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애자재를 성취한 도인들
경봉대선사
[법좌에 올라 주장자로 법상을 한번 치고 이르셨다.]
예전에 통도사 백련암(白蓮庵)에 수행을 잘하신 성곡(性谷)스님이 계셨다. 스님은 세상 인연이 다하였음을 알고 상좌에게 말했다.
“오늘 열반(涅槃)에 들란다”
상좌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일이 정월 초하루 설날이다. 음식도 장만해야겠고 온 대중이 목욕재계를 하는 등 부산한 일이 많은데, 설도 못 쇠고 장사 치르게 되었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다.
“스님, 내일이 설날이라, 대중들이 음식을 장만하고 목욕을 하느라 매우 분주합니다. 오늘 열반에 드시면, ‘그 노장, 하필이면 방정맞게 설날에 죽어서 남의 설도 못 쇠게 하고 초하루부터 장사를 지내게 한다’며 모두들 욕을 할 겁니다. 이왕이면 내일 설날을 지내고, 초사흘 불공(佛供)을 보고, 초이레 칠성불공을 드린 다음에 가면 어떻겠습니까?”
노장이 잠잠히 생각하더니 말하였다.
“네 말도 참 그럴듯하구나. 그렇게 하지.”
그리고는 초하루, 초사흘, 초이레 불공을 모두 보고 열반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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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죽을 때를 알고 죽는 날짜까지 바꾸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못하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불교집안에는 이러한 일이 자주 있다. 수행이 깊은 사람들은 생사에 자재한 삶으로 일상을 멋들어지게 장엄(莊嚴)하는 것이다.
성경에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였다고 했는데, 불교에도 이러한 부활이 종종 보인다.
달마스님은 독약을 여섯 번이나 받았다. 광통율사(光統律師)와 유지삼장(流支三藏)이 모함을 하여 독약을 받았는데, 마시면 내장이 녹는 무서운 독약이었다. 이런 약을 다섯 번이나 마시고도 끄떡이 없었는데, 여섯 번째는 말하였다.
“인연이 다하였으니 할 수 없다.”
스님은 마시고 나서 사람들에게 이르셨다.
“이 약이 얼마나 독한가 보아라.”
스님이 돌에 남은 약을 부으니 돌이 쩍 갈라졌다.
달마스님이 단정히 앉아 열반에 들자 화장을 하지 않도 웅이산(熊耳山) 정림사(定林寺)에 탑을 세우고 탑 안에 안치하였다.
그 후 3년이 지났을 때 송운(宋雲)이 서역(西域)의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葱嶺)이라는 재에서 지팡이에 신을 한 짝 꿰메고 가는 달마스님과 마주쳤다. 송운이 여쭈었다.
“스님,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서천으로 간다.”
송운은 조정으로 돌아와서 왕에게, 총령에서 신 한짝 메고 서천으로 가는 달마스님을 만났다고 했다.
“그 스님은 벌써 열반에 드신 지 3년이 지났는데, 그럴 리가 있겠느냐?”
왕은 ‘탑 속의 관을 열어보라’는 명을 내렸다. 그래서 열어보았더니, 과연 텅 빈 관 속에 신 한 짝만 남아 있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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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한 약을 마시고 죽었는데, 3년 동안 관 속에 있다가 총령을 넘어갔다? 이것은 정말 불가사의한 일이어서 보통 사람의 견해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런 도리이다. 곧 총령에서 서천으로 신발 한 짝을 메고 간 것은 마음과 마음으로 서로 전하는 소식을 타나낸 것이다.
불생불멸(不生不滅)하는 생멸이 뚝 떨어진 이 자리 생사해탈하고 생사에 자재하는 이 자리 하나를 밝히려고, 수행인들은 천신만고를 서슴지 않고 겪는다.
그런데 참으로 거룩한 생사자재는 단순히 죽음을 알고 죽음에서 자유로운 삶이 아니라, 만인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놓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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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라 삼성(三聖)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인 372년이다.
