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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조선문명의 특징:
1. 한반도를 중심으로 인류사에서 최고의 농업공동체사회 ( 1만년전부터)
2. 인류문명사에서 가장 우수한 천문학과 역학 정립(환역)
3. 현재는 잃어버린 역사와 철학
빙하기(간빙기, 홍적세)시 한반도 주변 상황
1 . 빙하기에 기초한 마 문명의 전파
기원전 18,000년~12,000년경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빙하 및 대륙의 사진자료이다.
위의 자료는 영국의 새턴대학에서 작성한 자료로 보인다.
위의 자료에서 보듯이 한반도 황해는 초원지대고 아래 그림의 좌측하단 그림과 같이 큰강이 흘렀다.
또한 위측 그림 중앙부분의 하늘색 부분은 빙하(얼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구석기 시대 한반도 중심의 상황을 고려할 때 고조선의 건국지라고 보여지는 만주쪽은 당시 사막지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 주변 문명의 발생은 마고문화로 알려 진 난생설화 중심의 모계사회가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황해대평원이라고 부르는 광범위한 지역에 산재하여 살았을 것이고(그렇다고 현제처럼 인구가 수억명은 아니고 잘 해야 수만~수십만 정도로 생각된다.
부도지 내용을 참조하더라도 그렇게 많은 사람이 처음부터 번성하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고...
여기에 대빙하기(공룡멸족기)까지 수십억년전에 발생한 지각 대변동이 없었으므로 한반도 남부에 공룡의 최종 생존자들이 몰려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대빙하기 이후 인류의 출현이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호모사피엔스 사피엔스에 해당하는 구석기시대 인물들의 간빙기, 또는 대빙하기를 견디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기원전 8,000년경 간빙기가 끝나면서 평균수심 100m이하인 황해대평원은 위의 그림처럼 물에 잠기기 시작했다. 마고할머니가 물로 청소를 하였다는 부도지 전설은 이와 다름없을 것이다...
지나가는 이야기로 요즘 절정을 이루는 보양식 이야기를 한다면 '풍천장어'를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문명이 진화하여 회귀본능을 대부분 상실했지만 풍천장어를 비롯한 연어등의 회귀본능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기가막힌 것은 이 풍천장어가 한반도 및 중국대륙으로 두번째 그림의 물길을 따라 아직도 회귀하고 있으며,
산란은 필리핀만의 해저 깊은 곳에서 한다고 알려졌다.(유일하게 양식이 안되는 어종임)
기원전 18,000~12,000,,,황해대평원을 거점으로 한 인류는 생각보다 앞선 문명과 생활을 하였을 것이라 생각된다...
왜냐하면 지구의 다른편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떨고 있을때 이들은 농경, 수렵, 어업등 2-3모작이 가능한 자연환경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선 부족의 일단들이 성장하며 새로운 개척지를 찾아 나서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하여 이들은 이동을 시작했다. 기원전 10,000년을 전후하여...만주, 슈메르, 지중해, 아메리카...등으로
또한 이들은 이미 거석문화라는 인류의 잔존문화를 보유하고 있었 기때문에... 도처에 이에 대한 흔적을 남기며 머나면 개척의 세월을 갖게된 것이다.
한반도에 상륙한 인류는 한반도를 따라 점차 북상하였고, 간빙기 중간에 낀 얼음이 녹는 과정에서 바이칼의 천손문화를 가진 몽골리안과 만주일대에서 조우하여 문화의 중첩이 이루어진다.
즉 부계사회와 모계사회의 만남으로 한반도인들은 청동기 문화를 탄생시키며 문명(홍산문명, BC6.000년경)을 잉태한다.
거석문화의 변화를 보면 초기 남방식 고인돌문화가 북상하다, 북방식 고인돌로 변화하여 남,북진하고,
다시 고인돌을 중심으로 모든 민주적인 문화를 진행했던 마한인들은 적석총문화(성황당 돌무지)를 발전시켜,
한강부근에 적석총 문화(오리엔트성좌 구도, 이는 모계사회의 출신 별자리라고 말한다, 석촌동에 있다.)를 완성하고 북상하여 압록강변에 대규모 적석총문화를 형성하고, 다시 북상하여 바이칼 부계(천손사상)와 만나면서 홍산의 피라미드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슈메르의 지구랏, 아메리카대륙의 피라미드, 잉카놔 마야의 피라미드...피라미드는 모계사회 민주적인 사회통치 이념과 하늘에 대한 제를 지내던 제정일치 시대의 정치, 종교 이념이 천손사상을 만나면서 권위와 영속의 상징으로 변천되어 갔다.
2. 유물과 유전자로 살펴 본 마음의 고향 "황해대평원"
이제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자...빗살무늬토기의 전파방향, 헬리코박터 유전자 분포, 동아시아 유전자 분포...
위와 같이 밝혀진 다양한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결국 황해대평원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일본에서 만든 유전자 지도
또한 얼마전 중국등 몇개국이 모여 아시안 인종의 유전자를 분석하였는데,,,그 결과 아래와 같은 그림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위의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 있다.(한국생명공학연구원(원장 박영훈·생명연 발표)
즉, 간빙기 인류이동 경로가 위의 그림에서 보듯이 대륙붕(연한 회색)이 인류가 걸어다닐 수 있는 공간인 점을 무시하고, 오늘날과 같이 바다에 의해 왕래가 불가능한 상황에 맞추어 연구결과를 발표한 우를 범했다.
