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1352A50585992FC21)
위 와당은 유물번호 215 호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대동강변에서 출토된 것인데 놀랍게도 고대(古代 )히브리 문자가 씌어 있다.
출토된 와당(瓦當) 속의 히브리 문양(文樣)을 번역하면 그 내용은 다분히 종교적인 것이었다.
“도착했다”
“잠언을 가르치는 사사가 통치한다”
“오엽화(五葉花) 와 협력하여 신의 나라에 들어가라”
“성도가 모여 기도함으로 하나님 나라가 회복된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72526355853EB2502)
♠ 국립중앙박물관, 광주박물관 소장. (번역: 서울 대학교 종교 철학과 신상운 박사)
![](https://t1.daumcdn.net/cfile/cafe/266B064F585914CF04)
인류 문화 고고학회 한강현 부회장이 2008년 3월 14일 이스라엘 바아 일란 대학교(Bar ILan Univer-sity)
고대 성경 히브리어 전문가 그린슈타인(Ed. Greenstein) 교수를 만나 그로부터 대동강변에 출토된
와당의 문양이 고대 히브리어라는 확인을 받았다. 그린슈타인 교수는 고대 히브리어에 관한 몇 안되는
전문가 중의 한 분으로서 와당의 글자는 BC 8~6세기에 사용된 글자가 틀림이 없다고 하였다.
히브리어는 그동안 여러차례 변모되었기 때문에 이를 정확히 해석할 수 있는 학자는 드물다고 한다.
고조선은 삼손을 배출한 단지파가 세운 고대 국가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0F6839585A47A404)
용덕리 고인돌과 별자리 실측도. 북극성을 중심으로 11개의 별자리에 속하는 별들이 새겨져 있으며
별들의 운동을 감안한 연대는 기원전 2900년(약 4천 9백년전)이다.
고조선이 국가로서의 완전한 틀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평안남도 증산군 용덕리에 있는 외새산에서
발견된 10호 고인돌 무덤의 별자리로서도 알 수 있다.
십계명과 유사한 고조선의 10조 금법
「규원사화」에 10조 금법이 수록되어 있어 고조선의 종교와 사회상을 알수있다.
다음 법 조항은 「규원사화」의 단군기에 기록된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 법 조항들이 구약성경 출애굽기 20장의 십계명의 내용과 거의 같다는 것이다.
「규원사화」에 기록된 열 가지 법조항은 다음과 같다.
1. 하느님은 오직 하나의 신으로 가장 높은 으뜸자리에 계신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세계를 주관하신다.
2. 하느님은 오직 한 신으로 ...모든 신령들이 받들어 모시니...그곳을 신향이라 한다.
3. ...너희 무리는 오로지 하늘이 내려주신 법을 지켜 ...성이 통하고 공이 이루어지면 하늘에
이를것이다.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 뿐이며 그문이 둘이 아니므로...
4. 하늘의 법도는 오직 하나이며 인심 또한 같으니 자신의 마음을 잡아 인심에 미치고 인심이
감화하면 또한 하늘의 법도와 한데 합하여 만방을 거느릴것이다.
5. 어버이는 하늘에서 내려왔으므로 오로지 너희는 어버이를 공경하는 것이 하늘을 받드는 것이
되어 나라에 미치게되니 이것이 바로 충효이다...
6. 나는 새도 쌍이 있고 떨어진 신발도 짝이 있으니 너희 남녀는 화합하여 서로 원망하거나
투기하지 말며 음탕하지 말라...너희는 서로 사랑하여 싸우지 말아야 가정과 나라가 번성할 것이다.
7. ...너희도 서로 사양하고 남의 것을 빼았지 말며 서로 훔치지 말아야 나라가 융성할것이다.
8. ...너희는 그처럼 사납지 말며 사람을 죽이지 말고 언제나 하늘의 도대로 만물을 사랑해야 한다...
9. ...너희는 넘어지는 것을 도와 일으키며 약한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구제하며 낮은자를 깔보지 말것이다.
10. 네가 비록 겉으로 두껍게 감싼다 해도 그 향기는 새어나가게 되어 있으므로 네가 타고난
떳떳한 성품을가져 부끄러워 하지 말며 악을 숨기지말며 화를 품지 말며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들과 친하면 영원토록 복과 녹을 누리게 될것이다.너희 무리는 이말을 지켜야 할것이다.
