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동지로, 동지를 가족으로
- 제자가 된 형제들, 시몬과 유다
에페 2,19-22; 루카 6,12-19 /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 2024.10.28.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 사도 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뽑으신 열두 제자 가운데에서 소명기사가 알려진 경우는 어부 출신으로 형제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요한 1,40), 야고보와 요한(마르 1,19-20)과, 필립보와 그의 친구로서 나타나엘이라고 기록된 바르톨로메오(요한 1,43-51) 그리고 세리 출신 마태오(마태 9,9) 정도뿐입니다. 그런데 오늘 교회가 기리는 시몬과 유다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로 알려진 또 다른 야고보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형제라고 소개되고 있습니다(마르 6,3; 마태 13,55). 물론 이 유다는 이스카리옷 유다와는 이름만 같을 뿐 전혀 다른 동명이인(同名異人)으로서 타대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이 세 사람말고도 복음서에는 ‘예수의 형제들’이 언급되는데, 이들은 친척지간입니다. 우선 ‘형제’라는 말은, 당시 쓰이던 아람어의 표현인데 대가족 제도를 반영하여 친척 형제들을 두루 포함하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아람어에는 ‘사촌’이라는 말이 따로 없습니다. 심지어 사도행전에는 여러 곳에서 사도나 신자들에게도 ‘형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도 1,15-16; 9,17; 13,26).
그렇지만 대가족 제도에서 집안 어른을 모시는 관습은 매우 엄격했기에 요셉이 일찍 세상을 떠난 후 예수마저 출가하자 친척 형제들이 홀몸이 되신 마리아를 봉양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귀 두목의 힘을 빌려서 마귀를 쫓아낸다는 고약한 소문이 들려왔을 때 그 친척 형제들이 예수님을 말려보려고 자신들이 평소에 모시고 지내던 마리아를 모시고 왔습니다(루카 8,19). 이때 느닷없는 ‘형제들’의 방문을 받으시고 상황을 파악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들”이야말로 당신의 어머니요 형제들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루카 8,21). 혈연으로 인한 가족이기주의의 폐단을 넘어 개방적인 동지적 혈연을 지향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살 되시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하다가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소년 예수를 사흘 동안 잃어버리신 적이 있었는데, 그 때에도 세 사람의 가족이 겪은 이야기만 나오지 다른 식구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습니다. 친동생이 있었다면 언급이 되었었겠지요. 그러다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되었을 때 그 친척 형제들은 그분에 대한 믿음은 물론 의리도 없었기에 그 자리에 있지도 않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맡겨 드릴 친동기간이 없었기에 그나마 가장 아끼시던 제자 요한에게 맡기셨습니다. 만약 야고보, 시몬, 유다 등이 친형제들이었다면 이들에게 어머니를 맡겨드렸겠지요. 더불어 우리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가 성령으로 잉태되신 아들 예수님을 낳아 기르느라고 평생 동정으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는 친동생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형제들’은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데 비해, 또 다른 형제들인 야고보와 시몬과 유다는 그분의 열두 제자에 포함될 정도로 믿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복음화의 관점에서 생각해 볼 것은, 혈연관계에서 같은 신앙을 지니는 일이 과연 그토록 어려운가 하는 문제입니다. 쉽지 않지만 진정성이 통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혈연으로 맺어진 인간관계에서 신앙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지는 일이겠습니다. 이것이 동지적 혈연입니다!
시몬과 유다에서 보듯이 초대교회의 역사에서처럼, 한국의 초대교회에서도 신앙은 혈연을 매개로 퍼졌습니다. 가장 유명한 가문은 약전, 약종, 약용을 배출한 나주 정씨 집안입니다. 최초의 신앙인인 포천 선비 이벽은 정씨 삼형제의 이복 형인 약현의 처남이었고 최초의 영세자인 한양 선비 이승훈은 정씨 형제들의 매부로서 둘 다 정씨 가문과는 사돈지간이었습니다. 경기도 광주에 살던 이 정씨 형제들에게 복음을 전한 이벽은 당시 학문적 명성과 인품이 널리 알려졌으며 자신의 집안과도 가까웠던 양근 선비 권철신을 찾아가 열흘 동안이나 설득한 끝에 그의 동생인 권일신과 그 문하 선비들을 주어사와 천진암 강학회에서 만나서는, 실학에 관심을 두던 그들에게 천주학을 가르치고 끝내 천주교 신앙 공동체에 합류시켰습니다. 이들이 한국 천주교회의 초기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이들 중 충청 내포 출신 이존창은 김대건과 최양업의 조상들을 입교시켰고, 호남 전주에 살던 유항검은 자신의 아들 유중철과 이순이를 동정부부로 혼인시켰는데, 이순이는 권씨 형제들로부터 학문과 신앙을 배웠던 이윤하의 딸입니다. 권철신과 일신은 이윤하의 처남이었습니다. 이렇게 이들의 혈연은 신앙의 동지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고, 신앙은 혈연을 하느님 안에서의 형제라는 영적 종친 관계로 승화시켜주었습니다. 그러했기에 백 년에 걸친 박해 속에서도 교우촌을 이루어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자면 동지적 혈연관계가 한국 천주교회의 근간 즉 뿌리요 줄기가 되었던 것이지요.
