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
‘'축록자불견산 확금자불견인’'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은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과 권력을 움켜쥐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는 말이다.
사냥하기 위해 짐승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산의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어 주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며,
돈과 권력을 탐해 욕심을 내면 곧 자신의 앞을 밝혀주는 진리가 가려져 오로지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권력욕(權力慾)과 이욕(利慾)에 몰입돼 있거나
현혹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회의 상식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를 완전 잊어 버리는 것.’
을 비유할 때에도 쓰이는 말이다.
'축록자불견산‘
(逐鹿者不見山)이란 말은 중국 전한(前漢) 때 황족이자 회남왕(淮南王)인 ‘유안' (劉安, B.C. 179 ~ B.C. 122)이 방방곡곡의 ‘빈객’(賓客)과 ‘방술가’(方術家)를 모아서 편찬한 전 21권 짜리 일종의 ‘백과사전’격인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 편‘(設林訓 篇)에 있다.
《회남자〈설림훈〉에는
‘축록자불고토’
(逐鹿者不顧兎)’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 즉 바로 옆의 작은 일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확금자불견인’
(攫金者不見人)’의 전고(典故)는 열자(列子) 설부(說符)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齊)나라 사람들은 금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의관을 갖추고
금을 파는 곳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손에 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낚아채 빼앗았다.
(齊人有欲得金者, 淸旦, 被衣冠, 往鬻金者之所, 見人操金)
관리가 그를 체포해 포박하며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금을 빼앗았는가?”
고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금을 낚아챌 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攫而奪之. 吏搏而柬縛之, 問曰, 人皆在焉, 子攫人之金, 何故. 對曰, 取金之時, 徒見金, 不見人.)
라고 대답했다.
두 고사성어 모두 눈앞의 명예와 이익, 쾌락과 욕망을 쫓느라 눈이 멀어져 명철함이 가려지기 때문에 도리를 저버리거나,
이익에 눈이 뒤집혀 위험이 다가오는 것 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른바 권력을 움켜 쥔 여당과 권력을 빼앗으려는 야당(군소 야당 포함)은 정당의 모양새도 그렇지만 정당의 성격을 나타내는 당의 지도층과 당원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자세, 언행과 정치·사회적 행태는 정당에 관여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성격 및 행태와 확연하게 구별된다.
여당인의 마음속에는 독선· 아집·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야당인은 현실 사회를 향한 강력한 불만과 내 편이 아나면 적(敵)이라는 강한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갖고 있는 생각 및 행동과는 어쩌면 반대의 길을 걸어야만 적성이 풀리고,
그로 인해 삶의 만족을 느끼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말해도 좋을 성 싶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은 똑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들
다 말한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은 오로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위해 목숨 바쳐 그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거나 뺏으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지가 않아서 말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권이 끝나고 나면 전혀 그렇지 않은 비참한 현상이 빚어지는 게 또 우리 정치사의 현실이다.
비극으로 끝난 정치인의 말로가 자의든 타의든 범죄인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국민은 신물 나도록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현상이 바로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유추해 본다.
이같은 현상이 꼭 정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관계, 재계 등 여러 분야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 유독 규모가 크고 여파도 매우 심각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우리도 여당을 해봤다느니, 야당을 해봤다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여당을 하다가 왜 쫓기는 야당이 되었는가?
야당을 하다가
왜 쫓는 여당이 되었는가를 많은 국민은 알고 있는데 그들만 그 원인은 밝히지 않는다.
자신도 모른 채 날뛰고만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쫓아다니느라 주변, 다시말해
정치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무엇을 움켜쥐느라 바로 앞에 있는 수많은 국민도
그들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또한 정치현실이고 정•관계 인사들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 (Nicolló di Bernardo dei Machiavelli, 1469~1527)는
‘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행동양식)
으로 유명하다.
그는 ‘군주론’에서 ‘정치가는 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
고 하면서
‘정치는 일체의 도덕·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비록 도덕· 종교에 반(反)하더라도
목적 달성이란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反道德性·
(반도덕성)
反宗敎性(반종교성)
은 정당화 된다’
고 했다.
이 말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하기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방법도 허용된다.‘
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동양의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과 서양의 ‘Machiavellism’이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라는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정•관계에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 부정, 부패, 비리가 난무하는 해괴한 권력놀음이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 등 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 말에
'개눈에 뭐 밖에 안 보이듯
자신이 권력, 돈, 명예 가운데 하나라도 추구하면
그의 눈엔 오로지 그것 밖에 안 보인다.
이런 것을 정관계 관련자들이 사전에 알았건 몰랐건 밝고, 건강하고, 정직한 사회를 갈망하는 국민은 몰상식하게 이어지는 정•관계 등 의 해괴(駭怪)한
권력 놀음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은
‘'사슴을 쫓는 자는 산을 보지 못하고, 돈과 권력을 움켜쥐는 자는 사람을 보지 못한다’'
는 말이다.
사냥하기 위해 짐승을 뒤쫓는 사람은
자신의 눈으로
산의 주변을 살필 여유가 없어 주변 정세를 파악하지 못하며,
돈과 권력을 탐해 욕심을 내면 곧 자신의 앞을 밝혀주는 진리가 가려져 오로지 탐욕에만 눈이 어두워지는 것을 빗대어 한 말이다.
‘권력욕(權力慾)과 이욕(利慾)에 몰입돼 있거나
현혹되어 있는 사람은
그 사회의 상식과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道理)를 완전 잊어 버리는 것.’
을 비유할 때에도 쓰이는 말이다.
