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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方[5479]고방서예,사자성어 1~100
고방서예관-사자성어목록 1~100
(1)三思一言삼사일언 (2)二人同心이인동심(3)山高水長산고수장
(4)和而不同화이부동(5)五世其昌 (오세기창) (6)行不由徑행불유경
(7)木人石心목인석심 (8)八斗之才(팔두지재)(9)有備無患유비무환
(10)大器晩成대기만성(11)溫故知新온고지신(12)仁者無敵인자무적
(13)積小成大적소성대(14)登高自卑등고자비(15)敎學相長교학상장
(16)有志竟成유지경성(17)易地思之역지사지(18)居安思危거안사위
(19)四海兄第사해형제(20)韋編三絶위편삼절(21)苦盡甘來고진감래
(22)一忍長樂일인장락(23)上善若水상선약수(24)手不釋卷수불석권
(25)訥言敏行눌언민행(26)開卷有益개권유익(27)愚公移山우공이산
(28)積羽沈舟적우침주(29)柔能制剛유능제강 (30)朝乾夕惕(조건석척)
(31)磨斧作針마부작침(32)曲肱之樂곡굉지락(33)同舟共濟동주공제
(34)無汗不成무한불성(35)水滴石穿수적석천(36)推賢讓能추현양능
(37)繪事後素회사후소(38)見利思義견리사의(39)松蒼栢翠송창백취
(40)射石爲虎사석위호(41)有無相生유무상생(42)禍福無門화복무문
(43)忍之爲德인지위덕(44)多情佛心다정불심(45)白駒過隙백구과극
(46)百世淸風백세청풍(47)博施濟衆박시제중(48)樂此不疲낙차불피
(49)實事求是실사구시(50)三省吾身삼성오신(51)明哲保身명철보신
(52)非禮不動비례부동(53)慈顔愛語자안애어(54)奇正相生기정상생
(55)北窓三友(북창삼우)(56)見金如石(견금여석)(57)三生有幸삼생유행
(58)得手應心득수응심(59)虎視牛步호시우보(60)行雲流水(행운유수)
(61)晴耕雨讀청경우독(62)川流不息천류불식(63)天衣無縫천의무봉
(64)朝名市利(조명시리)(65)小屈大伸소굴대신(66)靑山不老청산불로
(67)先公後私선공후사(68)得失在我득실재아(69)點石成金(점석성금)
(70)一鳴驚人일명경인(71)弓滿則折궁만즉절(72)跋山涉水발산섭수
(73)集思廣益(집사광익)(74)國亦有染국역유염(75)風樹之嘆풍수지탄
(76)泰山北斗태산북두 (77)返朴歸眞반박귀진(78)樂天知命(낙천지명)
(79)窮當益堅궁당익견(80)在所自處재소자처(81)執持專一집지전일
(82)惜福修行석복수행(83)光風霽月(광풍제월)(84)夢幻泡影몽환포영
(85)業精於勤업정어근(86)廉者大賈염자대고(87)持滿戒盈지만계영
(88)明鏡止水(명경지수)(89)浩然之氣호연지기(90)自强不息자강불식
(91)해납백천(海納百川)(92)機不可失(기불가실)(93)點滴穿石점적천석
(94)切磋琢磨절차탁마(95)海不讓水해불양수(96)流芳百世유방백세
(97)反求諸己(반구저기)(98)道不遠人도불원인(99)時不可失(시불가실)
(100) 法古創新법고창신
고방서예관-사자성어목록 1~100 (1)三思一言삼사일언 (2)二人同心이인동심(3)山高水長산고수장 (4)和而不同화이부동(5)五世其昌 (오세기창) (6)行不由徑행불유경 (7)木人石心목인석심 (8)八斗之才(팔두지재)(9)有備無患유비무환 (10)大器晩成대기만성(11)溫故知新온고지신(12)仁者無敵인자무적 (13)積小成大적소성대(14)登高自卑등고자비(15)敎學相長교학상장 (16)有志竟成유지경성(17)易地思之역지사지(18)居安思危거안사위 (19)四海兄第사해형제(20)韋編三絶위편삼절(21)苦盡甘來고진감래 (22)一忍長樂일인장락(23)上善若水상선약수(24)手不釋卷수불석권 (25)訥言敏行눌언민행(26)開卷有益개권유익(27)愚公移山우공이산 (28)積羽沈舟적우침주(29)柔能制剛유능제강 (30)朝乾夕惕(조건석척) (31)磨斧作針마부작침(32)曲肱之樂곡굉지락(33)同舟共濟동주공제 (34)無汗不成무한불성(35)水滴石穿수적석천(36)推賢讓能추현양능 (37)繪事後素회사후소(38)見利思義견리사의(39)松蒼栢翠송창백취 (40)射石爲虎사석위호(41)有無相生유무상생(42)禍福無門화복무문 (43)忍之爲德인지위덕(44)多情佛心다정불심(45)白駒過隙백구과극 (46)百世淸風백세청풍(47)博施濟衆박시제중(48)樂此不疲낙차불피 (49)實事求是실사구시(50)三省吾身삼성오신(51)明哲保身명철보신 (52)非禮不動비례부동(53)慈顔愛語자안애어(54)奇正相生기정상생 (55)北窓三友(북창삼우)(56)見金如石(견금여석)(57)三生有幸삼생유행 (58)得手應心득수응심(59)虎視牛步호시우보(60)行雲流水(행운유수) (61)晴耕雨讀청경우독(62)川流不息천류불식(63)天衣無縫천의무봉 (64)朝名市利(조명시리)(65)小屈大伸소굴대신(66)靑山不老청산불로 (67)先公後私선공후사(68)得失在我득실재아(69)點石成金(점석성금) (70)一鳴驚人일명경인(71)弓滿則折궁만즉절(72)跋山涉水발산섭수 (73)集思廣益(집사광익)(74)國亦有染국역유염(75)風樹之嘆풍수지탄 (76)泰山北斗태산북두 (77)返朴歸眞반박귀진(78)樂天知命(낙천지명) (79)窮當益堅궁당익견(80)在所自處재소자처(81)執持專一집지전일 (82)惜福修行석복수행(83)光風霽月(광풍제월)(84)夢幻泡影몽환포영 (85)業精於勤업정어근(86)廉者大賈염자대고(87)持滿戒盈지만계영 (88)明鏡止水(명경지수)(89)浩然之氣호연지기(90)自强不息자강불식 (91)해납백천(海納百川)(92)機不可失(기불가실)(93)點滴穿石점적천석 (94)切磋琢磨절차탁마(95)海不讓水해불양수(96)流芳百世유방백세 (97)反求諸己(반구저기)(98)道不遠人도불원인(99)時不可失(시불가실) (100) 法古創新법고창신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 三思一言 석 삼, 생각 사, 한 일, 말씀 언. 세 번 생각하고 한 번 말하라. 귀는 두 개가 있습니다. 귀한 말은 두 귀로 경청하며 다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어서는 아니 될 이야기는 한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려 내보낼 수 있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입은 하나지만 입은 열고 다물 수 있습니다. 말은 해서 아니 될 때에는 입을 꼭 다물면 되고 꼭 필요한 때는 입을 열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귀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지만 입은 잘못 놀려 말로 인해 해(害)를 입는 일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 설화(舌禍)를 입었다고 표현합니다. 그것을 경계해서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는 말 즉. 『3번 생각한 후에 한 마디 말을 하라』고 합니다 더 나가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경청(傾聽)의 대화 태도는 호감을 얻게 되어 좋은 인간관계의 초석이 되기도 합니다. 그것은 너무나 중요한 말이기 때문에 함부로 쓸 수 없는 말이 있다. 그 말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품격이 가려지고 운명이 결정 된다. 일생을 통해 한 두 번, 어쩌면 그 이하일수 있는 그 말은 한번 쏟아 부으면 다시 담을 수 없다. 어떤 이들은 그 말을 무덤까지 가지고 간다. 어떤 이들은 그 말로 스스로를 매장한다. 어떤 이들은 그 말을 절제하는 인내로 산다, 그 말은 무엇인가? <사랑한다.>, <죽고 싶다>, <맹세한다.>, <책임진다.> 흔히 <사. 죽 .맹. 책>이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말이 책임 있는 언론의 입에서부터 명세지재(命世之才)에 이르기까지 값싸게 함부로 회자 되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 됨됨이>때문이다. 됨됨이의 격(格)이 빈(貧)하면 그 말을 악용하고, 됨됨이의 기(氣)가 청(淸)하지 못하면 남발한다.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 重千金)이란 말이 있다. 남자(지도자)의 말 한마디는 천금과 같이 무겁고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2) 二人同心 두 이. 사람 인. 한가지 동. 마음 심. 二人同心은 其利斷金이요, 同心之言은 其臭如蘭이라. 이인동심은 기리단금이요, 동심지언은 기취여란이라 [출전] 역경(易經) 계사상(繫辭上)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날카로움이 쇠도 자를 수 있고, 마음을 같이하는 말은 그 향기가 난초와도 같다. [어구풀이]-同心(동심):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상태 利(리):날카로움. 同心之言(동심지언):서로의 마음이 통해 의기투합 (意氣投合)하여 행하는 말. 臭(취) : 냄새. 如(여) : '같다'는 뜻 [해설]-중국 고대(古代)에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한 인간 세상의 적응을 구체적인 통계를 통해 설정한 것이 역(易)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바로 '易'자를 설명할 때, '日'과 '月'의 결합으로 보고 우주의 무한한 변역(變易) 현상의 표현으로 보면서 동시에 그 속에서 불변(不變), 불역(不易)하는 법칙을 찾아 제시한 것을 '易'이라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천문(天文), 지리(地理)를 관찰하는 자연 철학을 인간의 삶에 대한 실천 윤리의 근거를 제시한 것이 易(역)'입니다. (易)에서 말하는 만물(萬物)이 생성(生成)된 원리를 보면 삼라만상(森羅萬象)이 발생된 과정은 태역(太易)으로부터 시원(始原)을 두고 태초(太初), 태시(太始), 태소(太素), 황극(皇極), 무극(無極), 태극(太極), 양의(兩儀)로 발전되었다고 하며 양의(兩儀)가 음양(陰陽)이며 음양(陰陽)은 사상(四象), 팔괘(八卦), 육십사괘(六十四卦), 384효(爻)로 발전되고 384효(爻)를 조화시켜 삼라만상(森羅萬象)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山高水長(산고수장) 뫼 산/ 높을 고/ 물 수/ 길 장 산은 높고 강은 길게 흐른다는 뜻이니 군자의 덕이 높고 끝이 없는 것을 가리킨다. 요산요수(樂山樂水)-樂:좋아할 요 '산을 좋아하고 물을 좋아하다'라는 뜻으로, 산수(山水)의 경치를 좋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며, 논어(論語)의 옹야(雍也)편에 지자요수(知者樂水)요, 인자요산(仁者樂山)이라. 지자동(智者動)하고, 인자정(仁者靜)이니. 지자락(智者樂)이면, 인자수(仁者壽)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움직이고, 어진 사람은 고요하다. 지혜로운 사람은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장수한다.... 라는 말이지요. 지혜로운 사람은 사리에 밝아 물이 흐르듯 막힘이 없으므로 물을 좋아한다고 한 것이다. 또한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하여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며, 그러한 것들을 즐기며 산다. 이에 비하여 어진 사람은 의리를 중히 여겨 그 중후함이 산과 같으므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 4 )和而不同 和화목화, 而말이을이, 不아닐부, 同한가지동. 화합하지만 부화뇌동하지는 않는다. ‘논어·자로(論語·子路)’편에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다고 나온다. 뜻을 보면 남과 사이좋게 지내는게 좋으나 무턱대고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다른 시각으로 보았을 때 소인은 어울림에 있어서 뜻이 통하면 義를 굽히나 군자의 뜻은 진실을 왜곡하면서 까지 함께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군자, 화이부동(君子, 和而不同)’의 뜻은 ‘서로 화합하고 어울리지만 동화되지 않고, 서로 다르지만 화합할 수 있는 게 바로 군자의 덕목’이라는 뜻. 화합하되 천편일률(千篇一律)적이지 않고, 서로 달라도 충돌하지 않는 경지다. 비슷한 뜻에 求同存異(구동존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 고대 사전에는 ‘求同存異’라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중국 어문학자들은 (구동존이)가 공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맥을 같이한다고 분석한다. ‘이견(異見)을 인정하면서도 큰 틀의 화합을 꾀한다’는 점에서 [구동존이]와 [화이부동]은 서로 통한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 五世其昌 五(다섯 오 : 二-2획)世(대 세 : 一-4획) 其(그 기 : 八-6획) 昌(창성할 창 : 日-4획) [意義]자자손손 번창(繁昌)하기를 바람이라는 뜻으로, 결혼의 축사(祝辭)에 자주 쓰인다 [出典]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장공(莊公) 23년 [내용] 진(陳)나라의 의(懿)씨가 완경중에게 딸을 아내로 주려고 점을 쳤는데, 점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장차 장모가 될 의씨의 아내. 점사(占辭)는 이러하였다. "길(吉)하도다. 봉황새가 나르고 쟁쟁하게 울어 그 소리 잘도 조화(調和)를 이룬다는 괘로다. 오세(五世)에 이르러 번창하여, 상대부(上大夫)와 자리를 나란히 하고(五世其昌, 竝于正卿), 팔세(八世) 손에 이르러서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 없으리로다." 初, 懿氏卜妻敬仲. 其妻占之, 曰, “吉. 是謂‘鳳皇于飛, 和鳴鏘鏘. 有嬀之後, 將育于姜. 五世其昌, 竝于正卿. 八世之後, 莫之與京.’ [解義] 진(陳)나라의 의(懿)씨가 완경중에게 딸을 아내로 주려고 점을 쳤는데, 점을 친 사람은 다름 아닌 장차 장모가 될 의씨의 아내. 점사(占辭)는 이러하였다. "길(吉)하도다. 봉황새가 나르고 쟁쟁하게 울어 그 소리 잘도 조화(調和)를 이룬다는 괘로다. 오세(五世)에 이르러 번창하여, 상대부(上大夫)와 자리를 나란히 하고 팔세(八世) 손에 이르러서는 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자 없으리로다." *懿(아름다울 의) 占(차지할 점) 辭(말 사) 吉(길할 길) 調(고를 조) 和(화할 화) 병(아우를 병) 于(어조사 우) 卿(벼슬 경).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 해맞이마을 ] 서예명제(6) 行不由徑 行 다닐 행. 不 아니 불. 由 말미암을 유. 徑 지름길 경. 길을 가는 데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취하지 않고 큰길로 간다는 뜻. 행동을 공명정대하게 함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유사어】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 【출 전】 論語(논어) 雍也(옹야)篇 【내 용】 자유(子游)는 공자의 제자로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속하며, 자하(子夏)와 더불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그가 노(魯)나라에서 벼슬하여 무성(武城)이라는 작은 도시의 장관으로 임명되었을 때의 일이다. 공자는 사랑하는 제자가 벼슬을 하게 되자, 일하는 모습도 볼 겸 축하도 할 겸해서 직접 무성으로 찾아갔다. 공자가 그에게 물어 보았다. "일을 잘하려면 좋은 협력자가 필요하다. 너도 부하 중에 훌륭한 인물이 필요할 터인데, 이렇다 할 인물이 있느냐?" 子曰 女得人焉爾乎 "예. 안심하십시오. 담대멸명(澹臺滅明)이라는 자가 있사온데, 이 사람이야말로 훌륭한 인물로, 언제나 천하의 대도를 가고, 결코 지름길이나 뒤안길을 가지 않습니다[行不由徑]. 또한 공적인 일이 아니고는 결코 제 방에 들어오지 않나이다. 정말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曰 有澹臺滅明者 行不由徑 非公事 未嘗至偃之室也 "그런 인물을 얻어서 다행이다. 소중히 대하려무나." 공자는 기뻐하며 자유를 격려했다. 담대멸명은 노(魯)나라 무성 사람으로 字를 자우(子羽)라 하는데, 자기가 맡은 일에 매우 정직하고 충실하였다. 그는 子游에게 사적인 부탁을 하거나 남이 모르는 비밀을 은밀히 속삭이거나 하지 않는 참으로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공자는 담대멸명도 제자로 삼았다. 여기서 행불유경(行不由徑)이란 말이 나왔으며, 군자는 큰길을 택해서 간다는 뜻의 '군자대로행(君子大路行)'이란 말과 뜻이 통하는 말이다. 행불유경은 길을 가는데 지름길로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길을 갈 때 지름길을 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할 때 급하다고 편법을 쓰지 말고 정당한 방법으로 하라는 말이다. 지름길은 거리로는 가깝지만 여러가지 문제가 따를 수 있는 올바르지 못한 길이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할 때도 정당한 방법을 쓰지 않고 우선 급한 대로 임시편법을 쓰게 되면 항상 뒷말이 따르기 마련이다. 설사 그런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당한 일이 될 수 없다. 곡예사 같은 수완가를 세상에서는 박수갈채로 환영하는 버릇이 있다. 열 번 쾌감을 맛본다 해도 한 번 실수하면 그만 끝장인 것이다. 교통사고의 거의가 이 「행불유경」을 지키지 못한 때문이다. 모든 범법행위도 이 행불유경의 교훈을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 해맞이마을 ] 서예명제( 7 ) 木人石心 木:나무 목. 人:사람 인. 石:돌 석. 心:마음 심 나무나 돌로 만든 사람이란 뜻으로, ① 의지가 강하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부동심(不動心)의 사람. ② 나무나 돌처럼 심지가 굳어 세속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을 비유한다. 권력, 부귀, 여색 등 세상의 유혹에 몸과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키며 ‘목석(木石)’이라고 줄여서도 사용한다. 하통(下統)이라는 이는 진(晉)나라 때 강남에 사는 인사였다. 그는 세상 명리에는 관심이 없었으나 그를 아는 사람들은 초야에 묻힌 것을 안타까이 여겨 늘 벼슬길에 나갈 것을 권하였다. 한 번은 도성에 볼 일이 있어 올라갔다가 서진(西晋)의 태위(太尉)였던 가충(賈忠)이라는 친구의 집을 방문하였다. 가충은 태위 직위에 있었는데 평소 하통을 흠모해 왔다. 그러니 얼마나 반갑게 맞이하였는지는 짐작이 가고 남는다. 그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설복했다. 첫째는 벼슬에 관한 향수였다. 그러나 하통은 자신을 끌어들이는 목적이 순수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들어 거절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완전 무장한 군마를 집결시켜 놓고 열병을 하도록 했다. "이보게, 자네가 마음을 돌리면 여기 있는 군마는 모두 자네의 명을 따를 것이네." "그렇구만. 위풍이 당당해. 사기도 충천하여 하늘을 찌를 듯 싶어. 한데 나의 취미와는 다르니 별로구만." 가충은 몹시 실망했다.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었다. 아름다운 미인을 불러 예쁘게 화장을 한 다음 하통을 뫼시게 한 것이다. 아름다운 미인들이 요염한 교태를 흘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충이 넌지시 말문을 텄다. "이보시게 어떤가. 얼마나 아름다운 미인들인가. 이런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어림도 없지. 자네가 마음을 돌리면 평생을 이렇게 살 수 있네. 어떤가?" 그러나 하통은 도무지 안중에 없다는 듯 하품만 쏟아낼 뿐이었다. 그것을 본 가충은 어이가 없어서 "이 사나이는 목인석심(木人石心)이로군." 하며 감탄했다. 《晉書》<夏統傳>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8)八斗之才(팔두지재) 八: 여덟 팔. 斗: 말 두. 之: 갈 지.才: 재주 재 사람의 재능이 많고 뛰어남을 비유한 말. [동어] 재고팔두(才高八斗). 재점팔두(才占八斗). [출전]《남사(南史) 권19 사령운전(謝靈運傳)》 【내용】조식(曹植)은 자(字)가 자건(子建)으로, 위(魏)나라 무제(武帝) 조조(曹操)의 셋째 아들이며, 조비(曹丕)의 동생이다. 조조, 조비, 조식 등 3부자는 모두 문장가로서 동한(東漢)나라 말기 건안시대 '건안문학(建安文學)'의 주요 인물들이다. 조식은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므로, 조조는 그를 매우 좋아하였다. 조식은, 조조 생전에 많은 작품을 썼지만, 조조가 세상을 떠난 뒤에 조조의 뒤를 계승한 형 조비로부터 많은 압박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조식은 조비의 아들이자 자신의 조카인 조예(曹睿)가 즉위한 후에는 더욱 심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 조식은 정치적으로 탄압으로 받고, 많은 정신적인 고통을 당하였으므로, 그의 작품은 일반 백성들에 대한 동정을 그린 것들이었다. 조식의 작품은 많지는 않았지만, 다른 작가들의 그에 평가는 매우 높았다. 남조(南朝) 송(宋)나라의 시인(詩人) 사령운(385-433)은 조식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하였다. "천하의 글재주를 모두 한 섬이라 한다면, 조식 혼자서 여덟 말을 차지하고, 내가 한 말을 차지하고, 예부터 지금까지의 사람들이 모두 한 말을 가지고 쓰고 있다(天下才共一石, 曹子建獨得八斗, 我得一斗, 自古及今共用一斗)." * 건안(建安)은 동한(東漢) 헌제(獻帝: 서기 189-220년 재위)의 연호로서 서기 196년부터 219년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서예명제(9)有備無患 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나니 평소에 환란(患亂)을 대비해야 한다. [자해(字解)] 있을 유(有)/ 갖출 비(備)/ 없을 무(無)/ 근심 환(患) [출전(出典)] 「서경(書經)」의 ‘열명(說命)’ [동의어(同義語)] 거총사위(居寵思危) 서경(書經)의 ‘열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이란 어진 재상(宰相)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政事)에 대한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이 고종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처선이동 동유궐시 긍기능 상궐공 유사사 급기유비 유비무환. (處善以動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 有備無患.)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時機)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能)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功)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또,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서 보낸 값진 보물과 가희(佳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오자 이것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그러자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거안사위 사위즉유비 유비즉무환. (居安思危 思危則有備 有備則無患.)” “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돼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입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0)大器晩成 큰 그릇은 늦게 이뤄진다는 말로, 큰 인물(人物)은 오랫동안의 노력 끝에 완성된다는 뜻. 큰 대(大)/ 그릇 기(器)/ 늦을 만(晩)/ 이룰 성(成) [동의어(同義語)] 대기난성(大器難成) 대재만성(大才晩成)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위(魏) 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하고 일가 친척들로 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崔琰)만은 최림(崔林)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人物)도 대성(大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대기만성(大器晩成)’하는 그런 형(型)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人物)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崔林)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후한서(後漢書)>에 보면, 후한(後漢)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25~57) 때 마원(馬援)이란 명장(名將)이 있었다. 그는 변방(邊方)의 관리(官吏)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人物)이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兄)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대기만성형(大器晩成型)’이야. 솜씨 좋은 대목(大木)이 산(山)에서 막 베어 낸 거친 원목(原木)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재목(材木)으로 다듬어 내듯이 너도 네 재능(才能)을 살려 꾸준히 노력(努力)하면 큰 인물(人物)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노자(老子)>에도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 그릇은 늦게 만들어 진다(大方無隔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출전(出典):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후한서(後漢書)>, <노자(老子)>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1)溫故知新 옛 것을 연구(硏究)하여 거기서 새로운 지식(知識)이나 도리(道理)를 찾아내는 일 [자해(字解)] 복습할 온(溫)/ 연고 고(故)/ 알 지(知)/ 새 신(新) [출전(出典)] <논어(論語)>의 ‘위정편(爲政篇)’ [원어(原語)]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동의어(同義語)] 기문지학(記問之學) 구이지학(口耳之學) 공자(孔子)는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옛 것을 익히어 새 것을 알면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느니라.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온고이지신 가이위사의].” 남의 스승이 된 사람은 고전(古典)에 대한 박식(博識)만으로는 안된다. 즉 고전(古典)을 연구하여 거기서 현대(現代)나 미래(未來)에 적용(適用)될 수 있는 새로운 도리(道理)를 깨닫는 것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또 <예기(禮記)> ‘학기편(學記篇)’에는 이런 글이 실려 있다. “기문지학(記問之學, 피상적인 학문)은 이로써 남의 스승이 되기에는 부족하다. 記問之學 不足以爲人師[기문지학 부족이위인사].” 지식(知識)을 암기(暗記)해서 질문에 대답하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인데 이 말은 실로 ‘온고지신(溫故知新)’과 표리(表裏)를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오늘날 고전(古典)을 연구함에 있어서도 고전의 현대적 의의(意義)를 탐구(探究)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기에 고전 학습의 의의가 있는 것이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2)仁者無敵(인자무적) 仁 - 어질 인. 者 - 놈 자. 無 - 없을 무. 敵 - 적대 적 의미-어진 사람은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 <孟子>에나오는 仁者無敵은 우리가 가훈이나 경구로 자주 사용하는 구절입니다. 仁을 가진 자는 敵이 없다는 뜻으로 오역되기도 하는 이 구절의 본래 뜻은 '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다'입니다. 인자라고 적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인자이기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자는 배려와 사랑을 실천하는 리더이기에 결국 어느 누구도 대적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은 동양의 리더들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리더십 덕목이었습니다. 특히 맹자에게 있어서 인을 기반으로 한 사랑의 정치는 무엇보다도 중요한 왕도정치의 기반이었습니다. 맹자의 인의 정치는 간단합니다. '형벌을 가볍게 하라! 세금을 적게 거둬들여라! 기술개발을 통하여 백성들이 쉽게 농사 질 수 있도록 하라! 백성들에게 효제충신의 인간 도리를 가르쳐라!' 이렇게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하면 아무리 강한 무기로 무장한 강대국이 쳐들어온다고 해도 그들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란 주장입니다. 맹자의 이 철학을 요즘 시대에 적용시킨다면 국가의 권력을 최소화하고 민생안정에 주력하며, 나아가 윤리와 도덕을 실천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는 어떤 나라도 대적할 수 없다는 뜻일 겁니다. 