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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개혁주의 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grace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선 목회자 – 한국교회의 부흥을

“우리 교회에는 교인이 너무 없어요!”
“그래요? 근데 잘 생각해보세요.아마도 심판에 날에 당신이 주님 앞에서 청산 받을 때는 생각이 달라질지 몰라요.”
올해로 목회 사역 50주년을 맞이하시는 존 맥아더 목사님은 설교 중에 이 같은 예화를 소개하셨습니다. 무슨 말인가요? 나중에 목회자가 심판대 앞에 서서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 앞에서 청산할 때, 맡은 교인이 많을수록 그 책임과 심판의 무게가 더 크게 되니 불평하지 말라는 답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 말씀은 감독의 직분(장로, 목회자)을 얻고자 하는 열망을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딤전3:1)이라고 축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아무나 선생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더 엄격한 기준으로 더 큰 심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약3:1).
세상에서 그리고 심지어 복음주의 안에서도 목회자의 사역에 관한 잘못된 기준과 인식들이 팽배합니다. 교인 수가 수만 명이 넘어가고 교회 건물과 부지가 거대하며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아지고 집필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복음주의 안에서 또 정치적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목회자. 이런 것들이 성공한 목회자와 사역의 기준이 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나 목회자 지망생들이 이 같은 목회자 드림을 마음에 품습니다.
물론, 위와 같은 목회자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닙니다.중요한 것은 평가에 어떤 기준과 잣대를 세우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보는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가치와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가치는 서로 완전히 상충됩니다.
하나님의 바로미터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하신 십자가의 은혜와 영광의 복음으로 거듭나 죄와 심판에서 건짐을 받은 목회자. 그러므로 내 가족 내 친구 내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유일하신 참하나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마22:37) 목회자. 그 사랑이 이웃사랑과 모든 사역의 동기가 되며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끊임없이 구하는 목회자! 그 목회자는 분명히 세상의 가치보다는 하나님의 가치, 말씀의 기준을 절대적으로 쫓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께서 목회자를 심판하는 기준, 바로미터는 무엇일까요? 세상과 세속화된 교회가 목회자의 성공 기준이 교인의 숫자, 큰 교회 건물, 사회적인 명성, 베스트셀러 개수라고 외칠 때 하나님께서는 단 한가지 기준만을 말씀합니다. 그것은 바로 “충성,신실함(faithful)”입니다. “그리고 맡은 자들(stewards)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고전4:2)
이 말씀은 오늘날 말씀 사역과 목회 사역을 맡은 모든 목회자들에게 적용되는 기준입니다(고전4:1). ‘맡은 자들’은 복음서에서 본래 ‘청지기’로 쓰인 단어입니다(눅12:42). 청지기의 단 한가지 임무는 자신이 무엇을 개척해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주인의 재산 전체(건물, 양식, 논, 밭, 다른 종들)를 신실하고 충성되게 관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사랑하는 목회자는 맡겨진 이 임무를 자신의 목숨과도 같이 여기며 이 기준에 합당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에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나 세상의 시선도 아니고 개인의 욕심이나 야망도 아니며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청산하게 되는 바로 그날이기 때문입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한국의 많은 미디어나 기독교 매체가 지금 한국의 교회는 침체기라고 말합니다. 많은 대형 교회들이 타락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등록된 인원이 수만명이 되는 이단 교회가 즐비합니다.하지만 희망이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묵묵히 주님의 기준을 바라보며 힘들 때도 많지만 충성되고 신실하게 믿음의 경주를 하고 있는 많은 목회자들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점점 타락해져가는 이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목회자는 세상의 기준에 맞춰진 목회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맡은 것에 충성된 목회자가 필요합니다.
이곳 LA 그레이스 교회는 맥아더 목사님의 50주년의 신실한 사역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이제 곧 3월에 목회자의 “충성”을 주제로 열리는 목회자 컨퍼런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의 영적인 부흥과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목회자를 하나님께서 더 세워주실 것을 기도하고 기대하면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선 목회자가 청산을 받게 되는 목록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맡겨진 메시지에 충성했는가? 맡겨진 삶에 충성했는가? 맡겨진 영혼에 충성했는가? 이 모든 것에 충성했다면 주인이신 주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잘하였도다 충성된 종아!”(마25:21)
1.맡겨진 메시지: 복음의 경주
복음이 무엇입니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롬1:16)입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 그리스도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 복음은 곧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롬1:1, 막1:1). 주님께서 공생애를 막 시작하실 때 전하신 메시지입니다(막1:15). 죄인이 구원받는 유일한 길은 이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롬10:17). 목회자에게 맡겨진 메시지는 바로 이 복음의 메시지입니다.
