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 나리라.”
- 우상 숭배와 구마 사도직
호세 8,4-7.11-13; 마태 9,32-38 / 연중 제14주간 화요일; 2024.7.9.
오늘 미사에서 들려오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믿는 신앙의 본질과 그 반대로 우상을 숭배하는 풍조와 무신론 사조의 근원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은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의 존재와 진리를 인간에게 계시하심으로써 발생합니다. 그래서 신앙과 진리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인간을 이끕니다. 하지만 우상 숭배와 무신론은 하느님의 계시가 발생하지 않은 자연 상태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문명을 이룩하면서 필요한 힘과 이익을 우상으로 섬겨왔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종교를 통하여 올바른 신앙으로 하느님을 숭배하지 못한 오류와 시행착오들이 무신론 사조를 생겨나게 했습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아도 그러하고 한 개인의 인생에서 나타나는 바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예언자들을 세상에 보내셨고 이들이 배척당하자 몸소 세상에 오셔서 신앙과 진리를 계시하셨습니다. 이 과정을 기록한 구약과 신약의 성경은 하느님께서 역사상 처음으로 당신을 계시하시며 선택하신 백성의 시행착오와 성취를 동시에 보여줍니다.
오늘 독서에서 호세아 예언자는 당시의 북 이스라엘 왕국에서 저질러지고 있었던 사회적 불의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대리하도록 이스라엘의 왕권을 기름을 부어 세우셨는데, 왕들은 하느님을 대리하기는커녕 우상 숭배에 앞장서고 있었습니다. 왕권이 우상을 숭배하면 국가 이데올로기가 백성을 옭죄이게 됩니다. 백성의 개인적인 행복은 뒷전이 되고, 사회적인 공동선도 증발되어 버립니다. 사회적인 구조악이 커다란 마귀처럼 사람들을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상 숭배와 이로 말미암은 사회악의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개별 백성을 괴롭히는 마귀들을 쫓아내셨을 뿐만 아니라 빌라도와 헤로데가 억압과 착취로 백성을 억누르고 있던 사회적인 구조악에 대해서도 철저한 회개를 요청하시며 이 구조악을 대신할 수 있는 하느님 나라의 현실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바리사이들은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께 그 능력을 문제 삼았습니다.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모함을 해 댄 것입니다. 그런 적반하장의 상황에서 예수님께서는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일과 이 복음 선포의 일꾼을 모으는 일에 전념하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마귀들의 존재와 활약에 대한, 그래서 백성을 괴롭히는 사회적 구조악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대책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자유가 하느님을 떠나서 우상에게로 가서 섬기면, 마귀가 인간을 조종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느라 동분서주하시던 갈릴래아는 물론 당시의 종교 관료들이 장악하고 있던 예루살렘도 마귀들이 준동하고 있었기에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만나시자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신원을 모르던 군중은,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마태 9,33ㄴ)고 말하면서 놀라워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독서와 복음의 본문이 우상과 마귀, 우상을 섬기는 이스라엘 왕국과 마귀 들린 갈릴래아 사람, 우상을 내버리라고 명령하시는 하느님과 마귀를 쫓아내시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연결됩니다.
이런 상황은 2백여 년 전 이 땅에서도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당시에 이 땅에서 백성을 다스리던 조선 조정과 양반계층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성리학 이외의 사상이 조선에 들어오는 일을 극구 반대하였습니다. 북경 주교가 전해준 교황청의 조상제사 금지령에 따라서 조상제사를 폐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한 일은 그 빌미에 지나지 않았고, 사상적인 차원에서는 조선은 폐쇄된 감옥과도 같았습니다. 정작 성리학의 본 고장인 명나라에서도 서양 선교사들이 입국하여 서양 문물을 다양하게 소개하면서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들을 편찬해 내고 선교활동도 자유롭게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는 건국 초기에 정도전이 조선의 설계도로 편찬해 놓은 경국대전에서 한 치도 벗어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굳건한 관료제를 한 축으로 하고, 양반 중심의 신분제를 또 다른 축으로 삼아서 세워 정치, 사회, 경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제도를 구축하였습니다. 따라서 조선은 성리학 이데올로기와 함께 관료제와 신분제가 견고하게 유지되면서 오랜 기간 정치와 사회를 장악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는 데에는 성공했으나, 경제적으로는 폐쇄적이고 착취적 성격이 강한 제도여서 국력을 모으기 힘든 약점에다가 외환이 닥치는 경우에 매우 취약한 체제였습니다. 그래서 16세기 후반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당한 후에는 사회의 모순이 극도로 심화되기에 이르렀지만 조선왕조의 지배층은 사회 개혁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성리학적 근본주의로 더욱 경직된 통치방식을 고수하였습니다.