즉, 위의 그림에서 주의해서 볼 점은 화장표의 방향이 모두 합해지는 방향을 주의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위의 그림에서 중국에서 실크로드를 따라 이동해간 인류에 대해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처음그림에서와 같이 당시 그 지역은 빙하지역이기 때문이다.
결국 위 그림의 빨간점 부분으로 모든 화살표가 집중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이를 다시 생각하면 그 지점으로부터 인류의 전파가 이루어졌다는 역설이 가증하다.
주지하건데 그 부분에 해저 피라미드(거석문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이는 황해대평원으로 가는 길목이며, 풍천장어가 산란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결국 유전자 공학자들이 지구과학 공부를 하지 않은 까닭이다.
쉽게 생각하면 빨간 지점에서 한반도로 걸어가면 될 일을 멍청한 인류가 중국대륙을 통과하여 한반도로 거꾸로 내려온 것으로 밝힌 것이다.
3. 유전자의 전파경로
당뇨병(기근유전인자, 먹을거리가 부족한 빙하기를 견딜 수 있는 절대 유전자, 풍족해지면 당뇨병 발생)은 채식, 쌀 중심의 식습관을 가진 사람(저칼로리 음식)이 고칼로리 음식을 섭취하였을때 발생하는 비만(위처짐 현상)에 의한 인슈린관 압착 및 이로 인한 인슈린 분비가 적었을때 발생하는 병이다....
그런데 이병을 가진사람의 대부분은
a. 몽골로이드계(피마인디언) 여자 67%, 남자 70%
b. 인도계 싱가포르인 34%
c. 이슬람계 모리샤스인 25%
d. 말레이계 싱가포르인 23%
e. 인도계 모리샤스인 22%의 당뇨병 유전인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세계보건기구WHO)가 1997년 발표하였다...
굳이 부도지를 비교한다면 황하, 메소포타미아,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다 같은 유전자를 갖고 있으며, 그 뿌리가 같다는 것이다.
동물의 키웠는데...
개의 기원(동아시아, 유라시아 등등등) 그 중 최고의 개는 진도개...특이유전자 다량...확인
가축을 최초로 키운 인류는 누구일까요...결국 이 문제는 무덤을 파 보는 방법외에는 없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러나 현제까지 발견된 무덤에서 다양한 가축의 뼈가 가장 오래전에 묻힌 사례는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는 것이 여기까지 오는 과정에서 발견한 내용입니다.
더욱이 개는 인류와 뗄 수 없는 관계인데,,,진도개는 어떨까요?
개가 처음 사람에게 길들여진 지역은 동아시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최신 연구 결과 유라시아의 다른 지역들도 유망주로 새로 떠올랐다고 BBC 뉴스가 보도했다.
지금까지 학자들은 동아시아 지역 개들에게서 폭넓게 나타나는 유전적 다양성 때문에 이 지역을 길든 개의 발원지로 생각해 왔다.
그러나 미국 코넬대의 애덤 보이코 교수 등 국제 연구진은 이집트와 우간다, 나미비아의 여러 마을에서 채취한 개들의 DNA를 분석한 결과 그 다양성이 동아시아 못지 않게 풍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했다.
오늘날의 개는 약 40만년 전부터 1만5천년 전 사이에 길들여진 유라시아 회색늑대의 자손이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이들이 사람에게 길들여졌는 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연구진은 이집트와 우간다, 나미비아의 여러 마을에서 채취한 개 318마리의 DNA를 분석했다.
이들이 마을 개를 택한 것은 사육된 개에 비해 유전적 다양성이 훨씬 풍부해 개의 가축화 과정을 추적하기가 더 쉬웠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와 함께 살루키, 로디지안 리지백, 파라오 하운드 등 아프리카 원산으로 알려진 개들의 유전자도 함께 분석해 푸에르토리코 도시의 떠돌이 개 및 미국의 족보 없는 개처럼 아프리카와는 관계없는 개들의 유전자와 비교했다.
그 결과 아프리카의 마을 개들은 동아시아 개들만큼 유전자 다양성이 풍부한 것으로 나타나 개 길들이기가 동아시아에서 시작됐다는 가설에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연구진은 "동아시아 기원설은 분석에 사용된 개들이 다른 지역에 비해 주로 도시의 떠돌이 개들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의 개들이 유전적으로 더 다양해 보인 원인은 이 지역 개들이 다른 지역보다 더 다양해서가 아니라 족보 없는 개나 마을 개들이 사육견보다 유전적으로 더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그렇다 해서 동아시아가 처음 개를 길들인 곳이 아니라고 볼 수는 없으며 다만 회색늑대와 인간이 공존했던 유라시아 대륙 어딘가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뿐이라고 설명했다.
보이코 교수는 연구 결과 모든 개에게서 회색늑대의 DNA가 나타났으며 따라서 개가 유라시아 늑대의 후손이라는 가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오늘날의 아프리카 마을 개들은 먼 옛날 아프리카로 들어온 다양한 토종 개들이 섞인 것임을 밝혀냈다.
이들은 또 원산지가 아프리카로 잘못 알려진 일부 종들의 발원지를 밝혀냈는데 예를 들어 살루키는 오늘날 이집트 마을 개와 같은 DNA를 갖고 있으며 아프간 하운드 역시 이름과 달리 이집트 마을 개와 친척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파라오 하운드와 로디지안 리지백은 아프리카 토종 개들과는 공통점이 없어 이들의 조상이 아프리카 개가 아님을 시사하고 있다.
