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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32414 충남 예산군 삽교읍 두리학교길 19 ☎(041)334-4865 기독교대한감리회 삽교교회 원로목사 박 한 응(朴 漢 應)H.P 010-5452-4865 홈페이지 : http://cafe.daum.net/43ch E-Mail : park43kr@hanmail.net ***************************************************************************** 2024.09.01. 주일오전예배 설교문 【교역자 보건주일】 본 문 : 누가복음 9:18-24, 로마서 14:7-8 제 목 : 십자가 지고 가는 길(牧師의 生涯와 悲哀) 찬 송 : 144, 240, 339, 341, 461. 복음송 : 주의 길을 가리(복음132장) 할렐루야!! 오늘도 은혜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성도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과 은총이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어느새 9월이 되었습니다. 계절은 어느새 찬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가 이번주 토요일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파란 하늘 아래 가을을 재촉하는 귀뚜라미 소리가 한층 시원스럽게 들려오고 우리 동네 앞 벌 논에는 올해도 풍년을 기원하는 벼이삭들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을 향해 높이 솟아오른 수수 이삭은 날이 갈수록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사과나무의 사과들이 빨간 꿈을 꾸면서 날마다 자라고 있습니다. 모두가 한여름 동안 모진 비바람을 잘 이겨낸 결실입니다. 이와 같이 계절이 바뀌는 문턱에서 아직도 한낮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더위 속에서도 연일 밤낮 없이 계속되는 농사일에 얼마나 고통이 많으십니까? 이런 때일수록 우리 성도들은 믿음이 식어지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더욱 분발하여야 합니다. 만약 여러분 중에 믿음이 식어졌거나 열심히 떨어졌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어디서 떨어졌는지 돌이켜 회개하고 처음 믿음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계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은 1년에 한번 지키는 「교역자 보건 주일」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매년 9월 첫주일을 교역자보건주일로 정하고 지킵니다. 여러분들이 평소에도 저와 사모님을 위해서 기도를 많이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특히 오늘은 1년에 한 주간을 정해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평상시 기도하지 못하던 분들도 이날만은 담임 목사와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또 헌금도 해서 담임목사의 건강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정성을 모으는 주일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게 부탁하기를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열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라”(엡6:19)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능력이 없어서 기도를 부탁하였겠습니까? 더군다나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바울이 전도하여서 세우고 키운 교인들인데 그들에게 왜 기도를 부탁하였겠습니까? 기도는 상호간에 서로의 의무이며 하나님께 진 빚을 갚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도들은 목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목사는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서로의 기도의 교통이 연결이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성도들 간에는 항상 벽이 없이 기도로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끈끈한 관계가 형성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언제든지 이와 같은 관계가 계속되어야 하지만 자칫 소홀해 지기가 쉽고 잊혀지기가 쉽기 때문에 1년에 한 번 교역자 보건 주일로 지키면서 담임 목사님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기도도 하고 그리고 특별 헌금도 하여서 1년에 한 번 종합 검진도 받도록 하자는 데에 그 본래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본문 누가복음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에 대하여 질문을 하신 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로마서의 말씀은 사도 바울의 비장한 신앙고백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물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이 질문에 이구동성으로 대답하기를 예, 선지자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라고도 합니다. 헤롯왕에게 목 베어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왔다고도 합니다.” 이 대답을 들으신 예수님은 제자들의 의견을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로 아느냐? 나를 누구라고 믿고 따라 다녔느냐?” 고 물으시자 베드로가 기다렸다는 듯이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자 예수님은 참으로 흡족해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은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알든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3년씩이나 동고동락 하면서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준 제자들의 믿음이 중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보시기 위해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는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이 예수님에 대하여 확실한 믿음이 있는 것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비로소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십자가를 지러 예루살렘으로 