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 우두산
부산일보 기사 입력일 : 2019-12-18
외형·굴곡 ‘이 세상 것이 아닌’ 작은 금강산
부산에서 다소 원거리에 있지만, 경남 거창군 가조면에 있는 산세가 아름다운 산이다. 이 산은 ‘가조 십경’ 중 첫 번째로 꼽히는 의상봉을 보듬는다.
우두산은 아기자기한 산으로 작은 금강산으로 불러야 할 만큼 아름답다. 단풍이 곱다든가 산에 피는 진달래가 아름답다든가 물이 수려하다든가 하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지니고 있는 산의 외형과 품고 있는 굴곡들이 미적 형태를 취하고 있어 능선을 가면서 바라보는 조망들이 갈수록 아름답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산행만 한다면 장군봉 거쳐 올라가길
아기 오줌같이 물 흐르는 직소폭포
절로 가는 모노레일 선로 눈에 거슬려
고견사 동종·석불 등 문화재 유명
우두산 정상, 의상봉보다 덜 ‘화려’
내리막길, 아름다운 능선 구간 많아
주차장에서 바로 왼쪽 변압기 뒤쪽으로 오르는 등로는 장군봉을 거쳐 의상봉으로 오르는 일주 길이고 계곡을 따라가다가 왼쪽 골짜기로 드는 등로는 고견사를 거쳐 의상봉으로 오르는 직코스이다. 산행만을 원한다면 장군봉을 거쳐 오르는 코스를 권하고 싶다.
출발한 지 5분도 안 돼 만나는 직소폭포에는 물이 없다. 겨울철이라 계곡을 흐르는 수량이 적다 보니 폭포를 타고 내리는 물이 어린아기의 오줌 줄기 같다. 폭포는 80m 높이지만 수량이 적어 그다지 이름을 알릴만한 웅장함이 없다. 만약 수량이 풍부해 장대하다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만큼 주변 환경이 아름다우리라. 하지만 그렇지 못했다. 폭포 옆을 끼고 오르는 산길은 잘 다듬어져 있고 절에 가는 모노레일 선로가 숲을 가로질러 힘차게 오르는 것이 눈에 거슬린다. 아마도 고견사까지 가는 모노레일인 것 같다. 폭포를 돌아 오르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고 단풍철에는 더 아름다웠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40여 분 걸으니 산 능선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 자리 잡은 아담한 고견사를 마주한다.
고견사라는 이름은 원효대사가 절터를 잡을 때 이 지형이 전생에서 언젠가 본 적이 있는 터라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견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대웅전 내에 보존하고 있는 보물 1700호인 동종(銅鐘)이 있다. 경남 유형문화재인 고견사 석불과 숙종의 강생원 운영당 현판도 유명하다. 법당 안에 들어가 동종을 보니 문양으로 치장된 아름다운 동종이 어제 만든 것처럼 잘 보존돼 있고 석불은 대웅전 뒤쪽 바위 벼랑에 새겨져 속세를 굽어 내려다보고 있었다. 현판은 찾지 못하고 발길을 의상봉을 향해 떼놓았다. 절까지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던 길이 절을 지나면서부터는 가파른 길로 이어졌다. 의상봉 아래 커다란 바위 아래에는 의상의 기도처가 마련돼 있었다. 능선에 도착하니 먼저 산을 오르던 사람들이 간식을 들고 있다가 먹고 가라는 인사를 한다. 고맙지만 사양을 하고 뒤쪽으로 돌아서 의상봉을 오르는 덱 계단 앞에 섰다. 까마득한 계단이 눈에 들어온다. 문득 “계단을 만들기 전에는 어떻게 의상봉에 올랐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길도 낼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 산을 오르는 중간에 하켄을 박은 자국과 간혹 밧줄을 맨 흔적들로 미뤄 줄을 매달아 길을 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많은 이들의 수고로 의상봉 암봉을 수월하게 오를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하지만 한쪽에선 ‘힘들게 오른 만큼 성취감도 큰 것일 수 있다’는 생각이 샘 솟았다. 고견사를 떠난 지 1시간 만에 의상봉 정상(1032m)에 섰다. 돌올 된 바위 봉우리 위에서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든다. 얼굴이 시려온다. 손이 시리다.
의상봉 바위 벼랑 끝에 서서
비명으로 흘러가는 바람을 본다
싸늘한 온기로 울부짖는 절규
얼마나 많은 물굽이를 돌아왔기에
목이 잠겨 소리 내지 못하고
벼랑을 손톱으로 할퀴고만 있느냐
어깨에 세속이 무거운 그대여
힘들여 올라선 벼랑 끝에 서서
바람을 만나 보라 네 가는 길에는
쉽게 이루어지는 오르막도 없고
손길 따스한 벼랑도 없다 하지 않는가
월악산 영봉이나 월출산 천황봉, 와룡산 상사 바위처럼 거대한 암봉으로 이뤄져 있는 의상봉에서 주변을 조망해 본다. 덕유산 줄기가 흘러가는 것도 보이고 가야산의 톱날 봉우리도 보인다. 남으로 가까운 비계산, 서쪽으로 기백산, 황석산의 조망이 시원하다. 정상에 서는 맛은 이런 조망 때문인지도 모른다.
