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 중심 신앙에서 부활 중심의 신앙을 향하여
1마카 4,36-37.52-59; 루카 19,45-48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2023.11.24.(금)
오늘은 베트남의 순교자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동아시아 지도를 보면, 중국을 가운데에 두고 동쪽에는 우리나라가 자리잡고 있고 서쪽에는 베트남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중국이 동아시아의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이천 년 동안 수많은 민족들이 한족에 동화되었지만 우리 민족과 베트남 민족만이 자신의 고유한 문화와 영토를 보전하고 있습니다.
18세기에 베트남 민족은 중국을 지배하던 청 나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투쟁을 벌이고 있었고, 중국 진출의 교두보가 필요했던 프랑스가 베트남을 도우려고 진출함으로써 베트남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는 대혁명 이후 정치가 극도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애초에 베트남과 우호친선관계를 맺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적 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진출했던 것이기 때문에 독립을 위한 내전 과정에서 프랑스의 도움을 받지 못한 베트남 정치세력이 프랑스를 적대시하게 되면서 박해도 시작되었습니다. 그 무렵에 무려 2만 명이 넘는 베트남 신자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이 치명을 당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기억하는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는 그 무렵 치명한 순교자들의 대표격인 성인입니다. 이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감행했던 프랑스의 외교정책과 외세를 배격하여 독립하려는 베트남의 자주노선이 충돌하는 바람에 희생된 순교자들입니다. 이런 영향으로 공산화된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가톨릭교회에 대한 통제가 아주 심한 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가톨릭 신앙에 대한 선호가 아주 높고 뚜렷한 편입니다. 개방정책을 펴고 있는 현 베트남 정부가 언젠가 종교통제정책을 완화시키게 되면, 베트남 가톨릭교회는 한국 가톨릭교회와 더불어 동아시아에서 대표적인 교회로 성장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오른쪽과 왼쪽에 하느님의 집이 우뚝 서게 되는 것이고, 중국 대륙의 복음화를 향한 양 교두보가 마련되는 셈입니다.
이제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을 살펴 보겠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헬레니즘에 따라 우상숭배를 강요하던 그리스 세력에 맞서 일어난 마카베오 가문의 유다와 그 형제들은 독립전쟁을 일으켜 성소를 정화하고 정화된 성소의 제단에서 하느님께 번제물과 감사 제물을 봉헌함으로써 일시적으로나마 독립의 기운을 크게 일으켰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키셨습니다. 대사제를 비롯한 유다교의 지배층이 기도하는 하느님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네 복음서 모두에 이 사건이 기록되어 있는데, 그 시기에 대해서 공관 복음서들에서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말기로 기록해 놓았지만 요한 복음서에서는 초기로 기록한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의 기록을 종합해 보면 율법에 따라서 매년 과월절 무렵에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하여 순례하곤 하시던 예수님께서 공생활 초기와 말기에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시키신 것 같습니다.
번제에 쓰일 희생 제물들, 즉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을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탁자까지 둘러엎으시면서 과격하게 성전을 정화시키셔야 했을 정도로 그 당시 예루살렘 성전은 온갖 비리와 부패가 만연하던 복마전이었습니다. 마카베오 전쟁 당시 제단을 정화하던 초기의 열정이 사라지고 이권에 대한 욕심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식민 통치하던 로마제국에 대하여 부역하던 사두가이파 사제들이 제사독점권을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자 예루살렘 성전을 타락시켰기 때문입니다.