이동경로 (BC1600년 출발 →400년간 대이동→BC1200년경)
가나안 → 시리아 → 이락크 → 이란 → 우랄산맥 →몽고 → 만주 → 한반도 대동강변 정착
[고증자료] 고대 히브리 문자가 씌어진 와당(瓦當)과 단군지석
※ 백두산에서 발견된 고대 히브리어가 씌여져 있는 단군 지석
1911년 일제 식민지가 시작된 무렵 백두산에서 벌목을 하던 일본인이 알 수 없는 글이 씌여 있는
지석(誌石)을 발견하고 평북 도청에 옮겨 놓았다. 그러나 해석 할 길이 없어 당시 의주 천주교당에
와 있던 프랑스 천주교 신부에게 판독시킨 결과 고대 히브리어로 씌여진 단군 지석임을 알게
되었다. 압록강 건너 안동현 천주교 신부도 와서 히브리어로 된 단군 지석임을 확인하였다.
그 이후 단군 지석은 일본인이 가져갔다. (평북 의주 출생 독립운동가 고정록씨 증언)
단지파의 유래
단 자손의 지파 즉 단지파의 시조 단(DAN)은 노아의 세 아들 중 황인종의 조상인 셈 → 셈의 9대
자손 아브라함→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삭의 아들 야곱→야곱의 12아들 중 5번째 아들인 단이다.
단은 야곱의 본처 라헬의 몸종 빌하의 몸에서 태어났으며 대한민국의 고서에도 단군이 서자라고
기록되어 있다. 단은 이스라엘의 7년 대 가뭄 때에 형제 가족 70명과 함께 이스라엘을 떠나 애굽에
정착한 이후로 애굽에서 죽고 그 후손들이 다른 형제들의 후손들과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하다가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BC1491년)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하여 이스라엘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다. 지금의 대한 민국.
종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 - 이수민 78년 5월 6일생 ( 780506 - 2821911 )
여자와 아이와 노인, 과부와 고아를 천대하는 대한민국에 종의 모습으로 오신 그리스도
레아 아들 - 1 르우벤, 2 시므온, 3 레위, 4 유다, 9 잇사갈, 10 스불론 하녀 (실바) - 7 갓, 8 아셀
라헬 아들 - 11 요셉, 12베냐민 하녀 (빌하) - 5 단, 6 납달리
너희 안에 이 생각을 품을지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도 있던 생각이라.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음이라. [빌 2:5,6,7,8]
그러나 단 자손들은 대를 이어 블레셋 민족과의 200년 간의 전투를 치르던 중 사사인 장수 삼손이
죽게 되자 더 이상 싸울 기력을 잃어버리고 동북방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사사시대 단 지파중에서 나온 장수 삼손이 한 여인의 계략에 의해 끝내 비참한 최후를 마친 후 끝내
유업을 얻지 못하고 생활의 터전을 찾아 계속해서 동북방으로 이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의 레바논 동쪽에서부터 시리아 이란 이라크를 거쳐 소련의 남부 중국의 북부경계의
일부를 타고 이와 같이 중앙아시아를 거쳐 알타이산맥을 넘고 몽고와 만주의 일부를 지나 압록강을
건너 마침내 우리 한국 땅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동양사(東洋史)에는 우리 한 민족을 우랄-알타이어족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이와 같이
우랄산맥과 알타이산맥을 넘어온 민족이라고 해서 그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너무도 흡사한 유대인과 한국인의 풍습
단군은 단이란 밑에다 임금 군자 하나를 더 붙여서 단군이라고 부른 것이다.
한민족이 이스라엘 민족과 같은 혈통인 사실은 생활풍속이 같고 제사법이 같고 언어상으로도
에미(엄마), 애비(아빠)라는 등의 같은 뜻의 말이 있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또 이웃 나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물동이를 이고 다닌 사실이 없었는데 우리나라와 이스라엘
민족만은 물을 길을 때 물동이를 이고 다녔으며, 돌제단을 만들어 놓고 향을 피우며 굵은 베옷을
입고 곡을 하던 풍습이 같다. 이스라엘 민족은 양을 잡아 돌제단 위에 놓고 불을 질러서 제사를
지냈고 우리 조상들이 기우제(祈雨祭)를 지낼 때 소를 잡아서 제사지내던 제사법도 같은 것이다.
또한 유월절을 기념할 때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우리 민족에게는 동지날에 팥죽을 쒀서 문설주에 바르는 풍습이 있는 것이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의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 입던 예복인 세마포 모시옷을 우리 민족도
같이 즐겨 입어 왔고, 두 민족을 백의민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같다.
작년 4월, KBS 일요스페셜 팀이 제작한 <황금나라의 비밀, 신라 황남대총>은 한민족의 기원에
대한 또다른 가설을 제시했다. 1973년 7월 6일, 신라의 고도(古都)인 경주시내 한가운데 있는
대릉원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원을 찾는 형식으로 진행된 이 다큐멘터리는 신라의 금관부터가 일찍이
유래가 없었던 것으로, 그 기원이 19세기에서 20세기 초 유라시아 샤먼들과 동일하다고 말하고 있다.