배려와 사랑이 가득한 인의 정치! 시대와 공간을 추월한 아름다운 정치의 모습입니다. 배려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습니다. "따뜻한 사랑의 바이러스가 온 세상에 가득하면 태평성대입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3)積小成大(적소성대) 쌓을 적. 작을 소. 이룰 성. 클 대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이룬다는 뜻이니 띠끌 모아 태산과 비슷한 성어다. 한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도 털끝 같은 작은 싹에서 시작되고, 9층이나 되는 노대도 한 줌의 쌓아 놓은 흙으로부터 시작된다. -노자- "시작은 미미하였으나 그 끝은 창대하여라!"라고 했던가? 지금 간난에 처해 있는가? 가진 게 없어 비참한가? 하지만 그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 거목이 될, 크고 튼튼한 노대를 이룰 준비가 됐다는 것이지 않을까? 머리를 싸매고 누워 고통스러워 하는 대신, 차고 나서보자. 꾸준히, 차근차근 쉬지 않고 노력을 해간다면 언젠간 이뤄지는 법이다. 정성을 다해야 하고,애정을 갖고 임해야 함은 두 말 할 것도 없는 것이고... 경쟁심을 갖기 보단, 비교를 하기보단 스스로를 열렬히 사랑하며 자신만의 길을 꿋꿋이 걸어 가보자. 아무리 하찮아 보이더라도 자신이 잘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해보자.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해 독보적 존재로서 독야청청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내가 이 초라한 경지를 구축해 놓고도 마냥 행복해 하는 것처럼 , 그것이 비록 작고 초라한 것일지라도, 이만하면... 하는 식으로 만족할 줄만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것을 유지하는 정도로만 만족할 줄 알게 된다면,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치 행복한 인생을 누릴 수 있는 주인공이 될 것이다. 《유의어》積土成丘(적토성구) 積土成山(적토성산) 塵合泰山(진합태산) 水滴穿石(수적천석) 愚公移山(우공이산) 磨斧作針(마부작침).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4)登高自卑(등고자비) 登 : 오를 등. 高 ; 높을 고. 自 : 부터할 자. 卑 : 낮을 비 높은 곳에 오르려면 낮은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는 말. 중용(中庸) 제15장에 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군자의 도는 비유컨대 먼 곳을 감에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 출발함과 같고, 높은 곳에 오름에는 반드시 낮은 곳에서 출발함과 같다. 《시경》에 '처자의 어울림이 거문고를 타듯하고, 형제는 뜻이 맞아 화합하며 즐겁구나. 너의 집안 화목케 하며, 너의 처자 즐거우리라'는 글이 있다. 공자는 이 시를 읽고서 "부모는 참 안락 하시겠다"고 하였다. 공자가 그 집 부모는 참 안락하시겠다고 한 것은 가족 간의 화목이 이루어져 집안의 근본이 되었기 때문이니, 바로 행원자이(行遠自邇)나 등고자비의 뜻에 맞는다는 말이다. 등고자비란 이와 같이 모든 일은 순서에 맞게 기본이 되는 것부터 이루어 나가야 한다는 뜻이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우리 속담과 뜻이 통한다고 하겠다. 맹자 진심편(盡心篇)에서도 군자는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아야 한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바닷물을 관찰하는 데는 방법이 있다. 반드시 그 움직이는 물결을 보아야 한다. 마치 해와 달을 관찰할 때 그 밝은 빛을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해와 달은 그 밝은 빛을 받아들일 수 있는 조그만 틈만 있어도 반드시 비추어 준다. 흐르는 물은 그 성질이 낮은 웅덩이를 먼저 채워 놓지 않고서는 앞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군자도 이와 같이 도에 뜻을 둘 때 아래서부터 수양을 쌓지 않고서는 높은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없다' 또 불경에 보면, 어떤 사람이 남의 삼층 정자를 보고 샘이 나서 목수를 불러 정자를 짓게 하는데, 일층과 이층은 짓지 말고 아름다운 삼층만 지으라고 했다는 일화가 있다. 좋은 업은 쌓으려 하지 않고 허황된 결과만 바란다는 이야기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5)敎學相長(교학상장) 가르치는 것과 배우는 것은 서로의 학문(學問)을 발전(發展)하게 한다는 뜻. 가르칠 교(敎)/ 배울 학(學)/ 서로 상(相)/ 길 장(長) 출전(出典) - <예기(禮記)> ‘학기편(學記篇)’ 雖有嘉肴 弗食不知其旨也(수유가효 불식불지기지야). 雖育至道 弗學不知基善也(수육지도 불학불지기선야). 是故學然後 知不足 敎然後 知困(시고학연후 지불족 교연후 지곤). 知不足然後 能自反也(지부족연후 능자반야). 知困然後 能自强也(지곤연후 능자강야). 故曰(고왈), “敎學相長也(교학상장야).” 兌命曰(태명왈), “斅學半 其此之謂乎(효학반 기차지위호)?” 비록 맛있는 안주가 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알 수 없고 비록 지극한 도(道)라도 배우지 않으면 그 훌륭한 것을 알 수 없다. 이런 까닭에 배우고 난 뒤에야 자기의 부족함을 알며 가르쳐 본 연후에야 자기의 앎이 보잘것없음을 알게 된다. 부족함을 알고 난 뒤에야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며, 앎이 보잘 것 없음을 알고 난 후에야 학문(學問)이 넉넉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르기를,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서로를 자라게 하는 것이다.” 라고 하는 것이다. 열명(悅命)에 이르기를, “가르치는 것의 반(半)은 가르치는 이도 배우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인가?” 교직(敎職)에서 가르치는 일을 맡아하는 선생님들이 잘 명심(銘心)해 두어야 할 교훈(敎訓)인 것이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6)有志竟成(유지경성) 있을 유, 뜻 지, 마침내 경, 이룰 성 굳건한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루어낸다 漢나라를 찬탈한 왕망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劉秀(유수)의 수하에 경엄이란 장수가 있었다. 원래 글 읽는 선비였던 그는 병법과 무예에 뛰어나 적잖은 전공을 세움으로써 유수의 신임은 각별했다. 마침내 유수는 後漢의 光武帝(광무제)가 되었는데 어느날 광무제는 경엄에게 張步(장보)를 공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한나라의 맥을 이은 후한이 세워졌지만 아직도 각지에는 상당한 병력을 가진 세력들이 준동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장보의 병력이 가장 세었다. 경엄이 공격해 온다는 보고를 받고도 장보는 풋내기의 烏合之卒(오합지졸)로 여겼다가 초전에서 크게 낭패를 보았다. 파죽지세로 진격한 경엄의 부대는 임치의 동쪽 성에 이르러 장보의 주력부대와 맞붙게 되었다. 이 싸움에서 경엄은 허벅다리에 화살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부하들을 독려하며 앞장서 싸웠다. 그러나 고전을 면할 수 없었다. 이런 전황을 보고 받은 광무제는 몸소 군대를 이끌고 경엄을 도우러 나섰다. 그때 경엄의 부하 한 사람이 원군이 올 때까지 잠시 후퇴했다가 병력을 재정비하여 다시 싸우자는 건의를 했다. 그러자 경엄은 호통치며 말했다. "황제가 오시는데 소를 잡아 술상을 차려놓고 맞지는 못할망정 어찌 섬멸하지 못한 적군을 남겨둔단 말인가?" 사기충천한 경엄군은 임치를 함락했고 원군을 이끌고 온 광무제는 이렇게 경엄에게 칭찬했다. "옛날에는 韓信(한신)이 역하(歷下)를 함락시켜 한나라의 기초를 이룩하더니 이제는 그대가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게 했구려. 뜻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이루어낸다(有志者事竟成)더니." [출전]《後漢書》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7)易地思之(역지사지) 易 바꿀 역 地 땅 지 思 생각할 사 之 갈 지 상대편의 처지나 입장에서 먼저 생각해보고 이해하라는 뜻이다. ‘맹자(孟子)’ ‘이루(離婁)’에 나오는 ‘역지즉개연(易地則皆然)’에서 유래한 말이다. 역지즉개연은 처지나 경우를 바꾼다 해도 하는 것이 서로 같다는 말이다. 중국의 전설적인 성인인 하우(夏禹)와 후직(后稷)은 태평한 세상에 자기 집 문 앞을 세 번씩 지나가도 들어가지 않아서 공자(孔子)가 이들을 매우 훌륭하게 생각했다.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는 어지러운 세상에 누추한 골목에서 물 한 바가지와 밥 한 그릇으로만 살았는데, 공자는 가난한 생활을 이겨내고 도(道)를 즐긴 안회를 칭찬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같은 뜻을 가졌는데, 하우는 물에 빠진 백성이 있으면 자신이 치수(治水)를 잘못해 그들을 빠지게 했다고 여겼으며, 후직은 굶주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일을 잘못해 백성을 굶주리게 했다고 생각했다. “하우와 후직과 안회는 처지를 바꾸어도 모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라고 했다. 맹자는 하우와 후직, 안회의 생활방식을 통해 사람이 가야 할 길을 말했다. 입장을 바꾸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헤아려보라는 말이다.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치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조직의 상하관계는 물론 가족과 친지 그리고 부모 자식, 부부관계에 이르기 까지....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8)居安思危(거안사위) 살 거. 편안 안. 생각사. 위태로울 위. 사는 것이 편안할 때 앞으로 닥칠 위태로움을 생각해 둠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의 침략을 받았을 때였다. 당시 세력이 막강했던 진(晉)나라는 11개국의 제후(諸侯)들과 동맹을 맺어 초나라를 응징하는데 앞장섰다. 결국 이들 동맹국이 정나라를 도와 승리를 거두었는데, 이후 정나라는 진나라의 은혜에 감사하여 많은 무기와 3명의 악사(樂師), 16명의 미인을 보냈다. 진나라 왕 도공(悼公)은 이 사례품의 절반을 승리를 이끄는데 공을 세운 충신 위강(魏絳)에게 주면서 그의 공을 치하하고 위로하였다. 하지만 위강이 아뢰길, “생활이 편안하면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하면 준비를 갖추어야 화를 면할 수 있다 (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는 이치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라며 사양하였다. *유의어 : 유비무환(有備無患)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을 뜻하는 말. *관련속담 :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출전 : 『좌씨전(左氏傳)』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19)四海兄第 四: 넉 사. 海: 바다 해. 兄: 형 형. 第: 아우 제 사방이 형제라는 뜻으로, 천하 사람들이 마음과 뜻을 같이 한다면 누구나 형제처럼 지낼 수 있다는 말. [출전]《논어(論語) 안연(顔淵)》 사해형제(四海兄第)라는 말은 논어 안연편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사마우가 근심하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모두 형제가 있는데 유독 나만 없소이다.” 그러자 자하가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죽음과 삶에는 명이 있고, 부유함과 귀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했소이다. 군자가 조심하여 실수하는 일이 없고 남과 접촉하는데 공손하고 예의가 있으면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형제입니다 (四海之內, 皆兄弟也.). 군자가 어찌 형제가 없는 것을 걱정하겠습니까?” 司馬牛憂曰: “人皆有兄弟, 我獨亡.” 子夏曰: “商聞之矣, 死生有命, 富貴在天. 君子敬而無失, 與人恭而有禮. 四海之內, 皆兄弟也. 君子何患乎無兄弟也?” 사마우에게는 사마환퇴(司馬桓退)라는 형이 있었는데 천하에 악명을 드날리는 악한으로 송나라에서 일어났던 반란에 가담하였다가 실패하여 망명하여 떠도는 신세였다. 사마우는 이를 걱정하여 자하에게 근심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자하는 모든 일은 운명에 달려있다고 하고 군자가 공경으로서 남을 대하고 예를 지킨다면 천하의 누구와도 형제처럼 지낼 수 있으니 어찌 형제가 없음을 걱정하겠느냐고 위로한 것이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0)韋編三絶(위편삼절) [자해(字解)] 다룬 가죽 위(韋) / 엮을 편(編) / 석 삼(三) / 끊을 절(切) [출전(出典)] 사기(史記) 공자세가(孔子世家) [의미(意味)] 책(冊)을 묶은 끈이 닳아서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독서(讀書)에 열중(熱中)한다는 말 孔子晩年而喜易(공자만년이희역) 云云, 讀易韋編三絶(운운, 독역위편삼절) 공자(孔子)는 만년(晩年)에 '역(易)'을 좋아하여 단(彖), 계(繫), 상(象), 설괘(設卦), 문언(文言) 등의 편을 정리하였다. 공자(孔子)는 죽간(竹簡)을 맨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여러 번 '역(易)'을 읽었다. 공자(孔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내가 몇 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나는 '역(易)'의 문사(文辭)와 그 뜻과 이치(理致)에 다 통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학문(學問)하는 이의 노력을 말할 때 위 문구(文句)를 인용하기도 한다. 공자(孔子)는 '역(易)' 뿐 아니라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버리지 않았다. 「자장편(子張篇)」에 자공(子貢)이 말하기를, "선생님께서는 어디서인들 배우지 않으셨겠습니까? 그러니 어찌 일정한 스승이 있으셨겠습니까?"라고 했으며 「팔일편(八佾篇)」에는, "공자(孔子)께서는 태묘(太廟)에 들어가셔서는 모든 일을 물으셨다." 라고 한 것을 보아도 평소 공자(孔子)가 어떤 자세로 학문(學問)에 임(臨)하고 어떤 마음으로 삶을 살았는가를 알 수 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1)苦盡甘來(고진감래) 쓸 고/ 다할 진/ 달 감 /올 래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말이니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해석할 수 있다. 오랜 옛날 중국에 가난했던 농부가 있었는데, 붓과 종이를 살 돈이 없어서 붓 대신 숯으로 글을 적었고 종이 대신에 나뭇잎을 사용했던 농부는 오랜 고생 끝에 결국 학자로서 크게 성공하였다는 데에서 유래가 되고 있는,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결실을 본다’는 의미의 고진감래(苦盡甘來)에 대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볼까 합니다. 대부분 부와 명성을 거머쥐게 된 성공한 사람에게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십중팔구(十中八九)는 이렇게 말합니다. 성공의 비결은 자신이 정말로 바라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한 다음에 그 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 눈 팔지 않고 매진하면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말이죠.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성공의 비결입니다만, 누구는 성공에 이르게 되고 어느 누구는 성공 근처에도 가 보지 못하게 되는 걸까요?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성공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혹독히 지불해야 할 대가를 지불하겠다고 처음엔 굳게 결심을 하게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굳은 결의는 희미해지면서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은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지금 당장의 편안한 생활을 원하고 있기에, 윤택한 삶이 보장된 미래보다는 현실의 여러 가지 달콤한 유혹에 흔들리게 되고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누구나 성공하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성공하는데 있어서 가장 큰 방해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다음에’ 또는 ‘내일’로 미루는 습관입니다. ‘이 다음에’, ‘내일 하지 뭐’ 등 지금까지 헤아릴 수도 없이 숱하게 그렇게 말해 왔지만, 사실 그 말은 모두 하지 않겠다는 말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당장 시급히 해야 할 일을 그런 식으로 계속 미루는 습관으로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2)一忍長樂(일인장락) 한 일, 참을 인, 긴 장, 즐길 락. 한번 참으면 오래도록 즐거움을 누린다 一忍이 長樂이어늘 何不修哉리요 (일인장락하불수재) 한번 참음이 길이 즐거움이거늘 어찌 닦지 않으리오. 여기에서 '일인장락'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한 번 참으면 길이 즐겁다! 참으면 크게 즐겁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일인장락이라! 한번 참으면 길이 즐거움이거늘 어찌 닦지 않으리오. 사바세계라 하는데, 사바세계라고 하는 말은 인토(忍土), '참아야 할 땅이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참아야 할 땅이다! 우리들이 가정생활을 하지만, 가족들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저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남편이라 할지라도 마음에, 또 아내라 할지라도 마음에 어떻게 다 들겠습니까. 때로는 그냥 때리고 싶을 때도 있겠지요. 자기가 낳은 아이라 할지라도 욕을 하고 싶을 때도 있겠지요. 바로 그럴 때 참아야 됩니다. 일단은 억지로라도 참아야 됩니다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일로 화나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한번 양보하고 참아내면 나중에 더 갚진 보배가 되어 되돌아옵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3)上善若水[상선약수] *윗 상, 좋을(착할) 선, 같을(만약) 약, 물 수 노자 사상에서 물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여겨서 이르는 말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 8장에 가로되(曰) 인생을 살아가는 최상의 방법은 물처럼 사는 것이라고 역설하였습니다. 무서운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흐르는 물! 그 물의 진리를 배우라는 것입니다. 첫째, 물은 유연합니다. 물은 네모진 곳에 담으면 네모진 모양이 되고 세모진 그릇에 담으면 세모진 모양이 됩니다. 이처럼 물은 어느 상황에서나 본질을 변치 않으면서 순응합니다. 둘째, 물은 무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물은 평상시에는 골이진 곳을 따라 흐르며 벼 이삭을 키우고 목마른 사슴의 갈증을 풀어줍니다. 그러나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립니다. 셋째, 물은 항상 낮은 곳으로만 흐름니다. 낮은 곳으로 낮은 곳으로 흐르다가 물이 마침내 도달하는 곳은 드넓은 바다입니다. 넷째, 물은 남의 더러움을 씻어주면서 남을 더럽힐 줄 모릅니다. 이런고로 물이 상선약수(上善若水)라! 세상에서 가장 선(善)함이 물이라 했습니다. 문의: 고방 -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4)手不釋卷(수불석권) 手(손 수) 不(아닐 불) 釋(해석할 석) 卷(문서 권)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늘 공부함. [出典]-삼국지(三國志)-오서(吳書) 여몽전(呂蒙傳). 삼국시대, 오나라의 대장 여몽(呂蒙:178-219)은 자(字)가 자명(子明)이다. 그는 어려서 집안이 가난하여 공부를 하지 못했다. 오왕 손권(孫權)은 여몽이 비록 나이는 어리고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여러 차레 무공을 세웠으므로, 전략 요충지를 담당하는 임무를 맡기고자 하였다. 여몽이 임지(臨地)로 떠나기에 앞서 손권은 다음과 같이 분부하였다. ˝너는 이제 군정(軍政) 대권을 맡게 되었으니, 마땅히 많은 사서(史書)와 병서(兵書)를 읽어야만 일을 잘 처리할 수가 있다.˝ 여몽은 마음속으로, ˝독서는 공부하는 사람들의 일이다. 나는 군대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서 이기면 되는 것이지 공부는 무슨 공부인가?˝라고 생각하고, 손권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부대의 일이 너무 많은데 독서할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손권은 몹시 화가 나서 그를 꾸짖었다. ˝너의 말은 옳지 않다. 시간이란 자신이 만들어 내는 것이다. 나는 과거에 책 읽기를 좋아했다. 지금은 국가의 대사를 맡아 매우 바쁘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사서(史書)와 병서(兵書)를 읽는다. 한나라의 광무제는 난리통에도 공부를 잊지 않고 항상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아서 [光武當兵馬之務,手不釋卷],그는 비로소 한실(漢室)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가 있었다. 너처럼 젊은 사람들은 일단 공부를 시작하면 그 효과가 매우 좋을 것이니, 시간을 만들어 공부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 있겠느냐?˝ 여몽은 이 말에 매우 감동하였고, 또한 부끄럽기도 하였다. 이후, 그는 전쟁터에서도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 학문에 정진했다. 그는 결국 지혜와 용맹을 갖춘 오나라의 장군이 되어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다. 그후 중신(重臣)가운데 가장 유식한 재사 노숙(魯肅)이 전시 시찰길에 부하들의 권유로 여몽의 진영을 방문했다. 그런데 노숙은 대화를 나누다가 여몽이 너무나 박식해진 데 그만 놀라고 말았다. ˝아니, 여보게. 언제 그렇게 공부했나? 자네는 이제 ´오나라에 있을때 시골에 있던 아몽이 아닐세[非復吳下阿蒙]´그려.˝ 그러자 여몽은 웃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릇 선비란 헤어진 지 사흘이 지나서 다시 만났을 때 ´눈을 비비고 대면할[刮目相對]´정도로 달라져야 하는 법입니다.˝ [至於今者 學識英博 非復吳下阿蒙曰 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 *아몽(阿蒙)은 여몽의 어릴 때 이름. 서예명제(25) 訥言敏行(눌언민행) 어눌할 눌, 말씀 언, 민첩할 민, 행할 행. 말에는 더디고 행동에는 민첩하다는 뜻으로, 공자의 말에서 나왔다. 본래 유가에서는 배우는 사람의 자세로서 '눌언민행'해야만 스스로 가르침을 제대로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자신의 수제자로 칭송하던 안회를 "어기지 않는 것이 못난이 같다" 고 하여 그의 실천 정신을 높이 평가했다. 요즈음이야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만, 배우는 사람은 스승과 논쟁하거나 자신의 주장을 내세워 스승의 가르침과 대립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과거 성현들의 가르침이었다. 한번은 맹자(孟子) 에게 공도자(公都子)가 찾아와 이렇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선생님을 일컬어 쟁변을 좋아한다고 그러던데요?" "내가 어찌 쟁변을 좋아하리요? 부득이하여 그럴 뿐이지." 활용의 예 - 맹자는 '구약현하(口若懸河)'로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그런 맹자도 행동보다 말이 앞선다는 식의 말은 듣기 싫었던 것이다. 구약현하 (口若懸河)- 口 입 구, 若 같을 약, 懸 달 현, 河 물 하 ▶ 풀이 : 입이 급(急)히 흐르는 물과 같다는 뜻으로, 거침없이 말을 잘하는 것 ▶ 유래 : 진(晉)나라 때 곽상(郭象)은 어려서부터 재능이 비범하고 어떤 사물(事物)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 이치(理致)를 밝히기를 좋아했다. 또한 老子와 莊子의 사상(思想)을 즐기면서 연구(硏究)하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학자였다. 당시 그에게 여러 차례 관직에 나갈 것을 권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고사(固辭)하고 한가롭게 살면서 학문(學問)을 연구(硏究)하고 특히 남들과 여러 사상(思想)을 이야기하면서 즐기는 것을 좋아했다. 그는 여러 사람과 논쟁을 벌일 때마다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이치(理致)를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잘 설명했고 아울러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왕연(王練)이 이르기를 「곽상의 말을 듣고 있으면 마치 흐르는 물이 큰 물줄기로 쏟아져 마르지 않는 것과 같다. (廳象語면 如懸河하여 瀉水注而不竭이라.」며 칭찬(稱讚)했다. 눌언민행은 분명 말보다 행동에 앞장서라는 말이다. 말만 번지르하게 하고 행동이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꼭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문의 - 古方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6) 開卷有益(개권유익) 開: 열 개, 卷: 책 권, 有: 있을 유, 益: 더할 익 책은 읽지 않고 펼치기만 해도 유익하다는 뜻으로, 독서를 권장하는 말 개권유익(開卷有益)은 숭수연담록(繼水燕談錄)에 나오는 고사이다. 개(開)는 문 문(門)에 빗장을 나타내는 평평할 견(幵)을 넣은 글자로, 빗장을 빼고 문을 연다는 의미에서 ‘열다’, ‘펴다’는 뜻으로 쓰인다. 권(卷)은 책을 뜻하고, 익(益)은 ‘더하다’는 의미로 쓰인다. 송(宋)나라 태종(太宗)은 독서를 매우 좋아했다. 그는 주로 역사책을 읽었으며,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글을 읽었다. 때문에 태종은 이방(李暗)등과 같은 학자들을 시켜 사서를 편찬하도록 했다. 많은 학자들이 심혈을 기울인 결과 7년 후에 사서가 편찬되었다. 태평년간(太平年間)에 편찬되었으므로 그 연호를 따서 태평총류(太平總類)라고 이름 지었다. 태종은 책 출간을 매우 기뻐하며 매일 같이 탐독했다. 그러다가 책이름을 태평어람(太平御覽)으로 고치고 하루에 세 권씩 읽어나갔다. 정무에 시달리는 와중에도 그 규칙은 변함이 없었다. 신하들은 그의 건강을 깊이 염려했다. 그러나 태종은 빙그레 웃으며 신하들에게 말했다. “책을 펼치면 이로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난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니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이때부터 개권유익은 ‘책을 읽으면 유익하다’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사람의 삶에 있어서 독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독서량은 매우 부족하다고 한다. 요즘 세상은 정신없이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독서도 컴퓨터를 통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마음의 여유를 갖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긴다면 그것이 바로 사람에게 유익한 웰빙 독서가 아닐까 한다. 太宗(태종)은 송나라 제 2대왕(재위, 967~997년) 이름은 조경(趙炅) 원래 이름은 조광의(趙匡義)이며 초대 황제인 태조(太祖)의 동생이다. 