성전에 대한 유다인들의 열정과 예수님의 열정 사이에는 차이가 근본적으로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건물로서의 성전에 대한 열정이라면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당신의 몸이야말로 진정한 성전으로 간주하시고 부활 신앙으로 살아가는 공동체에 대한 열정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에 대한 이러한 태도의 차이는 선교 활동에서도 커다란 차이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한국 교회와 베트남 교회는 선교의 역사에서 차이가 있고 그 성과에서도 그러합니다. 선교 역사는 베트남이 2백 년 정도 앞섰지만 선교 성과는 오늘날 한국이 훨씬 앞섰습니다. 그러나 성전 중심의 신앙이 우세하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입니다. 오늘날 베트남에 가 보면 미사 시간에 젊은이들이 꽉 들어차서 성전에 자리가 모자라는데, 한국에서는 성전이 텅 비어 있는데다가 젊은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 모습도 커다란 차이입니다. 하지만 부활 중심의 신앙으로 전환하지 않는 한 베트남 교회도 조만간 한국 교회처럼 되고 말 것 같습니다. 1970년대 군사독재 시절에는 우리 교회에서도 시국미사가 열릴 때마다 젊은이들이 꽉꽉 들어찼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성전은 현장 교회의 마침표입니다. 현장에서 부활 신앙을 증거하기 위한 사도직 활동이 왕성하게 이루어지면 성전도 활기를 띱니다. 그와는 반대로 현장 사도직 활동이 시들해지면 성전은 텅텅 빕니다. 1998년에 대희년을 앞두고 열린 아시아 주교 시노드에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아시아 주교들은 이렇게 선언한 바 있습니다:
“전 세계의 교회와 함께, 아시아 교회는 하느님께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하신 모든 것에 경탄하면서, 그리고 ‘제1천년기에는 십자가가 유럽 땅에 심어지고, 제2천년기에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 심어졌던 것처럼, 제3천년기에는 이처럼 광대하고 생동적인 이 대륙에서 신앙의 큰 수확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면서, 그리스도교 제3천년기의 문턱을 넘어갈 것입니다”(아시아 교회, 1항).
요한 바오로 2세는 본시 아시아에서 태어난 말씀이 정작 본 고장에서 고작 3% 미만의 극소수 신자들에게서만 받아들여지고 있는 참담한 현실을 대단히 안타까워하면서도, 지구 전체 인구의 2/3가 넘는 아시아 대륙에 절반 이상의 다수 인구가 그토록 가난한 현실을 더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시아 대륙에서 유일한 선교 성공 사례로 찬탄을 받고 있는 한국교회가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협력은 물론 서구교회의 원조도 중재해서 아시아의 가난한 이들을 돕는 데 앞장서기를 간절히 염원하였기에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하여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고 세계 성체 대회를 주관하였던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이 성체 대회의 주제는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에페 2,14)였는데, 이는 교황이 직접 권유하여 정해진 것으로서 지구상에서 마지막 남은 냉전구도의 분단국가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도 정작 우리가 지향해야 할 목표는 아시아의 복음화이며 이를 위해 한국 교회가 받은 바 은총을 봉헌하면 바라는 바 평화는 덤으로 얻어질 것임을 강력하게 암시하는 권유 행동이었습니다.
아시아의 복음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는 아시아 주교들의 건의를 받아서 대희년을 앞두고 반포된 교황권고 문헌 「아시아 교회」 후반부 결론에서, 아시아의 복음화를 위해서도 선결과제로서 해결해야 할 아시아의 공동선 열 가지를 제시한 바 있었습니다: 교회의 사회교리(32항), 인간 인격의 존엄성(33항),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34항), 생명의 복음(35항), 보건(36항), 교육(37항), 평화의 건설(38항), 세계화(39항), 외채(40항), 환경(41항).
즉, 아시아 대륙이 복음화되기 위해서는 그 이전의 역사에서 유럽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등 여타의 대륙에서 진행된 선교 노력이 성전 중심의 신앙으로 추진되었던 것과는 달리, 공동선을 증진시키기 위한 신앙 즉 다시 말하면 부활 중심의 신앙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천명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의 선교’이며 착한 사마리아인의 표양입니다. 이는 비단 아시아 대륙을 복음화시킬 수 있는 묘안일 뿐만 아니라 이로 인해 제3천년기를 맞이하는 그리스도교 전체와 가톨릭교회에도 신앙의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파스카 과업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