본시 유교적 이상은 능력 중심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었는데, 조선에서는 양반 사대부 계급이 특권을 세습하고 관직을 독점하며 토지를 겸병하는 한편 노비까지도 세습하면서도 조세의 납부나 군역의 부담은 회피하였습니다. 게다가 상공업을 천시하고 관념적인 도학정치만을 중시하는 바람에 합리적인 기풍이 사라지고, 특히 조선 중기 이후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적용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천진암 강학회에 모인 선비들은 이러한 조선의 적폐들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과거 시험을 통해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1779년부터 1784년까지 5년 동안이나 중국에서 활약한 선교사들이 지은 한역서학서들을 과학에서부터 신학에 이르기까지 심도 있게 토론하면서 조선의 개혁 과제들에 대해 연구하였습니다. 특히 이벽이 합류한 이후 천주교에 대한 신앙 교리를 깨닫게 된 선비들이 먼저 천주학의 지식 습득에만 머물지 말고 천주교를 신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므로, 부친이 동지사로 가게 되었던 이승훈을 북경에 보내어 교리를 더 배우고 세례를 받고 오게 해서 천주교 신앙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르렀고, 이는 요원의 불길처럼 백성 사이에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1784년에 수표교에 있던 이벽의 집에서 베풀어진 세례성사로 천진암 강학회의 선비들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고향이나 한양에서 우선 선비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하여 신자들이 늘어나자 역관이었던 김범우의 집이 있던 명례방으로 옮겨 공동체가 커졌습니다. 이 명례방 공동체를 통해서 한양 내 천여 명의 선비들이 천주교 교리 서적을 읽고 천주교 세례를 받게 될 정도로 초기 신앙 공동체는 활기가 넘쳤습니다. 이때 이미 명례방 신앙 공동체의 주도자였던 이벽은 전라도의 유항검이나 충청도의 이단원 등 각 지방 출신별로 덕망있는 선비들을 신자로 포섭해 놓았기 때문에 우연히 포졸들에 의해 발각되어 강제 해산된 추조적발사건 (秋曹摘發事件 , 1785년) 이후에 오히려 복음이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리고 천진암 강학회의 막내였던 정약용은 유일하게 과거에 응시하여 벼슬길에 나아가서는 강학회에서 배운 개혁 방안을 몸소 실천하였으나, 정조 사후 발생한 황사영 백서 사건으로 인해 모함을 받아 매몰리게 되자 생전에 그의 재주와 학식을 아낀 정조 임금의 마음을 알던 일부 대신들이 그를 죽이는 대신에 장기 유배형을 보냈고, 정약용은 이를 기회로 삼아 강학회에서 배우고 연구했던 개혁 방안을 저술하였는데, 그것이 5백여 권에 이르는 여유당 전서입니다. 이 저술 가운데에서 천진암 강학회에서 이벽이 전해 준 하느님 신앙에 입각하여 조선 사회를 개혁하려던 글이 바로 관리들이 백성을 목자처럼 돌보기를 당부한 목민심서(牧民心書), 나라의 경제를 백성 모두가 일할 수 있도록 합리적으로 개혁하자고 주창한 경세유표(經世遺表), 죄를 지은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억울하게 벌 받지 않도록 행형질서를 개혁하자고 주창한 흠흠신서(欽欽新書)입니다.
