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하늘을 쳐다보라
1열왕 17,10-16; 히브 9,24-28; 마르 12,38-44 / 연중 제32주일; 2024.11.10
1. 가난한 과부 이야기
연중 제32주일인 오늘은 한국 천주교 주교단이 정한 평신도 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이야기를 군중과 제자들에게 하셨습니다. 과부들의 재산을 등쳐 먹으면서 사람들에게는 거룩하게 보이려고 기도는 길게 하는 바리사이파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비판하시는 말씀과 함께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는 궁핍한 가운데에서도 가진 것을 정성껏 봉헌한 이 가난한 과부를 모델로 제시된 것입니다.
이 과부의 예형은 오늘 제1독서인 열왕기 상권 17장에 나오는 사렙타의 과부입니다. 역대 어느 임금보다도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정치를 일삼던 아합 시절에, 엘리야 예언자는 사렙다에 살던 가난한 과부에게로 가서 기적을 일으켜 주었습니다. 몇 해 동안이나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던 지독한 가뭄에 까마귀가 날라다 주는 음식으로 겨우 연명하며 지내던 엘리야가 먹을 것을 청하자, 이 과부는 고작 남아있던 밀가루 한 줌마저 내어주는 믿음을 보인 덕분에 먹을 것이 떨어지지 않게 되었음은 물론, 죽어가는 아이마저 살아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례를 인용하여 믿음이 두터운 이들에게 선택적으로 베풀어지는 하느님의 자비를 일깨우기도 하셨습니다.(루카 4;26 참조)
그리고 오늘 미사의 제2독서인 히브리서 9장에서는 봉헌과 심판에 대한 믿음이 두터운 이들에게 재림하시어 구원해 주실 대사제 예수님에 대하여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봉헌과 심판에 대한 믿음이 두터운 이들에게 베풀어질 하느님의 자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오늘 미사의 말씀을 평신도 사도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겠습니다. 특히 평신도들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웠던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상기하며 묵상한 바를 전해 드리고자 합니다.
2. 천지인 삼재사상과 한국천주교회
두 발을 땅에 딛고 서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은 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고개를 들어 두 눈으로 하늘을 쳐다보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늘은 아버지와 같고 땅은 어머니와 같기 때문이고, 하늘과 땅의 열매가 바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민족이 태초에 얻은 깨달음으로서, 이를 천지인(天地人) 삼재사상(三才思想)이라 합니다. 단군은 이를 후손들에게 알려주고자 삼원태극으로 우리 민족의 문양을 삼았고, 조선 임금 세종은 이를 바탕으로 한글 모음을 만들어 전해주었습니다.
자신의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이러한 사색이 안개처럼 아스라이 뿌옇다가 드디어 역사 속에 선명하게 드러난 때가 2백여 년 전인 18세기 말 무렵이었습니다. 새 하늘이신 예수님, 인간이 되신 하느님을 믿고 섬기는 그리스도 신앙의 진리가 평신도 선비들의 자발적이고 지성적인 노력으로 들어왔기 때문입니다.(1779~1784)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요 기적”이라고 불리우는(조광) 이 일은 사실 천지인 삼재사상의 맥락에서 보자면, 천지인의 관계가 삼위일체 도리로 밝혀지고 인간의 기준이자 모범이신 예수님의 삶이 그리스도 신앙 진리가 밝혀진 것이기 때문에, 정신사적으로 볼 때 조선 왕조 5백 년 역사를 넘어 우리 민족 반만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우리 민족사를 넘어 세계 인류역사를 통털어 보아도 이렇듯 심오하고 선한 건국이념을 천명하는 일이 없고, 2천 년 가톨릭 교회사 안에서도 선교사 없이 복음이 전해진 이 일은 유례가 없어서, 실로 오묘한 섭리로 일어난 기적이었습니다.
