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자들의 업적은 바벨탑일 뿐입니다.
<연중 제21주간 수요일 강론>(2024. 8. 28. 수)(마태 23,27-32)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죽은 이들의 뼈와
온갖 더러운 것으로 가득 차 있는 회칠한 무덤 같기
때문이다. 이처럼 너희도 겉은 다른 사람들에게 의인으로
보이지만, 속은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예언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묘를
꾸미면서, ‘우리가 조상들 시대에 살았더라면
예언자들을 죽이는 일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너희는 예언자들을
살해한 자들의 자손임을 스스로 증언한다. 그러니 너희
조상들이 시작한 짓을 마저 하여라(마태 23,27-32).”
1)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회칠한 무덤 같다.” 라는
말씀에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말씀이 연상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나가실 때에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스승님,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돌들이고 얼마나
장엄한 건물들입니까?’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웅장한 건물들을 보고 있느냐?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다.’(마르 13,1-2)”
솔로몬이 지은 예루살렘 성전은 바빌론에 의해서
파괴되었는데(2열왕 25장), 헤로데가 재건축했습니다.
당시에 헤로데가 46년이나 걸려서 재건축한(요한 2,20)
예루살렘 성전은 대단히 아름답고 장엄해서
보는 사람들마다 감탄했다고 전해집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기준으로는, 예루살렘 성전은
‘강도들의 소굴’이었을 뿐입니다(마태 21,13).
겉은 아름답게(거룩하게) 보이지만 속은 온갖 위선과
불법으로 가득한, 생명력 없는 무덤이었던 것입니다.
2) 그런데 사실 솔로몬이 처음에 성전을 지어서 하느님께
봉헌할 때에 이미 하느님의 경고가 있었습니다.
“만일 너희와 너희 자손들이 나에게서 돌아서서,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계명과 규정을 따르지 않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거나 예배하면, 나는 내가 준 땅에서 이스라엘을 잘라
버리고, 내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별한 이 집을 내 앞에서
내버리겠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들 사이에서
속담거리와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이 집은
폐허가 되어, 이곳을 지나는 사람마다 몹시 놀라고 휘파람을
불어 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찌하여 주님이 이 땅과
이 집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러면 사람들이 대답할
것이다. ‘자기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주
그들의 하느님을 저버리고, 다른 신들을 끌어들여 그 신들을
예배하고 섬겼기 때문이지.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 모든
재앙을 그들 위에 내리셨다네.’(1열왕 9,6-9)”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일에 대해서 ‘예수님의 예언’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수님의 성전 파괴 예언’ 이전에
이미 ‘하느님의 경고’가 있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한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또 하느님께서 처음부터 경고하신 대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오늘날까지도 파괴된 채로 있습니다.>
3) 그 일은, 성전이라는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의 ‘신앙생활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는(나는) 어떤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우리 교회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합니다.
“올리브 나무에서 몇몇 가지가 잘려 나가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인 그대가 그 가지들 자리에 접붙여져
그 올리브 나무 뿌리의 기름진 수액을 같이 받게 되었다면,
그대는 잘려 나간 그 가지들을 얕보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그대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그대를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대는,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내가 접붙여지기 위해서였다.’ 하고 말할
것입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들은 믿지 않아서 잘려 나가고
그대는 믿어서 그렇게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만한
생각을 하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하느님께서
본래의 가지들을 아까워하지 않으셨으면, 아마 그대도
아까워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인자하심과
함께 준엄하심도 생각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떨어져 나간
자들에게는 준엄하시지만 그대에게는 인자하십니다.
오직 그분의 인자하심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도 잘릴 것입니다(로마 11,17-22).”
이 경고는 교회 전체를 향한 것이기도 하고,
신앙인들 각 개인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위선’의 바탕에는 ‘교만’과 ‘자만심’이 있습니다.
“나는 잘하고 있다.” 라는 착각과 자만심이
‘위선’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교회 전체든지, 각 개인이든지 간에 자만심에 빠지면
곧바로 위선자가 되어버립니다.
누구든지 참으로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
‘아름다고 거룩한 성전’은 ‘강도들의 소굴’로 전락하고,
‘회칠한 무덤’이라는 꾸중을 듣게 됩니다.
4) 우리는 신앙생활을 무슨 업적을 쌓는 일로
착각하면 안 됩니다.
신앙인답게 살지 않으면서도 겉으로 보기에만
대단한 업적을 쌓는 것은 ‘바벨탑’을 세우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일이 될 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업적만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에 합당하게 살았느냐를 보십니다.
‘진실하고 충실한 삶’ 자체가 신앙인의 업적입니다.
<위선자들은 “우리는 정말로 많은 일을 했고, 많은 업적을
쌓았다.” 라고 내세우지만, 주님께서는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7,22-23).>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교회 전체든지,
각 개인이든지 간에 자만심에 빠지면
곧바로 위선자가 되어버립니다.
세상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업적만 보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뜻에 합당하게 살았느냐를 보십니다.
‘진실하고 충실한 삶’ 자체가 신앙인의 업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