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성화, 겨자씨와 누룩처럼
- 가정 성화를 위한 지혜
에페 5,21-33; 루카 13,18-21 /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2024.10.29.
이 달은 전교성월이어서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며 이를 주제로 미사의 말씀을 묵상한 강론을 전해 드리고 있습니다만, 이를 위해서도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가정의 복음화입니다. 사실 복음화에 있어서 민족들의 복음화에 못지않게 기본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문제가 교회의 복음화이고 특히 신자들의 가정이 성화되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마음의 평화를 바라는 예비자들과 신자들 대부분의 처지처럼, 혼인한 부부들 대부분 역시도 상대방 배우자가 자기한테 잘 해 줄 것을 기대하면서 서로 마음 편한 상대이기를 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앙생활에서 그러하듯이 가정생활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를 원하는 한편, 상대방이 먼저 자신한테 그 평화를 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누린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만, 이는 세상이 줄 수도 없고 나만 노력한다고 해서 얻을 수도 없으며, 오직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주실 수 있는 하느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 행복할 것(마태 5,9)이라고 말씀하시면서도 이 평화를 주시기 전에 칼을 주셨습니다(마태 10,34). 예수님 자신의 경우만 보더라도, 공생활 중에 마음의 평화를 누리셨던 경우가 얼마나 되셨을까요? 하느님이신 그분도 늘,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안한 마음을 지니시지는 못하셨습니다. 친척 형제들과의 갈등으로부터 시작해서, 바리사이와의 갈등, 사두가이와의 갈등, 게다가 제자들 사이의 갈등을 중재해야 하는 일까지, 갈등이 일상적이셨습니다. 가장 큰 갈등은 당신의 운명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오죽하면 겟세마니 동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며 공포와 번민에 싸여서 하느님께 기도하셨겠습니까? 그분의 평화는 당신의 삶을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맡겨드린 다음부터 비로소 찾아왔고, 그분이 평화를 온전하게 누리시게 된 때는 부활하신 다음이었습니다. 만만치 않은 갈등을 치열하게 거치신 다음에라야 그분은 제자들에게도 "평안하냐?"(마태 28,9)고 인사를 건네셨고 당신의 평화를 나누어 주셨습니다:”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같지 않다.”(요한 14,27) 이 평화의 인사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신 첫 인사이셨습니다.
따라서 마음의 평화나 가정의 평화 역시 현존하는 갈등을 회피하거나 외면해서는 얻어질 수 없으며 오히려 직면하고 부딪쳐서 해소한 연후에라야 얻을 수 있고, 먼저 평화를 얻은 사람이 그 평화를 상대방에게 건네 줌으로써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부부 사이에서는 이 방법이 대화입니다. 대화를 통해서 솔직한 진심이 공유되어야 한 마음이 될 수 있고, 한 마음이라야 진정한 일치가 찾아옵니다. 그래서 부부는 한 몸인 것만으로는 모자라고, 한 마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마음이 되려면 갈등도, 대화도, 평화도 하느님 안에서 맡겨드려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일이 우리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이 됩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창조된 이래 세상에서는 언제나 문제가 끊이지 않았고, 모든 사람의 인생에도 그러했습니다. 물리 세계에서 적당한 마찰저항이 있어야 오히려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듯이, 인간관계는 일정한 갈등은 있어야 정상입니다. 갈등을 풀어가는 데에서 오히려 우리의 인간성이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이고 갈등이 해소되는 과정에서 일치도 더 굳세어집니다. 이러한 이치는 한평생을 함께 살자고 약속한 부부 사이에서도 똑같기 때문에, 만날 때부터 천생연분인 부부는 세상에 없고, 서로 대화하고 서로 노력하면서 천생연분으로 되어갈 수 있을 뿐입니다. 상대방이 좋아할 정도로 늘 노력하는 자세가 부부간 화목의 비결입니다.
이 처방에 대하여,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겨자씨나 누룩의 비유는 혼인한 부부들에게 있어서 가정을 대상으로 할 때에도 딱 들어맞는 비유입니다. 혼인할 때 서로 언약한 가정의 꿈을 키워 감에 있어서 처음에는 아주 작게 시작한 겨자씨가 나중에는 커다란 관목으로 자라는 것이나, 양으로는 아주 적은 누룩이 제법 큰 밀가루 반죽 전체를 부풀게 하는 것처럼, 부부의 꿈은 자녀들까지 포함한 가족의 화목으로 그치지 않고, 그 자녀들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몫도 대단히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기에 민족과 교회 공동체의 미래가 함께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신자 부부들의 가정을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에 빗대어 남편과 아내가 서로 목숨을 바쳐 사랑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혼인 성사의 가르침이기도 한 이 권고에 비추어, 믿음으로 혼인한 부부들이 혼인 성사의 은총을 잊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한 몸과 한 마음으로 이루는 부부의 일치가 가정이라는 작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 수 있고, 작은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천국 안에서 자녀들은 새로운 세상과 새로운 인생을 꿈꾸며 행복하게 자라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간의 작은 갈등에 주저앉지 말고 용기를 내어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대화하고 희생으로 사랑을 보이시기 바랍니다.
교우 여러분! 가정 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한 몸이기만 해서 되는 사이가 아니고 한 마음이어야 하는 부부의 몸과 마음을 모두 일치시켜 주시는 분은 어디까지나 하느님이시라는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