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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하나 되게 하소서. (요한17,11ㄷ-19)
제1독서<나는 하느님께 여러분을 맡깁니다.>(사도20,28-38)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31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물로 타이른 것을 명심하며 늘 깨어 있으십시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35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6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그들은 바오로를 배 안까지 배웅하였다.
<화답송>시편68,29-30.33-35ㄱ.35ㄴㄷ과 36ㄷ(◎33ㄱㄴ)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베푸소서. 하느님,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소서, 우리 위하여 이루신 그 권능을. 예루살렘의 당신 성전을 위하여, 임금들이 당신께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
○ 세상의 나라들아, 하느님께 노래하여라. 주님을 찬송하여라. 하늘로, 태초의 하늘로 오르신다. 보라, 그분이 목소리 높이시니 그 소리 우렁차네. 하느님께 권능을 드려라. ◎
○ 그분의 존엄은 이스라엘 위에 있고, 그분의 권능은 구름 위에 있네. 하느님은 찬미받으소서. ◎
복음<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17,11ㄷ-19)
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11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사도20,28-38)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애써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33-35)
사도행전 20장 33절에서 35절까지의 이르는 고별 설교 말미에서 바오로는 자기 자신에 대해 변호하면서 남에게 주는 삶이 복됨을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깨우치고자 한다.
당시 바오로를 비방하던 자들의 비방 중 하나는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거둔 구제(자선)헌금 중 일부를 바오로가 자신을 위해서 유용했다는 것이었다(2코린12,17).
그러나 바오로는 분명히 에페소에서 자신의 직업 즉 천막 만드는 일을 통해 자신의 필요를 충당했음을 밝혔다(사도18,3; 1코린4,12; 1테살2,9).
바오로는 낮에는 천막만드는 일에 종사하였고, 다른 사람이 쉬는 시간에는 티란노스(두란노: 개신교에서는 이렇게 부름)학원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열심히 가르쳤던 것이다(사도20,31 ; 사도19,9.10).
바오로는 하느님의 복음의 일꾼으로서 경제적 필요를 자신의 양떼들로부터 채움받을 권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권리마저 포기한 사람이었다. 이러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냈을 리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에페튀메사'(ephethimesa)의 원형 '에피튀메오'(ephithimeo)는 금지된 것을 '갈망하다', '탐내다' 는 뜻이다.
여기서는 과거의 일회적 사건을 뜻하는 부정(不定; Indefinit)과거형으로 사용되어 과거에 단 한번도 다른 사람의 소유를 탐내 본 적이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은', '금', '옷'으로 일반적 재물의 종류를 나열하며 자신이 그 어떤 것 하나도 탐내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환경에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이었고, 모든 욕심과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1티모6,5-10).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이 두 손으로 장만하였다는 사실을 여러분 자신이 잘 알고 있습니다.'
바오로는 본절에서 자비로 자신의 필요를 채웠을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필요도 채웠다는 사실을 회상시키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여러분 자신이' 에 해당하며 주어를 강조할 경우에 사용하는 재귀 대명사 '아우토이'(autoi)를 문장 서두에 쓴 것은, 이 말을 듣고 있는 에페소 교회 원로들이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두 손으로'에 해당하는 '하이 케이레스 하우타이'(hai cheires hautai)도 주격으로 사용되어 바오로 자신이 직접 노동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사실 바오로는 에페소 뿐만 아니라 테살로니카나 코린토에서도 자신 및 자신의 동료들을 위해 육체 노동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1코린4,12).
여기서 '장만하였다'로 번역된 '휘페레테산'(hypheretesan)의 원형 '휘페레테오'(hyphereteo)는 일차적으로 선박의 맨 아래층에서 '노를 젓다'는 뜻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비유적으로 '섬기다', '봉사하다'는 뜻으로 자주 사용된다(사도13,36 ; 24,23). 당시 선박의 맨 아래층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은 노예들이었다.
따라서 바오로가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을 철저하게 하느님의 종으로 여겼음을 잘 보여준다. 즉 바오로는 배 맨 아래층에서 배의 진행을 위해 수고하는 지극히 비천한 노예처럼 자신도 선교 여행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재정을 자신이 스스로 섬기는 자세로 감당했다는 뜻이다.