하지만 강단에서 복음의 메시지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절대적인 죄인이라는 메시지 대신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습니다. 회개를 촉구하기보다는 교인으로 등록만 하면 구원받았다는 가짜 확신, 값싼 은혜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자기 부인은 없습니다. 재물도 사랑하고 세상도 사랑하고 예수 그리스도도 사랑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영혼의 구원보다 세상의 축복이 더 위에 있습니다.
이런 목회자는 맡겨진 메시지를 철저히 내팽개친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청산 받는 그날 주님께서는 이 맡겨진 메시지에 얼마나 충성되었는지 평가하실 것입니다.
맡겨진 복음에 충성된 목회자는 숨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온 땅끝을 바라보며 복음을 끊임없이 선포할 것입니다 그것이 사명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마28:19, 행1:8). 매일매일 자기 자신에게 먼저 복음이 선포돼야 함을 알고 있습니다.가정에서 아내에게 자녀들에게 가족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주위의 이웃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사회를 향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나라 밖으로 복음을 선포하는 선교활동에 온 힘을 쏟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복음을 충성되게 전합니다. 교회를 자신의 직장이 아니라 ‘진리의 기둥의 터’(딤전3:16)로 굳게 믿습니다. 새 신자가 빨리 등록해서 교회의 머릿수를 채우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새 신자가 복음을 통해서 구원받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필요하다면 복음을 전합니다. 복음 중심적인 설교를 전합니다.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성도들을 양육하고 상담합니다.
또한 충성된 목회자는 복음을 지키는 용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는 언제나 온갖 가짜 교리와 이단과 세상으로부터 공격받기 때문입니다. 항상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고 온유한 목회자이지만 복음을 변호하는 일에는 그 누구보다 먼저 팔을 걷어붙이고 앞장섭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도 이 복음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도 바울 또한 에베소의 장로들과 고별인사를 하며 이렇게 증언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행20:32)
이것이 바로 맡겨진 복음의 메시지에 충성된 목회자의 모습입니다.
2. 맡겨진 삶: 거룩한 삶의 추구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Perfect)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Perfect)하라” (마5:48)
완전함(Perfect)은 하나님의 율법이 요구하는 것입니다(약2:10). 죄인인 인간이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죄가 없으신 흠 없는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셨고(고후5:21), 이제 우리는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분의 완전한 공의의 옷을 입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백성은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 해졌으며 거룩해졌습니다.이것이 바로 히브리서 10장 10절이 말씀하는 거룩입니다.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거룩함을 얻었노라” (히10:10).이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해 우리가 완전히 구별되어 거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치적인 거룩, 구별된 거룩이라고 말합니다(Positional Sanctification).
하지만 성경은 또 다른 거룩함을 말씀합니다. 더 나아가 계속해서 거룩하라! 하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4:3)
여기서 말씀하는 거룩함은 이미 이루어진 구별됨과는 다른 점진적인 거룩함(Progressive Sanctification)입니다. 쉽게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삶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마지막 날 성도의 최종 단계인 영화(Glorification)으로 가기 전까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롬8:29-30).왜냐하면 우리의 영은 구원을 받았지만 아직까지 이 땅에서 육신 안에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죄와 싸워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성경은 거룩하라라고 명령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빌2:12) 그 성화를 이루라고 명령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거듭난 영혼에게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육신을 통한 삶을 맡기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나의 옛사람은 못 박히고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갈2:20). 이제는 우리의 몸, 즉 우리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합니다(롬12:2). 우리에게 맡겨진 몸,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고전6:19-20).특히 목회자는 책망할 것이 없고 모든 성도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딤전3:1-7).
하지만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맡겨진 삶에 충성하지 못합니까?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척 위장을 했지만 사람들과 떨어져 혼자 있을 때 마음속에서는 증오, 시기, 음란, 탐심 등 온갖 죄를 저지릅니다. 속사람이 시커멓게 썩었습니다. 하지만 그 위선의 가면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 마음의 죄가 밖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죄가 행동으로 그리고 범죄로 이어져 메스컴에서 뉴스로 그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슬픈 일입니다. 맡겨진 삶에 충성하지 못한 결과입니다.