간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 22절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말씀하시고 또 제자들과 무리들에게도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23절 말씀에는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고 제자의 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바로 십자가를 지라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목사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여러분들도 져야할 각자의 십자가가 있지만 특히 목회자가 져야 할 십자가는 여러분이 지는 십자가보다 몇 배 몇 십 배 크고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십자가는 아무나 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고 싶다고 아무나 질 수 없는 것이고 또 지기 싫다고 안 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간 목회자가 지는 십자가에 대하여 함께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의 설교 제목을 『십자가 지고 가는 길』 이라고 정했습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한 장 부르겠습니다. 주의 길을 가리 1. 비바람이 갈 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눈보라가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영광의 길 이 길은 승리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2. 험한 파도 앞길을 막아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모진 바람 앞길을 가려도 나는 가리 주의 길을 가리 이 길은 고난의 길 이 길은 생명의 길 나를 구원하신 주님이 십자가 지고 가신 길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나는 가리라 주의 길을 가리라 주님 발자취 따라 나는 가리라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난과 환난과 핍박과 죽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통보다는 안전을 좋아합니다. 불안보다는 평안을 원합니다. 가시보다는 화려한 꽃을 좋아합니다. 십자가보다는 면류관을 더 좋아합니다. 책망보다는 칭찬을 좋아합니다. 회개하라는 말보다는 축복 받으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장미꽃에는 가시가 있습니다.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려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믿으시면 다 같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아 멘> 그러면 오늘 말씀 중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 받기를 바랍니다. 1.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23절에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죽고 내 안에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목사는 누구에게나 약자입니다. 목사는 조금만 잘못을 하여도 이것이 큰 화제 거리가 됩니다. 용납이 안 됩니다. 이해를 하지 않습니다. “목사가 그럴 수가 있느냐?” 하면서 목사를 신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에게도 약합니다. 교회에서 집사가 뭐래도, 권사가 뭐래도, 아니면 평신도가 뭐래도, 질수밖에 없는 것이 목사입니다. 목사는 할 말이 있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억울해도 변명도 못합니다. 이것이 목사입니다. 아무리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변명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없는 사람이 목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① 교인들은 목사에게 큰소리 버럭 버럭 질러도 목사는 조금만 크게 소리 내도 혈기 부린다고 합니다. ② 또 툭하면 우리 목사님은 사랑이 없다고 합니다. ③ 주택 문턱이 높아서 주택을 들어 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④ 툭하면 교회 안 나간다고 합니다. ⑤ 툭하면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말을 들을 때 목사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 중에는 이와 같은 행동이나 생각조차도 한 번도 하신 일이 없을 줄로 믿습니다.<아 멘!> <예> 어느 목사님이 시골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당한 황당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당회, 구역회, 지방회, 연회, 총회 이렇게 5대의회가 있습니다. 이 목사님은 서울에서 큰 교회 부목사로 있다가 농촌교회로 담임을 왔는데 사모님은 서울에서 꽃가게를 운영하고 계시면서 주말에만 교회에 내려와 주일을 지키고는 또 올라가곤 하였는데 교회 성도들이 모두가 잘 이해를 해 주어서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연회 때가 되어서 목사님이 교회 권사님에게 “권사님! 연회하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을 하자 그 권사님이 안색이 싹 변하드니 하시는 말씀이 혼자서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하시며 주머니에서 돈 만원을 쥐어 주시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연회에 참석하여 3일간의 연회를 마치고 교회로 돌아오니까 교회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그 권사님이 교인들에게 우리 목사님 연애하러 서울에 가셨다고 소문을 내서 한동안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하는 웃지 못 할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2.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죽을 각오로 순교의 믿음으로 목회를 하는 것입니다. 본문 24절 말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우리의 생명을 누가 주었습니까? 