 나라인 줄도 모르고, 엉뚱하게도 또 다른 하느님 나라를 부러워하는 그 사람에게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 비유를 드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고 초대하셨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초대에 응하지 않고 거절하였습니다. 대부분 그 거절 이유는 세상사는 일과 관련된 것들이었습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표현을 빌면, 밭을 산 사람, 겨릿소를 산 사람, 장가를 든 사람 등이 다 세상살이에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초대를 거절한 사람들 대신에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 같이 세상살이가 힘겨운 사람들을 초대했습니다. 물론 이들은 기쁘게 그 초대에 응했고, 예수님께서는 정성을 다하여 이들을 대접하셨습니다. 아픈 이들과 장애인들은 고쳐주셨고, 마귀에 들린 이들은 제 정신으로 살도록 해방시켜 주셨으며, 하느님 나라의 진리에 대해 갈망하는 이들에게는 그 진리에 대해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으로부터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맛본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분과 함께 있고 싶어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뿌리치시고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곤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더 많은 이들에게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체험 시켜서 복음을 듣게 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가 잔칫집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그 잔칫집을 가득 차게 하고 싶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잔칫집에 아직도 빈 자리가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천국이 이미 와 있어도 그곳이 천국인 줄을 모르는 일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른바 천국의식의 지체 내지는 부재 현실이라고 부를 만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이는 마치 이미 바다에 살고 있는 물고기가 바다를 눈으로 보겠다고 그 너른 바다를 찾아 헤매는 것과 비슷합니다. 저는 지금도 예수님께서 매우 답답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현재 우리 교회 안에서도 이런 현실은 여전히 발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고 한평생 정상적으로 성사생활을 한 신자가 죽기 전에 고해성사와 병자성사까지 받고 죽은 후에 장례 기간 중에 신자들이 바쳐주는 연도까지 받았으면, 그는 이미 연옥에서 받을 단련과 정화 과정을 마치고 천국에 들어갔다고 교회는 장례미사와 고별예식으로 엄숙하게 선언합니다. 그런데도 고인을 보낸 유족들은 그가 천국에 들어갔을 것이라고 확신을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기일이나 위령성월만 되면 별다른 의식도 없이 연도만 바치고 있습니다. 본시 연도란 ‘연옥영혼을 위한 기도’의 준말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세례를 받고 정상적으로 성사생활을 하시다가 돌아가실 때 연도도 받고 장례미사까지 정식으로 치루었는데도 돌아가신 지 수십 년이 지나도록 연도만 바치기도 합니다. 아마도 잘은 모르지만 죽은 사람은 치명자가 아닌 이상 연옥을 거쳐야 천국에 겨우 들어 갈 수있을 것이라는 생각의 발로일 것입니다. 좋게 보면 겸손한 것이고, 심하게 보면 천국의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바칠 때 신비마다 그 사이에 바치는 구원경이라는 기도가 있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예수님께서는 입만 여시면 천국이 다가왔다고 강조하셨는데도, 우리 신자들에게 천국의식이 희박하고 그저 연옥이라도 가야겠다는 의식이 자리잡게 된 데에는 이 구원경 기도가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 기도문에 천국이라는 표현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본래 이 기도문은 1917년 포르투갈 파티마에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을 때, 묵주의 기도 매 신비의 끝에 영광송 다음으로 바치도록 당부하신 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러자 이 당부를 실천하는 신자들이 늘어나니까 한 세대 이상의 세월이 흐른 다음인 1956년에 교황청에서 전 세계 가톨릭신자들에게 교령을 반포하여 묵주기도 사이에 이 기도를 함께 바치도록 권장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습니다.