이 처럼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 같은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경우에 더욱더 뜻을 합쳐서 동지처럼 하느님의 가족으로 나서는 일이야말로 복음화의 첩경입니다. 이런 점에서도 오늘 교회가 기억하는 시몬과 유다 사도는 혈연을 계기로 신앙적 형제로 맺어졌다가 복음적 사제관계로까지 승화시킨 인물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모범으로 손색이 없습니다.
그 반면에 사도 바오로는 신앙으로 맺은 인연을 가족 같은 인연으로 만들어 교회의 인적 네트워크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는 티모테오를 '협력자'(로마 16,21; 1테살 3,2)로서 선교여행의 동반자로 데리고 다니다가, 초대교회의 본산으로서 소아시아 복음화의 거점이 된 에페소 교회를 "믿음으로 착실한 아들이 된"(1티모 1,2) 티모테오에게 물려 주고 로마에서 치명하였습니다. '바르나바의 사촌 마르코'(콜로 4,10)는 제1차 선교여행에서 그가 선교 대열에서 무단 이탈하는 바람에 제2차 선교여행부터는 바르나바와 바오로 사이에 갈등을 일으키는 빌미가 되기도 했으나,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하고 난 무렵부터 사도 바오로는 그를 '내 직무에 요긴한 사람'(2티모 4,11)으로 여겼고, 베드로 사도는 그를 '나의 아들'(1베 5,13)로 불렀습니다. 시리아의 안티아키아 교회에서 만난 루카는 성령의 부르심으로(사도 13,2) 바오로가 선교사로 나서는 과정을 지켜 본 후에 그의 수행 비서가 되어(2티모 4,11)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저술하였는데, 이는 선교사와 사도들을 위한 소중한 기록입니다. 제2차 선교여행 당시 그리스 필리피에서 만난 리디아가 사도 바오로의 인품과 신앙을 알아보고 가족처럼 받아들여 자신의 집을 필리피 선교의 거점으로 선뜻 내어준 이래로(사도 16,15) , 필리피 교회의 설립과 성장은 물론 소아시아와 그리스 일대 등 사도 바오로의 선교활동에 지대한 공헌을 드러내지 않고 수행한 미담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동지적 혈연과 맞먹는 혈연적 동지 관계가 초대교회의 또 다른 근간이었음을 알게 해 주는 역사입니다.
혈연과 신앙 인연이 서로 맞물려 가족이 동지가 되고 동지가 가족이 되는 이러한 선순환 관계를 두고, 사도 바오로는 집에 비유하였습니다. 집의 기초가 되는 모퉁잇돌은 그리스도이셔야 하고, 기초는 사도들과 예언자들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에페 2,20)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신앙의 동지가 되기는 어렵고, 신앙의 동지가 가족이 되기도 어려울 테지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마르 3,35)이라야 하느님의 가족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여기에 적중합니다.
교우 여러분! 여러분이 사랑하는 가족을 신앙의 동지로 만드십시오. 또는 여러분이 아끼는 동지들을 교회적인 가족으로 만드십시오. 신앙이 다른 가족관계나, 사회적 신념만 같은 동지 관계로서는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동지적 가족이거나 가족적 동지의 관계를 통하여, 신앙과 신념이 신뢰로써 뒷받침되어야 함께 일을 할 수 있고 의미 있는 성취를 해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 초대교회의 역사적 사례는 물론 한국 초대교회의 실제 사례에서 뒷받침되듯이, 선교는 이마마한 인간관계에서 그 싹이 트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