살갗을 파고 드는 추위에 오래 머무를 수 없다. 정상에서는 5분이다. 늘 그렇다. 정상은 다음에 올 사람을 위해 비워 두어야 한다. 다시 올라왔던 수많은 계단들을 내려갔다. 오를 때 힘들었던 계단도 내려갈 때는 거저먹기다. 우두봉 정상을 향한다. 40분여 만에 도착한 우두산 정상(1046m)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화려한 의상봉에 비하면 주변 조망도 시원찮고 정상에 섰다는 기분도 별로 들지 않는다. 의상봉과 14m정도 밖에 차이 나지 않는 우두산 정상은 이게 정상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래도 정상 대접을 받는 이유는 아마 산 능선이 갈라지는 이유에서인 것 같다. 매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비계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갈라지는 곳이다. 우두산이라는 이름은 산 정상의 형태가 소의 머리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우두산 정상의 조망은 의상봉에서의 조망보다 시원찮다. 다소 초라해 보이는 정상에는 도시락을 먹을 만한 공간이 없다. 조금 더 가다 식사를 하고 마장재를 향해 출발했다. 얼마 못 가 널따란 헬기장에 벤치를 만들어 놓은 곳이 나타났다. 점심 먹기에 딱 좋은 공간이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게 사람이라 했던가. 겪어보지 못한 곳에서는 누구나 그 말에 공감한다. 특히 산길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우리 사는 일에도 또한 그러하지 아니할까?
헬기장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시간이 일러 마장재 갈 생각으로 지나쳐 갔다. 가는 길은 아기자기한 능선길 내리막이다. 한고비 내리막을 내려섰을 때 조각품을 전시해 놓은 것 같은 아름다운 암릉 구간이 나타났다. ‘별유천지비인간’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며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장군봉과 의상봉이 보이고 진행 방향으로는 비계산이 웅자(雄姿)를 드러내고 있다.
우두산은 별유산이라고도 불린다. 이백의 시 ‘산중답속인’에 나오는 ‘별유천지비인간’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마도 장군봉을 포함해 의상봉과 같은 아름다운 봉우리를 간직하고 있어 그렇게 불렸던 것 같다. 산을 다녀온 느낌도 별유산이라고 불리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이 세상에 있으면서 이 세상의 것이 아닌 산’ 말이다. 장군봉은 건너편 미녀산과 어울려 아름답고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암봉에서 충분한 휴식을 즐기고 10여 분 내려가자 삼거리 고개가 나왔다. 거기에서 마장재까지는 다시 1.8km를 가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하산길로 접어들고자 마음먹는다. 떨어진 낙엽으로 덮인 하산길은 미끄러웠다. 등산화가 낡아서 그런 것인가. 눈길보다 더 미끄러운 길이 낙엽길이다. 몇 번을 미끄러져 넘어지며 도달한 곳에 출렁다리가 걸쳐져 있다. 출렁다리 아래 계곡에는 소와 담이 있고 작은 폭포도 있어 다리에서 바라다보는 풍광이 일품이라 한다. 겨울철 보수 공사로 출입이 통제되고 있어 그것들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다. 길을 끝내고 나니 곧 주차장이다. 산행 시간은 4시간 30분 정도였다.
국내 첫 Y자형 출렁다리… 세 방향서 즐기는 아찔한 절경 [2020 대한민국 국토대전]
파이낸셜뉴스 기사 입력일 : 2020.07.15.
대한토목학회장상
국내 산악 현수교량 기술력 향상 평가
'거창 항노화힐링랜드 Y자형 출렁다리'가 '2020 대한민국 국토대전'에서 대한토목학회장상을 수상했다. 국토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국토디자인 향상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거창 항노화힐링랜드 Y자형 출렁다리는 경남 거창 가조면 수월리 산 19 일원에 있다. 총예산은 28억원으로 출렁다리 자체에 13억4000만원, 잔도 및 부대공사에는 14억6000만원이 들었다. 지난 2017년 1월 사업계획을 수립해 2019년 9월 공사를 마쳤다.
사업은 등산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자연휴양림 내 등산로를 연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또 3개 봉우리가 함께 있고, 하부에 용소폭포가 있다는 지형적 특징도 살렸다. 그 덕분에 등산객들은 기암괴석이 많은 우두산 등 3방향의 다양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게 됐다.
출렁다리 세 방향의 길이가 모두 다른 만큼 중앙부에 작용하는 인장력 균형이 관건이었다. 공법심의 및 선정이 끝난 뒤 구조분야 전문가의 기술자문도 받았다. 이후 약 반 년 동안 전문학회를 통해 진동실험 및 구조안전성을 검토했다. 이 때문에 국내 산악 현수교량의 기술력을 향상하고 우수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최근에는 거창 항노화힐링랜드 Y자형 출렁다리와 연계된 '출렁다리 트레킹길'도 조성했다.거창 항노화힐링랜드 Y자형 출렁다리 조성으로 기대효과도 크다. 산악지형을 서로 연결하는 국내 최초 특수형태의 Y형 출렁다리 설치로, 거창군을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현수 기자
거창 [ 우두산 & Y자형 출렁다리 ]
산행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