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현대 등반 기술을 가르쳐 주신 분은 한국산악회에 두 분 계신데 한분은 김정태 선생이시다.
김정태 선생은 한국 등산 1세대다 나도 등산 1세대에 속하지만 막내 중에서 막내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나누니 해방 후에 시작하면 그렇다는 거다
내가 히말라야(Himal Raya) 첫 방문은 1976년이며 지금으로부터 48년 전이다.
그러나 한국등산사 50년에 이름도 올라있지 않다. 현실과 떨어진 삶을 살았기에 그런가 보다.
심지어는 1989년 구소련 (cccp) 체육위원회 초청으로 국제 등산올림픽이라고 하는 국제 세계산악캠프에 초청되어 활동하면서 나의 등산복에 한국산악회의 마크까지 뜯어 내라고 했다. 그 당시 산악연맹과 한국산악회의 반목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유럽 최고봉인 옐브루즈 산(Mt Elbrus서봉 5,642m)을 단독으로 올랐는데도 산악연맹의 그들은 월간 山 잡지에 자기들이 올랐다고 하면서 인터브와 사진까지 곁들인 내용을 게시하면서도 나의 이름은 아예 빼버렸다. 그리고는 그 당시 인솔자인 김인식(내가 알기로는 대한산악연맹 서울시연맹회장?)씨로 대체해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옐브루즈 산(Mt Elbrus서봉 5,642m)을 올랐다고 나와 있다.
나는 그 당시 산악계에 파벌중심으로 내닫는 것을 싫어해서 말하지도 않았다.
산을 타는데도 크게는 두 가지라고 여겨진다.
하나는 보이려고 나타내려는 유형이 있고
또 하나는 숨으려고 하는 은자의 유형이 있다. 나는 그 후자에 속한다.
나에게 산을 가르쳐 준사람은 3분이 계신다
한분은 한국산악계에 독보적인 이력을 나툰 김정태(金鼎泰) 선생이시다
그 이외도 나의 기억 속에는 한국산악회에는 유명한 산악인이 많았다.
특히 언론인과 문인들이 많았는데 이민재 이은상 홍종인 등 이름난 산악인 들도 많았는데 그중에 독보적인 분은 김정태선생이시다
김정태(金鼎泰) 선생과는 한국산악회 사무실이 있는 파고다 빌딩 1층에는 파고다 다방이 있어 그곳에서 죽치고 앉아 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겨울에는 등산하기가 어려울 때는 가까운 천마산 스키장이 개장되어 그곳에 가자하여 함께 스키도 타고 하였다. 그리고 설악산 양폭산장과 권금성 산장에서 한국산악회 등산학교를 하기 전에 10 동지 묘소가 있는 노루목 바로 옆에 건축한 한국산악회 선배가 운영하는 '일진산장'에서 숙박하면서 로비에서 해방 전 식민지 시대와 북한에서 활동하던 금강산 집선봉 암벽등반과 백두산 겨울 스키로 등반하던 이야기를 밤새워 듣기도 하고 등산학교 실기를 익히기 위해 설악산 죽음의 계곡에 있는 건폭골에서 픽켈과 12'발 아이젠 사용법을 익히기 위해 하루종일 훈련할 때는 항상 높은 곳에 서서 훈련상황을 살피면서 체크하고 계셨다.
한국 근대등반의 첨병이라 할 수 있는 김정태선생은 1916~1988년, 대구 출생, 1934~45년 금강산, 백두산 지역 등반(초등반), 1946~55년 태백, 소백, 차령산맥, 울릉도, 독도 등 국토구명사업에 참여. 1956년 수도여자사범대학 총무과장. 1965년 한국산악회 30주년 공로상, 1978년 안나푸르나 원정대 대장, 1986년 대한스키협회 40주년 공로상 수상을 받으시었다.
나에게 일찍이 고산 등반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해 주시던 선배 유명산악인은 처음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고
대부분 미국이나 유럽으로 옮겨 이민을 가고
그다음 사람은 대개 여행사 사장을 하고
그다음 사람들은 등산장비점이나 등산장비 제작자로 전략하고
가장 처량한 이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자가 나와 같이 혼자 제 잘난 맛으로 각종 산악단체를 멀리하고 한평생 산을 그리워하면서도 외롭게 사는 사람이다
***참고로 유인물에 나와있는 오류의 내용을 펌해서 올려 둔다.(2023. 06. 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