바오로는 자비로 복음 전파 활동을 감당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일의 진행을 위해 필요한 물질들을 기쁨으로 봉헌하며 섬겼던 것이다.
'나는 모든 면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하며 약한 이들을 거두어 주고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친히 이르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하라는 것입니다.'
바오로는 본절에서 자신의 삶을 에페소 원로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로 다시 한 번 더 자신있게 소개하고 있다.
'휘페데익사'(hypdediksa)의 원형 '휘포데익뉘미'(hypodeiknimi)는 '눈앞에서 직접 보여 주다', '실물 교육을 하다'는 뜻이다. 33절과 34절의 바오로의 행동은 에페소 원로들이 지난 3년간 친히 그들의 두 눈으로 목격하였다.
바오로는 에페소 원로들에게 물질에 대한 탐욕없이 동료와 교회의 필요를 채우고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던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바오로의 삶은 자신과 함께 일한 동역자들에게 본으로 제시될 정도로 아름다운 것이었다. 하느님의 비밀인 복음을 깨달은 바오로는 그들에게 입으로만 가르친 것이 아니라 직접 삶으로 가르쳤던 것이다.
하느님의 봉사자들은 말씀을 입으로만 전할 것이 아니라 늘 자신의 행동과 삶으로 가르쳐야 한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
바오로는 본문의 말씀을 예수님께서 친히 주신 말씀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의 물질관의 원리가 되는 말씀이자 예수님께서 친히 하신 이 말씀을 에페소 원로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사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이 말씀은 복음서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이 구전되어 오는 예수님의 말씀이거나 바오로가 직접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으로서 바오로가 간직해오다 에페소 원로들에게 들려 준 것으로 본다.
당시 속담 중에 '받을 때에는 손을 내밀고, 줄 때에는 주먹을 쥐는 짓을 해서는 안된다'는 비슷한 말이 있다. 이것은 받기를 좋아하면서 주기는 싫어하는 탐욕스러운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내용의 격언이었다.
바오로는 이러한 당시의 속담 대신에 자신이 주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말씀으로 에페소 원로들을 권면한 것이다.
'바오로는 이렇게 말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6)
36절부터 38절까지는 바오로가 고별 설교를 마친 뒤 원로들과 이별하는 장면이다. 루카는 바오로와 에페소 원로들의 이별을 세 단계로 묘사했다.
첫째 그들은 함께 기도했고(36절) 둘째는 이별의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다 울었으며(37절) 마지막으로 배에 까지 바오로를 전송했다.(38절)
이러한 이별은 바오로에 대한 원로들의 사랑과 염려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아시아 교회에 대한 바오로의 사랑과 염려를 보여준다(38절).
본절에서는 바오로가 고별 설교를 마치고 무릎을 꿇고 기도한 내용이 나온다.
'theis ta gonata autu ~ proseyiksato ' (테이스 타 고나타 아우투 ~ 프로세익사토 ; he knelt down ~ and prayed )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시 일반적인 기도의 모습은 아니었다. 많은 유다인들은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기도했다.
그러나 초대 교회에서는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이 새로운 기도의 모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루카22,41) 스테파노가 순교할 때 마지막 기도를 무릎을 꿇고 했으며(사도7,60), 베드로가 죽은 타미타를 살릴 때 간절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사도9,40).
이렇듯 신약성경에서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는 아주 어려운 곤경을 만났을 때 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문맥에서 발견된다.
따라서 여기서 바오로가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는 것은 앞으로 당할 교회의 어려움들의 무게를 생각하고 그들과 맺을 사랑의 끈을 놓으려 할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슬픔을 간절한 기도로 하느님께 아뢰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비록 몸은 서로 떠나 있지만 기도를 통해 영적으로 친교를 지속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오로의 마음이 잘 느껴진다.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매일미사 오늘의 묵상)(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제1독서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전하는 고별 담화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 바오로는 그들이 자신과 양 떼를 잘 돌보고 늘 깨어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 안에 굳건히 서 있기를 염원하며 마지막 당부를 남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서로 무릎을 꿇고 함께 기도하며 흐느껴 울고 포옹한 다음, 그들은 바오로를 배웅하며 떠나보냅니다.
