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용기를 잃게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위해 필요한 활동을 창조하게 만드는 힘을 주지.” 네덜란드 화가 빈센트 반 고흐는 절친한 화가였던 안톤 반 라파르트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다. 그는 때때로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기도 했지만, 고독을 예술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아를의 침실’은 화려한 색채 구사에도 불구하고, 텅 빈 방의 공허함을 전달한다. 이 외에도 그의 그림에는 ‘시인의 정원’ ‘구름 낀 하늘 아래 밀밭 풍경’ 등 아무도 없는 자연에서 고독함을 드러내는 작품이 유독 많다.
● 고독이란,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
그동안 많은 연구에서는 친구가 많고, 대인관계가 활발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봐왔다. 탄탄한 사회적 지지가 있으면 정서적 어려움에서 비교적 쉽게 회복할 수 있어서다. 실제로 외로움은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이 해롭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들어 외로움, 우울, 불안을 동반하는 ‘나쁜 고독’ 말고, 휴식과 이완을 주는 ‘좋은 고독’에 대한 연구가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혼자 있는 시간이 심리적으로 여러 이점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핵심이다.
고독에 관한 연구가 새롭게 주목받는 것은 1인 가구가 늘고, 평균 수명이 올라가면서 다양한 연령대에서 홀로 있는 시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고독이 불가피한 현대인들이 혼자 보내는 시간을 잘 활용하고자 하는 욕구가 그만큼 높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고독은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 고독한 시간을 즐기려면 고독이란 ‘아무와도 함께 있지 않은 단절된 상태’에서 ‘나 자신과 함께 있는 상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단절된 느낌은 우울감이나 고립감을 유발해 혼자 있는 시간을 편안하게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독의 기술
혼자 있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비결이 있을까. 영국 레딩대 심리학과 연구팀은 청소년부터 노년층까지 2035명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뭘 할 때 만족하는지 알아봤다. 우선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은 시간을 알차게 보냈다. 이들은 혼자 있을 때 요리, 그림 그리기, 독서, 운동, 악기 연주, 음악 듣기 등 다양한 취미활동을 했다. 또 혼자 있을 때 자신을 돌보는 행동을 했다. 몸에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명상을 하는 식이다. 그러면서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생각을 정리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등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땐 하지 못하는 것을 했다.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운 상태
혼자서 자연과 교감하며 기쁨을 느끼는 경우도 많았다. 정원을 가꾸거나, 공원을 산책하고, 등산하면서 잡념을 떨쳤다. 특히 노인들은 자연에 혼자 있을 때 가장 편안하고 덜 외로운 기분을 느낀다고 했다. 이와 반대로 혼자 있는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울, 불안, 지루함을 호소했다. 이들은 잠을 너무 많이 자서 아예 생활 리듬이 깨지거나, 잠에서 깨도 침대에서 멍하니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뭘 해야 할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했고, 혼자 있는 동안 불행하다고 느꼈다.
또 다른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타났다. 미국 미들베리 칼리지 심리학과 연구팀은 혼자 잘 지내는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하기 위해 혼자 놀기 고수들을 모집해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일단 이들은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운 상태’로 정의하며, 이를 선물, 풍요, 평화, 영양공급 등으로 묘사했다. 또 혼자 있는 시간을 지루해하지 않았고,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했다. 책을 읽거나, 목욕하거나, 식물을 가꾸는 등 소소한 휴식을 취하면서 하고 싶은 일에 집중했고, 이들은 이때 충전되는 느낌을 받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이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자신에 대해 알아가는 기회로 활용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궁금해 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으로 삼았다. 때로는 외로움, 슬픔, 절망 등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이들은 혼자서 고요히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고 답했다. 특히 앞서 연구에서처럼 자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우 기분이 나아졌다고 한 이들이 많았다.
● 즐거운 고독의 핵심은 자발성
가장 중요한 핵심은 이들이 자발적인 고독을 추구한다는 점이었다. 어쩔 수 없이 혼자 있는 게 아니라, 자유를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택했다. 이 시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더 기쁜지 알아가려고 했고, 긴장을 풀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다. 그래서 이들은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을 혼자 있는 시간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연구 참여자들은 “충분히 혼자 시간을 보내고 난 뒤엔 오히려 주변 사람들과 더 행복한 마음으로 어울릴 수 있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