바로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또 죄로 인하여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누가 살려 주었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을 주님을 위해서 바쳐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것에 우리의 생명을 버리면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이 믿음 때문에 스데반이 돌무더기 속에서 죽어가면서도 기쁨으로 순교를 하였고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모두 기쁨으로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세계의 기독교 역사를 보면 기독교는 순교의 역사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처음 복음이 전파되면서 토마스 선교사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교사가 순교의 피를 흘렸고, 수많은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순교를 하였습니다. 3.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 즉 복음을 부끄러워하면 예수님도 장차 재림하실 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부끄러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눅9:26)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마10: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잠시 시험에 빠져서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하였다가 얼마나 가슴 치며 방성대곡하고 회개하였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우리들은 세 번이 무엇입니까? 시도 때도 없이 주님을 부인하고 예수를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합니다. 예수를 시인하고 예수를 전파해야 합니다. 4.그러면 십자가를 어떻게 져야 하겠습니까?(방법) (1)십자가는 눈물로 져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는 가끔씩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에 넘어지고 쓰러지면서 지고 가셨는데 이 부족하고 연약한 종이 어찌 십자가를 웃으면서 지고 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눈물의 길입니다. 눈물 없이 질 수 없는 길이요 또 눈물 없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에 반대를 하시다가 옥중에서 순교를 하신 주기철 목사님은 이런 찬송을 지어서 불렀습니다. 눈물 없이 못가는 길 피- 없이 못가는 길 영문 밖의 좁은 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복락 얻으려면 이길만은 걸어야해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아 멘. 십자가의 길은 분명 고난의 길이요 고통의 길이며 희생의 길입니다. 눈물로 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골고다를 올라가는 심정으로 울며 울며 천국을 향하여 쉬지 말고 나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아 멘!> (2) 십자가는 감사한 마음으로 져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주님의 구령 사업에 동참하는 축복된 길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짜증과 불평과 원망이 있으면 안 됩니다. 어디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에 원망을 하시던가요? 불평을 하시던가요? 그래서 목회는 아무리 어려워도 불평이나 원망 없이 인내하면서 하늘의 상급만을 바라보면서 소망 중에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3) 십자가는 기도로 지고 가야 합니다. 눅22:40절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쓴잔을 앞에 놓고 감람산으로 올라가셔서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기도하라” 고 부탁하시고 예수님도 친히 엎드려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아니 십자가를 질 자격이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교회에 충성하는 것 본 일이 있습니까? 그래도 새벽기도 나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고, 감사도 하고, 십일조도 하고, 주일성수도 하고, 전도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약하기 때문에 십자가는 주님의 권능으로 져야 하고, 주님의 권능은 성령이 임할 때 선물로 주시는 것이며, 성령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약5:13)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기도는 능력을 받는 원동력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기도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하나님의 주시는 능력을 받아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 멘> (4) 십자가는 죽음으로 지고 가야 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의 형틀입니다. 죽을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의 모습으로 죄인 된 우리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영생의 구원을 완성시켰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요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모두가 죽음을 각오하고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종 된 목사야말로 죽음을 각오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롬14:8에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라고 하였고 고전 15:31절에는 “나는 매일 죽노라” 고 하였습니다. 다 같이 복음성가를 부르겠습니다. 이제 내가 살아도 이제 내가 살아도 주 위해 살고 이제 내가 죽어도 주 위해 죽네 하늘 영광 보여주며 날 오라 하네 할렐루야 찬송하며 주께 갑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이요 사나 죽으나 사나 죽으나 날 위해 피 흘리신 내 주님의 것이요 또 행14:22절에는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할 때에 유대인들에게 돌로 맞아 죽은 줄로 알고 성 밖에 끌어다 버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시 일어나 바울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십자가는 죽음으로 지는 것이며 철저하게 자기를 죽이는 자라야 온전하게 승리의 십자가를 감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골고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가 지고 눈물로서, 감사한 마음으로, 기도하면서, 지고 갈 때 주님의 뜻을 이루는 충성된 주님의 종이 될 줄로 믿습니다.<아 멘> 결 론 : 오늘의 말씀을 마칩니다. 