연구진은 포르투갈에서부터 파푸아 뉴기니에 이르는 유럽 및 아시아 전 지역의 떠돌이 개 및 마을 개들을 대상으로 유전자 다양성이 가장 풍부한 지역이 어딘지 추적하는 새로운 연구에 착수했다. youngnim@yna.co.kr (끝)
141개의 진도개 특이적 발현 유전자가 분석을 통해 밝혀졌다.
농촌진흥청(이하 농진청)은 진도개사업소와 공동으로 진도개의 간 및 뇌 조직으로부터 2만 여개의 발현유전자의 염기서열을 결정했고 141개의 특이적 발현 유전자를 찾아냈다고 15일 밝혔다.
농진청에 따르면 이들 유전자는 진도개의 다양한 모색이나 체형을 결정짓는데 중요할 뿐 아니라 충성심, 귀소성 및 청결성 등과 같은 품성을 좌우하는데 크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또한 이 유전자들 중에는 25개의 보고되지 않은 유전자들도 발견됨으로써 추후 논문 등에 새롭게 보고함으로써 진도개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학술적 의미가 될 수 있을 거라 판단되고 있다.
진도개와 독일셰퍼드의 간과 근육에서 차등발현유전자를 대량유전자발현 칩을 통해 간에서 18개, 근육에서는 71개의 차등발현 유전자가 탐색됐고 이는 진도개의 생리적인 특성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진도개의 간에서 인슐린 신호전달 체계와 관련되어지는 단백질 카이네이즈 계열 유전자가 독일 셰퍼트보다 유의적으로 많이 발현됐고 근육에서 근육생리와 관련되는 지방대사 및 질소대사 관련 차등발현유전자가 탐색됐다고 농진청은 설명했다.
농진청 라승용 국립축산과학원장은 "이번 진도개만의 독특한 유전자를 발견함으로써 국내적으로 진도개의 명견화를 통한 반려동물산업의 국민적 관심을 유도하고 세계적으로 우리의 고유의 토종동물자원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4. 인류 최초의 쌀과 콩 생산지
벼는 6천500년 전에 많은 지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재배했다.
4천~5천년 전 인도 갠지스(Ganges) 강 유역, 북부 미얀마, 타이, 라오스 혹은 중국 남부지역에서 시작되었고, 한반도에는 이후에 쿠릴해류( Kurile Current, 親潮海流)를 타고 이주해온 동남아인에 의해서 전파된 것으로 그동안 여겨왔다.
동남아인이주설(東南亞人移住說)에 따르면, 밭벼농사(dry-land cultivation)는 우리나라에서 BC 3천500년경, 일본은 BC 1천200년경에 전해졌다.
중국에서 벼 재배는 BC 5세기 혹은 BC 11세기 전후, 중국 남쪽으로 확산되었다는 남부확산경로(southern diffusion route)학설이 정설이었으나, 최근 부인되었다. 대략 9천년 전 중국과 인도 야생 벼의 근접관계성이 컴퓨터 알고리즘 분자시계(molecular clock)기법으로 밝혀졌다.
우리나라는 1990년 7월 경기도 김포군 통진면의 탄화미(炭化米)가 BC 2천100년경으로 추정됐다. 1987년 경기도 고양군 일산읍(가와리) 신석기 토층에서 나온 12톨의 볍씨를 미국 베타연구소에서 방사성탄소연도측정(radiocarbon dating) 한 결과 5천년 전으로으로 나와 BC 2천300년경으로 추정되었다. 그런데 1994년 충북 옥산면 소로리 구석기 유적에서 방사선탄소연대 측정으로 1만3천~1만6천년 전으로 추정되는 볍씨 11톨이 출토되었다. 이로 인해 2016년 국제고고학회에서 벼농사의 기원을 한국으로 규정했으며, 1만3천년 전까지 소급해 세계적 고고학교과서로 사용하는 ‘고고학 개론서(Archaeology: theories, methods and practice)’도 한반도 기원을 못 박고 있다. 우리나라는 벼농사의 긍지를 살려서 지난 1972년부터 한국은행 50원짜리 동전에 벼이삭을 도안해 논벼농사의 기원지(Origin of rice farming)가 한국임을 기념했다.
동양의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사상에서 벼농사는 거대한 변혁을 초래했다. 경제사회적 의미에서는 i) 먹거리 생산성의 제고, ii) 출산비율 폭증, iii) 고대국가 건설의 기반과 재정확충, iv) 의식주의 동반성장을 촉진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은 벼가 평균 1천8배 가량의 산출을 얻는다고 믿었기에 벼화(禾)를 1,008(千八)을 의미하는 벼화(禾)로 창작했다. 볍씨를 뿌려서 벼를 추수하고 찧어 쌀을 만드는 과정에서 일손이 88번 가량 간다는 의미에서 88(八十八)로 쌀미(米)자를 만들었다. 다른 한편으로 벼농사는 일반적으로 88배 정도 소출을 본다고 믿었기에, 오늘날 승수효과로 표시하면 생산창출효과를 (88)n으로 추산할 정도로 먹거리생산에 변혁을 초래했다.
식물의 생산을 통해서 경제적 소출을 계산했던 생각은 BC 600년경 관중(管仲)의 ‘관자(管子)’라는 책에서 시작했으며 특히 경제전쟁론과 화폐계량설의 원조가 되었다. ‘한해 농사는 곡식경작이 최고, 10년 농사는 수목재배, 100년 농사는 인간교육이다(一年之計莫, 如樹穀. 十年之計,莫如樹木. 終身之計,莫如樹人)’라는 표현에서 오늘날 계량경제학이 잉태되었다. 이 구절을 케인즈의 승수이론으로 풀이하면 곡식경작은 한해 1,008배, 수목재배(木=十八)는 (18)10 까지, 인간교육(人=八=∞)이 국가를 번창시키는 건 (∞)100까지도 가능하다고 봤다.