예수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어 서로서로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였음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 장면은 큰 감동을 줍니다.
한편 복음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앞두고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신 ‘대사제의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거룩하신 아버지의 일치된 관계처럼,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모두 하나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십니다.
아버지께로 떠나시기 전에 예수님께서 바치시는 이 기도는 기쁨에 차 있습니다.
이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실현되는 하느님의 구원, 영원한 생명이 주는 완전한 기쁨입니다.
수난과 십자가, 죽음의 마지막 여정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 함께 이 기쁨을 누리며, 성령 안에서 제자들도 이를 충만히 누리기를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는 당신 제자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아버지와 일치하며 바치신 이 기도에는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가득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위하시는 하느님의 시선과 예수님의 마음을 떠올리면, 마땅히 주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좋으신 하느님 아버지께, 또 우리를 참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예수님께 우리는 어떻게 기도하고 있나요?
우리를 향한 주님의 보살핌에 응답하는 오늘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민영 예레미야 신부)
[부활 제7주간 수요일]
하느님만이 진리시다. 진리란 한치 오차 없이 완성되는 것.
(요한17,11ㄷ-19)
11예수님께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기도하셨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 피조물인 죄인들이 창조주 하느님과 예수님과 하나 되는 길, 곧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길은 하늘(생명)을 땅(죽음)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땅이 없음, 어둠임을 깨닫고, 자각하고 하늘이 빛, 있음임을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곧 그분의 대속,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에페2,12-13)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피의 새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독서 (사도20,28) 28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
12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구원자)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세상은 미워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말하는 사람은 세상의 미움을 받는다. 우리는 세상의 말을 해서 칭찬 받을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해서 세상에서 미움을 받는 사람들이다.
왜? 뱀의 유혹을 먹은 그 세상의 힘의 원리가 헛되다, 그 세상이 가치로 여기는 것들이 부질없다, 그 세상의 죄와 의, 심판이 그릇되다, 그래서 세상이 악이다 말하기 때문이다.
(1요한5,19) 19 우리는 하느님께 속한 사람들이고 온 세상은 악마(뱀)의 지배 아래 놓여 있다는 것을 압니다.
= 하느님께 속한, 선택 안에 들어있는 이들은 받아 들인다.(에페1,4참조)
독서(사도20,29-30) 29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여러분(교회, 성도) 가운데로 들어가 양 떼를 해칠 것임을 나는 압니다. 30 바로 여러분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다. 말씀은 진리인데 그 말씀이 사람이 되어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고 진리라고 하신다.
(요한1,1.14) 1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말씀이 진리인 것이고 진리가 예수님이신 것이다. 곧 하느님의 뜻(말씀)인 구원의 새 계약이신 그리스도의 피로 죄인들의 죄를 깨끗이 씻기어 거룩하게 해 달라는 예수님의 기도이신 것이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
(히브13,11-12) 11 대사제는 짐승들의 피를 속죄 제물로 성소 안에 가져갑니다. 그러나 그 짐승들의 몸은 진영 *밖에서 태웁니다.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 거룩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착하게 사는 삶을 말하지 않는다.(물론 인간은 착하게 살아야한다.) 거룩(하기우스)은 구별되다, 곧 이 세상의 힘의 원리와 다른 하늘의 원리로 사는 것이 거룩이다. 그래서 앞17절에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라고 기도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거룩은 우리 안에서 생산되고 성숙되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뚫고 들어온 진리의 말씀,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의해서 시작이되고 성숙되고 완성된다는 것이다.
(이사55,8-11)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9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창조주의 생각과 길이 피조물의 생각, 길과 다르다 하신다.(성령의 가르침으로만 깨닫는다) 인간의 길과 다른 하느님의 생각과 길, 곧 하느님의 뜻은 하느님의 말씀이 완수하시고 완성하신다는 것이다.