파티마에서 발현하신 성모 마리아께서 당부하신 원문은 이렇습니다. “O my Jesus, forgive us our sins, save us from the fires of hell, lead all souls to Heaven, especially those in most need of Your mercy.” 이를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오 나의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모든 영혼들을 천국으로 이끌어 주시되, 특히 당신의 자비를 가장 필요로 하는 영혼들을 돌보아 주소서.” 우리가 쓰는 번역과 차이가 있습니다. 원문에 있던 천국을 번역에서는 연옥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아마도 번역할 당시에도 연옥의식은 과잉되어 있었던 데 비해, 천국의식은 결핍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가 로마 공동체의 교우들에게 강조하는 바는 바로 현세 안에서 우리가 모인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서, 이미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살아가기 위하여 필요한 당부사항입니다. 그것은 다양성 안의 일치로서, 저마다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에 따라 성심성의껏 봉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 은사가 예언이든, 가르침이든, 나눔이든, 지도든, 자비베품이든지 간에 성령 안에서 기쁘게 실행에 옮기면, 성령께서 그 다양한 은사가 서로 부딪치지 않고 멋지게 조화를 이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특히 궁핍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비천한 이들을 손님으로 초대하여 잘 대접하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 나라, 즉 천국의 질서입니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할 줄 알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울 줄 아는 것, 이것 또한 교회가 명심해야 할 천국의 처신입니다. 오만한 생각, 즉 중산층 수준 이상 좀 잘 사는 이들만이 천주교 신자로서 자격이 있다는 식의 오만한 생각을 제발 버리고 비천한 이들, 즉 가진 것이 별로 없고 배운 것도 적은 데다가 교양도 없어 보이는 거친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것, 이것이 천국스러운 성당의 분위기여야 합니다. 우리는 많이 냉랭하지요. 죄다 우울증 환자처럼 우거지상을 하고 미사에 오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표정들이 많이 굳어져서 옵디다.
머릿속 관념의 천국이 아니라 실제 현실 속에서 작동할 수 있고 또 작동해야 할 천국의 모습이 여기에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천국을 받아들이시어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과 가까이 지내시고, 그 천국의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세례를 받고 성사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영혼을 위해서는 장례기간 동안에만 연도를 바쳐주시고, 그 이후에는 천국에 계실 것을 믿으시고 주모경과 영광송으로 우리를 위해 전구해 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물론 구원경을 통해 불쌍한 연옥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잘못하는 일은 아닙니다. 그 기도는 유효하고 또 필요합니다. 단지 살아있는 동안 성사를 배령한 신자가 죽어서 기껏 천국에 올라갔는데도 굳이 연옥으로 끌어내리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것뿐입니다. 백점이 만점인 시험에서 백점을 목표로 공부해야 할 학생이 낙제만 겨우 면하겠다고 목표를 세우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우리의 목표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천국이지 연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18년 동안이나 영혼의 어둔 밤을 보내야 했으면서도 “주님 안에 숨은 영혼이 무얼 더 바리리. 하느님만으로 만족하도다.” 하면서 내적 기쁨을 결코 잃어버리지 않고 버티었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인내함이 모든 것을 다 이긴다는 이치를 깨닫고 절대로 내 마음 안의 천국, 즉 내심낙원(內心樂園)을 꽉 붙드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좋은 강론 감사합니다 30여년전에 세상 떠나신 외할머니께서 성호긋고 임종하셨으니 하늘나라에 가셨겠지하다가도 확신할수없어 위령미사 드렸는데 천국에 계신분을 연옥으로 끌어내린건가요 ㅎㅎ
신부님도 내심낙원 꼭 붙드시고 행복하세요^^
제대로 알아들으셨군요. 위령미사는 영혼을 위로하는 미사이니 괜찮습니다. 저는 '연도', 즉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의 효용성과 한계 그리고 남용 현실을 지적해 본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시지요. 간음 혐의로 붙잡혀 온 여인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보아도 그렇고, 세 번이나 배교(?)하는 대죄를 지은 베드로를 굳이 찾아가셔서 사면해 주신 일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예수님보다 교회 제도나 우리 신앙심이 더 엄격하고 보수적인 듯 해요.
곧 남편이 돌아가신지 7주기가 되는데 신부님 강론말씀으로 이제 확실하게 이해되어 이 번 기일에는 제대로 해보겠습니다.신부님 고맙고 존경합니다.
네, 천국에서 아내와 자녀들을 위해 전구하고 계실 남편과 더욱 깊은 통공을 이룩하시기바랍니다.
11월 10일 시아버지기일이고
11월13일이 친정아버지기일 이거든요
매년 연미사 봉헌하고 제사지내고 연도 했는데
양가 부모님 모두 장례미사로 천국에 가셨을 부모님을 연옥으로 끌어내려 기도 했네요 ㅜ
며칠 뒤 기일엔 연미사 봉헌 했으니 미사 참례 하고 식구들과 주모경과 영광송으로 해야 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제는 연미사를 졸업하시고, 감사미사로 진급하십시오.
@이기우 아 그렇게 해야 하는군요
잘 알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