또 알타이 공화국의 우코크 평원에서 발견된 무덤이 신라초기 돌연 출연한 무덤양식인 적석목곽분
(積石木槨墳)과 동일하며, 출토된 유물의 대다수가 당시 지중해와 흑해연안에서 사용하던 것과
동일함을 실물과 비교, 제시하고 있다.
왕보다 왕비의 권력이 더 세다?
1921년 조선총독부가 발굴한 경주 금관총에서 출토된 환두대도에서 왕명(王名)으로 추정되는 명문이
최근 발견돼 무덤과 연관성이 있는지를 놓고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만일 이 왕명이 피장자 것으로 최종
확인된다면 신라왕릉 중 최초로 주인이 직접 밝혀진 무덤이 된다.
왕명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조선총독부 박물관 자료 공개 사업' 일환으로 금관총 출토 환두대로(고리자루큰칼)를
보존처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다. 박물관 측이 칼집 표면에서 녹을 걷어내고 확인한 글자는 이사지왕(王)이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사료에서는 동일한 왕호를 발견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이사지왕 정체를 놓고 추측도 난무한다. 하지만 금관총은 왕비 등 여자 무덤이라는 게 국내 고고학계에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관총을 여성 무덤으로 단정하는 것은 여성용 태환이식(고리가 큰 귀걸이)이 나왔기 때문이다. 피장자는 대도를 허리에 차지도 않았다.
대도 주인이라면 허리에 차는 게 마땅하지만 칼은 피장자 둘레에서 수습됐다.
지금까지 출토된 신라시대의 금관은 금관총, 금령총, 서봉총, 천마총, 황남대총 등이다. 그중에서도 1973년 쌍무덤인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발견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금관이다. 그 크기도 높이 27.5cm, 직경 17cm로 이제껏 발견된 금관 중 가장 크다. 이 금관은 은제 허리띠 3개 등과 함께 발굴되었는데, 은제 허리띠에는 부인대夫人帶라는 명문銘文이 있어 그 주인이 여자였음을 알려준다. 반면 남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남쪽 무덤에서는 금동관 6개와 은관 1개가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 금동관은 구리에 금을 씌운 관으로 금관보다 한 단계 낮은 관이다. 이는 신라시대 왕비가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황남대총 북쪽 무덤에서 출토된 신라금관에는 ‘우주수목’이 장식되어 있다. 이 장식은 알타이 신화의 본고장인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유목인과 신라인의 친근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우주수목 형상의 모델이 된 나무는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 많이 나는 흰 자작나무다. 이 자작나무는 알타이 무속에서 평범한 나무가 아닌 성스런 우주수목으로 취급된다. 지표에서 제일 높이 우주의 한 중심에 버티고 선 구조물로서 고대인이 상상했던 무속세계의 하늘인 천계를 향해 상징적으로 뻗어 오른 나무를 뜻한다.
신라는 금金의 나라?
고대 한민족의 주도세력은 크게 둘로 나뉜다. 그 하나는 만주 북부를 호령했던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과 고조선에서 비롯된 세력이다. 부여에서 파생된 세력은 고구려와 백제를 건국했으며, 고조선에서 비롯된 세력은 바로 신라를 건국한 것으로 여겨진다. 고구려의 시조인 주몽은 북부여에서 망명한 인물로 <삼국사기>는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주몽의 아들이라 적고 있다. 이는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부여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또한 <삼국사기>는 신라시조인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한 여섯 부족이 고조선계 유민遺民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는 신라의 건국세력이 백제나 고구려와는 다른 고조선계임을 의미한다.
특히 이스라엘 앞 바다에 있는 사이프러스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과 신라 황남대총에서 발굴된
그것은 완전히 똑같은데, 그렇다면 과연 이것이 말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던 물건들이 똑같다는 것은 생활양식도 그러하다는 것. 먼저 가장 보수적인 전통중에 하나인
무덤 양식이 똑같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積石, 즉 그들도 우리도 돌담을 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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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관총 유적 발굴 현장 전경. 무덤 중심 둘레에 정연하게 쌓아놓은 돌무지.
이스라엘 북부나 중부 일부에 사는 일부 종족들은 아직도 돌담으로 지은 집에 살며, 제사를
지낼 때도 마찬가지로 돌제단을 쌓는다. 예전엔 우리나라에서도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단(壇)을
쌓았으며(강화도 마니산의 참성단), 제단 앞에서는 잔을 세 번 돌린 후 제상에 올려 놓았다고 한다.
이것은 유대인들도 마찬가지였다.
동짓날의 팥죽과 유월절의 희생양
동짓날만 되면 우리 조상들은 팥죽을 만들어 각 방의 문설주를 비롯, 장독과 헛간 등에 뿌리곤 했다.