그런데 신라는 법흥왕(재위 514-539)때가 되어서야 불교를 국교로 받들었고, 이 신라 불교의 흥왕을 이끌어낸 법흥왕(法興王), 이차돈(異次頓, 본명은 박염촉-朴厭髑), 원효성사(元曉聖師), 이 세분을 신라불교의 삼성(三聖)이라고 한다.
법흥왕은 불교를 퍼뜨리려고 천경림의 숲을 베어서 절을 짓고자 하였다. 그러자 만조백관들이 모두 안된다고 왕에게 간하였다. 왕은 탄식하였다.
“참으로 나에게 덕이 없구나. 불보(佛寶)를 삼가 뫼시려고 하는데, 백성들은 불안하게 여기고 신하들은 따르지 않는구나. 누가 능히 나를 위하여 묘한 법으로 미한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있으랴.”
그 때에 사인(舍人)의 벼슬을 하던 이차돈이 곁에 있다가 청하였다.
“왕이시여, 소신을 참(斬)하여 중의(衆議)를 정하소서.”
“불교를 흥왕시키고자 하거늘, 불교를 저버리지 않는 자를 먼저 죽임이 옳겠느냐?”
“아니옵니다, 대왕시이여. 모든 것 중에서 가장 버리기 어려운 것이 목숨이지만, 이 몸이 저녁에 죽어 아침에 대교(大敎=불교)가 행하여진다면, 하물며 부처님의 해가 길이 밝아지고 이 나라가 평안해진다면, 저의 죽는 날이야말로 다시 태어나는 날이 아니겠습니까?”
“네 비록 포의를 입었지만 마음속은 비단과 같구나. 네가 그렇게만 해내면 가히 보살의 행이라 할 것이다.”
크게 감격한 법흥왕은 이차돈과 함께 크게 불법을 펼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마침내 이차돈은 천경림에 절을 짓기 시작하였고, ‘이차돈이 왕명을 받들어 절을 짓는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서라벌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이 소식을 들은 신하들은 크게 흥분하여 왕에게 따지자, 법흥왕은 자신이 영을 내린 것이 아니라 하고, 이차돈을 불러들여 문초하였다.
“절을 지은 것은 부처님의 뜻에 따라 소인이 한 일입니다. 불법을 행하면 나라가 크게 편안해지고 백성에게 이로운 것이니, 국령을 어긴다 한들 무슨 죄가 되겠습니까?”
주위의 신하들은 발끈하여 엄한 벌로 다스려야 한다고 하자, 이차돈은 분기에 차서 말하였다.
“왕이시여, 무릇 비상한 사람이 있은 다음에야 비상한 일이 있기 마련입니다. (夫有非常人有 然後非常事有), 저를 참(斬)하십시오.”
왕은 이차돈과 미리 상의한 대로 결단을 내려, ‘이차돈을 참하여라’고 하였고, 형장에 다다른 이차돈은 서원을 발하였다.
“불교가 나라에 복되고 백성에 이로우면 내 목에서 흰 젖이 나올 것이고, 나라와 백성에게 해가 될 것 같으면 피가 올라오리니, 이것으로 증명하리라.”
마침내 형리가 목을 베자 흰 젖이 솟아 올랐는데, 하늘에서는 묘한 꽃비가 내리고 땅은 크게 진동하였으며, 목은 멀리 백률사로까지 날아가서 떨어졌다. 이때가 이차돈의 나이 22세(또는 26세)인 527년(법흥왕 14)이었다.
이로부터 신라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민족의 자랑인 신라문화를 찬란하게 융성시켰고, 이 불교가 오늘날에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다.
사람은 다 살기를 좋아하지 죽기를 싫어하는데, 자기의 목숨을 불교를 위해 바쳤기 때문에 불교가 오늘날까지 내려온 것이니, 생사를 초월한 이차돈의 힘은 참으로 크고 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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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신라 삼성의 한 분이요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고승으로 추앙받는 원효스님 이야기를 하겠다.
원효스님은 도를 어디서 깨쳤는가? 의상스님과 함께 중국으로 유학하러 가던 중인 요동 땅에서였다.
