行天下之大道
예레 26,1-9; 마태 13,54-58 / 연중 제17주간 금요일; 2024.8.2.
유가의 스승으로 일컬어지는 맹자가 남긴 글에, “立天下之正位하고 行天下之大道하되, 得志하면 與民由之하고 不得志하면 獨其道” (滕文公章句下 2편)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풀이하면, “천하의 가장 올바른 자리에 서고 천하의 큰 도를 행하되, 뜻을 얻으면 백성과 더불어 말미암고, 뜻을 얻지 못하면 홀로 그 도를 행하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천하의 큰 도는 옳은 일을 뜻합니다. 유가에서 성품이 어질고 학문이 깊은 선비를 대장부(大丈夫) 또는 군자(君子)라 하는데, 이 말씀은 대장부와 군자가 나아갈 길을 이르는 말씀으로 유가의 전통으로 선비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 왔습니다. 백성으로부터 인정을 받건 받지 못하건 옳은 길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유가의 대장부나 군자에 상응하는 개념이 유다교에서는 예언자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이 일이 곧 천하의 대도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둔 내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또 내가 너희에게 잇달아 보낸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사실 너희는 듣지 않았다. – 나는 이 도성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예레 26,4-6)
이렇게 예레미야 예언자도 백성의 악행을 경계하는 말씀을 전하자 당시 유다 왕국의 사제들과 관변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죽이려고 했습니다.(예레 24,8ㄴ) 이런 살벌한 위협 속에서도 예언자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했습니다. 죽을지언정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집 뜰에 서서, 주님의 집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전하여라.”(예레 26,2ㄴ)
메시아로 오신 예수님께서도 예언자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면서, 찢기고 다친 백성을 고쳐주고 마귀 들린 백성을 해방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을 본 고향 사람들이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어려서부터 보아 온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을 믿지 못하는 고향에서는 기적을 거의 일으키실 수 없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기적을 일으킨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고향을 떠나 주로 갈릴래아 지방에서, 때로는 시돈이나 띠로 같은 이방인 지역에까지 가셔서 복음을 전하시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 결과 제자들을 얻으실 수 있었고, 하느님 나라를 믿고 기다리는 하느님 백성을 모으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유다교의 지배층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중상모략하며 적대시하였으므로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부활시키셨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이나 이들의 증언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시기하고 중상모략하던 적대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듣고 믿게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사는 이들을 일컬어 민중이라고 부릅니다. 성경에서는 아나빔, 즉 ‘하느님의 경건한 이들’이라고 하지요. 가난하지만 경건했던 이들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살아 계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은 하느님에 의해서, 민중 속에서 부활하신 겁니다. 이 부활 신앙이 지난 2천 년 동안 모든 인류에게 퍼졌습니다. 이에 대한 가시적인 표상이 교회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느님을 믿고 그 나라의 실현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계십니다. 확신과 인내와 용기를 주고 계십니다.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위해 봉헌하는 삶은 결코 버림받지 않는다는 확신과 인내와 용기의 힘입니다.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도 여전히 사회악은 기승을 부리고 있고 악인들과 속물들은 활개치고 있습니다. 권세나 재물, 지식이나 지위를 차지한 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놓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씁니다. 그들이 보이는 행태가 어쩌면 그리도 허접한지 보는 국민들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는 지경입니다. 권력으로 얻을 수 있는 토지개발 정보를 미리 빼내서 부동산 투기를 하지 않나, 주식 가격을 조작해서 서민 투자자들의 재산을 갈취하지 않나, 법인 카드를 증빙 서류도 없이 한도를 초과하여 사사로이 쓰지 않나, 입으로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사적인 이익을 탐욕스럽게 챙깁니다. 부자들에게는 세금을 덜어주고 서민들에게 세금을 더 물리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 권력을 편파적으로 남용하고 있는 검찰의 행태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가관입니다.
그래서 가난하고 힘 없는 이들을 위해서 옳은 일에 힘쓰는 의인들은 고달프고 팍팍한 길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그 옛날 예수님 시대와 마찬가지로, 악인들과 속물들 그리고 범인들과 의인들이 뒤섞여서 살아가는 가운데 선과 악이 부딪치는 현장인 겁니다. 그래서도 예언자들이 걸어간 길,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그 길은 천하의 대도, 즉 하느님의 말씀을 올곧게 전하며 실천하는 길입니다.
“立天下之正位, 行天下之大道하되 得志하면 與民由之하고 不得志하면 獨其道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