세계 최고(最古)의 벼농사 유물 볍씨
1994~2001년 기간 중에 우리나라 충북 청원군 소로리 일대에서 찍개, 긁개, 홈날, 몸돌, 격지 등 구석기 유물들이 매우 넓은 광범위한 지역에서 수습되면서 볍씨가 출토되었다.
흙속에 묻혀있는 볍씨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흙을 채로 쳐서 걸러지는 알갱이들을 현미경으로 하나하나 조사해서 볍씨를 찾아내야 하는 일이다.
소로리에서 출토된 볍씨들을 서울대학교 AMS(방사선탄소연대측정) 연구실과 미국의 지오크론(Geochron Lab.) 연구실에서 교차 측정한 결과, 1만 3,000년~1만 5,000년 전의 절대 연대값을 얻게 되어 '소로리 볍씨'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임이 판명되었다.
청원군 소로리에서 발굴된 법씨의 모습은 [그림 1]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1] 소로리 볍씨
즉, 인류의 약 60%가 쌀을 주식으로 먹고있는데, '벼'의 경작은 인류에게 있어서 '불'의 발견에 버금하는 기술혁신으로 인식하게 됨에 따라, 전세계 저명한 학자들은 인류의 발전과정과 관련하여 '벼' 경작이 언제부터 이루어졌는지에 관하여 많은 연구를 해 오고 있었다.
그간 1970~80년대까지는 주로 황하 유역에 있는 유적에서 발굴된 볍씨들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주장되어 왔으며, 최근에는 양자강 유역인 호남성 도현 옥섬암(玉蟾岩) 유적에서 출토된 볍씨가 1만 1,000년 전으로 밝혀지면서 이 주장이 굳어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시점에서 충북 청원군 '소로리 볍씨'가 출토되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로 공인되게 되었다.
충북 청원군 소로리와 양자강 유역인 호남성 도현 옥섬암 동굴유적, 강서성 선인동(仙人洞) 동굴유적, 하남성 하모도 유적 등 세계에서 오래된 볍씨들이 출토된 지역의 위치는 [그림 2]에서 보는 바와 같다.
[그림 2] 세계 최고의 볍씨 출토 유적지
충북 청원군 소로리볍씨는 1994년 지표조사, 1996~1997년 시굴조사, 1997~1998년 1차 발굴조사, 2001년 2차 발굴조사, 2012년 시추조사를 통해 토탄층에서 볍씨 127톨을 발견하였는데, 이를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으로 검증한 결과, 1만 5천 년 전 볍씨로 측정되었다.
이제까지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 왔던 중국 강서성 선인동(仙人洞) 동굴에서 출토된 볍씨의 10,500년, 또는 호남성 도현 옥섬암 동굴유적에서 출토된 볍씨의 11,000년보다 대략 3,000년을 더 앞선 세계 최고(最古)의 볍씨임이 국제적으로 공인되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최고의 볍씨는 손보기·이융조 교수 등이 1991년에 일산 한강하류 부근에서 발굴한 12톨의 가와지볍씨로서 약 5,020년 전의 볍씨였다.
경기도 고양시는 2014년 3월에 '고양 가와지볍씨박물관'을 개관했는데, 국내 최초의 쌀 관련 볍씨유물 문화박물관이다. 또 지난 2016년 청주시 소로리에 세계 최고의 소로리 볍씨 출토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세워졌다.
그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들이 출토된 유적들의 개요는 아래와 같다.
1. 호남성(후난성) 영주시 도현 옥섬암(玉蟾岩) 유적
소로리 볍씨가 발견되기 이전, 국제적으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인정받아 왔던 옥섬암(玉蟾岩) 유적은 BP 10,000년의 동굴유적인데, 4립의 볍씨가 출토되었다.
감정결과 야생도의 특징이 남아있고 산류(인디카)와 갱류(자포니카)의 분화가 완성되지 않은 초기 재배도임이 확인되었다.
2. 강서성 만년(萬年)현 선인동(仙人洞) 유적
선인동 유적은 강서성 만년(萬年)현에서 동북으로 15km 떨어진 작은 산의 석회 용암 동굴유적인데, 1960년대와 1990년대에 이 유적에 대한 발굴이 이루어졌다.
유적은 상하 2개의 문화층으로 나뉘는데, 불에 탄 소토(燒土), 구덩이, 다량의 동물뼈, 인골, 석기, 골각기, 조개껍질들이 출토되었다. 이 시기에 선인동 주민의 음식에는 이미 벼가 포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3. 절강성 여도(余姚)시 하모도(河姆渡) 유적하모도(河姆渡, 7,000~5,000년 경 추정) 유적은 1973년에 장강 하류지역인 절강성 여도(余姚)시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미 학계에 널리 알려진 도작(稻作) 농경유적이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하모도 제4문화층에서 큰 범위로 발견된 벼의 흔적이다. 도곡. 벼껍질, 경옆이 혼합된 상태로 두꺼운 문화층을 형성한다. 이처럼 벼의 양이 많고 보존이 양호한 유적은 중국 신석기시대 고고학사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당시 도작(稻作) 농경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하였음을 알려준다. 벼는 재배도의 늦은 유형으로 확인되었다.