그의 재위 기간 동안 송나라 지배체제의 기초가 확립되었다. 976년 태조가 죽은 후 그의 직계 아들이 아닌 동생 태종이 황위에 등극했는데, 오월(吳越)과 북한(北漢)을 멸망시키고 중국을 통일했다. 문치주의에 따른 중앙집권제를 확립했다. 문의 - 古方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7)愚公移山 어리석을 우, 어른 공, 옮길 이, 뫼 산. 열자(列子) 탕문(湯問)편에 나오는 고사이다. 북산에 사는 우공이란 90세 노인이, 출입의 편리를 위해 가로막고 선 산을 옮기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가 온 집안사람을 모아놓고 상의를 하자. 모두가 그것을 응락하였다. 마침내 그는 자기 자손들과 짐꾼 셋과 더불어 일을 시작한다. 이 때 이웃에 과부가 하나 있었는데, 그녀의 유복자가 겨우 이를 갈기 시작한 나이였으나, 뛰어가 이 일을 돕게 하였다. 파낸 흙을 발해만까지 나르고 돌아오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이를 보고 지수(智叟)란 이가 비웃자 그가 이리 대답한다. “그대의 마음은 고루하여 거두어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니, 과부의 어린 아이만도 못하구료. 비록 내가 죽는다하여도 자손은 남아 있소. 자식이 손자를 낳고,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나을 것이며, 또 그 자식이 자식을 낳고, 또 손자를 낳을 것이오. 이리 자자손손 영원히 다하는 일이 없을 것이오. 하지만, 산은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오. 어찌 평평해지지 않으리라 걱정을 하십니까?” 지수는 할 말이 없었다. 조사신(操蛇神)이 그 얘기를 듣고는 그가 그만 둘 것을 염려하여 하늘에 고하였다. 천제는 그 정성에 감복하여 과아(夸蛾)씨 두 아들에게 명하여, 두 산을 업어다가 하나는 삭동(朔東), 하나는 옹남(雍南)에 놓게 하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 군쟁(軍爭)편에서 이리 말하고 있다. 先知迂直之計者勝,此軍爭之法也。 먼저 우직지계를 아는 자가 이긴다. 이것이 싸움에서의 기본법이니라. 우공(愚公)의 愚는 기실 迂에 통한다. 迂란 멀리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멀리 돌아가지만 直이니 이는 곧 곧바로 질러가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하니 우직(迂直)인 것이다. 우공(愚公)의 愚는 대우(大愚)인 게다. 대우(大愚)는 곧 현(賢)에 가 닿아있고, 대졸(大拙)은 곧 교(巧)를 덮는다. 어제 오늘 나는 밭에서 우공(愚公)을 배우고, 내일 대우대졸(大愚大拙)하고자 한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28)積羽沈舟(적우침주) 쌓을 적, 깃털 우, 침몰시킬 침, 배 주, 가벼운 깃털이라도 그것이 모여 쌓이면 결국 . 큰 배도 침몰 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고봉 기대승 선생의 <고봉집>에 보면 이런 구절이 실려 있습니다. 群輕折軸(군경절축)이오 積羽沈舟(적우침주)라! 가벼운 사람도 많이 타면 수레 축이 부러지고, 가벼운 깃털도 많이 실으면 배가 침몰될 것이다! 아무리 가볍고 하찮은 것이라도 무시하지 말고. 그것이 모이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뜻으로. 고봉선생의 철학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원래 이 구절은 <전국책>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당시 강력한 진나라를 위해 연횡책을 주장하던 장의라는. 국제협상가가 위나라 왕에게 진나라와 연합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群輕折軸이오 積羽沈舟라! 가벼운 물건도 많이 실으면 수레가 부러지고, 가벼운 깃털도 많이 실으면 배도 가라앉으니 나라를 보존하려면. 진나라와 연합하여 살아남는 방도를 찾는 것이 도리일 것입니다. 조그만 것의 힘이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박재희선생의 글을 인용하였습니다. 문의 - 古方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29)柔能制剛(유능제강) 부드러울 유, 능할 능, 다스릴 제. 굳셀 강 병서(兵書)인 '삼략'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군참(軍讖)에서 이르기를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하고 (柔能制剛) 약한 것은 능히 강함을 제어한다. 부드러움은 덕(德)이고 굳셈은 적(賊)이다. 약함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강함은 사람들의 공격을 받는다.」 군참이란 전쟁의 승패를 예언적으로 서술한 병법서다. 이와 비슷한 말이 노자(老子)에도 실려있다. 노자 76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실려 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면 굳고 강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게 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자리를 잡는다.」 노자 78장에는 이런 글도 보인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물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알건만 그 이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치망설존(齒亡舌存)이란 말도 있다. 단단하고 강한 이는 깨지더라도 부드러운 혀는 훨씬 더 오래 남는다는 뜻이다. 설원(說苑)이라는 책에 전하는 이 말도 강하고 모진 것은 쉽게 망하고 부드럽고 순한 것이 오래 간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0) 朝乾夕惕(조건석척) [요약] (朝: 아침 조. 乾: 하늘 건. 夕: 저녁 석. 惕: 두려워할 척) 매우 부지런하고 조심(操心)스럽다는 뜻. [출전]》《주역 1 건괘(乾卦)》 [내용] 중천(重天) 건(乾)괘 구삼(九三)효의 효사(爻辭)에는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군자가 종일토록 굳세고 굳세게 하고, 저녁에는 조심하니, 좀 위태롭기는 하나, 허물은 없으리라 (君子終日乾乾, 夕惕若, 厲, 无垢).” 군자가 하루 종일 덕업(德業)을 닦고, 저녁에 되어서도 여전히 신중하게 반성하니 허물이 없을 것이라는 말이다. 공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군자는 德을 기르고 業을 닦기 위하여 노력한다. 忠과 信을 힘씀은 德을 기르기 위함이요, 말을 바르게 하고 마음을 정성되게 가짐은 業을 닦기 위함이다. 때가 도래하였음을 알면 곧 일어선다. 그러므로 함께 미세한 징조를 이야기할 수 있고, 그쳐야 할 때가 되었음을 알면 곧 물러선다. 그러므로 함께 義를 지켜 할 수 있다. 그런 까닭에 높은 지위에 있어도 교만하지 아니하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근심하지 아니한다. 그러기에 온종일 일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이따금 자신을 반성하여 조시만다. 그러고서야 비록 위태한 일이 있을지라도 허물이 없을 수 있는 것이다.” 九三曰 君子終日乾乾夕惕若厲无咎 何謂也. 子曰 君子進德脩業. 忠信 所以進德也. 脩辭立其誠 所以居業也. 知至至之 可與幾也. 知終終之 可與存義也. 是故居上位而不驕 在下位而不憂. 故乾乾 因其時而惕 雖危 无咎矣. 서예명제(31)磨斧作針(마부작침) [자해(字解)] 갈 마(磨), 도끼 부(斧), 만들 작(作), 비늘 침(針) [출전(出典)] 당서(唐書) 문예전(文藝傳) 방여승람(方與勝覽) [동의어(同義語)] 마철저(磨鐵杵) 철저성침(鐵杵成針) 마저작침(磨杵作針) [의미(意味)]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 ①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참고 계속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한다는 말. ② 노력을 거듭하면 목적을 달성한다는 말. ③ 끈기 있게 학문이나 일에 힘쓰라는 말. 중국의 당(唐)나라 때 시선(詩仙)이라고 불리웠던 이백(李白) 자(字)는 태백(太白)(701-762)의 어렸을 때 이야기이다. 이백(李白)은 아버지의 직장(職場)이었던 곳 촉(蜀) 땅의 성도(成都)에서 자랐다. 그때 훌륭한 스승을 찾아 상의산(上宜山)에 들어가 수학(修學)을 했는데 어느 날 공부에 싫증이 나자 그는 스승에게 말도 없이 산을 내려오고 말았다. 집을 향해 걷고 있던 이백(李白)이 계곡(溪谷)을 흐르는 냇가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바위에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었다. (一說에는 쇠공이<鐵杵>였다고 함.) "할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바늘을 만들려고 도끼를 갈고 있지요.(磨斧作針 마부작침)" "그렇게 큰 도끼를 간다고 바늘이 될까요?" "그럼 되고 말고요.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이백(李白)은 "중도에 포기만 하지 않는다면"이란 말이 마음에 영 걸렸던 것이다. 여기서 생각을 바꾼 이백(李白)은 노파(老婆)에게 공손히 인사(人事)를 하고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 후 이백(李白)은 공부를 하다가 마음이 해이(解弛)해 지면 바늘을 만들려고 열심히 도끼를 갈고 있던 그 노파(老婆)의 얼굴을 떠올리고는 분발(奮發)하여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2)曲肱之樂(곡굉지락) 曲 : 굽을 곡, 肱 : 팔뚝 굉, 之 : 의 지, 樂 : 즐거울 락 팔을 베개 삼아 누워 사는 가난한 생활이라도 도에 살면 그 속에 즐거움이 있다는 말 논어(論語)〈술이편(述而篇)〉에 보면, 공자(孔子)가 "부자가 될 수 있다면 마부노릇도 마다하지 않겠다" 하여 그도 부귀에 대한 집착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가 부귀를 맹목적으로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부귀는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부정한 방법으로 얻은 것이라면 가지지 말 것이며, 빈천(貧賤)은 누구나 싫어하지만 정당한 것이라면 피하지 말 것이다"고 했다. 요컨대 부귀는 정당한 방법으로 추구해야 할 것임을 강조한 것이다. 부귀를 얻고자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나아가서 높은 자리에 올라 남을 다스리고 이름을 날릴 수 있다면 인생 최대의 즐거움일 것이다. 이러한 소유욕(所有欲)이 인간의 기본적 본능이다. 정당한 소유욕이야말로 인류나 개인의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인간이 얻으려는 성공이나 부귀에는 끝이 없고 한이 없다. 어느 정도에서 만족할 것인가 하고 자제(自制)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대성(大成)하고도 흡족해하지 못한다면 소성(小成)하고도 만족해 하는 것만 못하다. 범인(凡人)으로서는 보잘것없는 성취(成就)에서도, 그것이 가난한 삶일지라도 즐거움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공자는 "나물 밥 먹고 물 마시고 팔을 굽혀 베개 삼아도 즐거움이 그 속에 있나니 옳지 못한 부귀는 나에게 한낱 뜬구름과 같다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고 했다. 이 글에서 '곡굉지락'과 '곡굉이침지'라는 말을 찾아서 사자성어(四字成語)로 쓰고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패배자(敗北者)의 넋두리라고 할 수도 있으나, 가난하지만 부끄럼 없는 생활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훨씬 값지다고 할 것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33)同舟共濟[동주공제] 같을 동. 배 주. 함께 공. 건널 제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너다 어려움 속에서 일심협력하다. 고락을 함께함. 처지가 다른 사람들끼리도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뜻. 타인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며, 타인의 마음을 바꾸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다. 할 수 있는 일에 힘을 쓰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할 수 없는 일에 신경 쓰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에픽테토스 우리는 하루에 5-6만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고 과학자들은 말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남을 비판하고 원망하는 생각의 비중을 큰 폭으로 줄이고, 긍정과 희망, 나를 새롭게 하는 생각의 비중을 크게 높이는 ‘생각의 구조조정’을 해낼 수 있다면 우리 삶은 훨씬 더 행복해지리라 믿습니다.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다.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1분이 걸리고, 그와 사귀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그러니 남의 마음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다. -장영희,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에서 랍비 밀턴 스타이버그는 “어렸을 땐 똑똑한 사람을 존경했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친절한 사람을 존경한다.”고 말했습니다. 친절을 베푸는 행위에는 결코 낭비라는 게 없습니다. 친절만큼 기억에 오래 남는 것도 흔치 않습니다. 병법의 대가 손자(孫子)는 구지편(九地編)에서 이렇게 답한다. “무릇 오나라 사람과 월나라 사람은 서로 미워했다(夫吳人與越人相惡也). 그런 그들도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풍랑을 만나면(當其同舟而濟遇風), 서로 돕기를 마치 좌우의 손과 같다(其相救也若左右手)”. 지금의 쑤저우(蘇州) 지역에 둥지를 튼 오(吳)와 저장(浙江) 지역에 웅크리고 있던 월(越)은 철천지원수였다. 손자는 그런 그들도 위기의 순간에는 서로 돕는다는 점을 지적하며 ‘적과의 동침’을 얘기한 것이다. 이 고사(故事)에서 ‘같은 배를 타고 함께 강을 건넌다’는 의미를 가진 동주공제(同舟共濟)가 나왔다. ‘서로 손잡고 어려움을 극복하자’고 호소할 때 많이 쓰인다. 환난여공(患難與共), 풍우동주(風雨同舟), 동감공고(同甘共苦·달콤함과 어려움을 함께함) 등이 같은 말이다.『손자』 구지편 “장비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 더 중요한 것은 병사의 일치단결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4)無汗不成(무한불성) 無: 없을 무 . 汗: 땀 한. 不: 아닐 불. 成: 이룰 성 땀이 없으면 아무 일도 이룰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세상에 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별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허무한 것이다. 땀의 댓가로 이루어 진 것이 고귀하고 아름답다. 갓난아기가 부단하게 일어서고 넘어지고 또 일어서야 걷고 달릴 수가 있으며, 보고 읽고 외우고 이해하고 이런 반복의 학습이 결국 공부 잘하는 비결이고, 홍역을 치른 사랑이라야 아름다운 연인이며, 기도도 지극 정성으로 혼신을 쏟아야 하늘에 닿으며, 이 세상 그 어떤 성공도 피땀을 쏟아야 영광이 있고, 올림픽 금메달도 먹고 자고 운동이 전부라야 이루어진다. 더러는 땀 안 흘리고 거저 줍듯이, 희망과 소망과 꿈이 이루려 하는 어리석음이 있다. 그런 사고라면 참으로 안타까운 착각이다. 땀 안 흘리고 무위도식하는 것 보다 더 큰 고통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磨鐵杵欲作針(마철저욕작침)이란 쇠로 만든 다듬이 방망이를 갈아서 침을 만들려 한다는 뜻으로 노력하고 땀흘리면 아무리 힘든 목표라도 달성할 수 있다. 無汗不成(무한불성)을 생활 신조로, 비지땀, 진땀, 구슬땀, 피땀을 열심히 쏟으면, 그 어떤 부귀영화도 다 이룰 수 있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5)水滴石穿(수적석천) 물 수, 물방울 적, 돌 석, 뚫을 천.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 곧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미미한 힘이라도 꾸준히 노력하면 큰일을 이룰 수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鶴林玉露》 <第十卷>에 나오는 글입니다. 張乖崖爲崇陽令, 一吏自庫中出, 視其鬢傍巾下有一錢, 詰之, 乃庫中錢也. 乖崖命杖之. 吏勃然曰 : “一錢何足道, 乃杖我耶. 爾能杖我,不能斬我也.” 乖崖援筆判曰 : “一日一錢,千日千錢 繩鋸木斷,水滴石穿.” 自仗劍下階斬其首. 장괴애(張乖崖)가 숭양현령이었을 때, 한 관리가 창고 안에서 나오는데, 그의 귀밑머리 가의두건 아래에 동전 한 닢이 숨겨 있는 것을 보고, 그를 문책하고, 이에 창고에서 훔친 돈이라 하여, 장괴애는 명하여 그에게 곤장을 가하게 하니, 관리는 발끈하여 말하기를, “동전 한 닢으로 어찌 말할 수 있으며, 나를 칠 수 있습니까? 그대는 나를 때릴 수는 있어도, 나를 죽일 수는 없을 것이요.”라고 하였다. 장괴애는 붓을 들어 판결하여 이르기를, 하루에 일 전이면 천 일이면 일천 전이요, 실톱이 나무를 자르고,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하고, 손수 칼을 들고 계단 아래로 내려가 그를 참수하였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6)推賢讓能(추현양능) 推 : 옮을 추. 밀 추 / 賢 : 어질 현 / 讓 : 사양할 양 / 能 : 능할 능 어진 사람이나 유능(有能)한 사람을 받들어 지위(地位)를 양보(讓步)해 준다는 뜻. 출전(出典)-서경(書經) 제4편 주서(周書) 제22장 주관(周官). 내용-「주관(周官)」이란 「주나라의 관리」라는 뜻으로, 주나라 성왕(成王)이 조정의 관리들에게 훈시한 말을 사관이 기록하여 놓은 것이다. 다음은 인사(人事) 문제에 관한 훈계 중의 한 대목이다. “ .... 지위(地位)가 높아지면 자기도 모르게 교만해지고, 록(祿)이 많으면 자기도 모르게 사치해 진다. 공손하고 검소하게 생활하며 속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항상 덕을 쌓으면 마음이 편안하여 날로 아름답고, 거짓을 지으면 마음이 수고로워 날로 옹졸해 진다. 높은 지위에도 위태롭게 생각하여 두렵지 않게 해야 하며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어진 이를 밀어주고 능력 있는 이에게 관직을 양보하면, 모든 관리들이 화합할 것이다(推賢讓能, 庶官乃和). 화합하지 못하면 정사(政事)는 어지러워질 것이고, 추천 받은 이가 그 직위를 감당할 수 있으면, 그것은 그대들의 능력이지만 추천 받은 자들이 적임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대들이 소임(所任)을 다 하지 않았다는 것이 된다. ” 位不期驕,祿不期侈。恭儉惟德,無載爾偽。 作德心逸日休,作偽心勞日拙。居寵思危,罔不惟畏,弗畏入畏。 推賢讓能,庶官乃和,不和政厖。 舉能其官,惟爾之能,稱匪其人,惟爾不任。 類似語(유사어)- 任賢使能(임현사능) 任賢用能(임현용능). 任人唯賢(임인유현):자신과의 관계에 상관없이, 인격과 능력을 갖춘 사람만 임용함. 反意語(반의어)-任人唯親(임인유친):사람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자신에게 가까운 사람만 임용함 자료출처-긴하루블로거의 몽촌님 글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 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7)繪事後素(회사후소) 그릴 회. 일 사, 뒤 후, 흴 소 논어 팔일(八佾)편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子夏問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 何謂也.” 子曰 “繪事後素.” 曰 “禮後乎.” 子曰 “起予者商也. 始可與言詩已矣.” 자하문 “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이위현혜. 하위야.” 자왈 “회사후소.” 왈 “예후호.” 자왈 “기여자상야. 시가여언시이의.” 자하가 여쭈었다. “고운 미소에 팬 보조개, 아름다운 눈동자에 또렷한 눈, 흰 바탕에 여러 가지 색깔을 그렸구나’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자하가) 여쭈었다. “예는 (인의) 다음에 온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일깨우는 자는 상(商)이로구나.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詩)를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구나” 회사후소(繪事後素)란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의 뒤에 행한다"는 뜻으로서, '회사후어소(繪事後於素)'의 뜻으로 해석한다. 이 말은 『논어(論語)』 「팔일(八佾)」에 나온다. 직역하면 흰바탕이 있고 나서야 그림을 그린다는 의미로 흔히 ‘어떤 일의 본질이 있고 나서야 꾸밈이 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인성(人性)은 특정 개인을 다른 사람과 구분 짓는 그 사람만의 심리, 행동양식을 말한다. 이것은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후천적으로 인성을 변화시키는데 가장 좋은 도구는 무엇일까? 바로 독서가 그 답이 아닐까… 독서 중에서도 사람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인문학을 통해 이 세상은 기술이나 돈이 아닌 사람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그래야 그 바탕 위에 무엇보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낼 수 있다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 먼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자하(子夏)가 시경(詩經)의 구절을 들어 공자에게 물었다. 동양화에서 하얀 바탕이 없으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로 소박한 마음의 바탕이 없이 눈과 코와 입의 아름다움만으로는 아름다움을 다 드러낼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에 자하는 밖으로 드러난 형식적인 예보다는 그 예의 본질인 내면의 덕성이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형식으로서의 예는 본질이 있은 후에 만이 의미가 있는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본질이 있은 연후에 꾸밈이 있다는 말은 문학예술은 인격의 수양을 한 후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공자 문예관의 요체를 보여준다. 즉 문과 질 중에서 질이 우성 형성된 후에야 문이 드러나는 것이 순서라고 하는 관점이다. 그러나 공자는 한편 수식의 중요성을 도외시하지는 않았다. "문질빈빈(文質彬彬) 연후군자(然後君子)", 즉 "문과 질이 서로 잘 어울어져야 비로소 군자라 할 수 있다"는 말이나, "언지무문(言之無文), 행이불원(行而不遠)", 즉 "말이 아름답지 않다면, 그것을 펼쳐 써도 멀리 이르지는 못할 것이다"라는 말은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문학에 대한 일정한 긍정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8)見利思義(견리사의) 볼 견(見)/ 이할 이(利)/ 생각 사(思)/ 옳을 의(義) 출전(出典)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篇)’ 원어(原語) 見利思義 見危授命 논어(論語) ‘헌문편(憲問編)’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자로(子路)가 공자(孔子)에게 묻기를 “성인(成人, 완성(完成)된 사람)이란 어떠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만약 장무중(臧武仲)의 지혜와 맹공작(孟公綽)의 욕심 없는 것과 변장자(卞壯子)의 용기와 염구(冉求)의 재주에 예악(禮樂)으로서 문명(文名)을 더했다면 완성된 사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하며 다시 말하기를, “今之成人者, 何必然(금지성인자, 하필연)? 지금의 완성된 사람이야 어찌 반드시 그럴 수 있겠느냐? 見利思義, 見危授命(견리사의, 견위수명), 이익(利益)을 보면 의(義)로움을 생각하고, 위태(危殆)한 것을 보면 자기 목숨이라도 줄 줄 알며, 久要不忘平生之言(구요불망평생지언), 오래된 약속(約束)이라도 평소에 그 말을 잊지 않고 지킨다면, 亦可以爲成人也(역가이위성인야).” 역시 성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전한준의 고사성어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39) 松蒼栢翠(송창백취) 소나무 송, 푸를 창, 잣나무 백, 비취색 취. 겨울이 되어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기상과 절개를 나타낼 때 쓰는 말 중국 명대(明代) 홍응명(洪應明)이 지은 삼교일치(三敎一致)의 처세 철학서인 ‘채근담(菜根譚)’에 나오는 말입니다. 桃李雖艶(도리수염)이나 何如松蒼栢翠之堅貞(하여송창백취지견정)이며 복숭아꽃과 오얏꽃이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어찌 푸른 소나무와 잣나무가 굳세고 곧은 것만 하겠으며 梨杏雖甘(이행수감) 이나 何如橙黃橘綠之馨冽(하여등황귤록지형렬)리요 배와 살구가 아무리 달더라도 어떻게 노란 유자와 푸른 귤의 맑은 향기만 하겠는가? 信乎(신호)라 濃夭(농요)는 不及淡久(불급담구)하며 早秀(조수)는 不如晩成也(불여만성야)로다 참으로 알겠노라, 아름다우면서 일찍 시드는 것은 담담하면서 오래 가는 것만 못하며 일찍 빼어난 것은 늦게 성취하는 것만 못하다는 것을....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0)射石爲虎(사석위호) 돌을 범으로 잘못 보고 화살을 쏘았더니 그것이 돌에 꽂혔다는 고사(故事) 일념(一念)을 가지고 하면 어떤 일이던 성취된다는 말. [자해(字解)] 맞힐 석(射) / 돌 석(石) / 할 위(爲) / 범 호(虎) [출전(出典)] 여씨춘추사기(呂氏春秋史記)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 [동의어(同義語)]중석몰촉(中石沒鏃),웅거사호(熊渠射虎),석석음우(射石飮羽) (射石沒金飮羽) 일념통암(一念通巖)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 이광(李廣)은 양가(良家)의 자제로서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궁술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그는 신체가 장대하고 원숭이처럼 팔이 길었다. 그가 활쏘기에 능한 것도 선천적인 것으로서, 그의 자손이나 남들이 아무리 궁술을 배워도 이광에게 미치지는 못하였다. 이광은 말재주가 없었으며 말수도 적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땅에 줄을 그어 진형을 그리거나 활을 쏘아 원근을 비교하여 지는 자에게 벌주를 먹였다. 그의 활 쏘는 법은 적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수십 보 이내라도 명중시킬 수 없다는 판단이 서면 쏘지를 않았는데, 일단 쏘았다 하면 활시위 소리와 동시에 적이 쓰러졌다. 그래서 그는 병사를 거느리고 작전을 수행할 때 자주 곤경에 빠져 고생하였으며, 맹수를 쏘는 경우에도 부상을 입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오로지 활쏘기를 낙으로 삼아 일생을 마쳤다. 그리고 이광은 청렴하여 상을 받으면 항상 그의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음식은 병졸들과 같은 것을 먹었다. 이에 병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그는 일찍이 중국의 농서( 西), 북지(北地), 안문(雁門), 대군(代郡), 운중(雲中)의 태수를 지냈는데, 어느 곳에서나 용감히 전투에 임하여 명성을 드높였다. 이광은 특히 흉노(匈奴)와의 싸움에서 남다른 공적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흉노의 선우(선于)와의 싸움에서 많은 부하를 잃고 적에게 생포되었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기도 하였다. 이때 형리는 그를 참수형에 해당하는 죄인으로 판결을 내렸는데, 속죄금을 내고 평민이 되었다. 이광은 그 후 몇 년 동안이나 집에 은거하며 사냥으로 소일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흉노가 다시 침입하여 요서군(遼書郡)의 태수를 죽이고 한안국(韓安國) 장군을 격파하였다. 그리하여 천자는 이광을 다시 불러들여 우북평군(右北平郡) 태수로 임명하였다. 