날이 저물어 잘 집을 찾다가, 두 스님은 옛 무덤을 집인 줄 알고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들었다. 그런데 목이 어찌나 마르던지 잠에서 깨어난 원효스님은 주위를 더듬다가, 어떤 바가지에 담겨 있는 물을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시원하게 들이켜고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자기가 먹은 물이 사람 해골에 고인 물이었다. 어찌나 역하였던지 구토질을 하다가 활연히 깨달았다.
“아, 어젯밤에 모르고 먹을 때는 그토록 시원하였는데, 오늘 날이 밝아 사람의 해골에 담긴 물이라 분별을 하자 구토질이 나왔구나. 이 모두가 마음이 일어나면 갖가지 법이 일어나고, 마음이 멸하면 갖가지 법이 멸한다는 가르침이 아닌가! 삼계는 오직 마음이요(三界唯心), 만법은 나의 인식(認識)에 달린 것을 (萬法唯識), 마음 밖에 법이 따로 없으니 어찌 마음 밖에서 구할 것인가!”
마침내 깊은 도를 깨달은 원효스님은 ‘이제 나는 도를 알았으니 당나라에까지 갈 필요가 없다’하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열심히 저술 활동을 하면서, 신라 방방곡곡을 다니며 무애자재하게 불교를 전파하였다.
주장자를 짚고 길을 가다가 선비를 만나면 선비에 맞게 설법을 해주고, 농부는 농부에 맞게, 어른은 어른에게 알맞은 법문을 해주고 거지에게는 거지에 맞게, 여자에게는 여자에게 필요한 법문을 해주었으니, 만나는 대로 감화를 시키며 다녔다.
또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에게는 어려운 말로 진리를 말해주어야 모를 터이니 동요를 들려주었다.
중아중아 니 칼 내라, 뱀 잡아 회 치고,
개고리 잡아 탕하고, 찔레 꺾어 밥하고,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평등하게 나눠 먹고,
알랑달랑 놀아보세, 알랑달랑 놀아보세.
아이들이 그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고, 좋다고 웃고 노는데, 그 동요가 진리의 말이다. 이는 정말 멋진 법문인데, 특별히 그 뜻을 밝힌다.
‘중아 니 칼 내라’는 사람마다 지혜의 칼이 있는데, 수도하는 중의 칼이니 무엇이든지 잘 드는 보검이다. ‘찔레 꺾어 밥하고’는 진리로 밥을 한다는 말이고, ‘개고리 잡아 탕하고’는 개오리(皆悟理), 곧 모두가 깨닫는 이치로 탕을 한다는 말이다.
‘뱀을 잡아 회 친다’는 것은, 뱀을 사사(四蛇)라고 하는데 우리 몸은 흙, 물, 불, 바람 등 네 가지(四大) 기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네 가지가 마치 모진 뱀과 같으니, 이 네 가지 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던지 많던지 하면 몸에 병이 나서 사람을 고생시키니, 이것을 조복 받고 다스려서 회를 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니 한 그릇, 내 한 그릇’, 아이나 어른 할 것없이 평등하게 한 그릇씩 먹고는, ‘알랑달랑 놀아 보자’는데, 이 알랑달랑 노는 것이 천진무구(天眞無垢)한 마하반야바라밀심경(摩訶般若波羅蜜心經)이다. 아이들은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그저 고개를 끄덕 거리며 좋아라 한다.
이러한 무애도사 원효스님은 그 방대한 저술과 도덕과 깊고도 심원한 학문은 그 당시에 벌써 동양 삼국에 이름을 떨쳤다. 멀리 인도의 용수(龍樹)와 마명보살(馬鳴菩薩)에나 비교할 수 있다면 있을까? 정말 걸림 없이 살다가신 우리나라 최고의 고승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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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지기 우리 모두 한 마음을 바로 깨쳐서 일랑달랑 놀 수 있는, 걸림 없고 멋진 생사자재의 인물이 되기를 축원해 마지않는다. 이 법계는 원래부터 참으로 자유롭고 멋진 곳이다. 부디 마하반야의 큰마음을 깨쳐서 생사자재하고 이 법계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기 바란다.
‘할(喝)’[하고 법좌에서 내려오시다.]
월간 [법공양] 통권 352호 불기 2568년 5월호
-불교신행연구원-
첫댓글 나무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