팥은 색이 붉어 양색(陽色)이므로 음귀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출애굽기(12:6, 23)에는 모세의 말을 듣고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른 장자 재앙의 얘기가 나온다.
그 후로 한반도까지 건너온 이스라엘 단지파의 자손들에게도 이 관습이 그대로 남아 동짓날 팥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양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선택한 것이 양의 피와 비슷한 색인
‘팥’이었다는 것. 그러므로 동짓날, 팥죽을 쑤어먹는 것은 단순한 절기음식이 아닌 ‘유월절 행사’였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고사 지낼 때 떡을 반드시 팥으로 하는 것도 팥이 양의 피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2천년전 유대인 풍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베두인족
이스라엘에는 아직도 유목·천막생활을 하는 종족들이 있다. 그중 베두인족은 결혼할 때 서약식을
한 후, 신부의 부모가 사는 천막 근처에 임시로 초당을 짓고 3일동안 신방을 꾸민다.
이때 이 초당의 주위에 ‘양의 피’를 뿌려 축복을 기원한다. 귀신을 쫓기 위함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양을 구하기 힘들었기 때문에 다만 양의 피를 상징하는 빨간색으로 신부의 온 몸을
치장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결국 처녀 때는 빨간 댕기를 하고 결혼할 때에는 빨간 치마에
빨간 끝동과 옷고름이 달린 저고리를 입고서 얼굴에 빨갛게 연지곤지까지 찍었던 것도 일종의
‘死者’귀신을 쫓기 위한 풍습이라는 것이다. 베두인족들은 남녀유별과 남존여비사상도 유별나서
우리 여인네들처럼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그래서 딸만 낳으면 이혼조건이 되기도 한다. 이른바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셈이다. 처녀들은 조선시대 처녀들처럼 머리를 길게 따 늘어뜨리고
다니는데 그러다 결혼하면 대개 머리를 틀어 위에 얹는다. 그리고 여인들이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간다든가 외출시에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에서도 있는 풍습이다.
한민족은 고대 이스라엘 민족
흔히 한국인의 두뇌가 우수함을 보고 ‘제 2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그런데 70년도 미국 하버드대학교
인류학자들은 한국인이 가장 머리가 뛰어난 민족이며 그 다음이 유대인이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하버드대의 역대 수석 졸업자 중 상당수가 한국인이라는 사실도 이를 증명한다.
최근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능 연구가인 영국의 얼스터 대 리처드 린 교수와 핀란드의 헬싱키대
타투 반하넨 교수가 세계 185개국 국민의 평균 지능지수(IQ)를 조사한 바 있는데, 그 결과에 따르면
남한이 평균 아이큐 106으로 세계 1위, 북한이 105로 일본과 함께 공동 2위를 기록했다.
사실 홍콩이 107로 1위라고 하지만 홍콩은 나라라기 보다는 도시이므로 논외로 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도시의 평균은 홍콩보다 높으므로 사실상 1위는 한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런데 정작 이스라엘은 94로 45위에 그쳤으니 이젠 한국인을 제 2의 유대인으로 부르기보다
‘유대인을 제 2의 한국인’이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1950년 1월경 모 일간지에는 한국에서 근무하는 유대인 인류학 박사의 기사가 실렸다.
“나는 각 나라 민족별로 골상의 형태를 오랫동안 연구하였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얼굴이나 유골을
보면 쉽게 어떤 계통의 민족인지 알 수 있다. 2년반 정도 한국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유골을 보아 왔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게도 한국인들이 한결같이 나와 같은 유대민족 골격에 골상을 하고 있었다.”
동아백과사전에서도 한국인의 골격 구조와 골상이 ‘고대 유대인’의 골상과 동일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오히려 한국인이 현재의 유대인들보다 순수 이스라엘 혈통일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2천년동안의 역경과 시련으로 혈통의 순수성을 잃어 버려 성경상의
유대인들과는 거리가 먼, 노란 머리카락에 키 큰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유대인들은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시련과 고난 속에서 협동의 지혜를 배워 체질화함으로써 생활에
이를 활용하였다. 대표적인 것이 이스라엘 특유의 농촌 취락인 키부츠나 협동 농촌인 모샤브이다.
그것은 일종의 우리네 두레나 품앗이, 계의 변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고난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첫댓글 두 민족이 네 태속에 있노라. 두 종류의 백성이 네 배 속에서부터 나누어지리라.
한 백성이 다른 백성보다 강하겠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 (창 25:23)
또 내가 이스라엘의 산들 위의 그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어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고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 (겔 37:22)
다윗의 유적지.
헉 단지파의 단군 족속했구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