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4-4865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4.8.25. 주일오후예배 설교문
본 문 : 요한복음 5 : 1 - 8 제 목 : 네가 낫고자 하느냐? 찬 송 : 88, 272, 372, 425, 539. 복음성가 : 23, 33, 75.
할렐루야!! 이제는 더위가 한풀 꺾여서 좀 시원해진 것 같습니다. 지난번 그 무더위가 계속될 때에는 가을이란 도저히 오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어느덧 처서도 지났습니다. 이와 같이 계절은 틀림없이 찾아오고 모든 삼라만상은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유독 우리 인간들만이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죄악의 길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더위가 한풀 꺾였으니 그동안 침체된 우리의 신앙에 다시 불을 붙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이적가운데 한가지입니다. 요한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기적에 대하여 적게 기록을 하였지만 그 내용은 다른 복음서와 달리 아주 자세하게 기록된 것이 특징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1년 동안 다섯 번의 절기를 지킵니다. ① 유월절 = 1월,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해방된 날 ② 부림절 = 3월, 에스더가 하만의 모함으로 민족이 학살당할 것을 면한 날을 지킴 ③ 오순절 = 5월, 구약에서는 칠칠절이라고도 하고 보리 추수 후에 지키는 맥추절을 말함 ④ 초막절 = 10월, 출애굽시 40년 광야생활을 기념하는 절기로서 수장절, 장막절이라고도 함 ⑤ 수전절 = 12월, 수리아의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가 침략하여 성전을 더럽힌 것을 독립운동가 마카비가 독립운동을 일으켜 성전을 다시 찾고 수리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날을 기념하는 절기. 이와 같이 다섯 가지의 절기 중에 의무적으로 지키는 절기는 유월절과, 오순절, 장막절입니다.
이 다섯 가지의 절기 중에 오늘 말씀 중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신 절기는 어느 절기인가? 요4:35절 말씀에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고 하였고 6:4절 말씀에는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고 하였기 때문에 전후의 구절로 보아서 3월에 지키는 부림절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오는 규례를 무시하지 않으신 것을 알 수 있고 오히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명절 기분에 들떠 있는데 그런 축제분위기와는 정반대로 병고로 시달림을 받고 있는 베데스다 연못가로 가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에게서 버림받고 소외당하고 소망이 없는 병자들을 찾아가신 것은 예수님의 전 생애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본문 2절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베데스다라는 말은 자비의 집, 긍휼의 집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이 연못은 직경 17m로서 1888년에 발견이 되어서 지금은 그 연못 위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이 연못의 아래에는 지하수의 흐름이 있어서 때때로 그 지하수가 부글부글 거품을 내면서 괴어 올라와서 연못물을 동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천사가 이 물을 동요시킨다고 믿고 그때 제일먼저 연못에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이든지 고침을 받는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특히 고대의 사람들은 물(바다, 강)에 대하여 신성시 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에 예수님과 38년 동안 앓고 있는 병자와의 만남의 순간을 통하여 일어난 기적의 현장, 역사의 현장을 다시 한 번 순례를 하면서 우리들도 이 시간 주님을 만나서 모든 질병을 깨끗이 치료받는 기적이 일어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축복된 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오늘 저녁 우리 ○○교회가 베데스다 연못가의 행각이 되어서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은혜의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1. 38년 된 병자가 있었다고 하였습니다.
본문 5절-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고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이 환자의 이름이 무엇이며, 그가 누구이며, 무엇하던 사람이며,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좌우간 날 때부터 앓았다고 하여도 38세가 되었을 것이니 그 사람은 평생 고생을 해온 사람입니다. 본문 7절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라고 한 것을 보아서 그는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고 친구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쩌면 너무 오랜 세월동안 병고에 지쳐서 가족이나 친구나 친척이나 모든 사람이 그를 포기했는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그는 불쌍한 영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려도 어떻게든지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또 어떻게든지 연못에 들어가서 병을 고쳐 사람답게 살아보겠다고 그는 연못가에 누워서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람에게 마침내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할렐루야!! 이와 같이 우리 주님은 세상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찾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친구 없는 자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아무런 힘이 없는 자의 힘이 되어주셨습니다.