'축록자불견산‘
(逐鹿者不見山)이란 말은 중국 전한(前漢) 때 황족이자 회남왕(淮南王)인 ‘유안' (劉安, B.C. 179 ~ B.C. 122)이 방방곡곡의 ‘빈객’(賓客)과 ‘방술가’(方術家)를 모아서 편찬한 전 21권 짜리 일종의 ‘백과사전’격인 <회남자(淮南子)>의 ‘설림훈 편‘(設林訓 篇)에 있다.
《회남자〈설림훈〉에는
‘축록자불고토’
(逐鹿者不顧兎)’라는 말도 있는데, 이는 사슴을 쫓는 자는 토끼를 돌아보지 못한다는 뜻으로,
큰 일을 이루려는 사람은 작은 일 즉 바로 옆의 작은 일을 돌아보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
‘확금자불견인’
(攫金者不見人)’의 전고(典故)는 열자(列子) 설부(說符)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齊)나라 사람들은 금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았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의관을 갖추고
금을 파는 곳에 갔는데,
어떤 사람이 손에 금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손으로 낚아채 빼앗았다.
(齊人有欲得金者, 淸旦, 被衣冠, 往鬻金者之所, 見人操金)
관리가 그를 체포해 포박하며 물었다.
“사람들이 모두 있는데 어찌 다른 사람이 손에 쥐고 있는 금을 빼앗았는가?”
고 물으니 그가 대답했다.
“금을 낚아챌 때 사람은 보이지 않고 금만 보였습니다.”
(攫而奪之. 吏搏而柬縛之, 問曰, 人皆在焉, 子攫人之金, 何故. 對曰, 取金之時, 徒見金, 不見人.)
라고 대답했다.
두 고사성어 모두 눈앞의 명예와 이익, 쾌락과 욕망을 쫓느라 눈이 멀어져 명철함이 가려지기 때문에 도리를 저버리거나,
이익에 눈이 뒤집혀 위험이 다가오는 것 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것을
비유한 말이다.
이른바 권력을 움켜 쥔 여당과 권력을 빼앗으려는 야당(군소 야당 포함)은 정당의 모양새도 그렇지만 정당의 성격을 나타내는 당의 지도층과 당원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자세, 언행과 정치·사회적 행태는 정당에 관여하지 않은 보통 사람들의 성격 및 행태와 확연하게 구별된다.
여당인의 마음속에는 독선· 아집·교만으로 가득 차 있으며,
야당인은 현실 사회를 향한 강력한 불만과 내 편이 아나면 적(敵)이라는 강한 적개심으로 불타고 있다.
일반 국민들의 갖고 있는 생각 및 행동과는 어쩌면 반대의 길을 걸어야만 적성이 풀리고,
그로 인해 삶의 만족을 느끼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들이라 말해도 좋을 성 싶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인은 똑같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들
다 말한다.
그러나
여야 정치인은 오로지 ‘권력과 돈과 명예’를 위해 목숨 바쳐 그 자리를 지키려고 발버둥치거나 뺏으려고 발악하고 있다고 누구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다.
정말 그렇지가 않아서 말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권이 끝나고 나면 전혀 그렇지 않은 비참한 현상이 빚어지는 게 또 우리 정치사의 현실이다.
비극으로 끝난 정치인의 말로가 자의든 타의든 범죄인으로 마무리 되는 것을 국민은 신물 나도록
두 눈으로 확인했다.
그런 현상이 바로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하고 유추해 본다.
이같은 현상이 꼭 정치에서만 나타나는 건 아니다.
관계, 재계 등 여러 분야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또 일어나고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그러나 정치 분야에서 유독 규모가 크고 여파도 매우 심각하다.
여야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우리도 여당을 해봤다느니, 야당을 해봤다느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여당을 하다가 왜 쫓기는 야당이 되었는가?
야당을 하다가
왜 쫓는 여당이 되었는가를 많은 국민은 알고 있는데 그들만 그 원인은 밝히지 않는다.
자신도 모른 채 날뛰고만 있는 것 같다.
무엇을 쫓아다니느라 주변, 다시말해
정치 상황이 변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했을까?
무엇을 움켜쥐느라 바로 앞에 있는 수많은 국민도
그들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을까?
정권이 바뀌어도
이 질문에 정확하게 답변을 하지 않는 것이 또한 정치현실이고 정•관계 인사들이다.
이탈리아의 정치·사상가인 마키아벨리 (Nicolló di Bernardo dei Machiavelli, 1469~1527)는
‘마키아벨리즘’ (Machiavellism :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부리는 행동양식)
으로 유명하다.
그는 ‘군주론’에서 ‘정치가는 그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수단을 사용해도 좋다’
고 하면서
‘정치는 일체의 도덕·종교에서 독립된 존재이므로 일정한 정치목적을 위한 수단이 비록 도덕· 종교에 반(反)하더라도
목적 달성이란 결과에 따라서 수단의 反道德性·
(반도덕성)
反宗敎性(반종교성)
은 정당화 된다’
고 했다.
이 말은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하기 때문에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떠한 방법도 허용된다.‘
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동양의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과 서양의 ‘Machiavellism’이 일맥상통하는 이론이라는것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우리 정•관계에 끈질기게 반복되고 있는 부정, 부패, 비리가 난무하는 해괴한 권력놀음이 ‘逐鹿者不見山
攫金者不見人’ 등 에서 비롯되고 있다.
우리 말에
'개눈에 뭐 밖에 안 보이듯
자신이 권력, 돈, 명예 가운데 하나라도 추구하면
그의 눈엔 오로지 그것 밖에 안 보인다.
이런 것을 정관계 관련자들이 사전에 알았건 몰랐건 밝고, 건강하고, 정직한 사회를 갈망하는 국민은 몰상식하게 이어지는 정•관계 등 의 해괴(駭怪)한
권력 놀음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