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 종교적 관용과 형제적 연대 그리고 사회적 협력
집회 4,11-19; 마르 9,38-40/ 연중 제7주간 수요일; 2025.2.26.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마르 9,40)이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심으로써 종교적 관용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전국으로 파견받아 복음을 선포하러 다녔을 때(마르 6,7) 자신이 겪은 일을 두고 요한은 이렇게 예수님께 보고하였습니다. “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 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 고 하였습니다”(마르 9, 38). 그 무렵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아직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사람이 있었던가 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습니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마르 9, 40).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너그럽게 종교적 관용을 베풀라고 타이르셨습니다. 게다가 그 사람뿐만 아니라 제자들이 파견되어 나갔을 때의 어려움까지 내다보시고 한 걸음 더 나아가셨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절대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 41). 이는 하느님의 편에 서려고 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말씀으로서, 믿는 이들이 종교적 관용의 자세를 지녀야 할 뿐 아니라 형제적으로 연대하여 사회적 협력까지도 가능하게 하는 말씀이라고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적중하는 현실은 그리스도교 안에서 교파 간에 갈라져 있는 분열 사태입니다. 전 세계 가롤릭 신자들은 해마다 사도 바오로의 회심 축일인 1월 25일을 기준으로 9일 전부터 기도를 바치며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 취지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고대 말기에 불화를 빚어 분열되었던 동방 교회 신자들과, 중세 말기에 서방 로마 교회에서 갈라져 나간 프로테스탄트 교파의 신자들을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부르면서 일치를 위한 공동의 움직임을 촉구한 데 따른 것입니다.
교회 일치, 더 정확히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는 예수님께서 유언으로 남기신 중대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열두 제자와 함께 최후의 만찬을 나누기 전에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시며 성체성사를 세우셨습니다. 베드로를 수제자로 임명하시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끼리 꼴찌가 되어 서로 섬겨야 한다고 명령하셨으며,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도 이 성사가 겨냥하는 상호 섬김의 자세로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치의 표징이 되어야 할 성체성사를 거행하는 사제들의 수위권 해석 때문에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 갈라졌고, 베드로 대성전 신축을 빌미로 빚어진 성직주의의 폐해 때문에 서방 교회 안에서도 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가 분열되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교회의 행정 단위가 분화되고 또 예배 형식이 다양해졌다고 해도 교파들이 늘어난 것일 뿐 엄밀히 말하면 교회는 분열된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도신경을 통해 하나인 교회를 믿고 있습니다.
하나인 교회의 근거는 신앙의 단일성입니다. 교회 행정 단위가 달라지고 예배 형식이 다양해 졌다 해도 예수를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신앙 자체가 달라진다면 그것은 이단이지 그리스도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신앙의 단일성은 구약의 역사에서부터 준비된 것이고, 신약의 역사에서도 바리사이즘 유다교와의 대결을 통해 형성된 진리입니다. 교회 일치의 계기가 되어 주고 있는 역사적 인물은 사도 바오로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전에 열성적인 바리사이로서 율법을 신봉하던 유다교 신자였습니다. 또한 벤야민 지파 출신으로서 남다른 자부심을 지니던 유다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임금으로 사무엘 예언자로부터 임명된 사울 왕의 후손으로서 같은 이름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셨다는 그 역사성의 진실은 시대가 바뀌고 분열의 역사적 얼룩이 묻었어도 가려질 수 없습니다. 동방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개신 교회의 그리스도인들도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선교 일꾼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신앙을 증거하기 위하여 나서고, 서로 차이가 나는 부수적인 일들에는 자유를 인정하며, 무엇보다도 서로에 대한 존중심을 지니고 가난한 이들을 돕고 지구 환경을 보존하며 평화를 실현하는 일에 서로 협력하게 될 때 인류에 대한 하느님의 축복은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공의회가 가르치는, 일치를 위한 지혜입니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을 사랑하고, 이른 새벽부터 지혜를 찾는 이들은 기쁨에 넘치리라. 지혜를 붙드는 이는 영광을 상속받으리니, 가는 곳마다 주님께서 복을 주시리라.”(집회 4,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