3. 서학과 동학
이러한 거대한 물결이 한반도에 들이닥쳤는데 이 물결의 여파가 곁가지로 일어났습니다. 서학에 이은 동학의 물결이 그것이요, ‘천지개벽’(天地開闢)에 이은 후천개벽(後天開闢)에 대한 깨달음이 그것입니다. ‘천지개벽’이란 하늘과 땅이 열렸다는 뜻인데, 이 경우의 하늘과 땅은 천문학이나 지질학의 탐구대상인 자연의 하늘과 땅이 아니라 인격신이자 창조주로서의 하늘을 말하는 것이요, 이 하늘의 기운을 받아 땅에서 일어난 자연 환경은 물론 인간의 온갖 문명을 말하는 것이고, 특히 하늘의 이치를 깨달아 인간을 각성시킨 종교를 비롯한 문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수운 최제우는 인격신이자 창조주 하느님을 믿는 천주교를 자발적으로 수용한 한국 교회 초창기 평신도들의 지성적 구도정신을 이처럼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그리고 새 하늘로서 내려오신 하느님, 즉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을 믿는 그리스도 신앙 진리를 ‘후천개벽’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서학에서 ‘천지개벽’과 ‘후천개벽’이라는 깨달음을 얻은 최제우는 중국 청나라에 온 서양 선교사들이 제국주의 침략정책에 편승하여 저질렀던 행태(태평천국의 난, 1854~1864)를 보고 실망한 나머지 동학을 창시했습니다.(1860) 유불선(儒佛仙) 등 한국의 전통적인 사상의 맥을 계승하되 서학에서 얻은 깨달음을 더하면서도 서학에 맞서 민족의 뿌리를 상기시키려는 의미로 동학이라 이름 붙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 한 세대 후에 전봉준이 정약용이 지은 <경세유표>(經世遺表)를 교과서로 삼아 동학혁명을 일으켰던 일(1894)도 18세기 말부터 이 땅의 선각자들이 들여온 신앙 진리의 여파(餘波)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모두가 18~19세기에 조선 사회에 만연했던 모순과 불의에 분개하여 진리와 정의의 이름으로 일어난 평신도 정신 혁명이었고, 땅에 두 발을 딛고 고개를 들어 두 눈으로 하늘을 쳐다 본 그래서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였습니다.
4. 한국 평신도 사도직의 뿌리
이런 업적을 알아본 국제연합 교육과학문화기구(UNESCO)가 2012년에 세계 정신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여유당 전서의 저자인 다산 정약용이 스승으로 모셨던 인물은 선각자 광암 이벽이었는데, 이승훈을 통해 세례를 받은 이벽과 천진암 강학회 선비들은 천주교 교리를 완벽히 알지 못하는 처지에서도 성사생활을 하고 싶었습니다. 성사적 열망이 뜨겁던 중 문중박해를 받아 이벽이 세상을 떠나자 그 선비들은 이벽을 본받아 자체적으로 성사를 거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고 이를 바탕삼아 선교하여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습니다.(1786~1790) 주로 선비들을 비롯한 중인들까지 한양에서만 무려 1천여 명의 입교자를 갖춘 교회로 성장시켰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발적인 성사조직이 신생교회를 성장시키고 엄청난 선교적 위력을 발휘한 일은, 그 십여 년 전에 이 땅의 평신도들의 지성적 위대함을 보여준 것 이상으로 이 땅에서 평신도들의 자발적 조직력을 보여준 일입니다.
한국 천주교회 평신도들의 저력을 입증한 이 위대한 역사적 업적은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교우촌을 세워 백 년의 박해를 이겨냈다든지 이 바탕 위에서 기록상으로만 해도 2천 명이요 구전상으로는 2만여 명이 넘는 넘은 순교자를 배출했다든지 또 그에 멈추지 않고 그 후의 또 다른 백 년 동안 순교자 신심을 함양하여 순교 정신을 우리 교회의 핵심으로 삼아온 것 모두가 다른 나라 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답고 귀한 전통입니다.
5. ‘신앙 감각’과 ‘공동합의성’ 문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반 세기 전에 시작한 교회 쇄신의 여정을 마무리 짓기 위하여 프란치스코 현 교황이 역점을 두고 있는 노력은 「신앙 감각」(2016)과 「공동합의성」(2018) 문헌에 집약되어 있는데, 이 노력 역시 그 초점은 평신도들의 각성을 촉구하고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이를 도우라는 뜻입니다. 우리 교회의 5백만 평신도들이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그 1% 미만인 6천 성직자, 만4천 수도자들이 99%의 평신도가 깨어나도록 헌신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두 발을 땅에 딛고 선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남녘 겨레에게 빛이 되고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기를 원합니다. 그리하면 북녘의 겨레와도 손에 손 잡고 아리랑 노래를 부르는 민족 복음화의 날도 머지않을 것입니다. 이 땅에 깨달음의 새벽이 열리던 때, 구도적 지성과 자발적 성사생활과 창의적 교우촌과 용감한 가치 실현의 순교노력으로 빛나는 전통을 세워준 평신도 선조들의 발자취를 기억하는 오늘은 평신도 주일입니다.
교우 여러분!
하늘을 쳐다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