이광이 우북평군에 부임하자 흉노는 이 소식을 듣고 한나라의 '비장군(飛將軍)'이라고 부르며 수년 동안 감히 우북평군을 침입하지 못하였다. 어느 날, 이광이 사냥하러 갔다가 풀 속의 돌을 호랑이로 잘못 보고 화살을 쏘았더니 명중하여 화살촉이 깊숙이 박혔는데, 자세히 보니 돌이었다. 그리하여 다시 쏘았으나 끝내 화살촉은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 이광은 부임한 군에 호랑이가 나타났다는 말을 들으면 항상 친히 나가 쏘아 잡았다. [출처] 전한준의 고사성어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1)有無相生[유무상생] 有:있을 유, 無:없을 무, 相:서로 상, 生:날 생 있고 없음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란 뜻으로, 세상만물의 이치를 상대적인 관점에서 볼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천하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데서 추함이란 관념이 나오고 선(善)을 좋다고 생각하는 데서 악(惡)의 관념이 생긴다. 있고 없는 것은 서로 상대하기 때문에 생기고[有無相生], 어렵고 쉬운 것은 서로를 보완해 주며, 길고 짧은 것은 서로를 분명하게 드러나게 해주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의논하며, 음과 소리는 서로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그러므로 성인은 무위(無爲)의 태도로써 세상일을 처리하고 무언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天下皆知美之為美,斯惡已。皆知善之為善,斯不善已。故有無相生,難易相成, 長短相較,高下相傾,音聲相和,前後相隨。是以聖人處無為之事, 行不言之教。 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為而不待, 功成而弗居。夫唯弗居, 是以不去。-노자 2장 -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왜 아름다운지를 말하니, 되려 싫은 것이 되고 만다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은 것이 왜 좋은지를 말하니, 되려 좋지 않은 것이 되고 만다네. 있음과 없음은 서로 낳아 줄 뿐이지. 쉬운 것과 어려운 것은 서로 이뤄 줄 뿐이지. 긴 것과 짧은 것은 서로 견주어 줄 뿐이지. 높은 것과 낮은 것은 서로 기울여 줄 뿐이지. 노래와 소리는 서로 어울려 줄 뿐이지. 앞과 뒤는 서로 따라 줄 뿐이지. 그러하므로 성인은 일 없도록 일하고, 말없이 가르치네. 온갖 것 기르되 집착하지 않으니, 생겨나도 그것을 가지려 하지 않네. 일을 되게 할 뿐 기대지 않으니, 공이 이뤄져도 거기에 머물지 않네. 머물지 않으니 떠날 일 없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다운 것이 '이러저러하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우긴다. 아귀다툼을 한다. 그런데 바로 그것 때문에 싫은 것이 될 수도 있음을 왜 모르느냐" 노자 2장의 첫 구절은 바로 이 말이다.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분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누고, 편가르고, 따지고, 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이 다 쓸데없는 것을 분별함에서 온다는 것이다. 노자의 해결책은 간단하다. 그냥 '아름답다'고만 하라는 것이다. '~때문에'를 빼라는 것이다. 물 흐르듯 흐르는 것, 다투지 않고서 원하는 것을 이루는 것, 이것이 도(道)다운 것이다.제발 분별하지 말라고 일성을 날린 후, 주욱 예를 들어 놓았다. 있음이 있으니 없음이 있어지고, 없음이 있으니 있음이 있게 되는 것이다. 있음은 없음에서 나오고 없음은 있음을 전제로 하는 것이니 서로 낳아줄 뿐이라는 것이다. 있음과 없음을 분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뿐이라는 것이다. 분별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짓이라는 것이다. 어렵고 쉬움, 길고 짧음, 높고 낮음, 노래와 소리, 앞과 뒤가 모두 마찬가지다. 한쪽은 다른 한쪽을 전제로 할 때만 의미가 있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2)禍福無門(화복무문) [의미(意味)] 화(禍)와 복(福)은 들어오는 문(門)이 없고,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이라는 말 [자해(字解)] 재앙 화(禍)/ 복 복(福)/ 없을 무(無)/ 문 문(門) [출전(出典)]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원어(原語)] 화복무문(禍福無門) 유인소소(惟人所召) [동의어(同義語)] 화복동문(禍福同門) 중국 노(魯)나라 대부인 계손숙(季孫宿)에게는 정부인(正夫人)에게서 낳은 적사자(嫡嗣子)가 없었다. 서자(庶子) 중에서는 공미(公彌)의 나이가 위였는데, 계손숙(季孫宿)은 나이가 어린 도자(悼子)를 사랑하여 후계자로 세우고, 공미는 집안의 병마(兵馬)를 맡아보는 마정(馬正)이 되게 하여 일을 보게 했는데, 공미는 아우에게 후계(後繼)의 자리를 빼앗긴 것이 분해 아버지의 분부를 따르지 않았다. 이에 민자마(閔子馬)가 충고(忠告)하기를, “子無然(자무연). 禍福無門, 唯人所召(화복무문, 유인소소). 爲人子者患不孝, 不患無所(위인자자환불효, 불환무소).” “너는 그리하지 말아라. 화(禍)와 복(福)은 들어오는 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람이 불러들이는 것이다. 자식 된 사람은 부모에게 불효하지 않을까 걱정할 뿐 지위가 있고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또 덧붙여 말하기를, “만약 네가 효(孝)로써 아버지를 공경(恭敬)하면, 너는 계씨(季氏) 가문(家門)을 잇는 후계자(後繼者)보다 두 배나 부자(富者)가 될 수도 있을 것이나, 네가 옳지 않은 짓을 해서 상궤(常軌)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 화(禍)는 백성들이 받는 것보다 배나 더할 것이다” 했다. 공미는 이 훈계(訓戒)를 옳게 여겨 아버지를 공경하고, 성심껏 집안 일을 돌보니 계손숙은 매우 기뻐하며, 공미의 집에서 술을 마실 때는 필요한 그릇들을 가지고 가서 술을 마신 후, 그릇들을 그대로 공미의 집에 두고 왔으므로, 공미는 점차 부자가 되었고, 조정(朝廷)에서는 좌재(左宰)의 벼슬에 올랐다. 원문출처-전한준의 고사성어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3)忍之爲德(인지위덕) (참을 인, 갈 지, 될 위, 덕 덕.) 참는 것이 덕이 됩니다. 어려운 상황 화가 나는 일이 있다면 눈 한번 딱 감아 보세요. 참는 것이 최선이라는것...그것은 후회를 만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고전에 전해오는 성인의 말씀에 참았을 때는 천자가 참으면 나라에 해가 없고, 제후가 참으면 큰 나라를 이룩하고 벼슬아치가 참으면 그 지위가 올라가고, 형제가 참으면 집안이 부귀하고 부부가 참으면은 일생을 해로할 수 있고, 친구끼리 참으면 이름이 더럽혀지지 않고 자신이 참으면 재앙이 없다고 했다 天子忍之 國無害 諸侯忍之 成其大 官吏忍之 進其位 兄弟忍之 家富貴 夫妻忍之 終其世 朋友忍之 名不廢 自身忍之 無禍害 못 참았 을 때 천자가 참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제후가 참지않으면 그 몸을 잃어 버리고, 벼슬아치가 참지 않으면 형법에 의해 죽게 되고 형제가 참지 않으면 각각 헤어져서 따로 살게 되고, 부부가 참지 않으면 자식을 고아로 만들고, 친구끼리 참지 않으면 정과 뜻이 맞지 않아 원수지간이 되고 자신이 참지 않으면은 근심이 떠나지 않는다고 했다 못 참고 성질대로 살다가는 평생지워지지 않는 상처와 근심, 걱정 한숨으로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한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세상사 참고 살아야 할 일이 적잖다. 참을 인(忍)자는 칼도(刀)자 밑에 마음 심(心)자가 놓여 있다. 가슴에 칼을 얹고 있을 정도로 위급하다. 상황이 이런데 누가 와서 짜증나게 건드린다고 급히 반응해서야 되겠는가. 움직여 봤자 나만 상하게 된다. 감정이 밀어닥쳐도 가만히 기다렸다 냉정을 찾은 뒤 이성적으로, 중장기적으로 대응해야 소기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불특정다수를 향한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고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전가하는 게 두 문제다. 불천노 불이과(不遷怒 不二過)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옮기지 말고 잘못을 두 번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다. 강한자 앞에서 참는 것은 두렵기 때문이고 자기와 같은 사람 앞에서는 싸우기 싫어서이며자기보다 높은 사람 앞에서 참는 것이 진정한 인내입니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4)多情佛心(다정불심) 多 많을 다, 情 뜻 정, 佛 부처 불, 心 마음 심, 정이 많은 자비스러운 마음 어떤 마을에 어머니와 아들이 살았다. 아들이 서울에 볼일을 보러 갔다. 저녁 다섯 時(시)에는 꼭 돌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다섯 時(시) 半(반)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여섯 時(시)가 되었는데도 아들이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는 걱정이 泰山(태산)같다. 아들이 왜 안 돌아올까. 自動車(자동차)에 다치지는 않았는가... 도둑이나 强盜(강도)한테 當(당)하지는 않았는가...술이 醉(취)하여 남과 다투다 事故(사고)라도 저질르지 않았는가...어머니는 안절부절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不安(불안)한 마음과 걱정tm런 마음에 견딜 수가 없다. 어머니는 마을 앞에 나아갔다.아들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는다. 멀리까지 바라보려면 높은 데 올라가야 한다..어머니는 큰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이 오는가 하고 눈이 빠지도록 바라보고 있다. 그 精誠(정성)스러운 光景(광경)을글자로 表示(표시)한 것이 親(친) 字(자)다. 나무 -木(목)- 위에올라서서 -立(입)-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 있다. -見(견)-木(목)과 立(입)과 見(견)이 合(합)쳐져서親(친) 字(자)가 되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서서 아들이 오기를 멀리 바라다 보며 기다리는 父母(부모)님의 至極(지극)한 마음, 그것이 親(친)이다. 옛날 中國人(중국인)들의 發想法(발상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偉大(위대)한 생각이오,깊은 思想(사상)이다.나는 親(친) 字(자)를 쓸 때마다 이 글의 깊은 뜻에 敬意(경의)를 表(표)한다. 多情佛心(다정불심)이라고 했다. 사랑이 많은 것이 부처의 마음이다.父母(부모)님의 마음은 부처의 마음이오, 하느님의 마음이다.. 이 世上(세상)에서 어머니처럼 사랑과 精誠(정성)이 많은 분이 없다. 어머니의 가슴에는 사랑의 太陽(태양)이 빛나고 있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限(한)없는 사랑이 샘물처럼 쉴 새없이 솟구친다. 子息(자식)을 爲(위)하는 따뜻한 愛情(애정)의 햇빛이 언제나 빛나고 있다. 하느님은 어머니의 가슴 속에 사랑의 出張所(출장소)를 만들었다고 어떤 詩人(시인)은 노래했다. 하느님은 사랑의 出張所(출장소)를 어디에 만들까 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어머니의 가슴 속에 만들었다. 어머니의 손은 藥(약)손이다. 어머니의 눈 瞳子(동자)는 사랑의 눈 瞳子(동자)다.어머니의 가슴은 精誠(정성)의 가슴이다.어머니의 몸은 仁慈(인자)하심 그 自體(자체)다. 親(친)은 어버이 親(친) 字(자)다.. 어버이는 多情(다정)하고 사랑이 많다. 어버이는 나와 第一(제일) 가까운 분이시다. 그래서 親切(친절), 親密(친밀), 親睦(친목), 親和(친화), 親愛(친애), 親熟(친숙), 親近(친근)이란 낱말이 생겼다. 또, 切親(절친)이니 懇親(간친)이니 하는 多情(다정)한 말이 나왔다. 親(친) 字(자) 밑에 붙는 말中(중)에 나쁜 말이 하나도 없다. 서로 親(친)하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너와 나 사이에 있어야 할 基本原理(기본원리), 根本感情(근본감정)이親(친)이다.親(친)!얼마나偉大(위대)하고深遠(심원)한글자인가.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5)白駒過隙(백구과극) 白:흰 백. 駒:망아지 구. 過:지날 과. 隙:틈 극 흰 망아지가 틈새로 지나가는 시간. 인생의 지나감이 빠름을 나타내는 말 《史記》의 <유후세가>에는 여태후가 유후(留侯:장량)에게 탄식하며 한 말에 나온다. 장량은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한나라의 재상직을 맡아 왔었다. 한나라가 멸망했을 때 나는 만금의 재산을 털어 원수인 진나라에 보복을 감행, 천하를 놀라게 한 바도 있다. 오늘날에는 이 세 치의 혀끝으로 제왕의 참모가 되었으며 1만 호의 땅을 받고 제후의 자리에도 앉아 있다. 한낱 서민으로까지 떨어져 버렸던 몸으로서 이보다 더한 영달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제 속세를 버리고 적송자(赤松者:전설적인 신선)처럼 살고 싶구나." 그리고는 곡식으로 만든 일체의 음식을 끊고 신선술을 배워 몸을 가볍게 하는 일에만 전념했다. 고조(劉邦)가 승하하고 태자가 뒤를 잇자, 장량을 은인으로 존대하던 여태후는 그의 건강을 염려하여 제발 식사를 취하라고 몇 번이나 권했다." 인생이라는 한 세상이 어쩌면 이렇게 흰 말이 틈을 지나가는 것(白駒過隙)처럼 빠른가. 어허, 무엇을 바라기에 어찌 스스로를 괴롭히시는지 알 수 없소."이게 장량은 끝내 거절하지 못하고 식사를 취하기 시작했다. 《莊子》는 <지북유편>에서 말했다.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흰 말이 달려가는 것을 문틈으로 보는 순간일 뿐이다." 이 얼마나 허망한 말인가. 그렇게 본다면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것처럼 인생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과 같고, 죽음이란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출전]《史記》<유후세가>《莊子》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6)百世淸風(백세청풍) 백세청풍(百世淸風)은 백대에 부는 맑은 바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백세(百世)는 ‘오랜 세월’, 또는 ‘영원’을 뜻하고, 청풍(淸風)은 매섭도록 맑고 높은 군자의 절개나 덕을 비유한다. 따라서 백세청풍은 영원히 변치 않는 선비의 절개를 의미하여 많은 사람이 서예 편액(扁額)으로 걸곤 하였다. 백세청풍에 해당하는 인물로 은(殷)나라가 망하자 의롭지 않은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었다는 백이(伯夷)와 숙제(叔齊)를 든다. 百世淸風(백세청풍)의 유래는 백이숙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 말엽 작은 제후의 나라 고죽국 영주의 아들이었다. 영주인 아버지는 막내인 숙제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숙제는 맏형인 백이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말을 하고 나라를 떠났다. 그러자 백이 역시 부친의 유언을 존중하여 숙제를 왕위에 오르게 하고자 몸을 피했다. 고죽국은 할 수 없이 가운데 아들을 왕위에 앉혔다.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을 떠나 어진 제후로 이름 높던 훗날 주나라 문왕이 되는 희창에게 몸을 의탁했다. 백이와 숙제는 상나라가 망한 뒤에도 상나라를 버릴 수 없다면서 수양산에 들어가서 고사리를 꺾어먹으면서 살았다. 그러던 중 왕미자라는 사람이 찾아와 그대들은 주나라 녹을 받을 수 없다더니 주나라의 산에서 나는 고사리를 먹는 일은 어찌 된 일인가라는 소리를 듣고 고사리마저 먹지않고 굶어죽었다고 한다. 이후 백이와 숙제는 끝까지 두 임금을 섬기지않는 충절을 지킨 대명사가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들의 충절을 영원히 이어지기를 기리는 백세청풍의 비석을 세웠다고 한다. 예천의 정윤목(약포 정탁의 셋째아들)이 19세 때 중국 사신으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갔다가 백이숙제의 사당을 지나게 되었는데 그 때 그 곳의 비석의 백세청풍이란 글씨에 감동되어 실물 크기로 베껴와서 자신이 건립한 삼강마을의 삼강강에 걸었다고 한다. 황해도 해주에 가면 수양산 밑에 광석천(廣石川)이란 개울이 있는데 그 곳에 숭의(崇義)와 절개를 권장하자는 취지에서 주자(朱子)의 친필을 새긴 '백세청풍비'가 세워져 있다고 한다. 백이·숙제를 제사지내는 해주의 청성묘(淸聖廟) 앞에는 ‘백세청풍이제지묘(百世淸風夷齊廟)’라는 글이 새겨졌다. 이후 길재(吉再)의 충절을 기리는 사람들이 묘소 앞에는 ‘지주중류(砥柱中流)’라고 각석(刻石)하고, 살던 집에는 백세청풍이라고 각석하였다. ‘지주중류’는 중국 이제묘(夷齊廟)에 새겨진 성구이다. 지주(砥柱)는 숫돌모양의 돌기둥이고, 중류(中流)란 황하의 속을 의미한다. 지주가 황하의 격류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우뚝하게 솟아 있는 모양이 마치 난세와 역경 속에서도 지조를 잃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인물의 행동을 연상케 한다.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7)博施濟衆(박시제중) 博: 넓을 박 施: 베풀 시 濟: 구제할 제 衆: 무리 중 널리 베풀어 많은 사람을 구제한다. 자공이 공자에게 여쭈었다. “만약 백성들에게 널리 은덕을 베풀어 많은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다면 어떻습니까? 그를 인(仁)하다고 할 수 있습니까(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 그러자 공자는 단순히 인에 그치는 게 아니라 성인의 덕치일 것이라고 답했다. 공자 시대엔 타고난 성인(聖人)만이 백성을 널리 이롭게 할 수 있었다. 군주에게만 성인의 면허증이 발부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은 다르다. 타고난 혈통이 아니라 실력을 통해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그렇다면 실력만 있으면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반드시 인(仁)과 충(忠)과 서(恕)가 있어야 한다. 仁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일으켜 주고, 자신이 이루고자 하면 남을 이루게 해주는 것 (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논어 옹야·雍也)’이다. 恕는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다른 사람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己所不欲, 勿施於人·논어 안연·顔淵)’는 것이다. 서는 ‘如’와 ‘心’이 합쳐진 단어다. 서로 마음이 같다는 것인데,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배려한다는 것이다. 인은 人과 人이 기대고 있는 글자로 기본적으로 ‘사람을 사랑하는 것(愛人)’이다. ‘忠’은 마음을 중심에 둔다는 원리이다. 이는 진심(盡心)이며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결코 충성을 맹세하는 것이 아니다. 인과 서는 거의 같은 개념이고, 충은 그것을 실행하는 마음자세다. 위정자는 仁恕의 마음을 품고 백성에게 忠해야 한다. 그래야 박시제중할 수 있다. 진(晉) 원굉(袁宏)의 ‘후한기(後漢紀)’ 환제기하(桓帝紀下)를 보면 “인을 행하는 자는 널리 베풀고 두루 사랑하며, 선을 숭상하고 만물을 구제한다 (爲仁者博施兼愛,崇善濟物)”라고 돼 있다. ‘구당서’ 대종기(代宗紀)에도 “사람을 사랑하는 예는 널리 베푸는 것을 우선시한다 (愛人之禮,先以博施)”라고 했다. 박시제중과 애인이물(愛人利物)은 이렇듯 서로 동격인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8)樂此不疲 (낙차불피) [字解] 樂(즐거울 락) 此(이를 차) 不(아닐 불) 疲(피곤할 피) 어떤 일을 즐거워하여 싫증을 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出典] 후한서(後漢書) 권1 제기(帝紀)제1 광무제기(光武帝紀)상. [同意語] 樂此不倦(낙차불권). [解義] 동한(東漢) 말엽, 왕망이 제위를 찬탈하였다. 그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계속하며 백성들의 생활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불만을 품은 백성들이 다투어 일어나고 있었다. 서기 22년, 서한(西漢)의 황족 유수(劉秀)는 남양에서 군사를 일으켰는데, 그의 힘이 점차 강성해지더니, 마침내 서기 25년 천하를 평정하였다. 유수는 한(漢)나라를 다시 세우고 황제에 올랐으니, 바로 한나라 광무제였다. 즉위 후, 광무제는 백성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악정(惡政)을 개혁하고, 가혹한 세금을 폐지하며, 사회 질서를 회복시켰다. 광무제는 백성들과 나라를 위하여 매우 부지런하게 일을 하였는데, 나이 60이 넘어서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서 오후 늦게 궁으로 돌아갔다. 이에 황태자는 나이 드신 아버지의 건강을 염려하여 다음과 같이 권하였다. "부황께서는 하(夏)나라 우(禹)임금이나 상(商)나라 탕(湯)왕의 영명함을 지니고 있으시지만, 황제(黃帝)나 노자(老子)의 양생(養生)의 도는 가지고 계시지 않으십니다. 원컨대, 건강을 생각하시어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시고, 다시는 새벽부터 일하시다가 한밤중에 주무시는 없도록 해주십시오." 광무제는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일이 너무 즐거워 조금도 피로하지 않단다 [我自樂此, 不爲疲也]." * 秀(빼어날 수) 養(기를 양)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49)實事求是(실사구시) 사실(事實)에 근거(根據)하여 진리(眞理)나 진상(眞相)을 탐구(探究)하는 일이나 그런 학문(學問) 태도(態度). [자해(字解)] 실제 실(實)/ 일 사(事)/ 구할 구(求)/ 옳을 시(是) [출전(出典)] <한서(漢書)>의 ‘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 [원어(原語)] 수학호고(修學好古) 실사구시(實事求是) 19세기 초기, 즉 중국 청(淸)나라 말기에서부터 중화민국 초기에 걸쳐 계몽사상가(啓蒙思想家)로서 활약한 양계초(梁啓超)는 ‘청대학술개론(淸代學術槪論)’을 써서 청대(淸代)의 학술(學術)의 개론(槪論)을 시도(試圖)하고 있다. 양계초(梁啓超)는 다시 능정감(凌廷堪)이 대진(戴震)을 위해 지은 ‘사략장(事略狀)’ 가운데, “옛날 하간(河間)의 헌왕(獻王)은 실사(實事)에 대하여 옳음을 구했다. 도대체 실사의 앞에 있으면서, 내가 옳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하고, 내가 그르다고 하는 것도 사람들은 억지로 말하여 이것을 그르다고 하지 못한다”라는 논평(論評)을 인용(引用)하여, 대진의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정신을 드러내 밝히고 있다. 더구나 ‘실사구시’를 학문의 표적으로서 존중한 것은, 대진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그보다도 후배(後輩)에 해당하는 청(淸)나라 왕조(王朝)의 학자(學者)들 중에는 주대소(朱大韶)나 왕정진(王廷珍)과 같이, 스스로를 ‘실사구시제(實事求是齊)’라고 아호(雅號)를 붙인 사람들도 있었다. ‘실사구시’란 사실을 토대로 하여 진리(眞理)를 탐구하는 것을 말하며, 청조(淸朝)의 고증학파(考證學派)가 공론(空論)만 일삼는 양명학(陽明學)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내세운 표어(標語)이다. 그들은 정확한 고증(考證)을 존중하는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학문 연구(硏究)의 입장(立場)을 취했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0)三省吾身(삼성오신) 三 : 석 삼 省 : 살필 성 吾 : 나 오 身 : 몸 신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의 말이다. ‘三’은 셋, ‘省’은 반성(反省) 혹은 내성(內省)의 의미다. 매일 자신을 살피는 수련으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는 철저한 자기관리의 자세이며 ‘오일삼성(吾日三省)’이라고도 한다. ‘독선기신(獨善其身·홀로 그 자신을 잘 보존한다)’이라는 말과 짝을 이뤄 이해하면 좋다. “나는 날마다 세 번 나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도모하는 데 진심을 다하지 않았는가? 벗들과 사귀면서 믿음이 없었는가? 전수받은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논어 학이·學而) 증자는 이름이 삼(參)이고 자는 자여(子輿), 남무성(南武城) 사람으로 공자보다 46세 어렸다. 비록 공문십철(孔門十哲·공자 문하의 10명의 철인)의 명단엔 없지만 명대에는 그 위상이 안회(顔回)를 능가할 정도였다. 두 번째 구절에서 ‘충(忠)’은 어떤 일을 꾀할 때 성심(誠心)으로 임해야 하며 다른 사람을 속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니 ‘忠’이란 진심(盡心)을 다하는 것이고, ‘信’은 신뢰(信賴)이다. 마지막 구절은 이설이 많다. ‘익히지 않은 것을 전해 주었는가’라는 해석도 있는데, 남에게 전해 주고자 한다면 먼저 제대로 익혀야 한다는 것이다. 일리가 없는 것이 아니나 여기서는 ‘스승께 받은 것을 내가 익히지 않았는가’ 로 풀이하는 것이 ‘삼성오신’이란 의미와도 맞는다. 위의 인용구절에서 ‘다른 사람’의 자리에 후배(제자), 친구, 스승을 차례대로 넣어서 이해해도 그 뜻이 잘 다가온다. “후배(제자)를 이끌었는가? 친구를 믿었는가? 스승의 가르침을 흘려듣지 않았는가?” 공자는 늘 도전하는 자세의 후진(後進)을 목말라했다. 제자 증자의 三省의 자세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의 윤리가 그 핵심이다. (논어안연·顔淵)김원중건양대교수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1)明哲保身(명철보신) 明 :밝을 명,哲:밝을 철,保:지킬 보,身:몸 신 세상 이치에 밝고 사리에 분별력이 있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행동으로 자신을 잘 보전한다. 곧 쉽게 시류에 말려들지 않고 매사에 법도를 지켜 온전하게 처신함 殷(은)나라 武丁(무정)은 父王(부왕) 少乙(소을)에 이어 임금이 되어 亡父(망부)의 3년상을 치르고서는 정치에 대해서는 참견하지 않고 신하들의 하는 일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說(열)이라는 초야에 묻혀있던 賢者(현자)를 발탁해 그의 보필로 선정을 베풀어 만백성의 우러름을 받았다. 이 무정에 대해 신하들이 일제히 올린 말이'서경' 說命篇(열명편)에 있다. "천하의 사리에 통하고 뭇사람에 앞서 아는 사람을 明哲이라고 부릅니다. 명철한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정치 도덕의 법칙을 정할 수 있는 분입니다." 또 '시경' 大雅篇(대아편)의 蒸民(증민)이란 시는 周(주)나라 宣王(선왕)을 잘 보필한 명재상 仲山甫(중산보)의 덕을 찬양하고 있다. 이 시는 그가 임금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에 성을 쌓으러 갈 때 尹吉甫(윤길보)란 중신이 전송하면서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지엄하신 임금의 명을/ 중산보가 받들어 행하네/ 나라의 잘한 일 못한 일 중산보가 소상히 밝혔네/ 밝고 현명하게 천신하여(旣明且哲)/ 그 몸을 보전하였네(以保其身)/ 밤낮으로 게으름이 없이/ 오로지 임금 한 분을 섬기었다네." '서경'에서는 '明哲'만 보이지만 '시경'에서는 '明哲'과 '保身'이 모두 나온다. 이처럼 원래는 순수하게 좋은 뜻인 '명철보신'은 당나라 때의 대문장가와 탁월한 시인인 柳宗元(유종원)과 白居易(백거이)의 글에도 보인다. [출전]《書經》《詩經》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2)非禮不動(비례부동) 非:아닐 비 禮:예절 례 不:아닐 부 動:움질일 동 禮에 맞지 않는 것이라면 행동하지 않는다 오행사상(五行思想)에서 볼 때 불은 예(禮)에 해당한다. 활활 타는 불을 '예'로 생각한 이유는 밝기 때문이다. 밝다는 것은 '분명하다' 또는 '경우가 훤하다'는 뜻을 지닌다. 밝음이 '예'(禮)의 본질이다. 따라서 불은 경우에 어긋난 짓을 하지 않는다. 불은 훨훨 타 들어갈 때도 질서정연하게 타들어가는 속성이 있다. '예'(禮)에 대한 전고(典故)를 다시 소급해 올라가면 주역(周易)을 만난다. 바로 34번째 괘인 '뇌천대장'(雷天大壯) 괘를 보면 '비례불리'(非禮弗履)라는 대목이 나온다. '군자는 예가 아니면 밟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주역을 읽었던 공자는 이 뇌천대장괘의 '비례불리'라는 구절을 좋아했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논어(論語)에 이 구절을 자세하게 풀어놓은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논어에 보면 공자의 제자인 안연(顔淵)이 인(仁)에 대해서 질문한다. 