(야고1,16-18) 16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착각하지 마십시오. 17 온갖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은사는 위에서 옵니다. 빛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께는 변화도 없고 변동에 따른 그림자도 없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뜻을 정하시고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시어, 우리가 당신의 피조물 가운데 이를테면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 하느님의 말씀인 그분의 은혜로 얻는 선물인 하늘의 의, 생명, 구원을 깨달아 받지 못하고 자신의 의를 위한 일만 열심히 한다면 세상에서 칭찬은 받겠지만 하느님의 칭찬은 받지 못한다. 그에게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다.(로마3,22-24 10,1-4참조) 하느님만으로 행복해야 하고 존재해야 하는 하느님의 피조물들이 다른 것에 마음 붙이고, 곧 뱀의 유혹으로 말씀을 선악의 논리로 먹고, 거기서 행복과 만족을 얻고자 하는 모든 생각과 시도의 행위를 자아숭배, 죄라고 한다.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숭배하는 것이 ‘의’다.
(로마3,25)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시편71,19-20) 19 하느님, 당신의 의로움은 하늘까지 닿습니다. 위대한 일들을 하신 당신 하느님, 누가 당신과 같겠습니까? 20 당신께서는 저에게 많은 곤경과 불행을 겪게 하셨지만 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땅속 깊은 물에서 저를 다시 끌어 올리셨습니다.
= 땅속 깊은 물, 영원한 죽음을 주는 선악의 세상 말이다.
(1코린2,12) 12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천주의 성령님! 당신으로 깨어있어 하느님 말씀으로 거룩하게 하시니 감사하나이다. ~아멘!!!
부활 제7주간 수요일 복음(요한17,11ㄷ~19)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1)
요한 복음 17장 11절의 기도에는 예수님께서 당신이 떠난 뒤 세상에 남게 될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향한 당신의 특별한 관심이 잘 드러난다.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부활, 승천하심으로써 예전처럼 제자들과 함께 육체로 머무시며 그들을 지켜주실 수 없기 때문에, 성부 하느님께 그들에 대한 보호를 요청하시는 기도이다.
특히 세상에 남겨진 제자들이 하나가 되도록 그들의 보호를 요청하시는 기도이다.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는 '히나'(hina; that) 가정법으로서 '~하도록'(so as to; so that~may)이라는 목적의 의미를 나타내는데, 제자들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는 이들이 하나되어야 하는 목적 때문이다.
여기서 '지키시어'로 번역된 '테레손'(tereson; keep; protect)은 '굳게 붙잡다', '보살피다'는 뜻을 지니는 '테레오'(tereo)의 부정(不定) 과거 명령으로서 굳게 붙잡아 완전하게 지켜 달라는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안전하게 지키는 수단이 예수님께 주신 '하느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하느님의 이름'은 좁게는 '하느님의 능력'을 의미하는데(시편20,20; 54,3; 잠언18,10), 예수님께서는 지금까지 성부 하느님께서 당신께 주신 하느님의 능력으로 제자들을 보호해 오셨지만, 이제 그 일을 성부 하느님께 직접 의탁하시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이름'은 넓게는 '하느님의 완전하신 신적 위격'을 의미하는데, 천주 성부의 신적 위격은 하느님의 능력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 및 가르치시는 교훈과 지식을 포함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성부 하느님께 그런 보호를 요청하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들의 하나됨을 위해서이다.
여기서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에 해당하는 '히나 오신 헨 카토스 헤메이스'(hina osin hen kahos hemeis; so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에서 '히나 오신 헨'(hina osin hen)은 '이들이 계속해서 하나가 되도록'이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불일치와 불화를 염려하셨다는 것이 분명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여기서 '하나됨'의 모델은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 사이의 하나됨이다.
예수님과 아버지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 하나인 것처럼(요한10,30; 14,9~11), 제자들도 한 뜻과 한 목적을 가지고 일치하기를 원하신 것이다(요한17,21.23).
'하나됨'으로써 이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악한 세상에서도 능력있게 이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요한13,34.35)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는 사실(요한17,21)를 세상에 증거하게 될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우리 모두는 한 사람한 사람이 그 몸의 각 지체들이다(1코린12,27).