<찬 88 장> 내 진정 사모하는 친구가 되시는 구주예수님은 아름다워라 산 밑에 백합화요 빛나는 새벽별 주님 형언할 길 아주 없어라 내 맘이 아플 적에 큰 위로되시며 나 외로울 때 좋은 친구라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별 이 땅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주님은 소망을 주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긍휼을 주시려고 찾아오셨습니다. 그 주님을 오늘 이 밤에 이 시간에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주님을 만날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은혜를 받았습니다. 소원이 성취되었습니다.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병마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문제가 해결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와 자신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병자보다 자신이 더 났다고 생각하십니까? 주여!! 그 사람이 바로 내 모습입니다. <아 멘> 베데스다 연못가의 병자를 찾아오셔서 만나주시고 은총을 베푸시고 고쳐주심을 믿습니다. 38년이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헤맨 세월의 연수와 같습니다. 바로 우리들의 불신앙의 연수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었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써 살아온 지난날을 청산하고 이제 주님 만나 변화되어 기적을 창조하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 멘>
2. 예수님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본문 6절-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님은 이 병자에게 네가 어디가 아프냐? 어디 사는 누구냐? 얼마나 되었느냐? 왜 가족이 없느냐? 몇 살이나 되었느냐? 고 일체 묻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환자를 진찰할 때 시진(視診), 문진(問診), 촉진(觸診), 청진(聽診), 검진(檢診), 등의 다섯 가지의 단계를 거쳐 진찰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와 같은 번거로운 것이 필요치 않았습니다. 오직 그에게 소망을 일깨워 주는 말씀만 하였습니다. 이 환자는 이제 오랜 세월 병으로 지쳤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자기를 도와주는 이가 없기 때문에 고칠 수 있다는 것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람에게 주님은 소망을 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이 말씀은 거꾸로 말하면 “너도 나을 수 있다” 라는 뜻이 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간절한 소망입니다. 만약 그 환자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이대로 있다가 죽겠다는 생각을 하였다면 아무런 변화가 없었을 것입니다. 소망이 없으면 신앙도 믿음도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은 소원(꿈=Vision)이 있는 곳에 존재합니다. 소원이 적으면 신앙도 적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꿈을 가진 자를 축복하시고 믿음대로 이루어 주셨습니다.<아 멘>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절망이란 죽음을 뜻하는 것이며 힘이 없다고 낙심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낙심하는 것은 십자가 위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시39:7)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러나 오늘의 신자들에게는 간절한 소망이 없습니다. 은혜를 사모하는 간절함이 메말랐습니다. 주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정이 식었습니다. 삭개오는 안 되니까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까 주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막2:1-5절에 한 중풍 병자를 네 명이 들것에 들고 예수님을 찾아 가버나움에 왔는데 예수님 앞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하지 않고 지붕위로 올라갔습니다. 올라가니까 해결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해 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고 불가능하다고 단정해 버리면 안 됩니다. 도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시107: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시81:10) “나는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아 멘>
야곱은 라헬이라는 한 여인을 얻기 위하여 14년간을 일하면서 수일처럼 여겼다고 하였습니다.(창29:20) 땅의 것, 한 여인을 얻기 위해서도 온갖 정열과 모든 것을 다 동원하는데 하나님의 것을 얻기 위해서 무엇을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주님은 질문하고 계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 고침 받을 수 있다. “네가 은혜 받고자 하느냐?” - 큰 은혜를 주리라. “네가 축복을 받고자 하느냐?” - 네 소원대로 되리라. 지금 이 시간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이와 같이 물으신다면 “할렐루야!! 아멘. 주님만이 나의 소망이 되십니다” 라고 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3. 주님은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하셨습니다.
본문 8절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주님은 “네 죄냐?” “부모의 죄냐?” “왜 그렇게 되었느냐?” 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이라서 오늘은 고칠 수 없다. 있다 를 논하지 않았습니다. @ 자리에 누워서 하루도 남의 도움이 없이는 살수 없는 가련한 인생. @ 자타를 위해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폐인. @ 38년 된 환자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는 말씀입니다. 그 환자는 주님의 이 말씀을 믿었습니다. 이유를 달지 않았습니다.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설교에는 질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환자는 즉시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일어날 수 없는 줄로 알면서도 일어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는 말씀은 불가능한 명령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순종으로 일어나려고 할 때 두 발에 힘이 생기고, 병기는 가시고, 완전하게 치료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기적도 인간이 노력할 때 일어납니다. 38년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노력하니까 단번에 이루어 졌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이제는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침체된 믿음에서 떨치고 일어나야 합니다. 나태와 게으름의 올무에서 벗어나 일어나야 합니다. 깊은 좌절과 실망의 늪에서 일어나야 하고 온갖 질병과 고통에서 벗어나 일어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멘> 불가능은 없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아 멘>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주시네 성도여 일어나라 주께서 새 힘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
38년 동안 누워있던 자리, 남의 도움이나 받고 있던 자리, 남에게 혐오감만 주던 자리, 생산은 하지 못하고 소비만 하던 자리, 낙망과 좌절과 38년 동안 싸워오던 자리를 들고 일어났습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지내오며 잘못 누웠던 우리의 자리를 들어내고 새 생명 넘치는 기쁨과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아 멘!> ‘여기가 좋사오니…’ 가 아니라 죄 많은 세상의 자리, 지금까지 내가 즐기던 자리를 들어내 버려야 합니다.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38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그 환자는 38년 동안 싸우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오늘의 우리들도 인내로서 아무리 괴롭고 어려워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를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70년 동안 바벨론에 사로잡혀가서 포로생활을 하여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장 큰 타락은 포기하는 것입니다. (마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고 하였습니다. 이 환자는 38년 간 소망을 붙잡고 있다가 예수를 만났습니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2년 동안 겨우 겨우 가데스바네아까지 왔다가 그곳에서 하나님께 불신앙의 죄를 범하고 그 죗값으로 38년 간 광야를 방황할 때 하나님의 법궤를 붙잡고 잘 견디어 가나안땅에 들어갔습니다. 오늘의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붙들고 날마다 날마다 예수와 함께 동행하여 승리의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설교는 모두 실명제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