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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의 해로설(海路說)》 티베트문화연구소장 김규현(suri116@daum.net)
1. 들어가는 말
2.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해상실크로드>
3. ‘당나루’에 대한 고찰
4. 『혜초왕오천축국전』상권 속의 ‘해로설’
5. 동남아 <해상실크로드>
6. 맺는 말
7. 부록 및 참고도서
1. 들어가는 말
통일신라 시기 400여 년간 한반도를 떠나 당나라 또는 천축까지 들락거렸던 입당유학생, 입당구법승 그리고 입축(入竺)구법승은 수백 명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이글에서는 국내 학계에서 한 번도 다뤄보지 않았던 혜초(慧超,704~787)의 바닷길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2.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의 <해상실크로드>
<해상실크로드> 란 용어는 1913년 독일의 동양학자인 샤반느(E.Chavannes)가 <도자기의 길> 또는 <향(香)의 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을 비롯하여 앞서 리히트호펜(F.V.Richthofen)에 의해 사용된 ‘비단길[Die Seidenstrassen]과 랑데부 되어 <해상실크로드(Marine silk road)>라는 국제학술용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중세기 이후 지정학적 원인으로 오랜 세월 다양한 종교와 문화의 형성, 발전, 변용의 산물인 이 <육상실크로드>가 그 기능을 상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지만, 동아시아의 비약적인 도약으로 인해 <해상실크로드>가 부활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항로는 일찍이 진·한(秦漢)시대 이래 동·서양 간의 소통로 역할을 해왔었지만, 특히 당나라의 탈라스(Talas)전투의 패배 이후 <육상실크로드>가 막힘에 따라, 더욱 번성을 거듭하였다. 이 바닷길이 바로 이글의 테마인 <해상실크로드>인데, 중국 동남부 광저우[廣州]에서 아라비아반도로 나아가는 1,600km 거리의 대항로이다. 중국측 용어로는 <광주통해이도(广州通海夷道)>라고 부른다.
▲ ▼중국의 해상실크로드의 항로도<海上紗綢之路>
또한 요즘 비약적으로 부상하고 있는 시진핑[習近平] 체제의 신중국이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프로젝트도 실은 옛 실크로드의 영광을 다시 재현해 보려는 한족우월주의의 ‘중국몽(夢)’이기에, 우리 한민족 또한 반도에서 벗어나 새롭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맞이할 준비를 해야한다.
3. ‘당나루’는 어디인가?
『삼국사기 신라본기』 5권 선덕왕조와 『삼국사기 백제본기』 6권 의자왕조에에는 각각 다음과 같은 기록이 보인다.
“선덕왕 11년 가을, 백제 의자왕이 크게 군사를 일으켜…8월 또 (백제가) 고구려와 도모하여 항성(項城)을 취하여 당과의 소통로를 끊으려 하므로, 왕은 당 태종에게 사신을 보내어 위급함을 고했다….”
“의자왕 3년 겨울 11월, 왕은 고구려와 화친하여, 신라의 항성(項城)을 탈취하여 신라가 당과 통하는 길을 막으려고 군사를 일으켰다.”
위의 두 기록을 비교해보면 당시 당항성 또는 당성의 지정학적 상황이 눈에 그려진다. 원래 당항성은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 땅이었는데, 고구려 장수왕 때 고구려로 편입되었다가 신라 진흥왕 551년에 신라 땅이 되었다. 그러다가 757년에 ‘당은군(唐恩郡)’으로, 829년에는 ‘당성진(唐城鎭)’으로 고쳐서 전략요충지로 삼았다.
물론 이글의 초점은 군사요충지로서의 ‘당항성’이 아니라 “당나라로 가는 포구”가 어느 곳이냐?“ 에 있다. 그곳이 바로 8세기초 혜초화상과 의상조사 등 수 많은 유학생들과 구법승들이 선박을 타고 떠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당항성 아래의 현 남양만 어딘가에 ‘당은포’가 있었다면, 외국의 사신이나 상인들이 들어왔을 때 입국절차를 거치는 관문(關門), 즉 현재의 이민국(Immigration)에 해당하는, ‘해문(海門)’이란 관청이 있어야 하고 또한 번화한 포구 정도의 잔재는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천여년이란 오랜 세월에 해안선이 변했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같은 경우의 완도의 청해진(淸海鎭)과는 다르게 ‘당은포 찾기’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다음과 같다. 물론 확실한 전거가 부족한 현재로서는 일종의 ‘가설’일 뿐이지만, “지금의 평택·당진항은 옛 ’당나루‘ 대상지 중의 한 곳이다.”
