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우리는 죄가 많습니까, 적습니까? 우리는 쉽게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까, 아닙니까? 왜 판공 성사를 보는 신자들에게는 죄가 별로 없을까요? 조금만 깊이 성찰해 본 신자라면, 우리가 얼마나 쉽게 죄를 짓는지, 또 얼마나 죄가 많은지 스스로 알고 있습니다. 늘 말씀 드리지만, 우리는 죄인이라서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우리는 하느님 나라를 너무 쉽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살다 보면, 우리는 원래 약하고 부족한 존재니까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어도, 하느님 나라에 갈 것이라고 믿습니다. ‘내가 죄를 지어도, 하느님은 용서하는 분이니까, 하느님이 용서의 전문가라고 했으니까’, 죄가 있어도 마음 편히 하늘나라를 희망하며 살아갑니다.
요즘 많은 성직자들도 죄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악과 사탄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좋게 좋게, 일주일 힘들게 살다가 왔으니 편안하게 행복하게 돌아가라고.’ ‘우리가 약해서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었지만, 하느님이 무한히 용서하시니’, 회개하고 용서받으면 된다며 걱정 말고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러니 신자들도 ‘어느 신부의 말은 듣기 불편하다며 불평하고 다른 성당에 간다.’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의인들이 죄를 어떻게 극복하는지, 악인들이 죄의 결과로 어떻게 되는지’ 수많은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 많은 곳에서 ‘사탄이 얼마나 교묘하게 인간을 유혹하고 죄에 빠뜨리는지, 심지어 그가 하느님의 아드님에게마저 유혹의 손길을 뻗치는 대담하고도 무서운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죄악과 사탄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자들이 좋아하니까, 매일 ‘좋은 이야기, 재밌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뿐, 정작 가르쳐야 할 것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자들도 편안히 만족합니다. ‘남들보다 그저 죄를 좀 덜 짓고, 조금 착하게 살면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죄 덜 지은 것, 조금 착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생각과 믿음의 결과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과 과연 무엇이 다르고 얼마나 다른가?’를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이 더 이상 ‘하느님을 닮아, 하느님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깊이 인식하지 않습니다. 실상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가 ‘하느님처럼 살고 하느님을 닮아가는 거룩한 존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과 비슷하게 살아갑니다. 하느님 나라는 이렇게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닌데도, 구원은 이런 것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구원은 이 세상에서부터 하느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를 고백한 우리에게 자비로운 목소리로, “용서해 주었으니 죄짓고 또 와라.”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셨고(마태 5,48), 베드로 사도도 “여러분을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베드 1,15) 거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하느님을 닮으려면 가장 먼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제가 깨끗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하느님 나라에 가야 하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작은 죄도 피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작은 죄라도 우습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작은 죄가 반복되면 신앙인을 무너뜨립니다. 기도 빠뜨리는 것이 잦아지면 결국 안 하게 됩니다. 스마트폰을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처음에는 잘못이라고 느끼지만, 나중에는 더 오래 보고 있어도 그것이 잘못인 줄을 모릅니다. 인간관계가 깨지는 일은, 그가 나를 욕을 하거나 몽둥이로 나를 죽이려 해서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배려 하나 혹은 말 한 마디나 작은 씀씀이 하나 때문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 대부분 대죄라고 말하는 큰 죄는 거의 범하지 않지 않습니까? 여러분들 모두 정말 좋은 신앙인이 되는 데에 충분한 자격이 되고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웃을 바라보는 눈을 조금만 바꾸고 마음을 조금만 더 넓히면, 우리가 바라는 큰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제발 좀 읽고, 자주 하느님을 부르며 대화하고자 노력하면, 그분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웃 사랑과 하느님 사랑은 따로따로가 아니라 연결된 사랑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하느님 나라, 누구나 사랑하는 곳이 하느님 나라의 시작입니다. 사랑할 만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사랑이 넘쳐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이 넘치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 죄를 없애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 안에 온전히 받을 수 있고 깨끗한 곳에 그 사랑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죄 없이 깨끗해진 마음에 하느님의 사랑이 담기는지 부활 전에 꼭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 네이버밴드 "아톰 신부의 예수님처럼 살아보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