인에 대하여 공자는 4가지로 답변한다. 첫째는 비례물시(非禮勿視)요, 둘째는 비례물청(非禮勿聽)이요, 셋째는 비례물언(非禮勿言)이요, 넷째는 비례물동(非禮勿動)이다. 여기서 물(勿)은 불(不)과 같다. 공자가 제시한 인을 실천하는 방법은 '예가 아니면 쳐다보지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도 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였다. 주역에 나오는 '비례불리'를 공자는 논어에서 이 4가지로 세분화시킨 셈이다. 공자의 주된 사상을 '인'이라고 한다면, 이를 실천하는 방법은 바로 '예'였던 것이다. 유교에서 '예'가 차지하는 비중을 읽을 수 있다. 논어의 이 4가지 '예'를 정치이념의 차원으로까지 몰고 간 인물이 우암 송시열(1607-1689)이다. 우암이 생존했던 숙종대에 당쟁(黨爭)이 가장 치열했고, 이 당쟁의 주제는 바로 '예'의 내용을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를 놓고 노론과 남인 간에 벌어졌던 예송논쟁(禮訟論爭)이었다. 조선 당쟁사의 핵심은 바로 예송(禮訟)이었던 것이다. 우암이 공부하던 터가 충청도 화양계곡에 있는 암서재(巖棲齋)이다. 암서재 건너편에 있는 커다란 바위절벽에 우암이 새겼다고 하는 '비례부동'(非禮不動)이 각자되어 있다. 불에 탄 숭례문(崇禮門) 뒤에는 이러한 유학사상의 배경이 깔려 있다. -[조용헌 살롱]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3) 慈顔愛語(자안애어) 사랑 자. 얼굴 안. 사랑 애. 말씀 어. 인자한 얼굴 사랑의 말씨. 四攝(사섭)의 하나 부처님 법에 들어오기 하기 위하여 여러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 사섭법 (四攝法)이란 보살이 실천해아 할 덕목으로서 중생을 불법에 끌어들이기 위한 네가지 행위이다. 보시 (布施) : 남에게 가르침이나 재물을 조건없이 베푸는 것이다. 애어 (愛語) : 부드럽고 온화한 말로 중생을 거두어 들이는 것이다. 이행 (利行) : 남을 이롭게 하는 행위이다. 동사 (同事) : 서로 협력하고 고락을 같이하는 것이다 자(慈)애로운 생각으로 얼굴빛을 밝게 하고... 안(顔)으로는 가족 위해 밝은미소 띄운다며... 애(愛)정속에 활짝 웃는 우리가정 이뤄지고... 어(語)머니의 품속같은 포근함을 느낀다네 慈顔愛語(자안애어) 사랑하는 마음과 웃는 얼굴 사랑스런 말씨로 남을 대하며 살자 자기자신이든 남이든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고 웃는 얼굴로 마주하고 이쁜 말로 대한다면 따뜻한 세상이겠죠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4)奇正相生(기정상생) 奇: 기이할 기 正: 바를 정 相: 서로 상 生: 날 생 기습과 정공은 상생한다. 손자병법 세(勢) 편에 나오는 말이다. ‘奇’와 ‘正’은 철학의 범주로서 ‘正’은 정상(正常)이란 의미이고 이 둘은 서로 보완하는 관계다. 군사적으로 볼 때 기정(奇正)이란 勢를 형성하는 술(術)로서 비정규 전술과 정규 전술 모두를 말한다. 正이 교전을 시작할 때 적진에 병사들을 투입하는 정면공격(正面攻擊) 부대라고 한다면, 奇는 장군의 수하에 남겨두어 우측과 좌측의 날개가 되어 기습공격(奇襲攻擊)을 하는 부대다. 그리고 수비를 담당하는 부대를 正이라 하고 기동부대를 奇라고 한다. 작전의 개념으로 본다면 적진을 향해 직접 창끝을 겨누는 것을 正이라 하고 우회(迂回)하여 측면으로 출동하는 것을 奇라고 한다. 작전 원칙으로 본다면 정상적이고 일반 원칙을 운용하는 것을 正이라 하고, 기민하게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것을 奇라고 한다. 이렇게 보면 기정이란 말은 허실(虛實)이란 말과 긴밀한 연계성을 지니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기정이 병력을 실제 전투에 투입할 때 만들어지는 전술적인 배치 상황이라면 허실은 분산과 집결이라는 변화의 원칙을 적용하여 전쟁터에서 아군에게는 강하고 적군에게는 약한 형국을 조성하는 것이다. 즉, 형체가 있는 것으로써 형체가 있는 것에 응하는 것이 正이며 형체가 없는 것으로써 형체가 있는 것을 제압하는 것이 奇인 셈이다. 그러므로 손자는 “무릇 전쟁이란 정공법으로 적군과 맞서고 기습으로 승리한다. 따라서 기습을 잘하는 자는 끝이 없는 것이 하늘과 땅 같고 마르지 않는 것이 강과 바다 같다(凡戰者 以正合 以奇勝 故善出奇者 無窮如天地 不竭如江河 ·손자병법 勢 편)”고 단언한다. 전쟁이란 정공법과 기습법을 능숙하게 구사하는 장수가 승리하게 돼 있다. 정공법으로 주력부대와 맞서고 기습 전술에 따라 움직이는 유격 부대로 승리를 결정짓는다는 것은 용병의 기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자 57장에 “정도로써 나라를 다스리고 기습으로 용병한다 (以正治國 以奇用兵)”는 말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5) 北: 북녘 북. 窓: 창 창. 三: 석 삼. 友: 벗 우 북쪽 창의 세 가지 벗이라는 뜻으로, 거문고(琴), 술(酒), 시(詩)를 [출전]《백거이(白居易)의 북창삼우시(北窓三友詩)》 【내용】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는 그의 북창삼우를 이야기한다. 오늘 북창아래에서 무엇 하느냐고 자문하네 아! 세 친구를 얻었으니 세 친구는 누구인가 거문고를 뜯다가 술을 마시고 술을 마시다 문득 시를 읊으니 세 친구가 번갈아 서로를 끌어주어 돌고 돎이 끝이 없구나 今日北窓下 自問何所爲 欣然得三友 三友者爲誰 琴罷輒擧酒 酒口輒吟詩 三友遞相引 循環無已時 이 시에서 유래한 북창삼우는 거문고(琴), 술(酒), 시(詩)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6)見金如石(견금여석) [요약] (見: 볼 견. 金: 쇠 금. 如: 같을 여. 石: 돌 석)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뜻으로, 지나친 욕심을 경계하는 말. [출전]《성현(成俔)의 용재총화 제3권(慵齋叢話卷之三)》 [내용] 철성(鐵城= 철성 부원군은 최영을 작봉한 것이다) 최영(崔瑩)은 그의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늘 “황금을 보기를 흙같이 하라.[見金如土]” 라고 가르쳤으므로, 항상 이 네 글자를 큰 띠[紳]에 써서 종신토록 지니고 다녀 잊지 않았다. 국정(國政)을 잡아 위신이 중외에 떨쳤으나 남의 것을 조금도 취하지 아니하고 겨우 먹고 사는 데 족할 따름이었다. 당시의 재상들은 때때로 서로 초대하여 바둑으로 날을 보내면서 다투어 성찬(盛饌)을 차려 호사함에 힘썼으나, 공만은 손님을 초대하여 한낮이 지나도록 찬을 내놓지 않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기장과 쌀을 섞어서 지은 밥에다 잡동사니 나물을 차렸지만, 손님들은 배고픈 참이라 채반(菜飯)이라도 남김없이 먹고는, “철성 집 밥이 맛이 좋다.” 하니, 공은 웃으며, “이것도 용병(用兵)하는 술모(術謀)요.” 하였다.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가 시중(侍中)이 되었을 때에 점련(占聯)하기를, 3척 칼머리에 사직이 편하고나 / 三尺劍頭安社稷 하니, 당시의 문사들은 아무도 대구를 짓지 못했는데, 공이 재빨리, 한 가닥 채찍 끝으로 천지가 안정된다 / 一條鞭末定乾坤 하니, 모든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공이 항상 임렴(林廉)의 소행을 분하게 여겨 그의 종족을 모두 죽였는데, 공이 형(刑)을 받으면서, “평생 동안 나쁜 짓 한 일이 없는데, 다만 임렴을 죽인 것이 지나쳤다. 내가 탐욕한 마음이 있었다면, 내 무덤 위에 풀이 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풀도 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그의 무덤은 고양군(高揚郡)에 있는데, 지금까지도 한줌의 잔디도 없는 벌거벗은 무덤이라, 흔히들 홍분(紅墳)이라고 한다. 崔鐵城瑩少時。其父常戒之曰。見金如土[石]。瑩。常以四字書諸紳。 終身服膺而勿失。雖秉國政。威行中外。而一毫不取於人家。纔足食而已。 當時宰樞相邀迓。以棋局消日。爭設珍饌。以務豪侈。公獨邀客。過午不設饌。日暮糅黍稻炊飯。兼陳雜菜。諸客枵腸盡啖菜飯曰。鐵城之飯甚甘也。 公笑曰。此亦用兵之謀也。太祖爲侍中。嘗占聯云。三尺釖頭安社稷。 一時文士皆未對。公遽曰。一條鞭末定乾坤。人皆嘆服。公每憤林廉所爲。 盡誅宗族。及其臨刑之日。乃曰。平生未嘗造惡業。但誅林廉過當耳。 我若有貪欲之心。則墓上生草。不然則草不生矣。墓在高陽。 至今禿赭無一把茅。俗謂之紅墳也。 서예명제(57) 三 生 有 幸 (三: 석 삼. 生: 날 생. 有: 있을 유. 幸: 행복할 행) 세 번 태어나는 행운이 있다는 뜻으로, 서로 간에 남다른 인연이 있음을 비유한 말. [내용] 불경에 나오는 말이다. 옛날 중국에 불교에 대해 학식이 뛰어나고 수행을 많이 한 승려 원택(圓澤)과 그의 친구 이원선(李源善)이 있었다. 두 사람이 같이 여행길을 떠났을 때 일어난 일이다. 원택이 만삭이 다된 어느 부인을 보고 “저 부인은 임신한 지 3년이나 지났는데 지금까지 내가 환생하여 자기의 아들이 되기를 바라고 있지. 지금까지 이를 피해 왔는데 오늘은 도저히 피할 수가 없네. 3일 이후에 그녀는 아들을 낳을 터인데 그가 바로 나네. 그리고 13년 후 중추절 밤에 항저우(杭州)에 있는 천축사(天竺寺)에서 다시 만나세.”라고 말하였다. 이원선은 반신반의하면서 “좋소, 때가 되면 내가 꼭 약속 장소에 가보겠소.” 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원택은 귀적(歸寂)했으며 그 임산부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아이가 출생한지 3일째 되던 날 이원선은 원택의 말대로 부인의 집으로 갔더니 갓난아기가 이원선을 보고는 웃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이원선은 원택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13년 후 추석에 이원선은 약속대로 항주의 천축사로 원택을 만나러 갔다. 절 가까이 도착했을 때 목동이 소등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삼생석상에 구정혼이오, 신월음풍 논하지 말아라. 멀리에 있는 연인 마주하니 부끄럽다네, 이몸 이성으로 영존하리.” “삼생유행(三生有幸)”이란 성구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것이다. 중화 문화는 신이 전한 문화이며 염황자손의 역사는 오랜 기간 동안 누적되어 왔다.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많이 듣고, 말하거나 심지어 늘 입에 걸고 다니는 말들도 실질적으로는 깊은 문화연원이 있을 수 있다. 사람들이 신에 대해 믿지않고 도덕이 쇠락해짐에 따라 사람들이 성구의 내포를 깨닫는 것도 점점 천박해지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의 사람들은 “삼생유행”을 아주 행운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실 불가에서 말하는 “삼생”은 전생, 금생, 다음 생을 말하는데 “삼생유행”의 본래 의미는 예를 들어 사람과 사람사이의 일종 특수한 연분을 말한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58) 得 手 應 心 得: 얻을 득 手: 손 수 應: 응할 응 心: 마음 심 손으로 터득하여 마음에서 느낀다. 손 가는 대로 따라가도 마음과 서로 호응한다는 말로, 일 하는 게 매우 능숙하여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득심응수(得心應手)라고도 한다. 장자(莊子) 외편(外篇) 천도(天道)편에 나오는 말이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대청 위에서 글을 읽고 있을 때 윤편(輪扁)이 뜰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다. 그가 망치와 끌을 놓고 올라와서 환공에게 “왕께서 읽고 계신 것이 무슨 말씀이신지 감히 여쭙고 싶습니다”고 하자 환공은 “성인의 말씀”이라고 했다. 다시 되묻는 말이 “성인은 살아있는 분이냐”고 하자 “이미 죽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렇다면 옛사람의 찌꺼기 혼백일 뿐이라고 한마디를 덧붙이자, 환공은 대뜸 수레바퀴공 따위가 어찌 논의에 끼어드느냐면서 근거를 대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그러자 윤편의 대답은 이러했다. “신은 신이 하고 있는 일로 그 일을 보았습니다. 수레바퀴를 깎을 때 엉성하게 깎으면 헐렁해져 견고하지 않고, 꼭 끼게 깎으면 빠듯해서 서로 들어맞지 않습니다. 엉성하지도 않고 꼭 끼지도 않으며 그것을 손에 익고 마음에 호응하여 이루어지는 것이지, 입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不徐不疾 得之於手 而應於心 口不能言). 거기에는 법도가 존재하기는 합니다만 저는 그것을 제 아들에게 가르쳐 줄 수 없고, 제 아들도 그것을 제게서 배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이 칠십 노인이 되도록 수레바퀴를 깎고 있는 것입니다. 옛사람과 그의 전할 수 없는 정신은 함께 죽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주군께서 읽고 계신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 혼백일 뿐입니다.” 즉 오랜 기간 동안 전심(專心)과 자기 수양의 과정을 거치면서 손과 마음이라는 감각을 터득한 뒤라야만 어떤 얽매임도 없는 경지에 올라설 수 있다는 것이다. 마음과 손이라는 감각, 천지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막히거나 걸리지 않는다는 논리이다. 그러니 윤편이 보기에 과거의 틀에 사로잡혀 그저 옛사람의 죽은 글을 통해 도를 깨치려 드는 것이 어리석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원중 건양대 중국언어문화학과 교수 문의- 古方 010-8344-9887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59) 虎 視 牛 步 범호, 볼시 소우 ,걸음보 ‘호시(虎視)없는 우보(牛步)’는 비전없는 전략이니 무모한 발걸음이 될 것이고, ‘우보없는 호시’는 비전만 있고 비전을 달성하는 전략적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게 됩니다. 흔히들 현대 사회를 지식사회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자료나 정보의 총합이 아니라, 사색과 실천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변화한 지혜로서 그 근원에는 인간의 신념과 생각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비전’, ‘전략’ 등의 단어가 많이 사용하는 사회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대인들은 ‘호시우보’를 잘 실천하고 있을 것이라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의 빅뱅’의 저자, 에릭 헤즐타인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고대인들과 마찬가지로 미래보다 현재 문제에 집중한다고 합니다. 1955년 포천이 뽑은 500대 기업 중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이 13%에 불과하고 경제위기가 계속 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단기 지향성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바쁘게 살다가 문득 궁극적인 삶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될 때 ‘호시우보’의 뜻을 되새겨 보는 것은 미래와 현재를 연결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는 결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걷는다. 침착하게 신중하게 그리고 불안하지 않은 모습으로 가는 것이 소의 걸음이 상징하는 의미다. 무엇엔가 쫓기듯이 가지 말고 누구를 추격하여 무엇을 빼앗으려는 듯이 가지 않는 소의 걸음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그러나 관찰(觀察)은 예리하고 날카롭게 해야 한다. 흐린 눈망울 멍청한 시선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혜로운 관찰력과 창의력을 가지고 모든 상황을 압도하는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매같이 예지의 빛을 발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이다 쏜살같이 달아나는 사람은 관찰할 수 있는 틈을 가질 수 없다. 만물을 정관(靜觀)할 수 있는 계기를 빼앗겨 버리면 우선 자신의 내부 혼란을 극복할 수 없다. 돌아보지 아니하면 우선 추억할 수 없지 않은가? 추억할 수 없다면 모두 잃어버리게 된다. 적어도 내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문의- 古方 010-8344-9887 자료출처-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0)行雲流水(행운유수) 【字 解】 行(다닐 행) 雲(구름 운) 流(흐를 류) 水(물 수) 【 뜻 】 '하늘에 떠가는 구름과 쉬지 않고 흐르는 물'이라는 뜻으로, ① '일정한 본질이 없이 각양각색으로 변화함'을 이르는 말. ② 나아가서는 '조금도 집착함이 없이 사물에 호응하여 행동하는 것'을 비유. ③ 또한 '속세에서 떠나 초연한 심경(心境)에 있는 것'을 나타내는 말. ④ '일의 처리에 막힘이 없거나 마음씨가 시원시원함'을 비유하기도 함. 【풀 이】 蘇軾(소식)의 答謝民師書(답사민사서)에 있는 "行雲流水, 初無定質(행운유수 초무정질)"에서 비롯된 말이며 행각승(行脚僧)을 운수(雲水)라고 일컫는 것도 여기에서 연유한다. 송대(宋代) 제일(第一)의 시인 소식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산문(散文)의 대가였고 문인화(文人畵)의 창시자이며 서예(書藝)의 명인이고, 또 송대 제일의 사인(詞人)이었다. 그는 비록 정치계에는 불운했으나 송대 문학의 중추인물로 문단에 끼쳤던 영향은 다대했다. 특히 송시(宋詩)의 새로운 풍격(風格)을 이룩하여 문학사상 송시의 명목을 남겼다. 그는 인간을 사랑하고 해학을 좋아했으며 인생의 참다운 철학을 가졌다. 천성(天性)의 자유인으로 정치보다는 문학의 천재로 좁은 세상을 넓고 활달하게 노래하다 간 한 사람의 위대한 시인이었다. 오랫동안지방관으로 여러 지방을 편유(遍遊)하면서 사람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에 따라 여러 계층의 많은 인물들과 교유하였기 때문에 그의 문학적 시야는 더욱 넓고 풍부했다. 그는 謝民師(사민사)라는 친구의 작품을 칭찬하는 글에서 "그대의 글은 마치 구름이 떠가고 물이 흘러가는 듯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이 없다. 그러나 언제고 가야할 곳으로 가고 멈추지 않아서는 안될 곳에 가서는 멈춘다. (大略如行雲流水, 初無定質, 但常行於所當行, 常止於所不可不止. 一答謝民師書一)"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자기자신의 작풍(作風)을 가리킨 것이다. (嘗自謂:「作文如行雲流水,初無定質,但常行於所當行,止於所不可不止。」一宋史 蘇軾傳一) 그는 또 자신의 문학을 평하여 '내 글은 마치 만 톤이나 저장되어 있는 샘물의 원천과 같아서 땅을 가리지 않고 솟아나와 평지에서도 도도하고 세차게 흘러 하루에 천리를 흘러가기에 어렵지 않다. 산이나 바위를 만나면 물건에 따라 형체를 이루나 알 수가 없다.'라 하였다. (吾文如萬斛泉源,不擇地皆可出, 在平地滔滔율율, 雖一日千里無難 。及其與山石曲折, 隨物賦形, 而不可知也。所可知者, 常行於所當行, 常止於不可不止, 如是而已矣。 甚他雖吾亦不能知也。一蘇軾文集卷六十六 自評文一) [흐를 율=삼수변에曰]萬斛(만곡) ; 일만 휘나 되는 많은 양. 1휘는 15~20되.소식(蘇軾)은, 당대(當代) 시인들의 거대한 조류를 혼자 몸으로 막고 이 세상의 고난을 자기 혼자만이 당하는 듯 좌절하고 실망하여 비탄에 젖어 우는 듯하는 감상적(感傷的)인 시풍(詩風)을 지양(止揚)했다. 그는 운명에 순종하기보다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활동하는 인간 세계를 묘사하기에 노력했다. 따라서 그의 시는 생활과 사회와 밀착하고 사회적 연대 의식을 가진 인간과 세계를 서술하기에 노력하였으니 이것은 거시(巨視)의 철학에서 온 시풍이라 하겠다. 고로 그는 인생의 비애와 운명을 고뇌의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의 시에 보면 [吾生如寄耳(오생여기이)]라는 구절이 자주 나온다. [내 생(生)은 마치 이 세상에 붙어사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뜻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태도며 사상(思想)이고 시작(詩作) 태도였다 서예명제(61)晴耕雨讀 晴:갤 청 耕:밭갈 경 雨:비 우 讀:읽을 독 화창한 날에는 논밭을 갈고 비가 오는 날에는 집에서 책을 읽음 부지런히 일하며 여가를 헛되이 보내지 않고 공부함을 이르는 말. 논밭에 나가 농사를 짓고, 비 오는 날에는 집에서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부지런히 일하면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음을 비유한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사회재교육에 열심히 참여하는 ‘공부하는 직장인’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급격히 노령화와 정보화, 고도화, 다변화됨에 따라 사회재교육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하지만 그 요구는 거세지만 사회재교육의 인프라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세계 10대 원격대학에 이름을 올린 한국방송통신대학교(방송대)가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공부를 포기할 수도 없으니 청경우독을 하는 수밖에 없다. 문의- 古方 010-8344-9887 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2)川流不息 川(내 천) 流(흐를 류) 不(아니 불) 息(쉴 식) 쉬지 않고 흐르는 냇물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라. 川流不息하고 淵澄取映이라.(천류불식하고 연징취영이라.) 냇물은 흘러 쉬지 않고, 못의 물이 맑으면 비추어 볼 수 있다. 淵(못 연) 澄(맑을 징) 取(취할 취) 映(비칠 영) 그러나 군자(君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은 인품과 외모만이 아닙니다. 고대 중국의 지식인들은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품성과 학문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닦는 노력이 필수라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흐르는 냇물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닦아, 맑은 연못에 온갖 사물이 비추는 것처럼 세상 모든 일의 아름답고 더럽고 옳고 그른 것을 명명백백하게 밝혀내야 한다고 한 것입니다. '川流不息(천류불식)' 즉 '냇물은 흘러 쉬지 않는다'는 말과 관련한 공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가 흐르는 시냇물을 보며 '逝者如斯夫(서자여사부)이니 不舍晝夜(불사주야)로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가는 세월이 냇물이 흐르는 것과 같구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흐르니.'라는 뜻입니다. 공자는 인생도 시냇물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흘러가므로, 더욱 부지런히 도(道)와 학문을 쌓아야 한다고 자신을 일깨운 것입니다. 『논어』 「자한」편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군자(君子)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힘쓰고 자신을 경계하여 노력함을 쉬지 않아야 하며, 세상의 여론과 속세의 풍습에 아랑곳하지 않고 홀로 높고 밝게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군자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았고, 말이 아니면 듣지 않았으며, 뜻이 맞지 않으면 행동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출세를 위해 나아가고 물러나지 않았으며, 오직 옳고 밝은 것을 찾아 나아가고, 그르고 어두운 것을 보아 물러났습니다. '淵澄取映(연징취영)' 즉 '못의 물이 밝으면 비추어 볼 수 있다'는 말은 군자의 이와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자료출처-이윤숙 천자문역해에서 일부인용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3) 天衣無縫(천의무봉) 天 하늘 천衣 옷 의無 없을 무縫 꿰맬 봉 풀이 : 선녀(仙女)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뜻으로, ①성격(性格)이나 언동(言動) 등(等)이 매우 자연(自然)스러워 조금도 꾸민 데가 없음 ②시나 문장(文章)이 기교(技巧)를 부린 흔적(痕跡ㆍ痕迹)이 없어 극(極)히 자연(自然)스러움을 이르는 말 유래 : 천상의 직녀가 인간계의 청년 곽한(郭翰)을 사랑하여 천제의 허락을 얻어 밤이면 밤마다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칠석(七夕)이 되자 직녀는 오지 않았다. 그러고는 4,5일이 지나서야 찾아왔다. "어땠습니까? 견우님과의 상봉은 즐거우셨나요?" 곽한의 말에 직녀가 웃으면서 대답(對答)했다. "천상은 여기와는 다릅니다. 천상에서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 통하는 것이 정교(情交)이며, 이 세상(世上)의 정교와는 다른 겁니다. 질투는 그만두십시오.""그렇지만 오랫동안 발길을 끊었지 않습니까?"" 천상의 하룻밤은 이 세상(世上)의 5일에 해당되는 겁니다." 그녀는 그날 밤, 그를 위해 천상의 요리를 가져왔는데, 모두 이 세상(世上)에는 없는 것뿐이었다. 또 그녀의 옷을 보니 어디에도 솔기라곤 눈에 띄지 않았다. 이상히 여겨 물어 보니, 그녀가 말했다. "천상의 옷은 원래 바늘이나 실로 바느질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비롯되어 어떤 작품(作品)이 기교 없이 훌륭하게 만들어졌을 때, 또 아름답고 깨끗하게 행동(行動)하는 사람을 '천의무봉'이라고 한다. 문의- 古方 010-8344-9887 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4)朝名市利(조명시리) 朝: 아침 조정 조. 名: 이름, 이름날 명. 市: 저자 시. 利: 이로울 리)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市場]에서 다투라는 뜻으로, 무슨 일이든 적당한 장소에서 행하라는 말. [유사] 적시적지(適時適地) [출전] 戰國策(전국책)〈秦策〉 【내용】 진(秦)나라 혜문왕(惠文王) 때(B.C. 317)의 일이다. 중신 사마조(司馬錯)는 어전에서 '촉(蜀)의 오랑캐를 정벌하면 국토도 넓어지고 백성들의 재물도 쌓일 것이므로, 이야말로 일거양득(一擧兩得)'이라며 촉으로의 출병을 주장했다. 그러나 종횡가(縱橫家) 출신의 재상 장의(張儀)는 그와는 달리 혜문왕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진나라는 우선 위(魏) 초(楚)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맺고, 한(韓)나라의 삼천(三川) 지방으로 출병한 후 천하의 종실인 주(周)나라의 외곽을 위협하면, 주나라는 스스로 구정(九鼎:천자(天子)를 상징하는 보물)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그 보물을 내놓을 것이옵니다. 그때 천자를 끼고 천하에 호령하면 누가 감히 복종하지 않겠나이까? 이것이 패업이라는 것이옵니다. 그까짓 변경의 촉을 정벌해 봤자 군사와 백성을 피폐(疲弊)케 할 뿐 무슨 명리(名利)가 있겠나이까? 신(臣)이 듣기로는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저자에서 다툰다[朝名市利]'고 하옵니다. 지금 삼천 지방은 천하의 저자이옵고 주나라 황실(皇室)은 천하의 조정이옵니다. 그런데도 전하께서는 이것을 다투려 하지 않고 하찮은 오랑캐의 촉을 다투려 하시옵니다. 혹, 패업을 멀리하시려는 것은 아니옵나이까?" 策03秦一045-02 司馬錯與張儀爭論於秦惠王前. 司馬錯欲伐蜀, 張儀曰: “不如伐韓.” 王曰: “請聞其說.” 對曰: “親魏善楚, 下兵三川, 塞轘轅、 緱氏之口, 當屯留之道, 魏絶南陽, 楚臨南鄭, 秦攻新城、宜陽, 以臨二周之郊, 誅周主之罪, 侵楚、魏之地. 周自知不救, 九鼎寶器必出. 據九鼎, 按圖籍, 挾天子以令天下, 天下莫敢不聽. 此王業也. 策03秦一045-03 今夫蜀、西辟之國, 而戎狄之長也, 弊兵勞衆, 不足以成名; 得其地不足以爲利. 臣聞 ‘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今三川、周室天下之市朝也, 而王不爭焉, 顧爭於戎狄, 去王業遠矣.” 그러나 혜문왕은 사마조의 진언에 따라 촉의 오랑캐를 정벌하고 국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문의- 古方 010-8344-9887 자료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5)小屈大伸(소굴대신) (小: 작을 소. 屈: 굽을 굴. 大: 큰 대. 伸: 펼 신) 조금 굽혀 크게 일어난다는 뜻으로, 잠깐의 억울함과 불만을 참으면 나중에 크게 될 수 있음을 이르는 말. [내용] 이 성어는 삼국지(三國志) 卷42 극정(郤正)전에 보인다. 