필자는 이글을 쓰기 위해 수십 종의 기호(畿湖)지방 고지도들을 살펴보다가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1862년에 제작된 <수원부지도(水原府地圖>에 대진‘(大津)’이란 지명이 표시되어 있고 아래 빈공간에 다음과 같은 설명문이 쓰여 있다.
▲ <수원부도> 하단에 아래와 같이 설명문이 보인다.
“대진(大津)은 삼국시대 시기에는 백제의 혜군(槥郡)의 가리저(可里渚)로 동쪽에 수군창고가 있었는데, 신라가 백제를 평정하고 [또한] 곡식을 저장하는 관청을 설치하여 ‘수관(稤館)’이라 불렀다. [이에] 당나라의 사신과 병사들과 상인들이 모두 이 수관에 이르러 신라인이 조공을 바쳤기에 [그곳을] 이름하여 대진(大津)이라 불렀다.(‘大津’三國時百濟於槥郡之可里渚 東置 水軍倉 新羅平百濟 置館積穀號‘稤館’ 唐之使价 商賈 皆 就館 羅人朝貢 亦由此名因‘大津’)”
여기서 ‘수관’이란 일종의 창고지기 관리가 근무하는 곳이고, 위 설명문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대진’ 주위에 2곳의 창고가 보이는 것을 보면 근처에 관용 곡식창고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므로 위 기록은 “당나루가 어디인가?” 라는 물음에 설득력 있는 답변을 해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통일신라 때까지 대진항에는 중국과의 무역이 성행했었기에 인근에 곡식창고들이 여럿 있었다는 말이다. 대진에 대한 설명은, 일반적으로 지도와 짝을 이루는 지지(地誌)인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지봉유설(芝峯類說)』에도 나타난다.
“대진(大津)은 수원부 서남쪽으로 1백 리이며 [포구의] 넓이가 10여 리인데 조세(潮勢)가 사납다. 중류(中流)에 영옹암(令翁巖)이 우뚝 서 있는데 높이는 1백 척 가량 된다.”
그러니까 조선전기만 해도 대진은 넓이가 10여 리나 되는 긴 항구였고 포구 앞에는 영옹암이, 지금과 같이 서 있다고 한다.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아산만에 ‘대진’과 ‘영옹암’이 보인다.
만약 ‘대진’이 “옛 당나루 자리”라는 가설이 설득력이 있다면, “대진은 현재지도로 어디일까?”의 대답은 위의 <수원부지도>를 비롯하여 <동국지도>, <해동여지도>, <경기도>, <대동여지도>와 미확인 지도 여러 장이 그 해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바로 “현재의 평택·당진항 그 자리” 라고….
▲ <평택·당진항 유래지도>
귀납적으로 이 논제를 풀어보자면, 무엇보다도 현재의 평택·당진항이 옛 ‘당나루’였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은, 바로 현재도 국제적인 항구라는 점이다. 무릇 큰 항구로서의 필요충분조건은 큰 배가 입항할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깊어야 한다. 그것은 옛날이나 현재나 변할 수 없는 과학적 사실이니, 그런 전제하에서 남양·아산만 일대에서 그런 자격을 구비한 곳은 오직 평택·당진항 뿐이라는 사실은 옛날로 소급해도 변치 않을 팩트(fact)이다. 설혹 현재의 평택·당진항에서 한 걸음 양보하더라도 아산만을 벗어나지 않는 오차범위 내에 있을 것이라는, 향토사학자의 의견도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다음으로는 ‘만호리(晩湖里)’의 유래를 고찰해보는 것도 평택·당진항의 과거 위상에 무게를 실어준다. 왜냐하면 ‘만호리’라는 이름은 집들이 많은 큰 마을이라는 뜻이 아니라 ‘도만호(都萬戶)’라는 옛 수군경비대의 주둔지였기에 생겨난 지명이다. 그러니까 다시 정리해보면 현재 해군 2함대사령부와 동남아의 허브항으로 자리 잡은 평택·당진항이 있는 곳은 포승면 만호리 일대인데, 그곳은 과거 ‘수군만호’들의 주둔지였고 또한 옛날 당나라의 사신들과 상인들과 당나라 유학생 구법승들이 출입하던 큰 포구였다고 비정된다.