근간에 와서 교인들과 목사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교회들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목사 배척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게 발생을 합니다. 말세의 한 징조라고 생각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아마도 생각하기를 우리교회는 절대로 그런 일이 있지 않을 것이고 또 있을 수도 없다고 말하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하찮은 일이라도 목사에게는 깊은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담임목사를 배척하는 것인지를 듣고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담임목사를 배척하는 방법 1단계(무시한다) : 목사가 무슨 말을 하든지 또 무슨 일을 하든지 전혀 반응이 없고, ‘나는 나대로 너는 너대로, 나는 상행선 너는 하행선, 갈 길이 따로 있다’ 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여도 전혀 참석하지 않습니다. 2단계(불순종) : 목사가 무슨 일을 하자고 하여도 전혀 하지를 않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을 부탁을 하여도 요리 조리 핑계만 대고 전혀 할 기미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게다가 무슨 일을 하자고 하면 무조건 반대를 합니다. 3단계(헌금 거부) : 전혀 헌금을 하지 않습니다. 경제적으로 압박을 가하려는 생각입니다. 십일조, 감사헌금이 전혀 없습니다. 성미도 하지 않습니다. 왜? 목사가 먹고사는 것이 심술이 나서. 심지어는 주일헌금까지도 하지 않습니다. 4단계(교회 불출석) : 처음에는 새벽기도를 안 나오다가 그 다음에는 속회를 빠지고, 또 수요삼일기도회도 안 나옵니다. 그 다음에는 주일 저녁예배도 빠지고, 마지막에는 주일예배 순으로 교회 출석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데모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나치면 다른 교회로 간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행동은 목사를 바짝 바짝 말리는 것입니다. 5단계(생활비 동결) : 예산 편성을 할 때 예산을 동결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서 지출하던 생활비도 삭감을 시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목사의 숨통을 조이는 것과 같고 공공연하게 ‘다른 교회로 가시오’ 라고 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6단계(추방) : 마지막에는 온 교인들이 무리를 지어서 도장을 찍어 감리사에게 보고를 하고 빨리 이삿짐 싸라고 독촉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의 인사이동이 있으면 꼭 교인들의 하는 말이 40대 초반의 젊은 목사를 모시자고 합니다. 이제는 나이 많은 목사는 인기가 없고 오갈 데도 없는 애물단지가 되고 마는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동안도 여러분들이 부족한 저를 위해서 항상 기도하여 주신 것을 잘 압니다. 그 기도 때문에 제가 오늘까지 대과없이 목회 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님 앞에서와 사람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오늘 「교역자 보건 주일」 을 맞이하여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부족한 저를 위하여 기도로 도와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부탁을 드립니다.<아 멘>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또 하늘의 신령한 은혜와 축복으로 갚아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갔을 때에 여러분이 받을 상급과 목사가 받을 상급은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그 목사가 받을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꼭 한 가지 있는데 바로 마10:41절의 말씀입니다. (마10:41)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을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목사의 이름으로 목사를 영접하는 자는 목사의 상을 받을 것이요”<아멘> 아무쪼록 제가 대우 잘 받으려고 하는 말이 아님을 분명히 아시고, 오해 없으시기 바라며, 한 심령도 시험에 들지 않기를 바랍니다. 1년 중 단 한번 지키는 「교역자 보건 주일」 을 맞이하여 더욱 관심과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고 협력하는 성도가 되어서 이 종이 받을 상급을 모두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아 멘> 이 시간 다 같이 한 목소리로 부족한 저와 사모님의 건강을 위하여 함께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알리는 말씀을 전합니다. 할렐루야!! 부족한 저의 설교를 사랑해 주시는 전국, 세계의 모든 동역자님들과 주님의 피로 구원받은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설교문을 작성함에 있어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맞추려고도 애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수요일 오후에는 나의 카페를 비롯하여 몇몇 기독교 사이트에 업로드를 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모든 설교는 실명제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황당한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나의 설교는 누구나 사용하실 수 있고 인용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설교를 자신의 사이트나 다른 곳에 자신의 설교인양 전제를 하여서 이것을 보신 분들이 내가 그것을 보고 도용을 하였다고 오히려 나를 책망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안되겠습니다. 나의 부족한 설교를 인용도 하시고 전문 사용을 하셔도 좋으나 다른 곳에 전제를 하는 것은 삼가 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만약 앞으로 이와 같은 사례가 또 다시 발생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법적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항상 부족한 저를 사랑하는 동역자님들과 성도님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임마누엘!! |
첫댓글 감사합니다.
정목사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날시가 많이 시원해졌습니다. 환절기에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