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적 회심을 위하여
신명 4,1-8; 야고 1,17-27; 마르 7,1-23 / 연중 제22주일; 2024.9.1.
⒈ 생태적 회심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에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전 세계의 모든 가톨릭 신자들에 생태적 회심을 하도록 요청하고, 그에 대한 보속으로 생태계 회복을 위해 투신해야 한다고 당부한 바 있습니다. 그 회심과 보속의 뜻으로 매년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해 기도하는 날’로 선포하였습니다. 이는 동방정교회 총대주교가 1989년에 시작한 같은 이름의 날을 가톨릭교회도 수용한 결과입니다. 이에 개신교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이 모인 세계교회협의회도 함께 하면서 이 날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함께 참여하는, 에큐메니칼 프로그램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동방정교회, 로마 가톨릭교회 그리고 개신교회, 이 삼자는 9월 1일부터 생태와 환경 보호의 수호 성인인 성 프란치스코를 기억하는 10월 4일까지 ‘창조 시기’로 정하고 피조물을 보호하기 위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할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물론 온 인류에게 촉구해 왔습니다.
2. 인류 존속을 위한 회심
창조 시기는 하느님께서 이루신 창조 사업을 묵상하고 기리는 시기로서, 파괴된 창조 질서가 회복되도록 기도하고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고 과학적으로 말하라면, 사실 위협받는 것은 생태계가 아니라 인류의 생존입니다. 아무리 생태계의 균형이 깨어져도 장기간의 세월이 흐르면 자연은 그 균형을 복원합니다. 이제까지 조성된 지 45억년이나 되는 지구의 복원력이 그만큼 큽니다. 문제는 그 복원 기간이 채워지기 전에 인류가 멸종할 수도 있다는 가공할 가능성입니다. 인류는 자기 생존도 걱정하지 않고 마구 지구 자원을 수탈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식물의 다양성을 훼손시켜 품종을 획일화시키는가 하면 동물의 서식지를 파괴함으로써 동물들과는 아무런 관련 없이 살아가고 있던 바이러스를 스스로 끌어들였고, 게다가 원자폭탄이나 수소폭탄처럼 대량으로 인명을 살상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를 개발하고 유지하는 놀랍도록 어리석은 생명체입니다. 그래서 생태계를 위한 회심이라기보다는 인류 존속을 위한 회심이라야 맞습니다. 특히 지금까지 이룩한 인류 물질문명을 선도해 온 그리스도교는 피조물을 지배하라는 창세기 말씀을 돌보라는 뜻으로 알아듣지 않고 마구 수탈하고 착취함으로써 환경 오염과 생태계 파괴에 가장 큰 책임이 있기때문에 이 회심을 통해서 인류 앞에 보속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류에게 회개를 요청하고 복음화를 말하기 전에,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회개하고 스스로 복음화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한 감염 확산과 이를 위한 방역 조치로 말미암아 전 세계가 처해 있던 비상한 상황은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사태는 인류가 그동안 살아온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되돌아보도록 촉구하는 매우 중대한 사태였습니다. 적어도 이 사태는, 우리 인류가 살아온 방식이 이대로는 안 되고, 생태계의 균형을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돌아가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50여년 전 이러한 시대의 징표를 깨달은 선각자들이 ‘지구의 날’을 선포하고 환경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이 선각자들은 우리에게 생태윤리적 상상력을 가지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 필요한 것은 인류 존속을 위한 상상력입니다. 이는 우리 세대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입니다.
3. 회칙 ‘찬미받으소서’
이미 9년 전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인류가 지구상의 여러 피조물들과 함께 살아가야 할 공동의 집인 지구가 어떤 위험에 처해 있고 또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지를 살펴보도록 경고한 바 있습니다. 더불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과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습니다. 사실 회칙이 심각하게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회칙이 반포되고 난 후에도 인류는 지구를 곳곳에서 더욱 심하게 훼손해 왔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생태계 훼손에 대하여 경고한 회칙이 반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달라지지 않았으며,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의 행동도 인류를 변화시킬 수 있을 정도로는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기후 위기보다 더 심각한 불감증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 이후 계속해서 발생하고 있는 감염병 사태는 사람이 살지 않던 지역을 개발하고 과도하게 도시화와 산업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생태계 변화가 주요 원인입니다. 그 결과 오지에서 동물을 숙주 삼아 숨어 지내던 바이러스들이 보금자리에서 쫓겨나게 된 동물들을 통해 인류의 생활권으로 접근하게 되었으며, 교통 수단의 발달과 교역의 세계화로 전 세계로 퍼져 나가서 폭발적으로 증식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그야말로 지구촌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어느 한 나라에서 감염병이 발생하면 손을 쓸 수 없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갑니다.
이 회칙에서는 “기술-경제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권력 구조”와 그에 수반되는 ‘정치 지도력’이 투기와 경제적 수익 추구를 앞세우는 세계 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53, 56항 참조), 이 때문에 인류의 존속과 자연환경의 가치를 돌아보지 않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소수 엘리트들이 경제와 기술과 정치 영역에서 맺고 있는 침묵의 카르텔은 공동선을 위한 도덕성을 상실하였습니다. 인류가 공동으로 상속한 자연 자원을 소수가 독점하게 하여 인류 사회 안에서 불평등을 심화시켰기 때문이며, 가장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삶의 조건이 열악한 주변부로 밀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시 한 번 인류를 향하여, 특히 소수 엘리트들을 겨냥해서 경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구의 생태계를 돌보는 일은 인류의 존속을 위한 일입니다! 생태계 불균형의 한계 지역으로 내몰린 가난한 이들을 보호하는 일은 전체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이 열악한 주거 조건 탓으로 겪는 고통이야말로 인류 생존의 리트머스 시험지와도 같습니다.
지금 우리 인류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와 사회적 불평등의 위기가 너무도 엄청나서 소수 개인들의 뜻과 행동만으로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일상의 생활 방식은 물론, 사회와 경제 구조가 근본적으로 전환되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미 심각해진 지구의 생태적 위기와 무엇보다도 인류 미래 세대의 존속 위기 나아가서는 인류의 멸종 자체를 걱정하는 소수의 각성된 이들부터 먼저 회심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가톨릭 신자들부터 근본적인 전환에 나서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 거대한 대양의 물도 처음에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비로 시작되었습니다. 물질적 편리함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즐거운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려 해야 합니다. 더 가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더 절제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더 높아지려고 할 것이 아니라 더 나누고 섬기기 위해 낮아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민간 차원에서 생태계 보존에 앞장서면서, 시민의식이 선도하는 그 바탕 위에서 우리 사회를 운영하는 엘리트들에게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산업화와 도시화를 추구하면서 그 부담을 취약 계층에게 떠넘기지 말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2030년까지 탄소 배출을 50%로 감축하고, 2050년까지는 탄소 배출을 제로로 하자’고 목표를 제시한 국제적 합의를 지키라고 정부와 정치권과 기업들에게 요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