4. 『혜초왕오천축국전』상권 속의 ‘해로설’
1908년 2월 프랑스의 동양학자 뻴리오(Paul Pelliot;1878~1945)가 돈황유물의 소문을 듣고 달려가서는 석굴에 틀어박혀 유물을 선별하여 파리로 보냈다. 바로 <돈황학(敦煌學)의 D.B>라 부르는 것들인데 그 속에 우리 역사상 최고의 기서인 『왕오천축국전』이 들어 있었다.
▲ 둔황 막고굴 16굴에서 뻴리오에 의해 발견된 『왕오천축국전』의 현존본(두루마리 필사본). 현재 파리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렇게 하여 천하의 기서(奇書)는 1,700여 년 만에 우리 앞에 나타났지만, 그러나 이글의 주제인 <혜초화상의 해로설>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해서는 현존본 『왕오천축국전』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유일한 실마리는 『일체경음의』에 실려 있는 어휘 85개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에 필자도 팔만대장경에 들어 있는 『혜초왕오천축국전상권』 39개를 텍스트로 하여 해로설의 실체를 살펴보고자 한다.
▲ 해인사판 『고려대장경』 속 『일체경음의』권100 속에『惠超 왕오천축국전』상권. 여기서 ‘惠超’는 ‘慧超’와 같은 인물로 확인되었다.
『惠超往五天竺國傳 上卷』
***각멸(閣蔑:林邑國)-(眠[敝/黽]反 崑崙語也 古名 林邑國 於 諸崑崙國中 此國 最大 亦 敬信三寶也)。
위의 예문에서 ‘眠[敝/黽]反’은 중국의 음운학(音韻學)에 의한 설명이다. 예를 들면 곤륜어로 ‘眠’은 ‘敝(bi)’+‘黽(min)’하면 ‘빈(bin)’으로 발음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별 의미가 없는 음운학적 발음에 대한 설명일 뿐이다. 마지막 글자 ‘반(反)’은 음운학 기호로 역시 뜻은 없다. 예를 하나 더 들어보면, 중국어 ‘東’은 ‘[德/紅]反’하면 德(de)+紅(ong)=하여 ‘동(dong)’으로 발음한다는 식이다.
그 다음의 구절은 한자 뜻대로 해석하여 “옛이름이 임읍국이고 여러 곤륜국 중에서 제일 크다. 그리고 삼보를 믿는다.”로 해석하면 된다.
***곤륜국(崙國國)-崑崙은 일반적으로 신화에 등장하는, 서방의 ‘崑崙山’과 동남아 해상일대의 ‘崑崙’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지만, 워낙 다양하게 사용되어 어원과 지리적 위치를 정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撥帝(上音鉢[金*本])-윗 글자는 ‘발(bar)’로 읽는다는 뜻이다。
***갈평류(葛蓱流:-곤륜어로(中郎葛反 蕃語也)/부평초 같이 물에 떠다니는 풀을 뜻한다.
***체수(鬄鬚: 남방이민족들의 치장과 장식은 각기 다르다. 머리를 깍거나, 문신을 하거나, 상투를 틀거나, 귀를 뚫거나, 맨발로 다니거나 하는 풍속
*회로(迴路)-먼길을 돌아간다.
*편편(翩翩)-새가 나는 모양. 유리왕의 黃鳥歌에도~
*묘묘(杳杳)-하늘이 넓고 그윽한 모양.
*괘석(掛錫)-천을 갈다.
*반장로(盼長路)-아름다운 눈이 길다.
*요란(撩亂)-어지러운 모양
*산파(山[白+巴]-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 밭에 재배하며 잎은 원기둥 모양으로 속이 비었고, 여름에 흰 꽃이 핌. 독특한 냄새와 맛이 있어 약·요리에 씀.