극정(郤正)은 삼국 시대 촉나라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촉나라 조정에서 중심을 잡고 일을 하였으나, 촉한이 망한 뒤 유선(劉禪)을 수행하여 낙양(洛陽)으로 가서 관내후(關內侯)에 봉해졌다. 뒷날 진(晉)나라에서 파서태수(巴西太守)를 지냈다. 극정은 이전 시대의 학자들을 본받아 문장을 빌려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는 《석기(釋譏)》를 남겼다. 그 가운데 일부는 다음과 같다. “......때문에 도리에 통달한 인물(達人)은 도를 연구하여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미세한 진리를 탐구하며, 천체 운행시 나타나는 운명의 징조를 관찰하여 인간 세상의 흥성하고 쇠함을 고찰하며, 변설가(辯者)는 유세하러 달려가고 지혜로운 자(智者)는 시기에 순응하며, 책모가(謀夫)는 계략을 추인하고 용감한 무사(武士)는 위험을 떨치며, 구름이 합치고 안개가 모이고 바람이 거세고 번개가 번쩍이면, 시기를 관찰하여 일의 마땅함을 파악할 수 있고, 처세의 자본을 취하여, 작은 몸을 굽혀 큰 것을 펴고, 공적인 것을 보존하고 사사로운 일을 홀시하며, 1척을 굽혀 8척을 펼 수 있고, 최후에는 빛을 날려 발휘하는 것입니다. ......” 是以達人研道,探頤索微,觀天運之符表,考人事之盛衰,辯者馳說, 智者應機,謀夫演略,武士奮威,雲合霧集,風激電飛,量時揆宜, 用取世資,小屈大申,存公忽私,雖尺枉而尋直,終揚光以發輝也。 三國志/卷42 杜周杜許孟來尹李譙郤傳 [출처]긴하루블로그작성자몽촌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66)靑山不老(청산불로) [靑 푸를 청] [山 뫼 산] [不 아니 불] [老 늙을 푸른산은 늙지 않는다. 세월은 계속 흘러간다 청산불로(靑山不老)의 유래(由來) : 삼국지(三國志) 익주목(益州牧) 유장(劉璋)의 수하에는 법정(法正), 장송(張松), 맹달(孟達)등의 신하들이 있었다. 유장(劉璋)은 유언(劉焉)의 아들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익주목(益州牧)이 되었지만 워낙 무능해 신하들에게 조차 신임을 얻지 못했다 유장(劉璋)은 장송(張松)을 조조(曹操)에게 사신으로 보내어 자신과 자신들의 지역을 잘 돌봐달라고 간청하라고 했다. 장송(張松)은 학식이 뛰어나고 언변이 좋았기 때문에 사신으로 간것이지만 조조(曹操) 앞에서 조롱과 무시만 당하고 돌아왔다. 이에 장송(張松)은 유비(劉備)를 찾아가 자신과 몇몇 사람이 유비(劉備)를 맞이하겠으니 익주(益州)를 차지하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유비(劉備)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청산은 늙지 않고 녹수는 멈추지 않으니 훗날 성사되면 후히 보답하겠습니다 청산불로 녹수장존 타일사성 필당후보 (靑山不老 綠水長存 他曰事成 必當厚報)" 멀지 않은날 유장(劉璋)은 유비(劉備)를 청해 장로(張魯)를 공격하게 하고는 유비(劉備)를 돕지 않자 유비(劉備)가 다음해 돌아가서 익주(益州)를 점령한다. 여기서 유래된 말이 청산불로(靑山不老)다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67)先公後私(선공후사) [자해(字解)] 먼저 선(先)/ 공변될 공(公)/ 뒤 후(後)/ 사사로울 사(私) [의미(意味)] 공(公)을 위해 사사(私事)로운 일은 뒤로 미룬다는 말. 성종(成宗)때 경차관으로 제주도(濟州道)에 가있던 최부(崔溥)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消息)을 듣고 돌아오다 표류(漂流)하였다. 중국(中國)땅을 거쳐 한양(漢陽)에 돌아온 것은 반년(半年) 후였다. 임금의 하명(下命)을 받들어 표류기(漂流記)를 써 바치고 낙향(落鄕)하여 친상의 복을 입었던 것이다. 선충후효(先忠後孝)의 소신(所信) 있는 선택(選擇)이었지만, 고식적(姑息的)인 선비들은 먼저 낙향(落鄕)해서 상(喪)을 치러야 했었다고 비난(非難)하고 있다. 영조(英祖)가 위독(危篤)하자 평창에 사는 명의(名醫) 나두삼(羅斗三)이 소환(召還)을 받고, 상경(上京)하는데, 아버지가 위독(危篤)하다는 전갈(傳喝)을 받는다. 임금이 죽으면 다시 모시지만, 아버지가 죽으면 다시 모실 수 없다하여 돌아갈 것을 권(勸)했지만, 아버지가 죽으면 한 식구(食口)만이 울지만, 임금이 죽으면 만 백성(百姓)이 운다 하고, 상경(上京) 길을 더듬다 도중(途中)에 아버지의 부음(訃音)을 듣는다. 이 나두삼(羅斗三)의 선충후효(先忠後孝) 역시 도학(道學)을 모르는 중인의 소치라고 후세(後世)의 지탄(指彈)을 받고 있다. 임진왜란(壬辰倭亂)때 문무(文武) 중신들의 대부분(大部分)이 임금 곁을 떠났는데 그들 나름으로 내세운 명분(名分)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상(喪)이나 제사(祭祀) 핑계였다. 선효후충(先孝後忠)은 이 같이 인간(人間)을 비겁(卑怯)하게 하는 구실로도 악용(惡用)되었던 것이다. [출처] 전한준의 고사성어 문의-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8)得失在我(득실재아) (得: 얻을 득. 失: 잃을 실. 在: 있을 재. 我: 나 아) 얻고 잃음은 내가 하기 나름이라는 뜻으로, 내가 하는 일에 자신을 갖고서 남의 평판에 휩쓸리지 말라는 의미. [출전]《연암집 제3권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 공작관문고(孔雀館文稿) 자서(自序)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經書)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정중하게 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화공(畫工)을 불러서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것과 같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살 하나 없이 펴서 평상시의 태도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 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道)는 털끝만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말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도올(檮杌)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楚) 나라의 국사(國史)는 그 이름을 취하였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몰래 매장하는 것은 극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司馬遷)과 반고(班固)는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그 참을 그릴 따름이다. 이로써 보자면 글이 잘되고 못되고는 내게 달려 있고 비방과 칭찬은 남에게 달려 있는 것이니(得失在我。毁譽在人), 비유하자면 귀가 울리고 코를 고는 것과 같다. 자기만이 홀로 아는 사람은 남이 몰라줄까 봐 항상 근심하고, 자기가 깨닫지 못한 사람은 남이 먼저 깨닫는 것을 싫어하나니, 그러므로 이 책을 보는 사람이 부서진 기와나 벽돌도 버리지 않는다면, 화공의 선염법(渲染法)으로 극악한 도적의 돌출한 귀밑털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요, 남의 귀 울리는 소리를 들으려 말고 나의 코 고는 소리를 깨닫는다면 거의 작자의 뜻에 가까울 것이다. 자료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69) 點石成金(점석성금) [요약] (點: 점 점. 石: 돌 석. 成: 이룰 성. 金: 쇠 금) 돌에 손을 대어 술법(術法)으로 금을 만들다 라는 뜻으로, 남의 글을 조금 손질하여 훌륭한 글이 되게 함을 비유한 말. [동어] 점석성철(點石成鐵) [출전]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1) 【내용】진(晉)나라 초, 남창(南昌)에 허손(許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매우 정직하고 배우기를 좋아했으며, 이름 있는 도사들과 즐겨 내왕 하였다. 그는 젊은 시절 재능이 널리 알려져 있었으므로, 조정에 천거되어 정양(旌陽)의 현령이 되었다. 재직 초기, 그는, 많은 백성들이 세금을 내지 못하다가 수년 동안 그 빚이 불어나서 끝내 낼 수 없게 되는 것을 보았다. 이 점에 대하여 허손은 무척 동정하였다. 그는 자신이 과거 도사들에게 배운 술법을 이용하여 돌을 금으로 바꾸어, 백성들이 내지 못한 세금을 충당하려 하였다 (點石化金, 以足逋賦). 후에 그는 관리들의 이권 다툼에 대하여 염증을 느껴, 관직을 버리고 동쪽으로 유람을 떠나 버렸다고 한다. 고방서예명제(70)一鳴驚人(일명경인) 一: 한 일 鳴: 울 명 驚: 놀랄 경 人: 사람 인 평상시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다가 갑자기 사람을 놀라게 할 만한 업적을 내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일비충천(一飛沖天·한 번 날면 하늘 높이 난다)과 함께 쓰인다. “이 새는 날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날았다 하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울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 번 울었다 하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나오는 이 말은 익살과 해학의 달인 순우곤(淳于곤)이 제나라의 위왕(威王)과 나눈 대화의 일부다. 위왕은 수수께끼를 좋아하고 음탕하게 놀며 밤새도록 술 마시기를 즐겼다. 그래서 문무백관들은 문란해졌고 제후들이 동시에 침략해 나라의 존망이 아침저녁으로 절박한 지경에 놓였다. 그런데도 주위 신하들 가운데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순우곤이 수수께끼를 좋아하는 왕에게 “나라 안에 큰 새가 있는데, 대궐 뜰에 멈추어 있으면서 3년이 지나도록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있습니다. 왕께서는 이것이 어떤 새인지 아십니까”라고 묻자, 왕이 위와 같이 대답하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은연중에 과시한 것이다. 순우곤이 이렇게 위왕을 치켜세워 위왕은 비로소 군대를 정돈하고 민심을 추슬러 잃었던 영토를 되찾고 무려 36년 동안 맹위를 떨쳤다. 위왕과 관련된 이야기는 또 있다. 위왕 8년에 초나라가 쳐들어오자, 왕은 순우곤에게 황금 100근, 사두마차 10대를 예물로 가지고 조나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하게 하니 순우곤은 겨우 이런 정도의 예물로는 어림없다고 했다. 그러자 위왕이 다시 황금 1000근, 백벽(白璧) 10쌍, 사두마차 100대로 예물을 늘려 구원병을 청하게 하자, 조나라는 정예병 10만 명과 전차 1000대를 내주었다. 성과에 만족한 위왕이 주연을 베풀어 자축했다. 시국에 어울리지 않는 위왕의 행태에 못마땅했던 순우곤은 “술이 극도에 이르면 어지럽고 즐거움이 극도에 이르면 슬퍼진다 (酒極則亂 樂極則悲)”는 말로 그를 일깨워 주었다. 인용-김원중 건양대 교수글 문의-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고방서예명제(71)弓滿則折(궁만즉절) [요약] (弓: 활 궁. 滿: 찰 만. 則: 곧 즉. 折: 꺽일 절) 활시위를 다 당겨 버리면 바로 끊어지게 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이 지나치면 잘못된다는 말. [출전]《석성금(石成金)의 전가보(傳家寶)》 [내용] 이하 조선일보 정민의 世說新語 궁만즉절(弓滿則折) 청나라 때 석성금(石成金)이 '전가보(傳家寶)'에서 말했다. "지금 사람들은 뜻에 통쾌한 말을 하고, 마음에 시원한 일을 하느라 온통 정신을 다 쏟아 붓는다. 정을 있는 대로 다하여 조금도 남겨두지 않고, 터럭만큼도 남에게 양보하려 들지 않는다. 성에 차야만 하고 자기 뜻대로 되어야만 한다. 옛사람은 말했다. 말은 다해야 맛이 아니고, 일은 끝장을 봐서는 안 되며, 봉창에 가득한 바람을 편 가르지 말고, 언제나 몸 돌릴 여지는 남겨 두어야 한다. 활을 너무 당기면 부러지고(弓太滿則折), 달도 가득 차면 기운다. 새겨둘 일이다."(今人說快意話, 做快意事, 都用盡心機. 做到十分盡情, 一些不留余地, 一毫不肯讓人. 方才燥脾, 方才如意. 昔人云, 話不可說盡, 事不可做盡, 莫撦滿篷風, 常留轉身地, 弓太滿則折, 月太滿則虧. 可悟也.) 오가는 말을 보면 그 시대의 품격이 보인다. 요즘 언어는 너무 강파르다. 날을 세워 악랄하다. 저마다 자기 말만 옳고 남이 틀렸다고 한다. 귀는 틀어막고 소리만 질러댄다. 대화는 없고 고성만 오간다. 경청(傾聽), 즉 귀 기울여 듣는 태도는 찾아볼 수가 없다. 하나 마나 한 말이고, 들으나 마나 한 얘기다. 그러면서도 말이 안 통해 답답하다는 얘기는 빼먹지 않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全無)여서 중간이 없다. 그는 또 말한다. "사람 사는 세상의 온갖 경우가 어찌 일정하겠는가? 한 걸음 앞서 생각하면 끝날 때가 없고, 한 걸음 물러나 생각하면 절로 남는 즐거움이 있다." (人世間境遇何常? 進一步想, 終無盡時, 退一步想, 自有餘樂.) 남은 무조건 틀렸고 나만 반드시 옳다는 태도로는 세상에 풀릴 문제가 없다. 상대에 대한 존중 없이는 이해는 없고 오해만 깊어진다. 신뢰가 애초에 없고 보니 뭘 해도 불신만 가중된다. 청나라 때 주석수(朱錫綬)가 '유몽속영(幽夢續影)'에서 말했다. "기분 내키는 대로 얘기해도 말은 한마디 더 적게 하라. 발길 따라 걷되 길은 한 걸음 양보하라. 붓 가는 대로 써도 글은 한 번 더 점검하라."(任氣語少一句, 任足路讓一步, 任筆文檢一番.) 머금는 뜻이 조금도 없이 쏟아내는 언어의 폭력 앞에 코 막고 귀 막고 싶어진다. 고방서예명제(72)跋山涉水(발산섭수) 跋: 밟을 발, 山: 뫼 산, 涉: 건널 섭, 水: 물 수 산 넘고 물을 건너간다는 뜻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비유하는 말. 풀 섶 길을 가는 것을 跋이라 하고 물길을 가는 것을 涉이라 한다. [출전]《시경(詩經) 국풍(國風) 용풍(鄘風) 재치(載馳)편》 [내용] ‘재치(載馳)’는 위(衛)나라 선공(衛宣公)의 부인인 선강(宣姜)의 딸이 허(許)나라 목공(穆公)의 부인(夫人)이 되었다. 위(衛)나라의 멸망을 슬퍼하여 위(衛)나라의 돌아가 제후(諸侯)를 위로코자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음을 노래한 것이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載馳載驅(재치재구) : 수레를 달리고 달려 歸唁衛侯(귀언위후) : 돌아가 위나라 임금을 위로하려고, 驅馬悠悠(구마유유) : 멀리 말을 달리고 달려 言至于漕(언지우조) : 조 땅으로 도착하리라. 大夫跋涉(대부발섭) : 대부는 산 넘고 물 건너 쫓아 오겠지만 我心則憂(아심칙우) : 내 마음은 조급해지네. 旣不我嘉(기불아가) : 나를 기꺼워하지 않지만 不能旋反(불능선반) : 내 이 뜻 돌이킬 수 없네, 視爾不臧(시이불장) : 그대들이 좋게 여기지 않는 줄 알지만 我思不遠(아사불원) : 내 생각은 돌이킬 수 없네 旣不我嘉(기불아가) : 나를 기꺼워하지 않으니, 不能旋濟(불능선제) : 곧 건널 수가 없네. 視爾不臧(시이불장) : 그대들이 좋게 여기지 않는 줄 알지만 我思不閟(아사불비) : 내 생각 막을 수 없네 跋山은 산을 넘고 고개를 넘는다는 뜻이요, 涉水는 걸어서 바다를 건넌다는 의미다. 이렇게 먼 거리를 가다보면 고생은 이루 말로는 다할 수 없다. 跋山 涉水는 그래서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또 '좌전' 양공28년조에 "산 넘고 물 건너서 서리와 이슬을 무릅썼다 (跋山 涉川 蒙犯霜露)"라는 기록이 있다. 跋山 涉水나 跋山 涉川은 같은 뜻이다. 산 넘고 물 건너서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고방서예명제(73)集思廣益(집사광익) 모일 집, 생각할 사, 넓을 광, 더할 익. 뜻풀이: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 삼국시대 신기묘산의 지략가로 알려진 제갈량은 나랏일을 처리 할 때 독단적으로 하지 않았다. 그가 촉나라의 승상이 된 뒤에 하급관리들에게 내린 여군하교(與群下敎)란 글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정치는 모든 사람의 의견 제시가 이루어져야 더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논쟁이 두려워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기를 꺼린다면 결국 나라가 큰 손실을 입게 된다.“고 했다. 제갈량은 항상 허심탄회 (虛心坦懷)하게 부하들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한번은 제갈량의 일처리가 치밀하지 못하였는데 동화(董和)라는 관리가 이에 대해 여러 차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그와 논쟁을 벌였다. 이 일에 대하여 제갈량은 동화를 질책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 편의 글을 써서 그를 표창함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견을 발표하였는데 바로 여군하교(與群下敎)라는 글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용인술(用人術)이 있지만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소통’을 통한 인사 성공 사례들이다. 인사 뿐 아니라 리더가 결정을 내릴 때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아 행하면 더 좋은 결과를 낳았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인재를 등용할 때 사람의 좋고 나쁨에 따라 판단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사람조차 어떤 직위에 적합한 사람이라면 그를 기용했다. 또 대통령 당선 후 노예제도 폐지 절차 문제를 놓고, 정치적 견해가 상반됐던 정적 프레더릭 더글러스를 순회특사로 임명해 연방정부가 전쟁을 수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각주에 설명케 했다. 자신을 ‘레일 침목꾼’으로 무시하던 선배 국회의원 윌리엄 시워드를 국무장관으로 임명했고, 대통령 경선 패배로 평생을 링컨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새먼 체이스를 국무장관에 내정했다. 그의 이러한 끌어안기식 용인술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남의 말을 성심성의껏 듣고 그 말을 제대로 활용하는 것은 금과옥조로 여길 만하다. 그것이 곧 공감이요, 소통이다. 상하관계가 엄한 조직일수록 윗사람은 말을 많이 들어야 귀가 뚫리고, 귀가 뚫리면 비로소 마음이 열리게 된다. ‘불통인사’, ‘소통이 안 된다’는 말이 더 이상 새롭지 않기에 링컨의 끌어안기식 용인술이나 ‘집사광익’이라는 고사성어가 더욱 와 닿는다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고방서예명제(74)國亦有染(국역유염) (國: 나라 국, 亦: 또 역, 有: 있을 유, 染: 물들 염) 나라를 다스리는 일 또한 실을 물들이는 바와 같다는 뜻. [출전]《묵자(墨子) 卷一 소염(所染)》 [내용] 이 성어는 묵자(墨子) 소염(所染)편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파란 물감에 물들이면 파란색, 노란 물감에 물들이면 노란색이 되는구나. 이렇게 물감에 따라 실의 색깔도 변하여 매번 다른 색깔을 만드니 물들이는 일이란 참으로 조심해야 할 일이다. 사람이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子墨子言,見染絲者而嘆曰:染於蒼則蒼,染於黃則黃,所入者變, 其色亦變。五入必而已,則為五色矣。故染不可不愼也。非獨染絲然也, 國亦有染。 墨子 卷一 所染 이어 묵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옛날 순(舜)임금은 어진 신하 허유(許由)와 백양(伯陽)의 착함에 물들어 천하를 태평하게 다스렸고, 우(禹)임금은 고요(皐燿)와 백익(伯益)의 가르침, 은(殷)의 탕왕(湯王)은 이윤(伊尹)과 중훼(仲迂)의 가르침, 주(周)의 무왕(武王)은 태공망(太公望)과 주공단(周公旦)의 가르침에 물들어 천하의 제왕이 되었으며 그 공명이 천지를 뒤덮었다.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이 천하에서 인의를 행한 임금을 꼽으라면 반드시 이들을 들어 말한다. 그러나 하(夏)의 걸왕(桀王)은 간신 추치(推琇)의 사악함에 물들어 폭군이 되었고, 은나라의 주왕(紂王)은 숭후(崇候), 오래(惡來)의 사악함, 주나라 여왕(勵王)은 괵공 장보(長父)와 영이종(榮夷終)의 사악함, 유왕(幽王)은 부공이(傅公夷)와 채공곡(蔡公穀)의 사악함에 물들어 음탕하고 잔학무도한 짓을 하다가 결국은 나라를 잃고 자기 목숨마저 끊는 치욕을 당하였다. 그 리하여 천하에 불의를 행하여 가장 악명 높은 임금을 꼽으라면 반드시 이들을 들어 말한다. 평소에 사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일지라도 그것이 계속되면 습관화하여 생각과 태도가 길들여지는 것이므로 나쁜 습관이 들지 않도록 경계하는 말이다. [출처] 나라도 이와 같아 물들이는 방법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작성자 몽촌 고방서예명제(75)風樹之嘆(풍수지탄) 부모(父母)님 살아 계실 때 효도(孝道)하라. 돌아가신 뒤에는 효도하고 싶어도 아무 소용없는 일이라는 말. [자해(字解)] 바람 풍(風)/ 나무 수(樹)/ 갈 지(之)/ 탄식할 탄(嘆) [출전(出典)] 한시외전(漢詩外傳)) [동의어(同義語)] 풍수지비(風樹之悲) 풍수지감(風樹之感)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중 한 사람인 중유(仲由)의 자(字)는 자로(子路)인데, 그가 공자를 뵙고 말하였다. “제가 부모를 섬길 때에 백 리 밖에 가서 쌀을 가져다가 봉양(奉養)을 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돌아가시고 저는 초(楚)나라 대부(大富)가 되어 곡식(穀食)을 쌓아 놓고 먹게 됐지만 이제 와서는 쌀을 져다가 효도를 하고 싶어도 되지 않는군요.” 어느 날 공자는 길가에서 울고 있는 우구자(虞丘子)라는 사람을 발견하고 그 까닭을 물었다. 우구자가 대답(對答)했다. “선생님, 나무는 조용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고, 자식(子息)은 봉양을 하고자 하나 부모가 기다리지 않고 가버리셨습니다.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중유나 우구자의 경우를 보더라도 자식이 부모에게 효도를 함에는 살아 생전(生前)에 해야지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漢詩外傳>에는 다음과 같은 시(詩)가 전한다. 樹欲靜而風不止 子欲養而親不待 (수욕정이풍부지,자욕양이친부대)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은 그치지 아니하고 자식은 부모님을 봉양코자 하나 부모님은 기다리지 않으신다. 중유에게는 백 리 밖에 가서 쌀을 지고 오는 것이 몸은 고달프더라도 부모를 위한 일이기에 오히려 즐거운 일일 수 있었고, 곡식 만석(萬石)을 쌓아 놓고 먹게 되었다고 해도 부모에게 봉양할 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도리어 슬픈 일이었던 것이다. 이는 슬프고 즐거운 것이 자기 한 몸의 궁(窮)하고 가득한데 있지 않고, 오직 부모가 계시고 안 계신 데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숨은 끝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죽는 날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정작 그 죽음이 부모님에게 찾아올 것이라는 상상(想像)을 하지는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병이 위중(危重)하여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부모의 죽음은 언제나 자식에게 있어서는 갑자기 찾아오는 기습(奇襲)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불시에 기습을 당하고 나서야 땅을 친다. 땅을 치고 후회(後悔)를 하며, 불효(不孝)를 한탄하고 울어도 다 소용(所用)이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문의- 古方 010-8344-9887 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고방서예명제(76)泰山北斗 [요약] (泰: 클 태. 山: 뫼 산. 北: 북녘 북. 斗: 별이름 두) 중국(中國) 제일(第一)의 명산인 태산(泰山)과 북두성(北斗星)이라는 뜻으로, ①학문(學問)ㆍ예술(藝術) 분야(分野)의 대가(大家) ②태산(泰山)과 북두칠성을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듯이, 남에게 존경(尊敬)받는 뛰어난 존재(存在). [출전]《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의 찬(贊) 【내용】한유(韓愈)는 중국 당나라 때의 문학자이자 사상가로,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당나라의 대표적 4대 시인의 한 사람이며,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로 꼽히는 중국 제일의 문장가이다. 그는 25세 때 진사과에 급제한 뒤 벼슬이 이부상서(吏部尙書)까지 되었으나 황제가 관여하는 불사(佛事)를 극간하다가 조주자사(潮州刺史)로 좌천되었다. 천성이 강직했던 한유는 그후에도 여러 차례 좌천과 파직을 당하기도 했는데, 만년에 이부시랑(吏部侍郞)을 지낸 뒤 57세의 나이로 죽었다. 한유는 순탄하지 못했던 벼슬살이와는 달리 학문과 사상 분야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친구인 유종원 등과 고문운동을 제창하여, 고문이 송대 이후 중국 산문 문체의 표준이 되게 했으며, 그의 문장은 그 모범으로 알려지는 등 후세에 영향을 주었다. 사상 분야에서는 도교와 불교를 배격하고 유가의 사상을 존중하여 공자 이래의 유학을 왕성하게 하는 데에 힘써 송대 이후의 도학(道學)의 선구자가 되었다. 그 결과 후학들로부터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되었다. 당서(唐書) 한유전(韓愈傳)의 찬(贊)에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당나라가 일어난 이래 한유는 육경(六經)의 문장으로 여러 학자들의 스승이 되었다. 그가 죽은 뒤에도 그의 학설이 천하에 떨쳤으므로 학자들은 그를 '태산북두(泰山北斗)'처럼 우러러보았다.” 愈가 以六經之文으로 爲諸儒倡하다. 自愈沒에 其言大行(其學盛行)하여 學者仰之하며 如泰山北斗云하다. 여기서 '태산'은 글자상으로는 큰 산이라는 뜻이지만 중국에서는 오악(五嶽)의 하나로서 성산(聖山)으로 우러러보는 산이다. '북두'는 북두칠성을 가리키는데, 북두칠성이 모든 별의 중심적인 존재로 받들어지고 있는 데서 '북두'라는 말 자체도 뛰어난 인물을 비유할 때 사용한다. 오늘날 이 말은 '태두(泰斗)', '산두(山斗)'라는 약칭으로 통용되며, 특히 학술적 업적이 뛰어난 학자를 가리키는 데 쓰인다. 고방서예명제(77)返朴歸眞 [반박귀진] [요약] (返: 돌이킬 반, 朴: 소박할 박, 歸: 돌아올 귀, 眞: 참 진) 순박했던 대로 되돌아가 참된 것을 회복한다. [출전]《전국책(戰國策) 卷十一‧ 제책(齊策) 四》 [내용]전국 시대, 제(齊)나라에 안촉(顔촉)이라는 사람의 일화에서 생긴 성어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안촉(顔촉)은 스스로 재주가 많다고 생각하였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집에 은거하며 자유스런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제나라 선왕(宣王)이 그를 찾는다고 하자, 그는 하는 수없이 입궁하여 왕과 대화하게 되었다. 대화를 하다가 제선왕이 그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신하들과 안촉이 공방을 벌렸는데 그 이론이 정연하여 왕이 승복할 뜻을 보이고 겸손하게 말했다. "아! 좋소. 군자가 어찌 오만하겠소. 나의 행위는 스스로 욕을 부르는 것 밖에 되지 않는군요. 이제 선생의 말을 듣고 보니, 간사한 무리의 행위가 환히 들여다보이는 같구려. 나를 당신의 제자로 받아 주기를 간청하오. 안 선생은 이제부터 나와 같이 행동하고 식사하며 같은 수레를 탑시다. 부인과 자녀에게도 특별히 의복과 음식을 제공해드리지요."그러나 안촉은 제선왕의 요구를 사절하면서 말을 했다. "아름다운 옥도 산을 떠나면 그 원래의 빛깔을 잃게 됩니다. 그것이 귀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파괴를 당한다는 말이죠. 선비는 촌에서 자랐으므로 관직에 오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로 인해서 자신의 본색을 유지하기 힘들게 될까 두렵습니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고기 대신 소박한 음식을 수레를 타는 대신 걷는 것을(安步當車), 부귀를 누리는 대신 아무런 죄없이 사는 것을, 쾌락을 누리는 대신 청렴한 생활을 하고 싶습니다. 살리고 죽이는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은 왕이고, 감히 직언을 간하는 자는 저 안촉입니다. 할 말을 다 했으니, 이제 저를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요." 안촉은 그 제안을 거절하며 머리를 깊숙이 숙여 인사를 하고 귀향했다. 향리에 정착하여 산에서 나온 그대로의 원옥의 입장에 돌아가 그는 한 평생 치욕을 모르고 지낼 수 있었다(知足矣, 歸眞反撲, 則終身不辱也). 宣王曰:「嗟乎!君子焉可侮哉,寡人自取病耳!及今聞君子之言,乃今聞細人之行,願請受為弟子。且顏先生與寡人游,食必太牢,出必乘車,妻子衣服麗都。」顏斶辭去曰:「夫玉生於山,制則破焉,非弗寶貴矣,然夫璞不完。士生乎鄙野,推選則祿焉,非不得尊遂也,然而形神不全。斶願得歸,晚食以當肉,安步以當車,無罪以當貴,清靜貞正以自虞。