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화의 적들과 이에 대항하는 전략과 전술
에페 6,10-20; 루카 13,31-35 / 연중 제30주간 목요일; 2024.10.31.
전교의 달을 마치는 오늘 미사에서 우리가 들은 말씀은 지난 한 달 동안 들었던 모든 선교 메시지를 종합해 주기라도 하듯이, 복음화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귀한 지혜를 일깨워줍니다. 복음과 독서의 말씀이 복음화의 지혜로 이어지는 그 맥락을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느 바리사이 유다인이 갈릴래아 영주 헤로데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고 알려주자,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방의 예루살렘으로 피하셨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늘 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아예 전투적인 용어로 신자들에게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히 무장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두 말씀에서 다, 복음화의 적들이 준동하는 살벌하고 전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의 마수가 뻗쳐오기 전에 이미 제자들에게 당신의 운명에 대해 십자가와 부활로 세 번이나 예고하신 바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박해가 한창이던 초대교회의 소아시아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에페소의 교우들에게 강고한 로마제국의 박해에 맞설 수 있도록 최대한 독려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로마는 다민족으로 이루어진 제국 내 안정을 도모하고자 이른바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추진했었지만, 이는 군사력에 의해 강요된 거짓 평화였습니다. 언어는 물론 문화와 종교가 다 제각각인 여러 민족들로 이루어진 제국 내 통치를 수월하게 하고자 로마제국은 황제숭배정책을 강요했습니다.
“로마황제는 살아있는 사람 신”이기 때문에 제국 내 여러 민족을 다스림에 있어 선정을 베풀 수 있다고 선전하면서, 이 황제 신격화 정책에 저항하면 가차없이 박해를 가했습니다. 그리고 만성적으로 불만을 품고 있었던 군중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오락거리로 삼아 신자들을 죽였습니다. 황제숭배령을 어긴 국가반역죄인으로 몰아 대로변이나 광장에서 십자가형에 처하기도 했고, 수많은 로마인 군중을 모아 놓은 원형경기장에서 팔다리를 묶은 채 굶주린 맹수들의 먹잇감으로 던져주거나 또는 빈손으로 직업 검투사와 상대하게 해서 죽였습니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소위 ‘로마 문명’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 문명의 야만적인 민낯이 이렇게 끔찍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베드로나 바오로를 비롯한 사도들과 신자들이 이미 다수가 희생되었고 앞으로도 박해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 상황에서 바오로의 제자들이 스승의 이름으로 에페소 교우들에게 비장한 편지를 쓰게 된 배경이 이러했습니다.
이 야만적인 박해에 저항하자고 무기를 들 수는 없는 이상, 예수님께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나 이러한 복음화의 적들에 대항하는 전략은 부활신앙밖에 없었습니다. 이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박해는 언젠가 마찬가지의 끔찍한 심판으로 벌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박해 받던 신자들은 비록 치명하더라도 복되고 영광스런 부활의 은총을 맞이할 것이라 믿으면서 형장에서 죽어갔습니다.
복음화의 전략이 부활이라면 그 전술은 악에 대해 선으로 맞서는 십자가였습니다. 황제숭배를 강요하는 악마의 간계에 맞설 수 있도록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하되, “진리의 띠를 두르고 의로움의 갑옷을 입고 평화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준비의 신발을 신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믿음의 방패와 성령의 칼을 쥐라.”(에페 6,14-17)고 당부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으로 완전 무장한 신자들에게 성령 안에서 온갖 기도와 간구를 올려 박해의 종식과 로마의 복음화를 간청하라고 당부하는 십자가의 전술이었습니다. 이를 표현한 오늘 독서의 본문, 에페소서 6장은 문학적으로도 완성도가 높은 빼어난 문체로 쓰여진 데다가 깊은 영적 통찰도 듬뿍 배어 있는 명문입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오로가 간곡하게 권고한 이러한 당부는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의 초대교회 신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하여 네로(54~68년), 도미티아누스(81~96년), 트라야누스(98~117년), 하드리아누스(117~138년),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61~180년), 셉티미우스 세베루스(191~211년), 막시미누스(235~288년), 데키우스(240~251년), 발레리아누스(253~260년), 디오클레시아누스(284~305년) 등 열 명의 황제로부터 모진 박해를 받는 동안 수많은 사도들과 신자들이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어서 콘스탄티누스가 황제로 즉위하면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고 박해를 중지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림(313년)으로써 250여 년 간의 박해가 공식적으로 종식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초대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제국의 박해에 맞섰던 영적 전투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아무리 박해를 해도 신자들이 줄어들기는 커녕 도리어 늘어나는 그리스도교의 영향력을 역이용하여 적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자 황제숭배 정책과 박해정책을 180도로 바꾸어 공인하는 정치적 술수를 부린 것이지만, 그렇게 되기 까지에는 하느님의 무기로 완전 무장한 그리스도인들이 보여준 도덕성과 인격에 감화된 로마인들의 여론이 압력으로 작용한 덕분이 컸습니다.
이러한 로마의 박해는 사두가이들의 종교권력과 바리사이들의 율법지식을 숭배하던 유다교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일이나, 또 이 땅에서 유교를 강요하던 조선 왕조와 유림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참수형이나 매질을 수반한 각종 고문 심지어 생매장형 등으로 죽인 일 등이 시대와 나라만 달랐을 뿐 하느님 신앙을 막기 위한 박해였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사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교우 여러분!
종교에 대한 야만적인 박해는 종식된 오늘날에도 신앙의 가치는 여전히 은밀하고 교묘한 박해 상황 속에 있습니다. 믿는 이들보다 믿지 않는 이들이 더 많고 믿는 이들 중에서도 대다수가 냉담하는 최근의 현상, 돈을 숭배하고 무속 미신이 창궐하며 생명을 경시하고 생태 환경을 위험에 빠뜨리는가 하면 정치적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정책적으로 무시하는 최근의 이 정치 현상은 분명 신앙의 가치에 대한 박해 상황입니다. 따라서 믿는 이들의 대응방식도 동일하게 전개될 수밖에 없습니다. 부활을 희망하며 박해를 겁내지 않음이 전략이요 각자가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전술입니다. 그리하면 민족의 복음화와 우리 교회의 쇄신도 머지않아 이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전교의 달을 마치는 오늘, 교우 여러분들이 복음화의 적들이 지닌 간악한 본질을 꿰뚫어보고, 선교의 전략과 전술에 능숙함으로써 영적으로 승리하는 하느님의 군사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손자병법에서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요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百勝 百戰不殆)이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