*공총(倥傯)-어리석게 바쁜 마음
*아눈(牙嫩)-어리고 약하다.
*참차(參差)-섞이고 어긋나는 모양새
*요기(邀祈)-신령에게 복을 기원하는 데 참석하다.
*흡여(恰如)-비슷하다
*곤개(輥芥)-겨자씨가 구르는 모양.
*기구(崎嶇)-곳처럼 험하고 어렵다. 법현전(法顯傳)에 이산을 설명하였다.
*창(槍)-긴 창
**녹장(鹿+章鹿)-노루 사슴
***대모(玳瑁)-바다거북
***구별(龜[敝+黽])-거북 자라 종류
*병수(迸水)-흩어저 달아남。
*의연(嶷然)-높고 험준하다
**발해(渤澥)-바닷물이 크게 솟구치는 모양 또는 큰 자라의 이름
**분궁창(湓穹蒼)-큰 파도가 허공으로 솟구치는 모양
*주서(足-口+夭]竄)-쥐가 쥐구멍으로 도망치는 모양。
***원타(黿鼉)-자라와 악어류. 『불국기』에도 같은 기록이 나온다. “거북의 종류인 수성괴물 종류(黿鼉水性怪異之屬)”
***야자장(椰子漿)-남방과수의 이름으로 형태는 파초잎처럼 생겼는데, 그 잎으로 선박을 바닷물로부터 견고하게 묶기도 하고 또한 그릇처럼 만들어서 달고 맛있는 열대과일을 저장하기도 한다.
*목책(木柵)-나무 울타리
*난간(杆欄)-야생동물을 방어하기 위한 목책
*추두(錐頭)-송곳머리
***압박(壓舶)-큰 선박
*포타(拋打)-던지고 치다
*준활(峻滑)-높고 미끄럽다
*괄지(聒地)-육지
『惠超往五天竺國傳 中卷』
***나형국(裸型國)-나체의 미개족-현 인도령 안다만 니코바르(A. Nicorbar)군도를 말한다.
이로써 혜초화상의 천축행은 바로 바닷길, 즉 <동남아해상실크로드>를 이용하여 천축국에 도착한 것으로 확인된다.
끝으로 우리가 혜초화상을 재조명하는 이유는, 한반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인도와 서역을 넘어 현 이란(Iran)의 니샤푸르(Nishpur)까지 발길을 내디뎠고 또한 최초로 대식(大寔:아랍)을 언급하였고 또한 최초로 이슬람권과 접촉한 진취적인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 <혜초화상의 해로도>
5. <해상실크로드>
<해상실크로드>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문헌이 하나 있다. 바로 당 가탐(賈耽,730~805)이 편찬한 『광주통해이도(广州通海夷道)』이다. 이른바 광저우에서 아라비아반도에 이르는 16,000km나 되는 항로를 소개하고 있다. 크게 4구간으로 나누어 제1~3구간은 광저우-수마트라-스리랑카(獅子國)-바스라(末羅國)이고 제4구간은 몰래국(沒來國,인도 서남방의 Malabar)-아프리카 동해안의 삼란국(三蘭國, 탄자니아의 Bandar u’d Salam)-페르시아만의 오랄국(烏剌國, Obollah)까지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은 당시 신라가 때로는 중국거치지 않고 직접 이슬람 상인들과 교역을 했다는 사실이다. 한국이나 중국측 문헌에서는 찾을 수 없지만, 이슬람 문헌인 슐레이만(Sulayman al-Tajir)의 『중국의 인도소식(Akhbar al- Sin wa’l-Hind) 851년)』과 아마소디(?~965)의 『황금초원과 보석광』등에는, 아랍상인들이 신라를 왕래 또는 신라에 관한 견문기록과 함께 신라로 부터 수입한 상품품목이 실려 있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도 있다. 이들 자료에 의하면, 아랍인들은 신라에 대한 호칭을, 현대중국어발음인 ‘sinlo’ 또는 ‘sinla’로 부르는 게 아니라 ‘sila’ 또는 ‘shila’로 불렀다고 하며, 또한 현재 아랍어 발음기호로는 ‘sunbuk’, 페르시아어 사전에는 ‘sombak’ 이라고 쓰는 말도 단박에 중국식 발음인 ‘촨보[船舶:chuan bo]’가 아니고, 우리식 발음인 ‘선박(船舶)’에 가깝게 들린다. 더구나 이 단어는 720년의 일본서기(日本書紀) <숭신기(崇神記)>에 나온다고 하니 이 또한 흥미로운 일이다. 이렇듯 <해상실크로드>에 의해, 한반도와 일본과 중국 그리고 아랍권이 동떨어진 먼 곳이 아닌 것이다.
