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셔온글 #종교 #스리랑카불교 #법안스님 #라타나빅쿠 #인도성지순례 스리랑카 불교 이야기 21
인도 성지 순례 13
웨살리를 뒤로 하고 간 곳은 세계 최고의 불교학교인 나란다대학이 있었던 나란다 유적지입니다.
나란다는 탁실라, 비끄라마실라와 함께 3대 교육 도시였습니다
그중에서 나란다는 가장 큰 대학으로 굽타 왕조가 다스리던 5세기 무렵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 대학은 입학은 무척 까다로웠지만 일단 들어가면 국가의 지원과 국민들의 보시로 생활에 아무런 불편없이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대학의 면적은 가로 10키로 세로 5키로 규모였고 공부한 인원은 1만명이고, 교수진도 1천2백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11세기까지 잘 운영되었는데 이슬람 군대 (무슬림)의 침략으로 철저히 파괴되었다고 합니다.
자료는 무슬림이 저지른 살생, 파괴, 방화로 불길이 무려 6개월 동안 이어졌다고 합니다.
그뒤 인도 사람들은 남아 있는 유적이라도 보존하기 위해 흙으로 덮어 버렸다고 합니다.
전체 면적 15키로에 대부분 민가가 들어와 살고 있는데 인도 정부에서 땅을 사 유적 발굴을 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나란다 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15분의 1정도입니다.
나란다 대학을 보고 찾아 간 곳은 라즈기리 (마가다왕국 수도 라자가하) 유적지입니다
마가다 국의 성군이었던 빔비사라왕이 아들 아자따삿투왕자가 데와닷다를 신봉하면서 왕위를 물러달라고 해서 아들 아자타삿투에게 왕위를 넘겨 주었는데,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부왕 빔비사라를 탑에 가두어 죽게 만듭니다.
그 탑터와 붇다께서 빠리닙바나에 드시고 60일 후에 아자타삿투왕의 도움을 받아 웨바리 산허리에 있는 일곱 개의 잎사귀를 가진 나무가 있는 곳의 동굴 (칠엽굴 Sattapanni guha)을 만들고
마하깟사빠존자를 위시한 500명의 마하 테라 (대장로)들이 모여 붇다가 제정한 위니야(율장)와 45년간 말씀한 담마를 결집한 곳도 보았습니다.
여기는 1차 결집이 끝나고 비어 있을 때 자이나교도들이 수행하던 곳이라고 안내판에는 써져 있습니다.
또 붇다의 사리를 가져와 스투파를 크게 지었다는 터도 보았습니다.
이 유적지에 도착한 시간이 해가 지는 시간대여서 차안에서 본 것도 있고,
일부는 내려 현장에 갔지만 어두워서 정확히 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이렇게 빔비사라왕과 아자타샤투왕과 관련된 유적지를 보고 우리는 보드가야로 갔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모셔온글)
부산 동래구 온천동 금정마을 무량사 법천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