콩의 한반도 기원설
한반도와 만주 남부는 국토의 75% 이상이 산악지대로 초원(草原)이 귀해 목축하기가 어려웠어요
사냥을 하거나 적은 수의 가축들로 육류를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육류섭취가 매우 어려웠어지요
이러한 육류섭취를 대체해준 작물이 바로 콩(豆)이었어요
그런데 콩의 원산지가 우리 한반도라는 사실을 알고있는 사람은 별로 없지요
콩은 우리 한민족과는 뗄레야 뗄수 없는 궁합 작물로 오랫동안 한반도에서 부족했던
단백질과 지방을 책임져 왔어요
단백질과 지방은 인체를 구성하는 핵심 성분 이지요
콩은 구성성분이 40% 내외의 단백질과 30% 내외의 지방으로 이루어져 있어
쌀을 주식으로 하는 사람들이 부족하기 쉬운 단백질과 지방을 공급하는 중요한 공급원이었어요
그래서 한반도에서는 5000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목축이 발달하지 못했음에도
콩 덕분에 단백질과 지방 결핍에 시달리지 않고 잘 살수 있었지요
우리 민족이 유목민족이 되지 않고 기마민족으로 한반도를 지킬수 있었던 힘이
바로 콩 덕분이라 하지요
오늘날 역사학계에서는 콩의 원산지를 만주 남부와 한반도로 보고 있으며
약 5000년전부터 재배가 시작되었다고 하지요
한반도에는 신석기시대부터 밭농사가 지어졌는데 북한의 회령,오동 고조선 유적지에서
기원전 1300년경의 청동기 유물과 함께 콩, 팥, 기장이 출토(出土)되었어요
이런 물증으로 보아 콩의 원산지는 한반도라는 것을 확인할수 있지요
실제로 콩의 원산지가 한반도임을 뒷받침하는 실증적인 조사도 있었어요
1920년대 미국은 세계 식량종자 확보를 위해 세계 각지의 야생작물 채취에 나섰지요
그들은 한반도에서 3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전세계 야생 콩 종자의 절반이 넘는
무려 3,379종의 야생 콩을 채취해 가지고 갔어요
식물의 원산지를 추정할때 변이종의 다양성이 그 기준이라 하는데
한반도에서 가장 많은 콩의 변이종이 발견된 것이지요
이렇듯 다양한 야생콩이 한반도 곳곳에서 발견되므로 해서 한반도가
콩의 원산지임을 실증적으로 입증된 것이라 말할수 있어요
콩을 뜻하는 한자 두(豆)는 원래 고기를 담던 그릇을 말하고 있지요
일부에서는 콩깍지가 이 그릇을 닮아 콩 두(豆)자로 썼다는 말도 있지만
두(豆)는 원래 긴 밑받침이 있는 그릇으로 제사상에 제기와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요
따라서 두(豆)는 고기(단백질)와 연관이 있는 글자로 볼수 있지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콩 두(豆)자가 콩의 뜻으로 쓰인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지요
이 콩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하고 중요한 곡식이었어요
콩의 종류는 무척 많지만 가장 흔한 콩이 대두(大豆)이며 모든 콩의 주종을 이루지요
대두의 상대적인 개념은 소두(小豆)라 하는데 소두는 팥을 이르는 말이지요
보리가 대맥(大麥), 밀이 소맥(小麥)인것처럼 종류가 비슷할때 덜 중요한것에 '소(小)' 자를 붙였어요
그러므로 우리 일상생활에서 콩보다는 팥이 덜 소중했지요
하지만 늘 팥은 콩과 함께 짝을 이루었어요
'콩쥐팥쥐' 같은 말을 보면 콩도 팥도 우리와는 오래전부터 친숙한 식물이었지요
우리는 부여나 고구려가 콩의 원산지였기에 중국의 중원보다 훨씬 일찍 콩과 친숙할수 있었어요
백제나 신라도 고구려로부터 콩을 받아 들였지요
그렇기에 우리나라에는 일찍이 다양한 콩 조리법이 발달할수 있었어요
중국도 춘추전국시대에 콩을 만주 지역으로부터 받아들였고
콩의 재배가 일반화된 것은 진한시대 부터라 하지요
일본은 약 2000년 전에 한반도를 통해 콩을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삼국시대때 일본과 한반도의 긴밀한 접촉으로 보아 그때 일본으로 전파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그때부터 일본도 콩을 먹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어요
한국, 중국, 일본 세 나라의 콩 쓰임새를 보면 콩을 정말 오래전부터 먹어왔음을 알수 있지요
그런데 이 콩이 밥상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보면 주곡(主穀)과는 사뭇 달랐지요
물론 밥에 콩을 직접 넣어 주곡으로 먹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보조 재료일 뿐이었어요
콩은 주식이기 보다는 메주를 만들어 된장과 간장을 뽑아 먹고, 갈아서 두부를 만들어 먹고
콩나물과 숙주나물로 키워 나물로 먹는 '반찬'의 역할을 많이 했지요
간장에 졸여 만든 콩자반을 반찬 삼고, 볶아서 간식을 만들기도 했으며
콩소, 팥소, 녹두소, 콩가루는 떡의 맛을 내는 보조 재료 였어요
또 콩을 볶아 압착해서 짜낸 콩기름은 참깨에서 나온 참기름과 함께 부엌에서 쓰던 기름의 주종이었지요
이렇게 보면 콩은 오히려 곡식이 아니라 반찬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음을 알수 있어요
쌀, 보리, 기장, 조처럼 주곡으로 먹기보다는 밥과 함께 먹는 반찬의 재료로 쓰일 경우가 훨씬 더 많았지요
물론 채소와 나물, 고기반찬도 추가되겠지만 기본적인 골격으로는 쌀, 보리, 조가 밥이 되었고
콩은 반찬에 불과 했어요
이는 영양이라는 측면에서 볼때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는지도 몰라요
농경 생활에서 고기나 생선을 얻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에 단순한 탄수화물 중심의 주곡에다
콩으로 단백질을 보충하므로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말할수 있지요
아무튼 ,콩의 재배는 다른 곡물(쌀, 기장, 조, 수수)보다 훨씬 늦은 기원전 2000년경에 시작된 것으로 고고학자들은 보고 있다.