충성된 목회자들은 끊임없이 거룩을 추구합니다. 필요하다면 몸을 쳐 복종하게 합니다(고전9:27). 죄의 결과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죄 그 자체를 증오합니다. 위선적인 모습을 증오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보이는 내 모습보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고백함으로 담대함을 얻습니다.하나님께서 거룩으로 이끄시는 많은 장치들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제일 먼저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우리는 말씀으로 거룩해집니다(요17:17). 하나님의 말씀이 이 목회자의 삶에 풍성히 거하며(골3:14), 거룩한 삶으로 이끌어주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충성된 삶으로 인도합니다.
사도바울은 생애 마지막에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며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딤후4:6-7)
맡겨진 삶에 충성된 목회자의 고백입니다. 피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십시오.그리고 계속 넘어진다고 해도 쓰러지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주시지 않으시며 피할 길을 내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10:13)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령께서 우리를 끝까지 붙드실 줄을 믿으십시오(살전5:24).
3. 맡겨진 영혼: 해산의 고통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갈4:19)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의 성도들에게 편지를 쓰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자녀들아!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말씀합니다. 내가 다시 한번 너희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기까지 해산의 고통도 마다하지 않겠다!
성도들을 향한 목회자 바울의 열망은 그들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로워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바울의 한가지 열망, 그리고 해산의 수고도 마다하지 않을 그 열정의 방향은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골로새 교인들에게 말씀했던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골1:28)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바울에게 그 영혼들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양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자신의 거룩함만이 아니라 맡겨진 영혼들의 거룩함을 구했습니다.그들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얼마나 나타나는지가 바울의 목회 사역의 초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얼마나 많은 목회자들의 사역 방향이 이와 정반대입니까? 모든 사역의 초점이 나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나의 야망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성도들의 거룩함보다는 머릿수가 늘어나고 헌금이 많이 걷히는 것에 더 큰 관심이 있습니다. 겸손한 척은 하지만 교만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종으로 섬기기보다는 그들 위에 군림하려고 하며 조종하려고 하고 대접받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충성된 목회자는 이와 정 반대입니다. 맥아더 목사님은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의 목회사역에서 무엇이 당신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무엇이 당신을 우울하게 만듭니까? 죄? 기도의 부족?아니면 여러분의 성도들의 드러나는 죄, 연약함 이런 것들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진실된 목회자입니다. 하지만 당신을 힘들게 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것이 당신에 관한 것들이라면 완전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존 맥아더, 2018 T4G 컨퍼런스)
채워지지 않는 육신적인 욕심, 기대 이런 것들로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자신의 성도들의 삶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에 해산의 고통으로 참여하는 목회자. 성도의 죄를 함께 짊어지며(갈6:2)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으로 맡겨진 양들을 치는 목회자. 여럿 중에 으뜸이 되려 하지 않고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도들의 종으로 섬기는 목회자(20:27-28).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들을 자신이 청산할 것 같이 양육하는 목회자(히13:17). 이 목회자가 맡겨진 영혼에 충성된 목회자입니다.
맥아더 목사님은 다시 말합니다.
“당신은 교회의 등록 교인의 수가 얼마 인지로 심판받지 않을 것입니다.또한 교회 예배당의 크기로 심판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청산하게 될 때에 심판의 기준은 바로 여러분의 교회의 성도들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았는가입니다.” (존 맥아더, 2018 T4G 컨퍼런스)
맺음말
세상과 세속화된 교회가 이야기하는 기준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선 목회자가 심판받는 기준이 아닙니다. 십 년 이십 년 목회를 해도 교인 숫자가 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사역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수도있습니다. 하지만 혹시 그런 것들로 낙심하신 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들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은 자에게 구하실 오직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 가운데서 맡겨진 복음, 맡겨진 삶, 맡겨진 영혼들에게 얼마나 충성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심판대에서 그리스도께서 심판하실 오직 한 가지 바로미터입니다.
여러분의 목사님들의 충성된 사역을 위하여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이처럼 충성된 목사님들을 계속해서 세워주시기를 함께 기도해주십시오. 또한 이 맡겨진 세 가지는 목회자뿐만 아니라 넓게는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 신실한 종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이같이 충성되고 신실하게 사역을 하면서 내가 마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십니까? 주님께,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받을 생각에 우쭐해지십니까? 우리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누가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으로 글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 종이 명령한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을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우리는 쓸모 없는 종입니다. 우리는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여라.” (눅17:9-10, 새번역)

박 성준
The Master’s Seminary 재학중이며 Grace Community Church에서 존 맥아더 목사의 주일 설교를 한국어로 동시 통역하며, Korean Fellowship 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가족은 부인 에밀리가 있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