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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개구리를 없애기 위해 사실상 모든 방법이 동원된 셈이다. 한 가지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황소개구리의 생태를 제대로 연구하는 일이다. 황소개구리가 이 땅에 들어온 지 30여년이 됐지만 아직도 이 개구리의 생태는 정확히 밝혀져 있지 않다. 황소개구리는 70년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일본에서 들여왔다. 개구리를 양식해 그 다리를 식용으로 수출하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살아있는 먹이만 먹는 등 황소개구리의 생태가 까다로운데다 판로마저 마땅치 않아 양식농가는 모두 문을 닫았고 버려진 양식장의 황소개구리는 우리 자연으로 퍼져나갔다.
80년대 동안 황소개구리는 방치된 양식장이 위치했던 전남을 중심으로 전북과 충청, 경북, 그리고 경기 지방에까지 번졌다. 당시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거대 개구리가 출현했다’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는 괴 동물 때문에 주민들이 잠을 설친다’ ‘본 적이 없는 초대형 개구리가 잡혀 마을에 길조가 들었다’는 등의 이야기가 언론에 보도됐다. 황소개구리가 우리의 자연에 해를 끼친다는 보고는 90년대 초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황소개구리는 덩치가 크다. 다리까지 합친 몸 길이는 평균 33㎝나 된다. 큰 것은 40㎝가 넘고 무게도 450g에 이른다. 게다가 식성이 왕성해 눈에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위 내용물을 조사한 결과 먹이로 가장 많은 것은 곤충과 달팽이 등이었지만 물고기와 토종 개구리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작은 뱀이나 새까지 들어있었다. 먹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면 자기들끼리도 잡아먹는다.
언론에게 황소개구리는 재미있는 기사거리였다. 미국 동부가 원산인 대형 외래종 등쌀에 토종 개구리들이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있는 상황은 마치 폭군 같은 구제금융의 위력 앞에 움츠러든 한국민의 처지와도 같았다. 언론은 황소개구리의 생태와 퇴치 방법의 정당성에 대한 깊은 고려 없이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으로 퇴치열기를 부추겼다. 정부는 마구잡이 개발로 인한 녹지훼손과 자연파괴에 대한 국민의 점증하는 불만을 황소개구리를 속죄양 삼아 해소하려는 듯 대대적인 황소개구리 퇴치작업에 나섰다. 그런데 90년대 말부터 객쩍은 일이 벌어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전국 대부분의 습지에서 기승을 부리던 황소개구리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한 것이다. 정확한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은 없지만 약 70%가 줄었다는 얘기가 나왔다. 국민들이 황소개구리를 보신식품으로 즐겨 먹게 된 것도 아니고 개구리 다리 수출로 짭짤한 외화를 번다는 소식도 들은 바 없다. 자연계의 폭군은 그저 제풀에 무릎을 꺾은 것처럼 보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 양서·파충류생태연구소 심재한 박사팀이 환경부의 용역을 받아 수행한 연구는 그 한 가지 답을 제공한다. 요컨대, 황소개구리에 대한 새로운 천적이 토착 생태계 안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생전 처음 본 외래종 개구리에 대해 이제까지 본능적인 경계심을 보이던 토착 동물들이 황소개구리를 비로소 먹이로 삼기 시작했다. 황소개구리가 전국적으로 급속히 번져나가자 황소개구리는 물론이고 그 올챙이와 알은 새로운 먹잇감으로 등장하게 됐다는 얘기다. 연구진은 포유류 가운데 요즘 부쩍 늘어난 너구리가 황소개구리를 잡아먹는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족제비도 그런 대열에 들어섰다. 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청호반새 등도 황소개구리와 올챙이가 낯설지만 먹을 만하다는 사실을 눈치 챘다. 누룩뱀, 유혈목이, 무자치 같은 뱀들도 마찬가지다. 잠자리 유충과 소금쟁이는 각각 올챙이와 알이 괜찮은 먹잇감임을 발견했다. 흥미로운 것은 황소개구리와 같은 고향 출신으로 우리나라에 외래종으로 널리 퍼진 붉은귀거북(일명 청거북)과 큰입배스, 파랑볼우럭(블루길) 등 물고기는 처음부터 황소개구리의 천적이라는 점이다. 이를테면 실험수조에서 토종인 남생이는 황소개구리 올챙이를 주자 ‘소 닭보듯’ 했지만 붉은귀거북은 냉큼 잡아먹었다.
이번 연구는 확정적인 것이 아니다. 황소개구리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이제부터 밝혀내기 시작한 단계이다. 황소개구리를 둘러싼 일련의 소동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무엇보다 자연은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만일 붉은귀거북이 황소개구리의 유력한 천적이라면 토종인 남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붉은귀거북을 보호해야 할 것인가. 우리는 한 외래종이 우리 자연에 어떤 영향을 줄지에 대해 거의 이해하고 있지 못하고 있음을 이번 사례로 뼈아프게 깨달았다. 또 하나 우리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은 이제 황소개구리는 외래종에서 우리 자연의 일원으로 완전히 입적됐다는 점이다. 스무 가지가 넘는 우리 동물이 황소개구리를 먹이로 삼는다면 역설적으로 황소개구리는 먹이그물에서 없어서 안 될 존재인 셈이다. 한 세대 전 국민들에게 단지 싼 값에 단백질을 더 공급하자는 소박한 생각에서 시작한 일이 우리 자연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첫댓글 한겨레 환경전문기자 조홍섭님 방에서 퍼 왔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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