콩의 원산지에 관해서도 많은 설이 있었다,
일본의 후쿠다(福田, 1933) 박사는 야생콩의 분화가 많이 된 곳이 원산지라는 주장을 토대로 만주와 한반도를 원산지로 보았다.
미국의 하이모위츠(Hymowitz, 1970)는 중국 주나라의 시를 수록한 시경(詩經, 기원전 11-6세기)에 콩 숙(菽)자가 있다는 근거로 중국을 원산지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권신한(1985)은 한국 재래종이 현재까지 세계 각국에서 보고되어 있는 콩이 지니는 각종 특성을 모두 보유하고 있어 한국이 콩의 원산지라고 결론지었다.
콩을 재배하고 이용한 확실한 증거는 신석기 중기 이전의 유적에서는 발견된 것이 없다.
중국에서는 용산문화기(기원전 3000-2000년)와 상(商)나라 시대까지의 유적에서 콩이 다수 발견되었으나, 최근 미국 오레곤주립대학의 이경아(2012) 교수는 한·중·일 삼국에서 신석기시대에 발굴된 949개의 탄화콩에 대한 크기를 측정하여 비교한 결과 한반도 초기 무문토기시대(기원전 1600-600년)의 탄화콩들이 길이(L)와 넓이(W)가 뛰어나게 큰 대두(大豆)임을 확인하였다.
이로써 중국의 양사오, 용산문화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콩들은 대부분 야생콩이며 재배콩은 기원전 2000년경의 한반도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유력해 진다.
기원전 6세기에 쓰여진 일주서(逸周書)에는 중국 동북지역의 콩이 처음 언급되고 있다.
여기에는 ‘산융(山戎)은 동북이이(東北異夷)다. 융숙(戎菽)이 나는데 큰콩(巨豆)이다’라고 쓰여있고, ‘서주(西周, 기원전 7세기)가 상(商)을 정벌하고 조공을 받는 과정에서 산융에서 보내온 콩, 융숙(戎菽)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일주서의 내용과 비슷한 기록들이 사마천의 사기와 중국 고전 관자(管子)에도 나온다.
홍콩대학의 호핑티(何炳棣, 1975) 교수는 이에 근거하여 재배 콩은 지리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볼 때 퉁구스족에서 유래하였다고 주장한다.
대한해협의 원시토기문화시대(기원전 8000-5000년)를 거치면서 한반도의 원주민들은 어로 채집과 지역에서 자생하는 벼, 기장, 조를 비롯한 곡류채식문화를 점진적으로 발전 시켰을 것으로 보인다.
기마 유목민족이었던 북부지역의 퉁구스족이 한반도로 들어와 농경 정착을 하면서 가축을 많이 기를 수 없게 되므로 고기를 대체할 안정적인 단백질 급원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필요에 의하여 그들은 이 지역에서 자생하던 콩을 재배하여 물에 불린 후 토기에 담아 삶아 냄으로서 트립신인히비터와 같은 영양 저해인자를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했을 것이다.
따라서 동이(東夷) 예맥족(濊貊族)은 인류사상 최초로 콩을 음식으로 이용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동북아시아인의 주식인 쌀과 콩의 기원지가 한반도일 수도 있다는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5. 천부도(삼한의 도시) 건설
천부도의 제 23장엣서는 아래와같이 천부도의 건설를 언급합니다.
물론 환단고기와 환단신화에서도 비슷한 언급을 합니다.
임검씨가 돌아와 부도를 건설할 땅을 택하였는데 동북의 자방(磁方)이었다.
이는 26이 교감하는 핵심지역이요, 48이 상생하는 결과의 땅이었다.
밝은 산과 맑은 물이 만리에 뻗어 있고, 바다와 육지가 서로 통하여 10방으로 갈리어 나가니,
즉 91의 끝과 시작이 다하지 않는 터전이었다.
3근영초와 5엽서실과 7색보옥이 금강의 심장부에 뿌리를 내려, 전 지역에 두루 가득하다.
이는 1357의 자삭(磁朔)의 정(精)이 모여 바야흐로 물체를 만드는 복된 땅이었다.
곧 태백산 밝은 땅의 정상에 천부단을 짓고 사방에 보단을 설치하였다.
보단의 사이에는 각각 3 겹의 도량길로 통하게 하였다.
도랑길의 사이는 천리였으며, 도랑길의 좌우에 각각 관문을 설치하여 지키게 하였다.
이는 마고본성에서 그 법을 취한 것이었는데 부도의 하부를 나눠 마을을 만들었다.
3해의 주위에 둥그렇게 못에 잠기었다.
4진(四津)과 4포(四浦)가 천리 간격으로 연결되어 동서로 줄을 지어 둘러쌌다.
