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 75' 나는 죽음의 시기와 장소를 선택하고 싶다. 엄상익(변호사)
플랜 75 ‘세상에나…사는 게 뭔지, 무섭다. 함 읽어보세요. 현실입니다.’ 병으로 투석을 하며 지내는 팔십대 중반의 고교 선배가 보낸 카톡 메시지다. 노인 살해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는 일본에서 노인 살해범의 주장은 이렇다는 것이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노인들은 사라져야 한다. 일본은 원래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가’ 이어서 카톡에는 ‘플랜 75’라는 칸 영화제에서 수상한 영화 내용이 소개되고 있었다. 칠십오세 이상의 노인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죽음을 국가에 신청하면 국가가 이를 시행해 준다. 담당 공무원들이 공원에 나가 노인들에게 죽음을 권유하고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럽다’는 광고가 TV에서 흘러나온다. 나라가 위로금으로 주는 돈으로 마지막 온천여행도 가능하다. ‘플랜 75’가 호조를 보임에 따라 ‘플랜 65’도 검토되고 있다. 영화는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은, 살겠습니까?’ 분노하는 선배와는 달리 의외로 나는 매력을 느꼈다. 하나님이 준 수명대로 살아야 할 의무만 아니라면 나는 죽음의 시기와 장소를 선택하고 싶다.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던 나의 서재에서 고요하게 잠들고 싶다. 이십대 중반 깊은 산 속의 한 절에서 공부할 때였다. 그 절의 마당 구석에는 벌통이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오후 우연히 본 벌통 밑에는 여러 마리의 벌들이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힘이 다 빠진 듯 벌들은 제 몸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 늙은 벌들인 것 같았다. 갑자기 젊은 벌 두 마리가 나타났다. 젊은 벌은 양쪽 옆에서 늙은 벌의 날개를 물고 들어 올려 멀리 날아갔다. 젊은 벌은 다시 돌아와 또 다른 늙은 벌을 물고 가져다 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게 무정한 자연계의 법칙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일본 고전소설인 ‘나라야마 부시코’를 읽고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일본도 우리의 고려장 비슷한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일정한 나이의 노인이 되면 산에 가져다 버리는 것이다. 주인공인 여성은 가난 속에서 한 입이라도 줄이려고 돌을 들어 스스로의 이빨을 망가뜨린다. 빨리 산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아들의 등에 업혀 산으로 가는 여성은 가는 곳곳의 나뭇잎을 뜯어 바닥에 버렸다. 혹시나 아들이 돌아가는 길을 잃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해골이 여기저기 가득한 산에 도착했다. 우연히 같은 마을에 살던 영감이 아들에게 업혀서 왔다. 그 영감은 죽지 않으려고 울고불고 버티고 있었다. 그 영감의 아들은 아버지를 계곡 아래쪽으로 떨어뜨렸다. 아득한 비명과 함께 그 영감은 사라졌다. 주인공인 여성은 고요한 산 속에서 의연히 죽음을 맞이한다. 거기서 죽음을 맞이하는 마음의 자세를 배웠다. 사십대 중반 영국의 크루즈선을 탔던 적이 있다. 그 배는 노인들의 나라였다. 아무리 젊은 날의 화려한 옷을 입고 있어도 노인들은 추하고 굼뗬다. 그들을 보면서 노인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말이 불쑥 튀어 나왔다. 옆에서 우연히 그 말을 들은 같이 간 한국 노인이 분노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는 거였다. 나는 죄송하다고 말은 했지만 자기의 소명과 삶의 의미가 없어지면 하나님이 바로 데려갔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다석 류영모 선생은 그가 쓴 책에서 겨울나무 가지에 달린 쭉정이가 칼바람에 시달리면서 매달려 있는 게 얼마나 처량하냐고 했다. 이어령 교수는 글에서 아름다운 윤기가 남아있을 때 떨어지는 낙엽이 아름답다고 했다. 어느새 나의 세월도 칠십 고개를 넘었다. 젊은 시절 버려진 늙은 벌을 보듯 노인의 천대를 피부로 실감한다. 지하철의 무임승차와 경로석에 불만이 많은 것 같다. 좀 억울하다. 지하철은 우리 세대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졌다. 혜택을 받는 것은 노인이 아니라 오히려 젊은 세대다. 나는 제법 세금을 많이 낸 편에 속한다. 내가 받는 국가의 복지 혜택보다 수천 배 수만 배의 세금을 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눈치꾸러기가 됐다. 주위를 보면 아직 지적인 기능이 왕성하고 체력과 경험을 갖춘 친구들이 많다. 그들은 다시 판사를 시켜준다면 잘할 것 같다고 아쉬워한다. 실버 타운에서 주위를 보면 평생 미국의 제약회사에서 약을 연구한 지식 덩어리 노인도 있다. 흙 단지 안에 금을 담은 것 같은 노인들의 지혜를 늙어서 알았다. 성경은 몸은 늙어도 영(靈)은 나날이 새로워진다고 말한다. 나이를 기준으로 단순하게 쓸모를 판단하는 것은 경솔하다. 쓸모를 잣대로 노인을 평가하는 것은 젊은 날 내가 보았던 벌레 수준이 아닐까. 나는 시대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내 의지대로 당당히 죽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