서로 떨어질 수 없도록 잘 결합되고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교회도 유기적인 조직체이다(에페4,16).
따라서 크든 작든 분열과 분쟁을 일으킬만한 소지들을 철저히 없애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가 되도록 힘써야 한다.
2024년 05월 15일 수요일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오늘의 묵상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오늘의 묵상
예수님의 ‘고별 담화’는 이제 남겨진 이들을 위한 ‘고별 기도’로 이어집니다.
늘 함께하였지만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게 될 제자들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드리신 ‘마지막 기도’가 오늘 복음의 내용이고, 바오로가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한 ‘마지막 담화’가 독서의 내용입니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그만큼의 비장함과 중요성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와 ‘성화’를 위하여 기도하시는데, 이 주제들은 그리스 말 본문에 모두 명령형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이들을 지켜 주십시오’(보호).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성화).
‘보호’를 청하는 기도에는,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 분열에서 보호하는 것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지켜 주십시오.’라는 표현과 함께 “이들도 ……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곧 ‘일치’가 언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서의 상황도 비슷합니다.
바오로가 에페소의 원로들에게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하고 권고한 뒤, 그들 가운데에서도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 생겨날 것”임을 경고합니다.
내부의 분열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편 ‘성화’는 하느님께만 속한 존재로 축성되는 행위를 말합니다.
곧 어떤 존재를 거룩하신 하느님과 같은 속성으로 만들어, 그분께 온전히 속하고 장애 없이 소통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성화입니다.
복음은 이 성화가 ‘진리이신 말씀’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곧 우리를 성화시키는 진정한 도구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의 마지막 당부를 우리 삶 안에 구현할 때, 비록 그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의 존재는 우리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내부의 분열에서 공동체를 보호할 때, 말씀을 통하여 거룩함에 가까이 갈 때, 이를 당부하신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실 것입니다.
(김혜윤 베아트릭스 수녀)
[부활 제7주간 수요일]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독서(사도20,32) 바오로가 에페소 교회의 원로들에게 말하였다.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 말씀은 하느님의 뜻과 계획이다. 하느님의 뜻과 계획대로 되는 것이 말씀이다. (창조의 말씀 ‘아마르’는 생각하다. 계약, 약속하다. 명하다)
복음(요한17,11-19)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11ㄱ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이들은 세상에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 제자들을 지키시는 일을 완수(完遂)하시고 돌아가심이다.
11ㄴ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거룩하신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키시어, 이들도 우리처럼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ㄱ 저는 이들과 함께 있는 동안,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름으로 이들을 *지켰습니다.
= 당신께서 지키신 제자들을 아버지께 지켜달라고 기도하신다. 제자들, 우리가 당신과 아버지 안에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느님의 지혜, 계시의 영, 성령께서 보호하심, 이끄심으로 끝까지 지켜주시길 청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지막 가르침(14-16장)은 영원한 보호자 성령(聖靈)을 약속하신 말씀이었다.
(요한14,16) 16 그리고 내가 아버지께 청하면, 아버지께서는 다른 보호자를 너희에게 보내시어, 영원히 너희와 함께 있도록 하실 것이다.
12ㄴ 제가 그렇게 이들을 보호하여,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멸망하도록 정해진 자 말고는 아무도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 배반자 유다를 말씀하심이다. 곧 로마로부터 민족의 해방을 위해 주님을 따르며 사람의 일, 자기 의(義)를 진리로 끝까지 고집하는 사람은 멸망(滅亡)하도록 정해져 있다는 말씀이다.
(루가16,15) 1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외 로마서 10,1-3 참조)
= 그러나 하느님께서 창세전 선택하신 당신 백성들은 (에페1,4) 그들의 고집스런 교만의 생각을 흩으시고, 부인(否認)시켜서라도 끌고 가신다. 어제 우리는 그것이 하느님의 자비, 사랑임을 확인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 있으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들이 *속으로 저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우리 안에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주님의 기쁨이다.