진과 포사이에 다시 6부를 설치하였고 이에는 제족이 살았다.
부도가 이미 이루어지니 크고 화려하고 광명하여 4해를 총화하기에 충분하였으며 제족의 생명줄이었다.
환단문명은 환단역학의 원리를 구현한 재세이화홍익인간의 산물이라고 합니다.
그당시의 지도자들은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목적으로 가지고
문명을 건설한 것이 오늘날 우리들에게 환단문명이라고 하는 것이죠.
그렇다면 환단문명의 최고가치는 무엇일까요?
이렇게 자문한다면...
어떤이들은 환단문명의 화려한 역사와 광범위한 영토를 건설한 것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인 사실들의 집합체는 일장춘몽일 겁니다.
역사적인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다만 이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겁니다.
문명을 ㅓㄴ설하면서 알게된 지혜 일겁니다.
이 지혜의 핵심이 바로 천문학이고 과학적인 지혜일 겁니다.
과학이야말로 인간의 위상을 신의 경지로 올려 줄 수단이 아닌가?
그렇다면 환단문명에 역사를 안다는 것은 바로 환단면명이 이룩한 최고의 가치인 역학에 관한 지혜를 습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환다역학의 존재와 가치는 제로상태로되어 있습니다.
우리에서 가치는 있는 것이 남겨져 있는 것일까...
사실 수천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환단문명이 현재의 우리들에게 남겨진 것은 있는 것일까?
우리의 기나긴 역사를 보면 가련하기가 그지없어 보입니다.
남의 영토를 침략해서 노획한 적도 없고 대부분의 세월이 외족에게 종속되고 근대에서는 서구열강과 왜족에게 식민지당하고 더구나 인류역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힘든 세계전쟁이 한반도 영토안에서 벌어지고...
이러한 점을 생각하면 우리문명의 역사니 뭐니하는 것 자체가 황당한 일일 겁니다.
하지만 가장 더러운 곳에서 장미같은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생명들이 생의 활기를 즐기듯이
의외의 가치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려서 우리환단문명의 최고의 가치는 바로 천문역학인데 이를 황제역학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이 황제역은 부지랭이의 백성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황제역학이 생긴 연유가 최고의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계승과정과 전수과정이 극도하게 비밀주의로 이루어집니다.
환단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이 천문역학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천문역학은 오늘날 과학의 개념에 해당합니다.
사실 환단역사를 기록한 고서들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 바로 재세이화 홍익인간의 나라의 건설이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재세이화의 개념이 빠져있습니다.
홍익인간의 개념만 등장합니다.
옹익인간이라는 말은 좋은데 뭔가 빠져 있습니다.
홍익인간을 어떻게 실현하고 현실화하는가 이를 어떻게 객관화하는가의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재세이화의 개념이 없다면... 거짓이고 기만이라고해도...
천문역학의 본질을 알아야 홍익인간이 가능합니다.
다시말하자면 황제역학의 내용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오늘날 그 재세이화의 내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신화와 전설만이 난무합니다.
정작 중요한 것 환단문명의 진정한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왜 없을까요?
물론 역사의 강자인 호랑이세력들에게 밀려나버려서 그렇겁니다.
역사는 승리자의 일기장이라고도 합니다.
패배자에게는 일기장이 없으니..
그 후손들은 어찌알랴만...
아무튼 미래를 도모하려면 잃어버린 천문역학의 본질을 알아야하고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에 세계 4대문명이 존재하듯이, 우리에게는 한단문명이라는 동이족의 역사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 문명의 역사가 모두 거짓된 위서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현재 상당히 많다.
어째서 우리의 고대 역사가 모두 거짓된 위서의 역사란 말인가.
실로 우리민족의 역사에 대해 슬픈 비애감마저 든다.
자신들의 역사를 지키는 것은 강건한 국력을 바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근현대사에 들어서 스스로 강한 자강의 역사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처해서 역사위서논쟁을 불러들이는 우를 범하고 만 것이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역사위서논쟁에 휘말린, 우리의 역사를 반드시 바로 잡아야만 한다.
그것은 우선 민족정신을 제대로 분석하여 승화시키는 것이다. 우리 동이족의 역사를기록한 것으로 징심록의 일부인 부도지가 있으며 고대사서인 환단고기(桓檀古記)에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단군신화로 왜곡되어진 환단의 문명이다.
1980년부터 요하강일대에서 본격적으로 발군된 이른바 요하문명의 주인은 누구인가?
우리는 요하강일대는 물론이고 한반도와 산둥반도의 발해만을 중심으로하는 광범위한 지역과 동북쪽의 퉁구스의 험준한 지역을 근거지로하는 건설된 문명을 환단문명이라고 규정짓는다.
우리의 문명과 역사를 스스로 환단의 역사라 부른다.
또한 이 환단의 역사를 동이문명의 역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도대체 환단의 역사란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우리들의 역사를 현재 이렇게 역사위서논쟁에 빠트리는 우를 범했지만, 이제 환단의 역사만큼은 바로 정립해나가야만 한다. 그래야지만 우리들은 우리민족이 살아온 모든 역사에 대한 강한 자긍심으로, 우리들의 후손들이 살아갈 미래의 역사를 제대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환단의 역사란 무엇일까.
적어도 우리들은 우리민족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환단민족이라는 문장에서 나타나는 그 환단이라는 단어의 어원부터 바로 고찰해 보아야만 한다.