制言者王也,盡忠直言者斶也。言要道已備矣,願得賜歸,安行而反臣之邑屋。」則再拜而辭去也。斶知足矣,歸反撲,則終身不辱也。 劉向 戰國策 卷十一‧齊策四 齊宣王見顏斶 여기서 返朴歸眞(반박귀진)이라는 말이 나왔다. 원래 순박했던 대로 되돌아가서 참된 것을 회복한다는 뜻이다. 소박과 진실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참된 것을 회복하면 욕보는 일이 없다. [출처] 산에서 나온 그대로의 원옥의 입장에 돌아가 |작성자 몽촌 고방서예명제(78)樂天知命(낙천지명) (樂: 즐길 락. 天: 하늘 천. 知: 알 지. 命: 목숨 명) 하늘의 뜻에 순응(順應)하여 자기의 처지(處地)에 만족(滿足) 한다는 뜻. [반대] 논어 제14 헌문(憲問)편에 나오는 원천우인(怨天虞人; 하늘을 원망(怨望)하면 세상 사람들도 미워진다.) [출전]《주역(周易) 계사(繫辭)상》 [내용] 주역 계사 상편의 한 대목이다. " .... 주역의 법칙은 하늘과 땅과 더불어 서로 같다. 그러므로 어긋남이 없다. 지혜(知)는 만물에 고루 미치고 법칙(道)은 천하를 구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잘못이 없다. 임기응변하여 널리 융통성이 있으되 방자함에 흐르지 않고, 하늘의 도를 즐겨하여, 스스로 명(命)을 알고 있다. 그러므로 근심하지 않는다(樂天知命, 故不憂). 흙에 안정하고 어진 일(仁)을 돈독하게 한다. 그 러므로 능히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 " 與天地相似 故不違. 知周乎萬物而道濟天下 故不過. 旁行而不流 樂天知命 故不憂. 安土 敦乎仁 故能愛. * 계사전(繫辭傳) : 상편에서는 주역(周易)의 도리에 관한 개론을 본체적(本體的)으로 설명하였고, 하편에서는 이를 현상적(現象的)으로 설명하였다. 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서예명제(79)窮當益堅(궁당익견) 곤궁해도 더욱 굳세어야 한다. 窮:궁할 궁 當:마땅할 당 益:더할 익 堅:굳셀 견 逆境 속에서도 굳건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意味로 大丈夫의 姿勢를 말함 “後漢書” “馬援傳”에 의하면 前漢 末 富豊君에 馬援이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한다. 그는 어려서 글을 배웠고 武藝에도 뛰어난 人才였는데 그저 소나 말을 기르며 살아가고 있었다. 馬援은 長成하여 郡守를 補佐하면서 그 縣을 監察하는 督郵[독우]가 됐다. 그때 罪囚를 護送하는 일을 맡게 됐는데,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는 罪囚들에게 同情心을 느껴 그들을 풀어 주고 북쪽으로 逃亡을 쳤다. 그는 親舊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丈夫爲志, 窮當益堅, 老當益壯[장부위지,궁당익견,노당익장]大丈夫가 뜻을 세우면 困窮해도 더욱 굳세어야 하며, 늙어도 더욱 씩씩해야 한다.” 世上이 混亂스러워지자 馬援은 平凡한 삶을 버리고 壟西[롱서]의 嵬驍[외효]밑으로 들어가 大將이 됐다. 嵬驍는 公孫述과 손을 잡기 위해 馬援을 그 곳으로 派遣했다. 馬援과 公孫述은 같은 故鄕親舊였다. 公孫述은 當時 스스로 皇帝라 일컫고 있었는데, 馬援이 찾아왔다는 傳喝 [전갈]을 받자 天子의 衣冠에 수레를 타고 으스대며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馬援은 公孫述의 변한 모습에 크게 失望하고 儀禮的인 인사만을 하고는 곧장 돌아왔다. 그러고는 嵬驍에게 말했다. “公孫述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우물 안에서 分手를 모르고 떠벌리기만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 뒤 馬援은 光武帝를 謁見[알현]하게 됐다. 光武帝는 馬援을 만나자 誠心誠意껏 待接하고, 각 部署를 데리고 다니며 助言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馬援은 후한 待接에 感動해 嵬驍에게 돌아가지 않고 光武帝 麾下[휘하]에 있기로 決心했다. 馬援은 僕波將軍[복파장군]이 되어 南方의 交趾[교지]를 平定했다. 얼마 뒤에 洞庭湖 一帶의 蠻族[만족]이 叛亂을 일으키자, 光武帝가 軍隊를 派遣했지만 全滅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馬援이 自身에게 軍隊를 달라고 청하니 光武帝가 나이가 너무 많아 遠征에 無理가 있다고 하자, 예순둘의 그는 말안장을 채우고 老益壯을 誇示했다. 光武帝가 웃으면서 許諾[허락]하자, 그는 遠征길에 올랐다. 交趾-중국 한(漢)나라 때의 군(郡)의 하나. 현재의 베트남북부 통킹, 하노이 지방에 해당한다. 출처- 고방서예관, 인터넷 다음카페 (영일서단,해맞이마을) 고방서예명제(80)在所自處(재소자처) 在: 있을 재 所: 바 소 自: 스스로 자 處: 곧 처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있다. 사람은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 있다는 환경 결정론적 시각으로 진(秦)나라 재상 이사(李斯)가 한 말이다. 초(楚)나라에서 겨우 군(郡)의 하급 관리로서 세월만 축내고 있었던 그는 어느 날 쥐 두 마리를 보고 삶의 원리를 깨닫게 되었다. 변소에 있으면서 불결한 것만 먹는 쥐는 사람이나 개가 나타나자 깜짝 놀라 도망쳤으나, 곡식 창고 안에 있는 쥐는 쌓아 놓은 깨끗한 곡식을 먹으며 사람이나 개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을 보게 된다. 이사는 한탄했다.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고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이런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렸을 뿐이다. 人之賢不肖譬如鼠矣, 在所自處耳 -사기 이사열전 이사의 탄식처럼 자신이 처한 환경의 차이에 따라 어떤 이는 현자(賢者)와 군자(君子)가 되는데 어떤 이는 하층의 우민(愚民)과 소인(小人)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세를 위해 모험을 감행하기로 결심한 그는 곧바로 秦나라 승상 여불위(呂不韋)를 찾아가 그의 사인(舍人), 즉 집사가 되었고, 다시 진시황에게 소개받아 궁궐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장사(長史)의 자리에 오른다. 그는 진시황의 절대적인 신임을 바탕으로 공을 세워 객경(客卿)이 된다. 이 과정에서 기득권의 강력한 반발에 축객당할 처지에 몰린 그는 저 유명한 ‘태산불양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讓土壤 河海不擇細流) 태산은 흙을 사양하지 않고 큰 강과 바다는 물줄기를 가리지 않는다 라는 인재 개방론을 들고나와 위기를 벗어나 진시황의 핵심 측근으로 거듭난다. 물론 과욕으로 인해 유서 위조에 가담하는 등 기회주의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그는 무려 22년 동안 진시황의 2인자로서 진시황을 도와 봉건제도를 폐지하고 군현제도를 실시하는 등 정치 경제 사상 문화 등 각 방면에 일대 개혁을 단행하고 시스템을 완성한 당대의 거물이었던 것이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81) 執 持 專 一 (執: 잡을 집. 持: 가질 지. 專: 오로지 전. 一: 한 일) 온전히 한 가지만을 붙들어 지키는 것. 즉 학문을 하면서 잡다하게 신경을 쓰지 말고 한 곳에 집중하라는 말. [출전]《조익(趙翼)의 포저집(浦渚集) 卷之二十四 도촌잡록(道村雜錄)上》 이 성어는 조선(朝鮮) 효종(孝宗) 때의 문신(文臣) 조익(趙翼)의 저서 포저집(浦渚集) 도촌잡록(道村雜錄)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마음을 잡는 것은 힘을 쓰는 일이요, 마음을 놓는 것은 힘을 쓰지 않는 일이다. 힘을 쓰는 일은 수고스럽고, 힘을 쓰지 않는 일은 편안하게 느껴진다. 사람들은 항상 수고스러운 것은 싫어하고 편안한 것을 좋아한다. 그러나 어떤 일을 막론하고 근면해야 성공하고 안일하면 폐기되는 법이다. 그렇다면 사람이 힘써야 할 것은 근면이요, 사람이 경계해야 할 것은 안일이라고 하겠다. 인(仁)을 자기의 임무로 알고서 죽은 뒤에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니, 힘쓰는 일을 어찌 잠시라도 그만둘 수가 있겠는가. 고어(古語)에 “생소한 곳은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은 생소하게 만들어야 한다.〔生處放敎熟 熟處放敎生〕”라는 말이 있는데, 이 말이 매우 좋다. 별의별 생각이 분분하게 일어나는 것이 바로 익숙한 곳이요, ‘붙잡아 지키면서 전일하게 하는 것〔執持專一〕’이 바로 생소한 곳이다. 생소한 곳을 연습해서 익숙하게 만들고, 익숙한 곳을 연습해서 생소하게 만드는 이 일이야말로 심술(心術) 공부에 있어서 절실하고 중요한 방법이라고 하겠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연습해서 생소한 곳이 날로 익숙해지게 하고 익숙한 곳이 날로 생소해지게 해야 할 것이니,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게 되면 공부가 본격적으로 효과를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집지전일(執持專一)이라고 하는 이 네 글자를 벽에다 써 붙여놓고 언제나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겠다. 用力事。舍。不用力事。用力爲勤。 不用力爲逸。人常厭勤而好逸。然凡事未有不成於勤而廢於逸。然則勤。 人之所當勉者也。逸。人之所當戒者也。仁以爲任。死而後已。用力豈可頃刻而廢乎。古語云。生處放敎熟。熟處放敎生。此語甚好。思慮紛紜。是熟處也。執持專一。 是生處也。生處宜習之使熟。熟處宜習之使生。此心術工夫切要之法也。 至於習之不已。生處日見其熟。熟處日見其生。到此。工夫方始有效矣。 執持專一四字。宜書諸壁。常常見之也。浦渚先生集卷之二十四 道村雜錄 上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82) 惜 福 修 行 惜: 아낄 석. 福: 복 복. 修: 닦을 수. 行: 갈 행 복을 아낀다는 뜻으로, 검소한 생활을 영위하여 복을 길이 누린다는 말. 이덕무의 '입연기(入燕記)'에 “각로(閣老= 재상급) 부항(傅恒)의 아들 부융안 (傅隆安)은 집안이 큰 부자인데, 지금 액부(額駙= 공주 배우자의 봉호)가 되었다. 부항이 죽은 뒤 부융안이 석복(惜福)을 하려고 집안에 있는 보완(寶玩)을 방매(放賣)하니, 가치가 은(銀) 80만 냥(兩)이었다.” 다는 얘기가 나온다. 석복은 더 넘칠 수 없는 사치의 극에서 그것을 덜어냄으로써 적어도 그만큼 자신의 복을 남겨 아껴두려는 행위였다. 송나라 여혜경(呂惠卿)이 항주(杭州) 절도사로 있을 때 일이다. 대통선사(大通禪師) 선본(善本)을 찾아가 가르침을 청했다. 선사가 말했다. "나는 그대에게 출가해서 불법을 배우라고 권하지는 않겠다. 단지 복을 아끼는 수행을 하라고 권하겠다(我不勸爾出家學佛 只勸爾惜福修行)." 석복수행(惜福修行)! 즉 복을 아끼는 수행이란 현재 누리고 있는 복을 소중히 여겨 더욱 낮추어 검소하게 생활하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에는 단단한 각오와 연습이 필요하다. 구체적 지침을 몇 가지 들어본다. 송나라 때 승상 장상영(張商英)이 말했다. "일은 끝장을 보아서는 안 되고, 세력은 온전히 기대면 곤란하다. 말은 다 해서는 안 되고, 복은 끝까지 누리면 못 쓴다(事不可使盡 勢不可倚盡 言不可道盡 福不可享盡)." '공여일록(公餘日錄)'에 나온다. 송나라 때 진단(陳慱)도 '사우재총설(四友齋叢說)'에서 말했다. "마음에 드는 곳은 오래 마음에 두지 말고, 뜻에 맞는 장소는 두 번 가지 말라(優好之所勿久戀 得志之地勿再往)." 비슷한 취지다. 한껏 다 누려 끝장을 보려 들지 말고 한 자락 여운을 아껴 남겨두라는 뜻이다. 명나라 진계유(陳繼儒)의 말은 이렇다. "나는 본래 박복(薄福)한 사람이니 마땅히 후덕(厚德)한 일을 행해야 하리. 나는 본시 박덕(薄德)한 사람이라 의당 석복(惜福)의 일을 행해야겠다(吾本薄福人 宜行厚德事 吾本薄德人 宜行惜福事)." '미공십부집(眉公十部集)'에 나온다. "일은 통쾌할 때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적막함을 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조화를 능히 부릴 수 있다. 말은 뜻에 찰 때 멈추어야 한다. 몸을 마치도록 허물과 후회가 적을뿐더러 취미가 무궁함을 느낄 수 있다(事當快意處能轉 不特此生可免寂廖 且能駕馭造化 言當快意處能住 不特終身自少尤悔 且覺趣味無窮)." 오종선(吳從先)의 '소창청기(小窓淸記)'의 말이다. 끝장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세상에서, 멈추고 덜어내는 석복의 뜻이 깊다. 조선일보[정민의 세설신어] [225] 고방서예명제(83)光風霽月(광풍제월) [요약] 光: 빛 광. 風: 바람 풍. 霽: 갤 제. 月: 달 월 비가 갠 뒤의 맑게 부는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마음이 넓고 쾌활하여 아무 거리낌이 없는 인품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황정견이 주돈이의 인품을 평한 데서 유래 함. [출전]《송서(宋書) 주돈이(周敦滯傳)》 [내용] 유교(儒敎)는 북송(北宋) 중기에 주돈이(周敦滯 : 1017-1073)가 나와서 태극도설(太極圖說)과 통서(通書)를 저술했고, 그 뒤에 정호(程顥)와 정이(程滯) 형제가 사서(四書 : 大學 中庸 論語 孟子)를 정하여 성도(聖道)를 밝히었으며, 주자(朱子)가 이것을 집대성(集大成)하여 형이상학(形而上學) 으로서의 경학(經學)을 수립하여 소위 송학(宋學)을 대성(大成) 시켰다고 알려지고 있다. 주돈이는 옛사람의 풍도가 있으며, 정사를 베풂에는 도리를 다 밝힌 사람이라고 한다. '연꽃은 군자다운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는 <애련설(愛蓮說)> 한 편은 글 안에 도학(道學)의 향기도 풍기지만 그의 인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소식(蘇軾)과 함께 북송(北宋) 시대의 시를 대표하는 황정견(黃庭堅 :1045-1105)은 주돈이에 대하여 깊은 경의를 나타내고 있으며, 그의 인간성에 대하여, “춘릉(春陵)의 주무숙(周茂叔)은 인품이 몹시 높고, 가슴속이 담박 솔직하여 맑은 날의 바람과 비갠 날의 달과 (基人品甚高 胸懷灑落 如光風霽月光風霽月)과 같다.” 고 평하고 있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示二子家誡)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도 경구가 된다. '사대부의 마음가짐은 광풍제월(光風霽月)과 같아 털끝만큼도 가려진 곳이 없어야 한다. 하늘과 사람에게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넓어지고 몸이 윤택해져 호연지기가 나온다'는 것이 편지 내용이다.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 "깨끗하게 가슴 속이 맑고 고결한 것, 또는 그런 사람"에 비유하여 사용되고 있다. 또 "세상이 잘 다스려진 일"을 뜻하기도 한다. 또 '제월광풍(霽月光風)', 줄여서 '광제(光霽)'라고도 한다. 愛 蓮 說 水陸草木之花,可愛者甚蕃。물과 육지에 나는 꽃 가운데 사랑할 만한 것이 매우 많다. 晉陶淵明獨愛菊;自李唐來,世人盛愛牡丹;진(晋)나라의 도연명(陶淵明)은 유독 국화를 사랑했고, 이(李)씨의 당(唐)나라 이래로 세상 사람들이 매우 모란을 좋아했다. 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濯清漣而不妖,中通外直,不蔓不枝,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 않고,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를 치지 아니하며, 香遠益清,亭亭靜植,可遠觀而不可褻玩焉。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予謂菊,花之隱逸者也;牡丹,花之富貴者也;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蓮,花之君子者也。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 噫! 菊之愛,陶后鮮有聞;蓮之愛,同予者何人;牡丹之愛,宜乎眾矣。 아! 국화를 사랑하는 이는 도연명 이후로 들어본 일이 드물고, 연꽃을 사랑하는 이는 나와 함께 할 자가 몇 사람인가? 모란을 사랑하는 이는 마땅히 많을 것이다. 고방서예명제(84)몽환포영(夢幻泡影) (夢: 꿈 몽. 幻: 변할 환. 泡: 거품 포. 影: 그림자 영) 꿈과 허깨비, 거품과 그림자와 같다는 뜻으로, 인생(人生)의 헛되고 덧없음을 비유(比喩ㆍ譬喩)해 이르는 말. [출전]《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내용] 이 성어는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끝부분에 사여게(四如偈)에 나오는 말로서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第三十二 應化非眞分 <金剛般若波羅蜜經 終> 須菩提 若有人 以滿無量阿僧祗世界七寶 持用布施 若有善男子 善女人 수보리 약유인 이만무량아승지세계칠보 지용보시 약유선남자 선녀인 發菩薩心者 持於此經 乃至四句偈等 受持讀誦 爲人演說 其福勝彼 발보살심자 지어차경 내지사구게등 수지독송 위인연설 기복승피 云何爲人演說 不取於相 如如不動 何以故 운하위인연설 불취어상 여여부동 하이고 一切有爲法 일체유위법 如夢幻泡影 여몽환포영 如露亦如電 역로역여전 應作如是觀 응작여시관 佛說是經已 長老須菩提 及諸比丘 比丘尼 優婆塞 優婆尼 불설시경이 장로수보리 급제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一切世間 天人 阿修羅 聞佛所說 皆大歡喜 信受奉行 일체세간 천인 아수라 문불소설 개대환희 신수봉행 "수보리야, 어떤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 일곱 가지 보물로 무한한 공간과 같은 세계를 가득 채우는 보시행을 하는 공덕으로 얻은 즐거움은 깨달은 마음을 일으키고 이 경전을 읽고 외우고 그것을 실천하며, 단지 네 구절만이라도 남을 위해 설명해 주는 사람이 얻은 것에 비할 수가 없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것을 설해야하는가? 상에 집착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말하되 동요하지 말라. 왜 그러한가? 이루어진 모든 법은 꿈이나 환영과 같고 이슬방울이나 번개와도 같으니 이와 같이 그것을 명상하고 지켜보라. 수보리존자 비구와 비구니, 재가 남녀신자, 천신과 아수라들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경을 듣고 모두들 크게 기뻐하며 믿음을 가지고 이 가르침을 실천에 옮겼다 [출처] 꿈과 허깨비, 거품과 그림자와 같다|작성자 몽촌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85) 業 精 於 勤 업 업, 정할 정, 어조사 어, 부지런할 근 [출전] 한유(韓愈)의 진학해(進學解) ‘학업은 부지런히 분발하는 데서 정밀해진다’는 뜻으로, 학문에 매진할 것을 강조하는 말. [내용] 이 성어는 진학해(進學解)의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그 내용의 일부는 다음과 같다. 국자선생이 아침 일찍 태학에 들어가 학생들을 불러 교사 아래에 세워 놓고 훈화하셨다. “학업은 부지런한 데서 정진되고 노는 데서 황폐해진다. 행실은 생각하는 데서 이루어지고, 마음대로 하는 데서 허물어진다. 지금 성군과 현명한 재상이 서로 만나 법령을 고루 펼쳐 흉악하고 사악한 무리들은 제게 해 내고 영준한 인재들을 등용하여 우대하고 있다. 조그만 장기라도 가진 자는 모두 수록되고, 한 가지 재주라도 이름이 난 자는 쓰이지 않음이 없다. 손톱으로 긁어내고 그물질하기도 하고 척결하기도 하여 때를 닦아내고 문질러 광을 내듯이 하고 있다. 대개 요행으로 선택된 자도 있겠지만 누가 재주는 많은데 드날려지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제군들은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현명하지 못함을 근심하지는 말고, 행실이 완성되지 못함을 근심할 것이지 관리가 공정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말라.” 國子先生, 晨入太學, 招諸生立館下, 誨之曰: 業精于勤, 荒于嬉. 行成于思, 毁于隨.方今聖賢相逢, 治具畢張, 拔去凶邪, 登崇俊良. 占小善者, 率以錄, 名一藝者, 無不庸. 爬羅剔抉, 刮垢磨光. 蓋有幸而獲選, 孰云多而不揚! 諸生; 業還不能精, 無患有司之不明, 行患不能成, 無患有司之不公. -이하 세계일보 [황종택의新온고지신] 업정어근(業精於勤) 당나라 때 대문장가인 한유(韓愈)가 “학업은 부지런히 분발하는 데서 정밀해지고 장난스럽게 하는 데서 거칠어진다. 행동은 신중하게 생각하는 데서 성공하고 게으른 데서 실패하게 된다(業精於勤 荒於嬉 行成於思 毁於隨)”고 말한 것은 공자의 솔선 모범적 정진이 영향을 미쳤다고 하겠다. 물론 스승의 가르치는 열정 못지않게 제자의 힘써 배우려는 열성이 있어야 학문적 성취가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예기(禮記)’에도 “옥은 가공하지 않으면 그릇을 이룰 수 없고,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삶의 이치 곧 도를 알 수 없다 (玉不琢 不成器 人不學 不知道)”고 했던 것이다. [출처] 학업이 정진되지 않음을 근심할 것이지 |작성자 몽촌 서예명제(86) 廉 者 大 賈 廉: 청렴할 렴, 者: 놈 자, 大: 큰 대, 賈: 장사 고 청렴은 천하의 큰 장사라는 뜻으로, 청렴한 자만이 큰일을 할 수 있다는 의미.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 이며 모든 선(善)의 원천이요. 모든 덕(德)의 근본이다. 청렴하지 않고는 목민을 할 수 있었던 자는 사람도 없다. 청렴이란 천하의 큰 장사와 같다. 그러므로 크게 탐하는 자는 반드시 청렴한 것이니 사람이 청렴하지 못한 것은 그 지혜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옛날부터 지혜가 깊은 자는 청렴으로써 교훈을 삼고 탐욕으로써 경계를 삼지 않은 자가 없었다. 廉者 牧之本務 萬善之源 諸德之根 不廉而能牧者 未之有也. 廉者 天下之大賈也 故 大貪必廉 人之所以不廉者 其智短也. 故 自古以來 凡智深之士 無不以廉爲訓 以貪爲戒. 목민심서(牧民心書)율기육조(律己六條)2. 청심(淸心) [출처] 청렴이란 천하의 큰 장사와 같다|작성자 몽촌 전국시대 제나라 위왕(威王)은 순우곤을 초나라에 보내 구원을 청하고 안으로는 정치를 개선해 나갔다. 먼저 즉묵(卽墨)땅을 지키는 대부를 불러 “경이 즉묵을 지키게 된 이래 소문이 안 좋았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알아봤더니 들녘은 개척이 잘 되고, 백성들은 살림이 넉넉해졌고, 관청 사무도 지체없이 잘 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경의 치적이 훌륭한데도 나쁜 소문이 난 것은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청렴하다”며 칭찬하고 일만 호의 땅을 주었다. 반면 아(阿) 땅의 대부는 칭찬하는 말이 들렸다. 위왕이 알아보니 정반대였다. 논밭은 묵고 백성의 살림은 피폐했다. 간신들을 가까이하고 환심을 샀던 것이다. 위왕은 아의 대부와 간신들의 목을 잘랐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87)持滿戒盈(지만계영) 持: 가질 지. 滿: 찰 만. 戒: 경계할 계. 盈: 찰 영 가득찬 것을 유지하는 것은 넘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 공자가어(孔子家語) 卷二에 나오는 이 내용은 좌우명(座右銘)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공자께서 노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구경했다. 사당 안에 의기(欹器), 즉 한쪽으로 비스듬히 기운 그릇이 놓여 있었다. 묘지기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그릇인가?" "자리 곁에 놓아두었던 그릇(宥坐之器)입니다. 비면 기울고, 중간쯤 차면 바르게 서고, 가득 차면 엎어집니다. 이것으로 경계를 삼으셨습니다." "그렇구려." 제자에게 물을 붓게 하니 과연 그 말과 꼭 같았다. 공자께서 탄식하셨다. "아! 가득 차고도 엎어지지 않을 물건이 어디 있겠느냐?" 제자 자로(子路)가 물었다. "지만(持滿), 즉 가득 참을 유지하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 "따라내어 덜면 된다." "더는 방법은요?" "높아지면 내려오고 가득 차면 비우며 부유하면 검약하고 귀해지면 낮추는 것이지. 지혜로워도 어리석은 듯이 굴고 용감하나 겁먹은 듯이 한다. 말을 잘해도 어눌한 듯하고 많이 알더라도 조금밖에 모르는 듯이 해야지. 이를 두고 덜어내어 끝까지 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방법을 행할 수 있는 것은 지덕(至德)을 갖춘 사람뿐이다." 孔子觀於魯桓公之廟,有欹器焉。(欹傾)夫子問於守廟者曰:「此謂何器?」對曰:「此蓋為宥坐之器。」孔子曰:「吾聞宥坐之器,虛則欹,中則正,滿則覆,明君以為至誡,故常置之於坐側。」顧謂弟子曰:「試註水焉。」乃註之,水中則正,滿則覆。夫子喟然嘆曰:「嗚呼!夫物惡有滿而不覆哉?」子路進曰:「敢問持滿有道乎?」子曰:「聰明睿智,守之以愚;功被天下,守之以讓;勇力振世,守之以怯;富有四海,守之以謙。此所謂損之又損之之道也。」孔子家語/卷二 三恕第九 의기(欹器)에 관한 얘기는 '순자(荀子)' '유좌(宥坐)'편에 처음 보인다. 한영(韓嬰)의 '한시외전(韓詩外傳)'에도 나온다. 이 그릇의 실체를 두고 역대로 많은 학설이 있었다. 그릇을 복원하려는 시도도 계속되었다. 원래 이 그릇은 농사에 쓰는 관개용(灌漑用) 도구였다. 약간 비스듬하게 앞쪽으로 기울어 물을 받기 좋게 되어 있다. 물을 받아 묵직해지면 기울었던 그릇이 똑바로 선다. 그러다가 물이 그릇에 가득 차면 훌렁 뒤집어지면서 받았던 물을 반대편으로 쏟아낸다. 마치 물레방아의 원리와 비슷하다. 환공은 이 그릇을 좌우(座右)에 두고 그것이 주는 교훈을 곱씹었다. 고개를 숙여 받을 준비를 하고, 알맞게 받으면 똑바로 섰다가, 정도에 넘치면 엎어진다. 가득 차 엎어지기 직전인데도 사람들은 욕심 사납게 퍼담기만 한다. 그러다가 한순간에 뒤집어져 몰락한다. 가득 참을 경계하라. 차면 덜어내라.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88) 明鏡止水 밝을 명/ 거울 경/ 멈출 지/ 물 수 출전(出典)- <장자(莊子)> 덕충부(德充符) '밝은 거울과 조용한 물'이라는 말로, 한 점의 티나 흔들림이 없는 거울과 물처럼 맑고 고요한 마음을 가리킴. 불경에 흔히 사념(邪念)이 없이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리켜서 명경지수라 말하기도 합니다. 장자 덕충부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신도가(申徒嘉)는 발을 자르는 형을 받은 불구자였는데, 정나라 재상 자산(子産)과 함께 백혼무인(伯昏無人)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자산이 신도가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대보다 먼저 선생님을 하직하고 나갈 때는 그대는 잠시 남아 있게. 그대가 먼저 나가게 되었을 때는 내가 잠시 남아 있을 테니.” 이튿날 두 사람은 또 같은 방에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자산은 또 어제와 똑같은 말을 하고는,“지금 내가 먼저 나가려 하는데 뒤에 남아 주겠지. 설마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그대는 재상인 나를 보고도 조금도 어려워하는 기색이 없는데, 그대는 자신을 재상과 같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신도가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밑에 재상과 같은 것이 있을 수 있겠소. 당신은 자신이 재상이란 것을 자랑하여 남을 업신여기고 있는 거요. 나는 이런 말을 듣고 있소. ‘거울이 밝으면 먼지가 앉지 못한다(鑑明則塵垢不止). 먼지가 앉으면 거울은 밝지 못하다. 오래 어진 사람과 같이 있으면 허물이 없다’고 말이오. 그 런데 지금 당신은 큰 도를 배우기 위해 선생님 밑에 다니면서 이 같은 세속적인 말을 하니 좀 잘못되지 않았소?” 공자의 고국이었던 노(魯)나라에 왕태(王駘)라는 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발을 잘리는 형벌을 받아 외짝 발만 있는 ‘올자(兀者, 외짝다리)’였으나, 워낙 학식과 덕행이 훌륭하여 평판이 높았습니다. 그 문하에 모여드는 제자도 많아 공자의 문하에서 배우는 사람의 수만큼 많았습니다. 그래서 공자의 제자인 상계(常季)는 다소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공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스승님, 저 외다리는 어떤 인물입니까?”그러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 분은 천지자연의 실상(實相)을 환히 들여다보고, 바깥 물건(外物)에 끌려서 마음을 옮기는 일도 없고, 만물의 변화를 자연 그대로 받아들여 도(道)의 본원을 지키는 분이니라.”“수양이 깊다고 해도 어째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요하기 때문이니라. 대개 사람들이 제 모습을 물에 비춰보려고 할 때에 흐르는 물보다 조용히 정지되어 있는 물을 거울로 삼을 것이다. 오직 변함없는 부동심(不動心)을 가진 사람이라면 남에게도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니라.” 이는 마음의 평정(平靜)한 상태를 고요히 머물러 있는 물(止水)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 ‘명경지수’란 말은 장자의 이 두 가지 이야기에서 나온 말인데, 이 말이 허(虛)와 무(無)의 본뜻은 없어지고 다만 고요하고 담담한 심정을 비유해서 쓰이게 되었습니다. 고방서예명제(89)浩 然 之 氣 클 호(浩)/ 그러할 연(然)/ 갈 지(之)/ 기운 기(氣) 출전(出典)- 맹자(孟子) "공손축(公孫丑)" 상(上) 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정기(精氣). ② 공명정대(公明正大)해 조금도 부끄러울 바 없는 도덕적 용기(勇氣). ③ (잡다한 일에서 벗어난) 자유롭고 느긋한 마음. 