동남아 항로와 고대선박의 규모를 알 수 있는 최초의 기록으로는 법현(法顯)의 『불국기(佛國記)』를 들 수 있다. 법현은 현장법사보다 200년 먼저, 399년 장안을 출발하여 인도의 불적지를 순례하고 411년 8월에 귀국할 때 스리랑카(Srilanka)에서 무역선을 타고 귀국하는 동안 적지 않은 항해기록을 남겼다.
다음으로 의정삼장(義淨三藏)의 『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을 빼어놓을 수는 없다. 역저 『대당서역구법고승전』과 『남해기귀내전(南海寄歸內傳)』은 약 50년 동안 인도로 구법여행을 떠났던 56명의 승려들의 전기체 기록이다. 특히 이 속에는 혜초화상보다 반세기 먼저 인도대륙을 누비고 다녔던 혜륜(惠輪)등 7명의 해동승려들의 행장이 들어 있어서 우리에게는 의미가 매우 깊다. 더구나 ”이름모르는 신라승려 2명의 입적소식“대목은 더욱 그러하다.
▲ 의정의 『대당구법고승전』에 기록된 신라승 7인의 행장
혜초화상은 수마트라의 팔렘방에서 적어도 일 년 이상 머물면서 천축으로 들어갈 준비를 했을 것이란 추정은 확실하다. 그것은 당시 유학승들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무엇보다 천축으로 항해에 필요한 ‘무역풍’이 일 년에 한 번씩만 불어온다는 사실에 기반을 두는 비정이다.
▲ 해상강국 스리비자야의 해상권
6. 맺는 말
이글의 주제는 “8세기 당시 <해상실크로드>의 동쪽 끝 출발점인 ‘당나루’는 과연 어디인가? 그리고 어떤 항로를 거쳐 천축국으로 갔을까?”이다.
첫 번째 주제는 필자의 전공분야가 아니지만, 2009년 평택과의 인연으로 다시 도전해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지금의 평택·당진항이 옛 ’당나루’ 중의 한 곳으로 비정된다.”- 라는 일종의 ‘가설’만을 제기하는 것으로 논고를 마감하게 되어서 아쉬움이 크다.
두 번째 주제인 ‘혜초의 해로설’을 풀 수 있는 열쇠는 『혜초왕오천축국전』 상권에 나오는 어휘 40개뿐인데, 매우 난해한 데다가 ‘음운학(音韻學)’의 바탕이 없으면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였다. 그렇기에 한 세기를 넘긴 ‘혜초학’이지만, 국내뿐만 아니라 일찍이 상당한 성과를 이룬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손을 대보지 못한 난제였다. 필자도 지난 40여년 동안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여러 번 도전하고, 포기하고를 되풀이하였다.
그러다가 마침내 시절인연이 도래하여서인지 이번 세미나를 통해 조그만 결과를 내놓을 수 있어서 홀가분하다. 강호제현의 이해와 질정을 바란다.
(끝)
첫댓글 우리 카페회원 제위님은 행사장에 오시면 반갑게 맞이하겠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수도사 종무소입니다.
금번 평택불교사암연합회에서 주최하는 제 1 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를 인터넷을 통해서 스마트폰 또는 PC 에서
동영상을 통하여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지인분들께 전달 부탁드립니다.
평택 수도사에서 예약된 Zoom 회의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주제: 제1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
시간: 2021년 10월 16일 01:00 오후
Zoom 회의 참가
https://us02web.zoom.us/j/85165707857
다정선생님의 강의를 들을 기회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