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에서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 앨런 와츠
나는 고요히 앉아, 혹은 천천히 걸으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
내 존재의 기본 감각을 느끼고 싶고
살아 있는 것과 죽은 것에 놀라워하고 싶고
나의 호흡을 바라보고 싶고
공기 중의 온갖 소리를 듣고 싶고
구름과 별들로 내 눈을 애무하고 싶다.
일체의 걱정을 내려놓고 크게 웃고 싶고
삶과 죽음이 동전의 양면임을 완전히 깨닫고 싶다.
나는 이성의 동반자가 한 명 있었으면 한다.
나와 하나가 되었다가 때로는 나와 씨름하고
나를 잘 따르다가 다음번엔 내 말에 반대하고
나를 존중하면서도 많은 일을 나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문득문득 보여 주는 그런 동반자가.
나는 관심 있는 독자와 청중을 위해
글을 쓰고 이야기하고 싶고
그들을 감동시키고 싶고
그들의 질문에 함께 생각하고 싶다.
또한 내가 모르는 것들에 대해 지루하지 않게 얘기해 주는
사람에게
귀 기울이고 싶다.
빛과 바람의 변화무쌍한 면을 그대로 반영하고
갈매기와 펠리컨과 제비갈매기와 논병아리와 야생 오리들이
찾아오는 물을
그저 바라보고 싶다.
멀리 떨어진 바위 위나 고독한 해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듣고 싶고
새벽 하늘을 응시하고 싶다.
❖
잎사귀는 온전한 잎사귀가 되려고 하고, 나비는 온전한 나비가 되려고 한다.
인간 역시 온전한 자기 자신을 갈망한다. 이것이 모든 존재가 가진 영성이라고
시인 엘렌 바스는 말했다.
세상은 우리에게 다른 무엇이 되라고 요구하지만 우리에게는 야생 오리처럼
'지금 이 순간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영국 출신의 사상가이며 20세기의 대표적인 불교 저술가인 앨런 와츠(1915~1973)는
이십 대에 미국으로 이주해 참선을 배웠다. 도중에 신학대학에 들어가 영국성공회 목사가
되었으며 동양 사상을 주제로 20여 권의 저서를 썼다.
대표작 <선의 길 The Way of Zen>은 물질주의와 세속화에 빠진 서구 세계에
'지금 이 순간'이라는 화두를 던져 큰 영향을 미쳤다.
서양인으로는 드물게 '영적 구루'의 반열에 올라 많은 이들이 따랐으며,
1960년대 인기 텔레비전 프로그램 <동양의 지혜와 현대인의 삶>의 진행자로도 활동했다.
"인간이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이 정의 내린 자신'과 더 이상 혼동하지 않을 때,
그는 그 즉시 우주적이고 독특한 존재가 된다."라고 와츠는 말했다.
또 다른 책에서는 이렇게 썼다.
“한번은 위대한 선승과 토론하던 중 선에 관한 책들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그때 선승이 말했다. '그건 시간 낭비이다. 당신이 진정으로 선을 이해한다면 당신은
어떤 책이든 사용할 수 있다. 성경을 사용할 수 있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사용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빗소리는 번역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에 속해 있지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가?
여기 작자 미상의 시 <나의 소망 My Wish>이 있다.
나는 단순하게 살고 싶다.
비가 내릴 때 창가에 앉아
전 같으면 결코 시도해 보지 않았을
책을 읽고 싶다.
무엇인가 증명할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원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다.
내 몸에 귀를 기울이고 싶고
달이 높이 떠올랐을 때 잠들어
천천히 일어나고 싶다.
급하게 달려갈 곳도 없이
나는 그저 존재하고 싶다.
경계 없이 무한하게
- 류시화, '시로 납치하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