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떼를 흩어 버리는 목자, 모으는 목자
예레 23,1-6; 에페 2,13-18; 마르 6,30-34/2021.7.18. / 연중 제16주일; 2024.7.21
1. 말씀의 초점
하느님께서 오늘 미사에서 말씀하시는 주제는 목자론으로서, 요즘 용어로는 민족에 관한 교회의 리더십에 해당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고 이끌어야 할 임금을 비롯한 궁정 예언자들과 사제들이 저지른 목자 비리를 고발합니다. 이를 배경으로 예수님께서는 길 잃은 양 떼처럼 헤매는 군중을 보시고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가르쳐 주시고 빵의 기적을 일으켜 배불리 먹이시는 목자로서 처신하셨습니다. 바오로는 사도로서 예수님의 이러한 리더십이야말로 그리스도 교회가 나아가야 할 모습으로서, 세상을 평화스럽게 만들 수 있는 지혜라고 설파합니다.
⒉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기원
이스라엘의 임금 및 궁정 예언자들과 사제들이 목자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한 지는 제법 오래되었습니다. 판관 시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는 단연코 하느님이셨습니다. 오늘 미사의 화답송이 노래하는 그대로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없어라”(시편 23,1) 그런데 하느님을 알지도 못했고 그래서 믿지도 않았던 주변 이방민족들이 왕을 세우고 상비군을 유지하면서 이스라엘 민족을 억누르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을 흉내 내어 왕을 세웠습니다. 그 왕이 궁궐을 짓고 상비군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백성을 억압하고 막대한 세금을 거두어 착취할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을 대신하여 자신들을 보호해 주기를 바랬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이 약화된 나머지 왕정과 상비군이라는 제도로 신앙을 대치해 버렸던 것입니다.
⒊ 왕정 제도의 타락과 예레미야의 비판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목자로 행세했던 임금 및 궁정 예언자들과 사제들의 비리를 이렇게 고발한 바 있습니다.
-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들을 다른 이들에게 주고 그들의 밭도 정복자들에게 주리라. 정녕 낮은 자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부정한 이득만 챙긴다.”(예레 8,10)
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의 경제적 타락상에 대한 고발입니다.
- “예언자부터 사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짓을 행하고 있다. 그들은 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면서 평화가 없는데도 “평화롭다, 평화롭다!” 하고 말한다.”(예레 8,11).
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이 진실을 외면하고 민심을 어지럽히는 가짜 언론 구실을 하는 정신적 타락상에 대한 고발입니다.
- “예언자도 사제도 불경스럽고 내 집에서조차 그들의 죄악이 보인다. 주님의 말씀이다.”(예레 23,11)
이는 위의 경제적이고 정신적인 타락상의 근본 원인이 하느님의 뜻을 받들지 못한 데 있음을 밝히는 제사 윤리 타락상에 대한 고발입니다. 하느님의 최고선을 헤아리지 못하면 사회의 공동선은 무너지게 마련입니다.
⒋ 하느님의 심판 신탁
그래서 예레미야는 하느님의 심판 말씀을 이렇게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에게 전하였습니다.
- “불행하여라, 내 목장의 양 떼를 파멸시키고 흩어 버린 목자들! 이제 내가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벌하겠다.”(예레 23,1-2)
이는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참된 목자이신 하느님을 대리하여 공동선을 추구하지 못하고 사적인 이익을 취한 데 따른 심판의 벌이 바빌론으로 유배당하는 것임을 뜻합니다.
- “그런 다음 나는 내가 그들을 쫓아 보냈던 모든 나라에서 살아남은 양들을 다시 모아들여 그들이 살던 땅으로 데려오겠다. 그리고 그들을 돌보아 줄 목자들을 그들에게 세워 주리니, 그들 가운데 잃어버리는 양이 하나도 없을 것이며, 번성할 것이다.”(예레 23,3-4)
이는 예언자들이 기록한 역사서들에 담긴 역사신학에 따라서, 하느님께서 몸소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역사를 이끄실 것임을 천명한 메시지입니다. 즉, 유배가 풀려 해방되고 고향으로 귀환시킬 것이며, 올바른 목자가 나서서 하느님의 평화를 실현하리라는 낙관적 전망입니다.
- “보라, 그날이 온다! 내가 다윗을 위하여 의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리라. 그 싹은 임금이 되어 다스리고 슬기롭게 일을 처리하며,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루리라.”(예레 23,5)
이스라엘의 목자라는 자들은 죄다 실패했으니, 이제 하느님께서 몸소 목자가 되시는 메시아를 기다리라는 대망 사상입니다.
⒌ 목자의 길, 하느님의 최고선
이러한 예언에 따라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러 가지 기적과 가르침으로써 그날이 다가왔음을 알리셨고, 열두 제자를 뽑아 사도로 양성하시어 세상 곳곳에 파견하심으로써 공정과 정의로써 목자 직분을 수행하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목자 직분을 기준 삼아 세상의 모든 민족들 안에서 공동체의 봉사 책임을 맡은 이들은 공정함과 정의로움으로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도록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목자 없는 양들 같았던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빵의 기적을 일으키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도 백성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도 사도가 되어 당신의 모범을 따르도록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습니다. 이것이 사도들을 주춧돌 삼아 세워진 그리스도 교회가 따라 걸어야 할 목자의 길입니다. 공정과 정의라는 가치가 최고선으로서, 땅에 세워진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행해야 할 기준이요 목표입니다, 이 최고선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로 이어집니다.
교우 여러분!
지난 17일은 제헌절이었고, 오는 27일은 휴전협정 조인일입니다. 민족의 과거와 현실 그리고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특별한 때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민족은 식민통치와 동족상잔의 커다란 민족적 비극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고 있는 한류 덕분에 전 세계에서, 특히 아시아의 이웃 민족들이 한국과 한민족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신학적 메시지에 따르면, 식민통치의 비극과 분단 및 동족상잔의 전쟁 그리고 독재와 가난은 분명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 신자들을 백 년 동안 박해했던 데 대한 벌이었습니다. 19세기 백 년의 박해에 대한 심판으로 받은 벌은 20세기 백 년의 고난으로 끝나가고 있습니다. 남북한 간의 체제 경쟁은 이미 끝났고, 대한민국은 일본의 국력을 이미 따라 잡았으며, 70여 년 전 민족의 동의도 없이 함부로 남북을 분단시켰던 미국과 러시아는 이미 대한민국을 더 이상 함부로 대하지 못할 만큼 국운은 상승세를 타고 있습니다. 인구와 영토 그리고 국력으로 대한민국보다 훨씬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할 중국이 국제 사회에서 발휘되는 대한민국의 발전상과 영향력에 놀라 마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의 리더십을 본받아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민족 사회 안에서 참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국정농단으로 최근 멈칫거리고 있는 분위기를 다잡고, 사회 내부의 공정과 정의를 더욱 단단히 다짐으로써 모처럼 상승하고 있는 국운으로 민족 화해와 통일의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양떼를 흩어 버렸던 거짓 목자들이 기승을 부렸던 이스라엘 역사를 반면교사로 삼아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양떼를 다시 모아들이는 참된 목자의 길을 걷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민족의 백 년 고난을 끝내는 이 시기에 민족을 위한 리더십을 발휘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