14 저는 이들에게 아버지의 말씀을 주었는데, 세상은 이들을 미워하였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 세상은 하느님의 말씀을 미워하게 되어있다. 세상의 말(논리, 지혜)과 하느님의 말씀(논리, 지혜)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사55,8 1고린2,5-10 티토1,14 참조) 그런데 교회가, 신자들이 세상이 칭찬하는 신앙생활을 한다면, 잘못 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것은 인간의 도리(道理)이지 신앙의 목적지(目的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데 사제(司祭)가 TV나 절(卍)에 가서 강의를 하고, 스님이 성당에서 강의를 하는, 그런 것, 사제의 입에서는 세상도, 스님도 알아듣고 ‘옳소! ’ 칭찬하는 말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하느님의 일만 하셨고, 말씀만 하셨다가 사람들의 칭찬받는 이들의 박해(迫害)로 세상에 넘겨져 돌아가셨지 않은가,~
(2티모4,3)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진리)을 더 이상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을 때가 올 것입니다. 호기심에 가득 찬 그들은 자기들의 욕망(뜻, 지혜)에 따라 교사들을 모아들일 것입니다.
독서(사도20,32-38) 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15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악에서 지켜 주십사고 빕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처럼 이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습니다.
= 하느님의 말씀을 미워하는 것이 악(惡)이다. 앞에서도 확인했듯, 유다처럼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것, 악이다.
(마태16,23) 23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 그러니까 15절의 ‘이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라고 비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세상의 핍박에 그대로 두세요(그것ㅇ리 제자의 삶이니까) 그러나 그 속에서도 악에 빠지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자로 만들어 주세요, 지켜 주세요’ 라고 기도하시는 것이다.
17 이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는 진리(眞理)라 하신다. 곧 신자들의 거룩은 신자들의 몫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거룩은 세상이 말하는 도덕(道德)과 윤리(倫理)로 선(善)하게,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거룩(하기야죠)은 구별된 삶’ 곧 이 세상의 힘의 원리가 아닌 하늘의 힘과 원리로 사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까 ‘거룩’ 이라는 것은 신자(信者) 안에서 생산되고 성숙도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밖으로부터 뚫고 들어온 진리(眞理)의 말씀에 의해서 시작(始作)되고, 성숙(成熟)되어 완성되는 것이다.
진리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하셨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 하신다. 요한복음 1장으로 가면 당신이 ‘아버지의 말씀’이라 하신다.
(요한1,1.14) 1 한 처음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셨는데 말씀은 하느님이셨다. 14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 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 그러면 말씀이 진리이고, 진리가 예수님이시고, 그래서 예수님이 진리이신 것이다.
(이사55,8) 8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주님의 말씀이다.
= 하느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생각, 길이고 계획, 계약을 뜻한다. (-10절까지 참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인간의 것과 달라서 변질되지 않고 반드시 사명(使命)을 이루신다.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신 분의 말씀, 뜻이니까....
(이사55,11)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 오에 다른 것은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진리는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만 진리(眞理)다.
오늘 독서(牘書)말씀을 다시~
(사도20,32)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신명8,3) 3 그분께서는 너희를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신 다음, 너희도 모르고 너희 조상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게 해 주셨다. 그것은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고, 주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 빵(만나), 하느님의 은총을 떠난 인간들이 스스로 행복에 도달해 보겠다고 내어놓는 업적과 노력과 열성, 그 인간의 힘을 뜻한다. 하느님의 길, 생각, 계획의 뜻인 말씀만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신다. 오병이어의 빵의 표징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배(뜻)를 채워 줄, 만족시켜 줄 예수님을 찾으면 오히려 도망가신다.
(요한6,15) 15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이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이들을 위하여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합니다. 이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 반드시 세상과 구별된 길을 가시겠다는 말씀이다. 곧 친구를 위해 대신 죽으시는 십자가(十字架), 그 의(義), 거룩의 길을 가시겠다는 것이다. 죄인(罪人)인 우리를 위해서다.
(히브13,12) 12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로마3,22.24)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아멘)
☨은총이신 천주의 성령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되었음을 지키도록, 오늘 말씀이 믿음으로 자라게 하소서. 저희 모두의 마음에 불을 놓으소서. 의탁합니다. 내버려두지 마소서. 아버지! 아버지의 나라가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우리, 나)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