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징표를 식별하기
에페 4,1-6; 루카 12,54-59 /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2024.10.25.
오늘 복음이 포함되어 있는 루카 복음서 제12장은 메시아적 백성이 지키도록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수칙들로서, 첫째 바리사이들의 누룩을 조심해야 하고, 둘째 탐욕을 경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도록 힘쓰는 한편, 그리고 셋째로는 깨어 있는 자세로 시대의 징표를 알아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바리사이들은 율법 준수를 핑계로 재물과 사회적 지위를 과도하게 추구하는 탐욕스런 행태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난한 이들을 율법의 잣대로 판단하여 죄인으로 낙인 찍은 일은 탐욕을 내용으로 하는 ‘바리사이들의 누룩’이 초래한 결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존의 기본 욕구를 박탈당한 이들의 요구에 민감하게 응하시며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도우셨지만 재물을 더 가지고자 하는 탐욕스런 바리사이들을 경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적 백성이 탐욕을 경계할 뿐만 아니라 보물을 하늘에 쌓으라고 권고하셨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는 일이란 재물을 가난한 이들과 나누는 선행을 실천하되 이를 자신의 당연한 의무로 인식하는 겸손의 덕행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생존의 기본 욕구를 박탈당한 이들에게 그 권리를 되찾아주는 일은 공동선에 속합니다. 그리고 이 공동선을 해치는 사회악 현상에 대해서 메시아적 백성은 그 현상에 담긴 시대의 징표를 알아차리는 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물질문명을 발달시키면서도 사회적 약자들의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강자들의 욕망을 채우는 데로 기울어지고 있으니 만큼, 메시아적 백성의 이런 역할은 명백히 선교적입니다. 세상은 만족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 관찰해 보면 개별 단위 문명은 사람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기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기득권자들의 과도한 욕망 추구를 제어하는 일차적 기능과 기득권자들의 과도한 욕망 추구를 제어하는 이차적 기능, 이 두 가지 기능을 여하히 수행 하느냐에 따라 융성하기도 하고 멸망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욕구를 고르게 채워주고 욕망을 적절하게 제어하는 기능은 문명사회 질서의 핵심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회가 달성해야 할 공동선입니다.
그런데 종교의 사명은 인간 사회가 공동선을 달성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느님을 알아 모시고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는 최고선을 지향하도록 촉구하고 초대하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선교 사명 역시 공동선을 수호하면서도 이와 함께 최고선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촉구하고 초대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사회의 모든 현상을 통하여 알려주시는 시대의 징표를 식별하여 그 안에 담긴 뜻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그에 필요한 사도직 활동을 통해 사회악에 대적하고 공동선을 증진시키는 노력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서 교회는 모든 세대를 통하여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 줄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사목헌장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교황직에 오른 직후 2013년에 전 세계 가톨릭 신자들에게 보낸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시대의 징표를 식별해야 할 교회의 사명을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이 시대의 징표를 식별한 바 있습니다. “저는 모든 교회 공동체가 무엇보다도 시대의 징표를 꼼꼼하게 탐구하기를 권고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탐구한다는 것은 시대정신을 식별하고 확인하는 것만이 아니라, 선한 정신의 움직임들을 선택하고 악한 정신의 움직임들을 거부하는 것도 포함하는데, 사실은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많은 분야에서 이룩한 진보는 이 시대 인류가 역사의 전환점에 놓여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의료, 교육, 정보통신 같은 분야에서 거둔 발전은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켰는데, 우리는 이 복지증진을 칭송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너무나 많은 현대인이 하루하루 간신히 살다가 마침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다는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황이 식별하고 있는 시대의 징표는 물질적 차원의 복지가 거둔 찬란한 진보와 그 혜택이 고르게 나누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등 현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사랑의 불은 바로 이 불평등 현실을 겨냥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부르심은 이를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겸손과 온유를 다하고, 인내심을 가지고 사랑으로 서로 참아 주며,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써야 할 목표도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