또한 정약종은 마테오 리치 신부가 지은 ‘천주실의’와 이벽이 저술한 ‘성교요지’를 참조하여 한글로 된 ‘주교요지’를 지었는데, 여기에는 그가 입교 전에 심취했던 한민족의 정신전통을 바탕으로 일반 백성도 쉽게 천주교 교리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느님 신앙을 설명해 놓았기에 박해시기에 그 어떠한 교리교육도 받을 수 없었던 교우촌 신자들이 박해를 이겨낼 수 있는 사상적 무기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를테면 이 책은 막연하나마 하느님을 알고 있던 백성에게 천주교 교리를 통하여 구체적이고도 정확하게 계시를 전달해 준 셈이었고, 또한 불교와 유학을 국교로 삼는 바람에 민간 신앙으로 무속화되었던 미신 행사까지도 식별하게 해 준 길잡이였던 셈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하면 하느님의 최고선을 스스로 외면한 결과가 되어 나라의 근본을 망치게 됩니다. 부정부패의 불의와 억울한 백성을 양산하는 불공정을 저지르게 마련이라서 사회의 공동선도 짓밟는 일만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회개를 요청하신 말씀이 이렇습니다: “사마리아야, 네 송아지를 내던져 버려라!”(호세 8,5)
무신론 사조가 만연되어 있는 우리 사회에서도 마귀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활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개별 인간들을 사로잡아 비인간화시키기도 하고, 구조적인 사회악으로 사회 전체를 불의하고 불공정하게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정의와 공정과 진실로 공동선을 세우라고 호소했던 어제 호세아의 예언에 대해 묵상한 바와 같이,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책임진 엘리트들이 공공의 이익보다 사적인 이익을 앞세우고 있는 현 추세는 시급히 개혁해야 할 사회악 현상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아 보이는 노력이라 할지라도 사회적 약자를 보듬으려 그들이 누려야 할 작은 행복을 되찾아주고, 또 거대 담론처럼 공허해 보일지라도 사회적 공동선을 회복하려고 외치는 목소리는 하느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시키는 소중한 싹입니다. 빛이 비추이면 어둠은 사라지듯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마귀들은 이러한 선의 노력으로 인해 쫓겨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양심이 마비되어가는 이 시대에 양심을 넘어 신앙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개미 같은 노력이 우리 사회를 건전한 사회로 진보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구마의 사도직은 정의평화의 사도직이며, 우리는 모두 이 사도직에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귀를 쫓아내시던 예수님의 구마 기적으로 보고 당시 군중이 보여 주었던 반응, 즉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마태 9,33ㄴ)는 태도는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상 숭배와 무신론 사조에 물들어 있는 세상에서 하느님을 증거하는 선교 활동이자 진리를 구현하는 복음화 행동입니다.
교우 여러분!
이스라엘의 시행착오와 성취는 하느님 신앙과 우상 숭배 사이에 존재해 온 인류의 거울입니다. 다시 한 번 호세아 예언자를 통해 하느님께서 하신 경고의 말씀을 되새깁니다: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 나리라.”
첫댓글 <정녕 사마리아의 송아지는 산산조각 나리라>
이른 아침 성체조배하러 오며 날마다 파스카 신비를 바칩니다.
지방에 다녀온 자매의 울분에 가까운 말을 들으며 다시 오늘의 강론말씀을 읽어봅니다.
페북에서 해미성지에서의 개최되었다는 kbs 열린 음악회 소식을 접하고 의아했던 기억이 나는데 오늘 자매의 말을 들으니 전혀 상관이 없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해미성지 가까운 본당에서 미사 끝에 새로 선임되었다는 회장이라는 형제가 인사를 하면서 공항이 생기면 해미성지가 좋아질것이라며 정치적 발언을 한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4단 예수님께서 사탄과 맞서 대결하시고 마귀들린 가난한 이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어 해방시켜주심을 묵상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