맹자(孟子)는 제자 공손축(公孫丑)과 함께 진정한 용기(勇氣)와 부동심(不動心)에 대해 문답하게 되었는데, 그 대화(對話)가 거의 끝날 무렵 공손축(公孫丑)은 이렇게 물었다. "감히 묻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디에 장점(長點)이 있으십니까?" "나는 말을 알며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 "감히 묻겠습니다. 무엇을 호연지기라고 합니까?"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의 양상은 지극히 크고 굳세니, 곧게 하는 것으로써 길러서 해침이 없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꽉 차게 된다. 그 기(氣)의 양상은 의(義)와 도(道) 에 짝이 되는 것이니, 이것이 없으면 쭈그러든다. 이는 거듭되는 의(義)가 만들어 내는 것이니 하나의 의(義)가 엄습하여 취하는 것이 아니다. 행한 것이 마음에 만족스럽지 아니함이 있으면 쭈그러든다. 나는 그러므로 '고자(告子)는 애당초 의(義)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 것이니, 그 의(義)를 바깥에 있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반드시 호연지기를 기르는 것을 일삼으면서 효과를 미리 기대하지 말고, 마음에 잊지도 말며, 조장하지도 말아서 벼의 싹을 자라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뽑아 놓은 자가 있었는데, 비실거리며 돌아와 자기집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피곤하다. 나는 벼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했다'고 하자 그 아들이 달려가서 보니 벼의 싹은 말라 있었다. 천하(天下)에는 벼의 싹을 도와서 자라게 하지 아니하는 자가 적다. 유익(有益)함이 없다고 생각해서 내버려두는 자는 벼의 싹에 김을 매지 아니하는 자이고, 도와서 자라게 하는 자는 벼의 싹을 뽑는 자이니, 다만 유익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또한 해치는 것이다." 호연지기란 인간의 본래 모습을 실현할 수 있는 호연(浩然)한 기운을 말한다. 호연지기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인간의 본성(本性) 그 자체가 얼마나 고귀(高貴)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를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은 곧은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과 의(義)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인데, 이 두 가지를 조금도 게을리하지 말고 늘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성급해서는 안 된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0) 自 强 不 息 自: 스스로 자. 强: 강할 강. 不: 아닐 불. 息: 쉴 식 스스로 힘을 쓰고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쉬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최선을 다하여 힘쓰고 가다듬어 쉬지 아니하며 수양(修養)에 힘을 기울여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의미. [출전]《역경(易經= 주역) 건괘(乾卦) 상전(象傳)》 동양의 바람직한 인간상인 군자(君子)는 항상 스스로 돌아보고, 모든 문제를 자기에게서 찾는 사람이었다. 남 핑계 대지 않고 묵묵히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다. 『주역(周易)』 64괘(卦) 중 첫 괘인 ‘건괘(乾卦)’에는 “하늘의 운행은 건장하니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강건하여 쉼이 없어야 한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는 말이 나온다. ‘평생 쉬지 않고 스스로 연마하라’는 뜻을 담은 ‘자강불식(自强不息)’이라는 말은 중국 최고의 명문 칭화(淸華)대학의 교훈이기도 하다. 『 중용 』은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군자는 자기를 바르게 할 뿐 다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고, 원망도 하지 않는다(正己而不求於人, 則無怨).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아래로는 사람을 탓하지 아니한다 (上不怨天, 下不尤人)’고 했다. ‘화살이 정곡을 맞히지 못하면 과녁을 탓하지 말고, 자기 몸의 자세를 바로잡으라(失諸正鵠, 反求諸其身)’는 충고다. 노자(老子) 33장 역시 자기 단속의 중요함을 설파하고 있다. ‘남을 아는 것을 지혜라고 한다면, 자기 스스로 아는 것은 현명하다고 할 것이다(知人者智, 自知者明). 남을 이기는 것을 일컬어 힘이라고 한다면, 스스로 이기는 것은 강이다(勝人者有力, 自勝者强)’. 뛰어난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아는 사람이요, 자기를 절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 글귀 뒤에는 ‘스스로 족함을 아는 것이 바로 부자(知足者富)’라는 유명한 구절이 뒤따른다. 전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자병법(孫子兵法)은 승패의 원인을 항상 자기에게서 찾았다. ‘이길 수 없는 것은 나에게 달려 있고, 이길 수 있는 것은 적에게 달렸다 (不可勝在己, 可勝在敵)’. ‘홀로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고, 홀로 잘 때에도 이불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獨立不慙影, 獨寢不慙衾)’ [출처] 평생 쉬지 않고 스스로 연마하라|작성자 몽촌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91)해납백천(海納百川) [요약] (海: 바다 해. 納: 바칠 납. 百: 일백 백. 川: 내 천) 바다는 모든 하천을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바다가 넓은 것은 모든 하천을 구분하지 않고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海納百川은 이와 같이 다른 사람의 잘못을 탓하지 않고 받아들이다보면 언젠가는 바다가 된다는 말이다. [출전]《通鑑節要(통감절요)》 [내용] 秦(진)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던 이사(李斯)가 종실 대신이 진왕(후에 진시황)에게 다른나라에서 들어와 벼슬하는 사람을 쫓아내자고 간하여 버림을 받게 되자, 진왕에게 글을 올려 말하는 가운데 나오는 이야기다. “.... 신이 듣건대 태산은 흙덩이를 사양하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큼을 이루고, 河海(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깊음에 나아가며(聞太山이 不讓土壤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不擇細流故로), 왕 노릇 하는 사람은 무리를 물리치지 않는 까닭에 능히 그 덕을 밝힌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오제삼왕이 대적할 사람이 없었던 까닭입니다. 이제 이에 백성을 버려서 적국을 돕고, 빈객을 물리쳐서 제후를 섬기게 하시니, 이른바 도적에게 무기를 빌려주고, 도둑에게 양식을 보내 준다는 것입니다.” 하였다. 왕은 이사를 불러 그 관직을 회복시키고, 빈객을 쫓으라는 명령을 거 두었으며, 마침내 이사의 계책을 써서 천하를 겸병하였다. 臣은 聞太山이 不讓土壤故로 能成其大하고 河海不擇細流故로 能就其深하고 王者不却衆庶故로 能明其德이라하니 此는 五帝三王之所以無敵也라 今에 乃棄黔首하여 以資敵國하고 却賓客하여 以業諸侯하니 所謂藉寇兵而齎盜糧者也니이다 王이 乃召李斯하여 復其官하고 除逐客之令하고 卒用李斯之謀하여 兼天下하다 고방서예명제(92)機不可失(기불가실) [요약] (機: 틀 기. 不: 아닐 불. 可: 옳을 가. 失: 잃을 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유사]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 機不可失, 時不再來(기불가실, 시불재래; 시기를 놓치지 말아라, 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출전]《구당서(舊唐書) 권67 이정전(李靖傳)》 [내용] 이정(李靖)은 당나라 초기의 장군으로서, 당나라의 개국 공신이기도 하다. 당나라 고조(高祖) 이연(李淵)이 제위에 오른 지 얼마 되지 않던 때, 이정은 황제에게 장강 중부지역을 차지하고 황제라 칭하고 있던 소선(蕭銑)을 평정해야한다고 건의하였다. 이에 이연은 이정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카 이효모(李孝慕)를 통수(統帥)로 삼고 이정을 부통수로 삼아 정벌에 나서도록 하였다. 서기 621년 8월, 이효모와 이정은 군대를 이끌고 기주(夔州;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에 도착하였다. 소선은, 때가 가을철 만조시기이라 강물이 불어나 삼협(三峽)의 물길이 매우 위험하였기 때문에 당나라 군대가 감히 공격해 오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소선은 이에 대하여 아무런 방책을 강구하지 않았다. 당나라 장수들 가운데에도, 만조시기의 물길이 위험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았다. 그들은 모두 만조가 지난 다음에 소선의 본거지인 강릉(江陵)을 공격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정은 군사 작적은 신속함을 생명으로 한다는 생각으로, 만조만을 믿고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있는 소선의 허점을 찔러, 이때가 가장 좋은 기회로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兵貴神速, 機不可失). 이효모는 이정의 의견을 따르기로 하고, 군대를 이릉(夷陵)으로 진격시켰다. 소선은 급보를 듣고 장군 문사홍(文士弘)을 보내 청강(淸江) 일대에 주둔하며 적을 막도록 지시하였다. 이에 이효모가 공격을 하려고 하자 이정이 말했다. "문사홍은 소선 휘하의 맹장(猛將)이며, 그의 부하들은 매우 용맹합니다. 그들은 이제 막 청강에 도착한 까닭에 사기가 높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은 그들을 이길 수 없을 것이니, 그들의 사기가 좀 떨어졌을 때 공격하는 것이 좋을듯합니다." 이효모는 이정의 말을 듣지 않고 직접 군대를 이끌고 공격에 나섰다. 그 결과, 문사홍에게 크게 패하였다. 문사홍의 군대를 승기를 잡고 당나라 병사들을 추격하여 그들이 달아나면서 버리고 간 각종 병기나 수레들을 끌고 갔다. 이정은 군사들을 데리고 나가 이효모를 맞아들이는 한편, 적군 병사들이 무거운 노획물들을 지고 있는 것을 보고, 즉각 반격을 하여 그들을 물리치고 대세를 만회하였다. 이효모와 이정은 이 분위기에 힘입어 곧장 강릉 성까지 쳐들어갔다. 소선은 여러 차례 반격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성문을 열고 투항하였다. 고방서예명제(93)點滴穿石(점적천석) 點 점 점, 滴 물방울 적,穿 뚫을 천,石 돌 석 치마의 빗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힘이라도 그것이 거듭되면 예상하지 못했던 큰 일을 해냄을 이르는 말 동이한 사자성어로 수적천석(水滴穿石)이 있습니다. 수전천석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뜻으로 물방울이라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종내엔 돌에 구멍을 뚫듯이, 작은 노력이라도 끈기 있게 계속하면 큰 일을 이룰 수 있음의 비유. 작은 것이라도 모이고 쌓이면 큰 것이 됨의 비유. 큰 힘을 발휘함의 비유. 북 송(北宋:960∼1127)때 숭양 현령(崇陽縣令)에 장괴애(張乖崖)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관아를 돌아보다가 창고에서 황급히 튀어나오는 한 구실아치를 발견했다. 당장 잡아서 조사해 보니 상투 속에서 한 푼 짜리 엽전 한 닢이 나왔다. 엄히 추궁하자 창고에서 훔친 것이라고 한다. 즉시 형리(刑吏)에게 명하여 곤장을 치라고 했다. 그러자 그 구실 아치는 장괴애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했다. 이건 너무 하지 않습니까? 사또, 그까짓 엽전 한 푼 훔친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이 말을 듣자 장괴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네 이놈! 티끌 모아 태산[塵合泰山]이란 말도 못 들었느냐? 하루 한 푼[一文]이라도 천 날이면 천 푼이요, '물방울도 끊임없이 떨어지면 돌에 구멍을 뚫는다[水滴穿石]'고 했다 장괴애는 말을 마치자마자 층계 아래 있는 죄인 곁으로 다가가 칼을 빼어 목을 치고 말았다. 이 같은 일은 당시 상관을 무시하는 구실아치의 잘못된 풍조를 고치려는 행위였다고 "옥림학로(玉林鶴露)"는 쓰고 있다. '수적천석'은 우리 나라의 속담(俗談) '낙숫물이 댓돌[臺石]을 뚫는다'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고사 성어임. -구실아치- 관아의 벼슬아치 밑에서 일을 보는 하급관리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4)절차탁마(切磋琢磨) 切 : 끊을 절. 磋 : 갈 차. 琢 : 쫄 탁. 磨 : 갈 마 옥이나 돌을 자르고 갈고 쪼고 닦아서 빛을 낸다는 뜻으로 부지런히 '학문과 덕행'을 갈고 닦는다는 말. 절차탁마는 원래 '시경'에 실려있는 시의 한구절입니다. '시경' 위풍 기욱편에 '학문'과 '덕'을 쌓은 군자를 찬양하며 시를 지어 부른 구절이 있습니다. 有匪君子 아름다운 군자여 如切如磋 뼈와 상아를 깎고 갈아 놓은 듯 如琢如磨 구슬과 돌을 쪼고 갈아 놓은 듯 절차는 뼈나 뿔을 다듬는 것을 말하는데 학문을 닦음을 비유함이요, 탁마는 덕을 닦음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이 구절이 고사성어로 유명하게 된 것은 공자와 그의 제자 자공의 문답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자공이 묻기를 "가난하면서도 아첨함이 없고 부유하면서도 교만함이 없다면 어떻겠습니까?"공자가 대답하기를 "괜찮기는 하나, 가난하면서도 도를 즐기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은 못하다."다시 자공이 덧붙여 말하기를 "시경에 절차탁마라고 한 말씀이 이를 두고 한말이겠군요." 이말을 들은 공자가 크게 기뻐하며 "너와 함께 시경을 말할 수있게 되었구나 과거의 것을 알려주면 미래의 것을 안다고 했듯이, 너야말로 하나를 듣고 둘을 알수 있는 인물이로다." 하였다고 합니다. 적우침주(積羽沈舟)는 전국책 위책에 나오는 말이다. 적(積)은 벼화(禾)에 맡을 책(責)을 짝지은 글자로서, 자신이 볏단을 책임지고 맡아 '쌓는다'는 의미로 쓰였다. 전국시대 때 동주(東周) 왕조가 나날이 쇠퇴해지자 각 제후들은 천하를 다투기 시작했다. 이 가운데 진(秦)나라의 세력이 가장 강했다. 이에 여섯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자는 합종책이 제기 되었다. 진나라 재상 장의는 합종책을 깨기 위해 여섯 나라 중의 하나인 위나라로 건너갔다. 장의는 위나라 애왕에게 제나라와 초나라 등을 정복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애왕은 머뭇거렸다. 여러 해 기다리던 진나라는 위나라로 쳐들어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일 년 후 위나라는 다시 제나라의 침범을 받고 패했다. 이때 장의는 다시 애왕을 설득했다. “내가 듣기에는, 새의 깃털도 쌓이면 배가 가라앉고(積羽沈舟), 많은 사람들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했습니다. 위나라는 여러 번의 패전으로 나라가 위태롭습니다.” 결국 애왕은 합종을 탈퇴하고 진나라에 연횡을 청했다. 이때부터 적우침주는 '작은 힘도 합하면 큰 힘이 된다'는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5)海不讓水(해불양수) 바다 해. 아니 불. 사양 양. 물 수. 바다는 강물을 사양하지 않고 받아 들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많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그 인연 안에서 함께 생사고락을 하며 살아 갑니다 그런데 때로는 내게 아무런 해를 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막연하게 미워지고 보기 싫어지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시기하고 좋지 않은 평가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해불양수(海不讓水)라는 이야기 들어보셨죠? 바다는 강물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물은 깨끗한 물이라고 해서 환영하고 더러운 물이라고 해서 물리치지 않습니다 물은 그 어떤 환경을 구분하지 않고 자기에게 오는 모든 물은 다 받아드립니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정화를 시켜나갑니다 만약 우리들의 삶이 물과 같은 삶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분명 성인이 되겠지요? 보기 싫던 사람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그 사람을 위해 울어주고 기도 해주며 사랑을 나눠주는 나 자신이 삶이 될 수 있다면 누구보다 복된 사람은 "나" 일 것입니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6)流芳百世(유방백세) 流(흐를 유,류) 芳(꽃다울 방) 百(일백 백) 世(대 세) 훌륭한 명성(名聲)을 후세(後世)에 영원(永遠)히 전함을 비유한 말이다. [出典] -진서(晉書) 권98 반역전(叛逆傳)-환온(桓溫). 동진(東晋) 시대, 진(晋)나라와 북방 이민족들은 서로 끊임없는 마찰을 빚어왔다. 서기 354년, 환온(桓溫)은 보병과 기병 4만을 이끌고 북벌에 나서 전진(前秦)을 공격했다. 함락한 지역의 한족(漢族)들의 협조로 그들의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섬서 지역에서 전진의 주력부대인 5만 대군을 물리치며 도읍인 장안(長安)까지 압박해 들어갔다. 환온의 세 차례에 걸친 북벌은 저족(저族), 강족(羌族), 선비족(鮮卑族) 등 북방 이민족들에게 일대 타격을 가하였다. 서기 363년, 환온은 대사마(大司馬)에 임명되었다. 뒤이어 동진 조정에서는 그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였으니, 그의 지위는 제후들보다 위에 있게 되었다. 환온은 군사대권을 장악하고 중원(中原) 회복을 생각하며, 군사적 승리를 꾀하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함으로써 자신의 명망을 높여서 동진의 제위(帝位)를 빼앗아 스스로 황제가 되려고 하였다. 환온은 "대장부가 훌륭한 명성을 후세에 전할 수 없다면, 죽은 뒤 나쁜 이름이라도 세상에 남겨야 한다 [大丈夫不能流芳百世, 亦當遺臭萬年]"라는 말을 하였다. 서기 373년, 61세의 환온은 병을 앓으면서도 이러한 꿈을 버리지 않았으나, 재상(宰相) 사안(謝安)의 저지로 야심을 이루지 못했다. * 族(겨레 족) 羌(종족 이름 강) 鮮(고울 선) 卑(낮을 비). [類似語] -萬古流芳(만고유방) [反意語]-遺臭萬年(유취만년:오명(汚名)을 오래도록 후세에 남김).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7)反求諸己(반구저기) 돌이킬 반 / 구할 구 / (어조사) ~에서 저 / 몸 기 - 돌이켜 자신에게서 찾는다 맹자 '이루 離婁' 제4장에 나온다. 孟子曰(맹자왈) 맹자가 말했다 愛人不親(애인불친)이어든 反其仁(반기인)하고 사람을 사랑하는데 친해지지 않으면 자신의 어진 태도에 문제가 없는지 돌이켜 보고 治人不治(치인불치)어든 反其智(반기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데 다스려지지 않으면 자신의 지혜로움에 대해 반성할 것이며 禮人不答(예인부답)이어든 反其敬(반기경)이니라 사람을 예로서 대하는데도 응답이 없으면 자신의 공경함을 돌이켜 보아야 한다 行有不得者(행유부득자)어든 皆反求諸己(개반구저기)니 행하고 얻지 못하는 게 있거든 모두 돌이켜 자기에게서 구할 것이니 其身正而(기신정이)면 天下歸之(천하귀지)니라 그 몸이 바르면 천하가 돌아오는 것이니라 '반구저기(反求諸己)' 는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을 탓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돌이켜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이다. 이 구절은 맹자(孟子) 공손추편에도 나오는 글귀로 '돌이켜서 자기에서 찾을 따름'이라는 의미다. 모든 일을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되고 자기 자신에서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원문은 '발이부중(發而不中) 불원승기자(不怨勝己者) 반구저기이이(反求諸己而已)'로 '활을 쏴 적중하지 않아도 나를 이기는 자를 원망하지 않고 돌이켜서 자기에서 찾을 따름이다'라고 해석된다.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고방서예명제(98)道不遠人(도불원인) 道:길 도 不:아닐 불 遠:멀 원 人:사람 인 道는 사람의 본성일 뿐 먼 곳에 있지 않다 중용<제13장> (자왈)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道不遠人(도불원인)하니 :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니 人之爲道而遠人(인지위도이원인)이면 : 사람이 도를 행하되 사람을 멀리 한다면 不可以爲道(불가이위도)니라 : 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詩云伐柯伐柯(시운벌가벌가)여 : 시경에 말하기를, “도기 자루를 찍어내나니 도끼 자루를 찍어내나니, 其則不遠(기칙불원)이라하니 : 그 법은 멀지 않도다.” 고 하셨다. 執柯以伐柯(집가이벌가)하되 : 도끼 자루를 잡고서 도기 자루를 찍어내되 睨而視之(예이시지)하고 : 대중하여 보고 猶以爲遠(유이위원)하나니 : 오히려 멀다고 생각한다. (고)로 : 그러므로 君子(군자)는 : 군자는 以人治人(이인치인)하다가 : 사람으로서 사람을 다스리다가 改而止(개이지)니라 : 고쳐져야 그만둔다. 忠恕違道不遠(충서위도불원)하니 : 충과 서는 도에서 어긋남이 멀지 아니하니, 施諸己而不願(시제기이불원)을 : 자기에게 베풀어짐을 원하지 않는 것을 亦勿施於人(역물시어인)이니라 : 또한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君子之道四(군자지도사)에 : 군자의 도가 넷인데 丘未能一焉(구미능일언)이로니 : 구는 하나도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子(소구호자)로 : 자식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以事父(이사부)를 : 아버지를 섬기는 일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臣(소구호신)으로 : 신하에게 요구하는바로서 以事君(이사군)을 : 임금 섬김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弟(소구호제)로 : 아우에게 요구하는 바로써 以事兄(이사형)을 : 형님 섬김을 未能也(미능야)하며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所求乎朋友(소구호붕우)로 : 친구에게 요구하는 바를 先施之(선시지)를 : 먼저 베풀어 주는 일을 未能也(미능야)로니 : 아직 다하지 못하였다. 庸德之行(용덕지행)하며 : 용덕을 행하며 庸言之謹(용언지근)하여 : 용언을 삼가 有所不足(유소불족)이어든 : 부족한 바가 있으면 不敢不勉(불감불면)하며 : 감히 힘쓰지 아니치 못하며 有餘(유여)어든 : 남음이 있으면 不敢盡(불감진)하여 : 감히 다해버리지 않아서 言顧行(언고행)하며 : 말은 행동을 돌아보고 行顧言(행고언)이니 : 행동은 말을 돌아보는 것이니 君子胡不慥慥爾(군자호불조조이)리오 : 군자가 어찌 부지런히 힘쓰지 않겠는가?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서예명제(99)時不可失(시불가실) (時: 때 시. 不: 아닐 불. 可: 옳을 가. 失: 잃을 실) 한 번 지난 때는 두 번 다시 오지 아니하므로, ①때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말 ②좋은 시기(時期)를 잃어버려 서는 안 된다는 말. [유사] 물실호기(勿失好機; 좋은 기회(機會)를 놓치지 말 것). [출전]《제4편 주서(周書) 제1장 태서 상(泰誓上)》 [내용] 중국 은(殷)나라의 주왕(紂王)은 원래 총명한 인물이었으나, 애첩 달기의 미색에 빠진 뒤로는 주지육림을 일삼아 국정을 돌보지 않음으로써 백성들의 삶이 황폐해졌다. 이에 희발(姬發)이 군사를 일으켜 주왕을 벌하고 새로 주(周)나라를 세웠으니, 그가 바로 무왕(武王)이다. 은나라 정벌에 나선 무왕은 승리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군사들을 모아 놓고 자신의 정당성을 훈시하였는데, 그 내용이 주서(周書) 태서(泰誓)편에 기록되어있다. " .... 주왕은 신하가 億萬人이 있으나, 億萬人의 마음은 각각 다르다. 나는 신하를 三千을 두었으나, 마음이 하나이다. ②상나라의 죄는 가득 차고 넘쳐 하늘이 벌하도록 명하시어 그를 쳤으니 (商罪貫盈, 天命誅之), 내가 하늘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죄가 같아질 것이오. 이 소인은 새벽부터 밤까지 공경하고 두려워하며, 돌아가신 아버지 문왕(文王)의 명을 받았으니 하느님에게 제사를 지내고, 큰 땅에도 제사를 지냈으며, 그대 무리들을 거느리고 하늘의 벌하는 것을 이루려 하는 것이오. 하늘은 백성들을 가엾게 여기고 있으니, 백성들이 바라는 바를 하늘은 반드시 그대를 따를 것이오. 바라건대 그대들은 나 한 사람을 도와 영원히 온 세상을 맑게 하시오. 때가 되었으니 이를 잃어서는 아니 되오 (爾尙弼予一人, 永淸四海. 時哉, 弗可失)! ......受有臣億萬,惟億萬心。予有臣三千,惟一心。 商罪貫盈,天命誅之,予弗順天,厥罪惟鈞。 予小子夙夜祗懼,受命文考,類于上帝,宜于冢土,以爾有眾,厎天之罰。 天矜于民,民之所欲,天必從之。爾尚弼予一人,永清四海。 時哉!弗可失。! 고방서예명제(100)法古創新(법고창신) [자해] 法 법 법, 古 옛 고, 創 비로소 창, 新 새 신. 논어 위정편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공자왈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알면 가히 스승이 될 수 있다." 子曰 "溫故而知新, 可以爲師矣." * 溫 : 익힐 온 (여기서 익히다는 "習"이 아니고, 따뜻하게 데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溫故而知新, 또는 줄여서 온고지신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요. 그런데 <온고지신> 이 말과 더불어 <법고창신>이라는 말도 많이 씁니다. 서예나 문장, 예술을 즐기시는 분들도 자주 Tm는 말이지요. 법고창신.... 그 참 뜻과 출전을 알아보지요. 法古創新이란 연암 박지원이 쓴 <楚亭集序(초정집서)>에 나오는 말로써, 글자대로 풀이하자면 한마디로 <옛 법도에 맞게 하되,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라는 뜻이죠. -[한문의 멋]카페(南 村님의 글) 다음은 민속학자 주강현선생 글입니다. -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낼지라도 능히 전아(典雅)할 수 있다면, 금문(今文)이 고문과 같아지는 것이다. (중략) 박연암은 과거의 양한(兩漢), 또는 성당(盛唐)의 글을 무분별하게 모방 표절하는 의고적(擬古的)인 당시 문단풍조를 비판하고, 작가가 처한 현실을 배경으로 한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문학을 쓸 것을 주장하였다. 그렇다고 하여 박연암이 고문을 전적으로 부정한 것은 아니었으니, 고문을 본받되 현실에 맞도록 창조적으로 수용하여 써야한다는 이른바 '선변(善變)의 문학'을 제시하였다. 선변의 문학을 이루는 구체적 방법으로 그는 법고창신(法古創新)과 합변지기(合變之機)를 논하였다. 법고창신은 [楚亭集序]에서 따온말. 그는 법고(法古)에 기울지도 않았고, 창신(創新)에 기울지도 않았다. 지나친 법고와 창신을 모두 부정하고 비판하였다. 그가 긍극적으로 추구한 것은 선변을 통한 법고에 있었다. 편벽된 '법고'와 '창신', 즉 맹목적인 '법고'와 '법고'를 전혀 무시한 '창신' 모두를 비판하고는, "진실로 옛것을 본받으면서도 변할 줄 알고, 새것을 창안해낼지라도 능히 전아(典雅)할 수 있다면, 금문(今文)이 고문과 같아지는 것이다"고 하였다. 그의 합변지기는 이렇다. 글자를 사졸(士卒)에, 뜻을 장수에 비유하고, 글쓰는 일 또한 장수가 사졸을 지휘하여 전투를 수행하는 것에 비유하였다. 합변지기를 잘하면, 아무리 비속한 말일지라도 휼륭한 문장을 이룰수 있다. 이 합변지기의 합변은, '부분적인 요소를 합쳐서 부분적인 요소들이 원래 지니지 않았던 새로운 뜻을 만들어내는 변화'라고 할수 있다. '선변'과 통하는 말이니, 그는 '합변지기'를 '법고'와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즉, 옛것을 배워 그것에 집착하기만 하여서는 결코 휼륭한 글을 쓸 수없고, 옛것을 현실에 알맞게 변화시켜 쓸때 비로소 새롭고 휼륭한 글이 창조될 수 있다고 하였다. 고방서예관 古方 010-8344-9887 인터넷 다음카페 [ 영일서단,해맞이마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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