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도 역시 너무 더웠다. 에어 콘은 참을성 없는 젊은 주민들에게 양보하고 선풍기를 돌리며 초저녁을 보냈다. 10시가 넘어 잠자리에 드니 선풍기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이리저리 다니다가 현관으로부터 바람이 솔솔 불어오기에 거기에 자리를 깔고 누웠다. 뒷길에 왕래하는 차량소음이 조금 심하지만 더위를 이기려니 참아야 했다. 한참을 기다려 잠이 들고 새벽까지 잠을 설치지 않고 잘 잤다.
아침에 일어나 내일(일요일) 있을 고등학교등산계획이 어떤지 핸드폰 멧세지를 뒤져보았다. 그 내용은 날씨가 너무 더위 산에 가기 어려우니 박물관에서 공부하며 시원하게 보내자는 것이다. 회장 자신이 며칠 전에 박물관에 갔더니 배울 것도 많고 시원해서 좋았다는 것이다. 회장의 아이디어는 좋으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고 많은 지식을 머리속에 가득 채워놓는 일은 오히려 삶에 방해가 된다. 사람이 지혜를 많이 갖추는 일은 좋으나 지식을 많이 갖는 것은 너무나 생각이 많아져 이것저것 생각하고 걱정하느라 오히려 살아가는데 지장이 되지 않나 생각된다. 우리같이 늦은 나이에는 생활은 여유 있게 머리는 단순하게 하여야 생각이 명쾌하고 생활이 밝아진다. 늦은 나이에 뭔가 되겠다고 날뛰는 친구들을 보면 자신의 주제도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늦은 나이에는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감상하거나 자연을 관조하며 좋은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하지 지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물론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려면 젊을 때 이미 철학 문학 역사 등 인문학적인 지식은 갖추어야 한다. 기타 다른 지식은 생활수단이어서 생활전선에 투신하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이다.
요즈음은 날씨가 너무 더워 낮을 피해 이른 아침에 산에 간다. 등산채비를 갖추고 5시에 출발했다. 5시면 밝아지는 시간이다. 여느 때 이 시간에는 조금 선선한 기색이 있었으나 오늘은 더운 공기가 정체되어 무덥다. 그래도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낮보다는 한결 덜 덥다. 등산초입에 드니 7월 말이라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매미는 낙엽이 부패하는 계곡에 산란하여 굼벙이를 키우므로 산 아래 기슭근처에 집단으로 서식한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매미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책으로 얻는 지식과 시내의 각종 도서관 박물관에서 얻는 지식보다 산 속의 자연박물관에서 얻는 지혜를 더 좋아한다. 자연의 질서는 인간의 질서보다 명확하고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다. 아무리 날씨가 요동쳐도 입춘이 지나면 따뜻한 봄이 오고 하지가 지나면 더위가 온다. 인간의 질서는 너무나 복잡하고 변화무쌍해서 아무리 자식과 지혜를 갖춘 지식인이나 예언자도 예측할 수 없다. 이런 단순 명확한 자연의 질서를 관조하는 일은 즐거운 일이다. 지나가는 산길에서 향긋한 여름꽃 냄새를 맡기도 하고 싱그러운 풀냄새 구수한 낙엽 썩는 냄새를 맡는 것은 즐거움이다. 산길을 가파른 길 돌길들로 힘 들기는 하지만 숲속이라 시내길보다 시원하고 막히지도 복잡하지도 소음도 없다. 대소변이 마려우면 어느 곳이나 변소라 불편함도 없다. 시내에서 대소변이 급한데 공중변소가 보이지 않으면 그 고통이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우리 같은 노인은 잦은 소변 때문에 많은 고통을 당한다.
이런 상상을 하며 걸어가니 두 시간도 금방 지나갔다. 내려오는 계곡에도 매미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힘든 운동을 하면 머리는 단순해져 맑아지고 체력이 길러져 아무리 더위가 심해도 지치지 않고 여름을 보낼 수 있다. 삶은 어려움을 피하는 것보다 맞서는데서 활력을 얻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