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의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묵시 1,1-2,5; 루카 18,35-43 / 연중 제33주간 월요일; 2024.11.18.
한 해의 전례력을 마감하는 지금의 위령성월에 우리 교회는 산 이와 죽은 이 모두를 기억하는 모든 성인 대축일, 특히 먼저 세상을 떠나신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위령의 날,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단에서 정한 평신도 주일에다가 어제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정해 준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까지 지내고 있습니다. 서울대교구에서는 이런 취지를 감안하여 모범적인 평신도들을 선정해서 ‘기림 미사’를 지내고 있는데, 오늘 강론에서 제가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릴 분은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의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라는 소신으로 가난한 환자들을 돌보아 주었던 신앙인입니다. 그는 오늘 복음 말씀대로 사랑의 진리에 눈을 뜬 사람이었으며, 또한 오늘 독서 말씀대로 처음에 지녔던 마음을 죽는 순간까지 증거해 보인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리코에서 만나신 눈먼 거지의 청원을 들으시고 그가 다시 볼 수 있도록 눈을 뜨게 해 주셨습니다.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고 오로지 신적 권능을 지니신 분이셨기에 가능한 기적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내세우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 눈먼 거지의 믿음이 그를 보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구원을 받을 수 있게도 하였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지난 2022년 이즈음에 명동대성당에서는 이런 치유자 예수님을 본받고자 했던 평신도 한 사람을 기리는 미사가 거행된 바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셨고 또 삶으로 보여주신 그 거룩한 행적과 삶이 머지않아 반드시 일어나리라고 내다본 요한묵시록(묵시 1,1)의 말씀처럼, 과연 그는 “의술은 남을 위해 쓰여야 한다. 밥벌이하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다.”라는 신조를 버팀목 삼아 살아간 의사였습니다. “의학을 공부하며 사람을 살리는 데 이용하겠다고 약속했는데 가난한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데 뿌리 칠 수가 없었다.”고 말하는 그는 무료 병원을 세워 헌신적으로 봉사하며 의술을 펼쳤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생겨났고, 그의 뜻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의사들이 무료진료를 도왔습니다.
그는 의료보험이 없을 뿐 아니라 주민등록증도 없는 노숙인 환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먹어 주고 입혀 주어 가면서 치료를 해 주는 등 참 의료를 실천하였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가난하고 고통받는 예수님을 본받기 위한 신앙의 증거였습니다. 이를 위해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기존 병원들의 진료행태를 본받지 않고, 돈을 받지 않는 의사로서 살고자 애를 썼습니다. 자신과 요셉의원을 찾아오는 가난한 환자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주신 선물이라 여기며, 20여 년 간 43만 여 명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병을 치료해 준다고 해서 삶의 위기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어서 그는 입을 것, 먹을 것, 그리고 쉴 곳까지 마련해 주는 등 할 수 있는 한 자신을 찾아온 가난한 이들이 살아갈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 가난한 환자들이 살아갈 의지를 가지고 더 나은 삶을 향해 노력하는 한 자신의 이러한 무료 의술은 예수님을 본받는 일이라 믿었습니다. 그가 가난한 환자를 위한 무료병원을 세우면서 자신의 주보성인의 이름을 따서 ‘요셉의원’이라고 지은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원은 노숙자, 행려자, 알코올의존증 환자들이 찾는 병원이라 늘 퀴퀴한 냄새가 났고,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가끔씩 술 취한 환자들이 찾아와서 소란을 피울 때도 있었습니다. 어디에도 호소할 데 없는 사람들이 가난 때문에 사회에서 소외 받고 차별당한 분노를 이곳에 와서 터뜨리곤 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어린 아기가 엄마에게 관심을 가져 달라고 우는 것과 같은 거에요. 우리가 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으면 저 사람들이 어디 가서 마음을 털어 놓겠어요? 우리가 힘들더라도 참고 받아 주어야 해요.”
이처럼 이웃을 위한 희생과 봉사의 삶을 실천한 그는 2008년 4월 18일 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 멀리 아프리카의 남수단에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의술을 펼치다가 정작 자신의 몸을 돌보아줄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 젊은 나이에 선종한 이태석 신부처럼, 그도 가난한 이들을 돌보면서 정작 자기 몸을 돌볼 의사를 만나지 못해서 병고와 싸우다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그가 시작한 일은 남은 이들에게 맡겨졌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26년이 지난 오늘날, 그가 세운 요셉의원은 재단법인으로 등록되었고, 성직자와 수도자가 상근하며, 13개 진료과목에 걸쳐 일주일에 한 시간씩 무료진료봉사를 하는 의사들이 300명 가량 되고, 많은 자원봉사자와 더 많은 후원자들이 그의 뜻을 이어받고 있습니다. 그가 남긴 말은 기림 미사를 봉헌한 많은 신자들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습니다: “진료비가 없는 환자야말로 의사가 필요한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선우 경식 요셉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세상에 오시어, 보여주신 것을 삶으로 그대로 실천 하신, 선우 경식요셉님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셨네요.
이태석 신부님과 함께 언젠가는 성인품에 오르실수 있길 간절히 빕니다.
저도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