우리민족의 선조들이 환단문명(桓檀文明)을 이룬 우리민족의 환단이라는 그 단어의 의미마저 제대로 모른다면, 우리는 주변 열강들에 의해서 자행되는 역사왜곡의 주어진 현실에서 살아남을 수 없으며, 또한 우리역사에 대한 위서논쟁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 있어서 환단이란 무엇일까.
환단(桓檀)이란 쉽게 말해서 환인의 환국-환웅의 신시배달국과 단군 고조선과 이후의 삼한과 삼국으로 이어지는 모든 역사를 통털어서 말한다고 한다.
우리는 이제 이러한 역사라는 단어가 우리에게 주는 탐구적인 자세로 환단의 모든 역사를 고증해야만 한다.
환단의 환은 무엇이며, 단은 무엇을 나타낼까.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겠지만 환(桓)은 하늘의 광명을 나타내며, 단(壇)은 땅의 광명을 나타낸다고 한다.
따라서 환단(桓檀)이란 환의 하늘과 단의 땅이 하나로 된 천지광명을 나타내는 인(人)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이 인(人)을 한(韓)이라 하며 인광(人光)이라 한다.
단군시대의 삼한관경의 3체제는 이후에도 게속 이어진 것이고 대한제국을 거치면서 현재까지 이어진다.
환단(桓檀)이란 천지인의 삼일사상이 내포된 한(韓)의 인간(人)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대한(大韓)은 환단의 인류가 사는 위대한 나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일제시대 일제의 치하에서 대한제국을 선포한 고종황제의 대한의 정신이 여기에 숨어있는 것이다.
결국 환단(桓檀)이란 천지인(天地人)을 말하는 것이며 환단경전인 천부경의 핵심되는 개념이다.
우주는 천지인이다. 그러므로 천지인의 사상이고 환단(桓檀)이 의미하는 천지인의 합일은 바로 우리문명의 위대한 삼일사상을 잘 대변하고 있다.
결국 환단(桓檀)문명의 우주론 철학은 천부경(天符經)이다.
물론 이 경전의 가르침을 통하여 환단의 문명이 철학 종교 수리학 과학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다차원의 문화를 형성하고 계승발전시키게된다.
천부경은 환단문명의 씨앗과도 같은 것이다.
천부경을 모태로 하여 황부중경과 황제중경 그리고 삼황내문경과 삼일신고 참전계경등의 다양한 경전을 낳는다.
천부경을 통하여 환단의 책력과 역사관이 형성되는데 천부도지와 환단고기, 다군신화등의 역사서가 등장하게된다.
천부경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숫자가 만들어 언어가 형성되게 된다.
녹도문자인 한문(韓)과 숫자인 가림다의 한글이 생기게 되어 오늘날까지 한글은 환단 문명의 문화적 징표로 되고 있다.
천부경을 모태로 하여 하여 역학이 탄생하게 되는데 신시시대의 환역과 희역, 단군시대의 주천력과
8괘상중론과 천부도 성법체역학, 그 이후에는 금척으로 정립하게 된다.
천부경을 코태로 하여 수리학이 정립되는데 피라미드의 기하학이 원방각의 기하학으로 원방각의 기하학인 성법체의 수리학으로 성법체의 수리학이 금척의 수리학으로 정리된 것이다.
천부경의 가르침에 의하여 다양한 문화재들이 생기게되는 데 이 문화재속에는 불멸의 환족의 영혼이 깃들어져 있는 것이다.
우리자손들은 다양한 문화재 속에 깃들인 불멸의 연혼과의 만남을 통하여 진실을 알고 실천함으로서 홍익인간을 구현 할 수가 있다.
그런데 홍익인간은 세상의 돌이가는 이치를 알아야 가능한 것이다.
즉, 홍익인간은 말로만 되는 일이 아니라 환단경전을 잘 익히면서 우주운행의 이치를 잘아아야 성사될 수가 있는 것이다.
환조선문명의 5대 경전
한조선이 경전에 대하여 언급한 것으로는 부도지와 환단고기의 두종에서 전해진다.
부도지에서 전해지는 것은 구체적으로 천웅의 도이고 부도역학으로 책력을 그 예로 한다.
즉 부도지의 역사내용은 천부도의 철학인 성법체의 역학을 구체적으로 책력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부도지는 경전의 세계관을 문명사에 반명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에 비하여 환단고서는 여러가지의 관련 역사서를 취합하여 정리한 것으지만
보다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사료를 반영하였다.
특히 태백일사의 소도경전본훈에서 제시되고 있다.
이를 종합하여 정리하면 아래의 4가지로 정리된다.
1. 천부경
2.칠정운천도( 윷판모형과 주비산경)
3.삼일신고( 원방각)
4.황부중경(황제중경)
5.삼황내문경
다음은 이를 적용한 구체적인 사례들이다.
1. 천부경
天 符 經
一始無始一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鋸無匱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
衍萬往萬來用變不同
本本心本太陽昂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우주 만물은 하나에서 나오고 하나에서 비롯되나, 이 하나는 하나라고 이름 붙여지기 이전의 하나이며 본래부터 있어 온 하나이다. 하나는 하늘과 땅과 사람 세 갈래로 이루어져 나오지만, 그 근본은 변함도 없고 다함도 없다. 하늘의 본체가 첫 번째로 이루어지고, 그 하늘을 바탕으로 땅의 본체가 두 번째로 이루어지고, 그 하늘과 땅을 바탕으로 사람의 본체가 세 번째로 이루어진다. 이렇게 변함없는 하나가 형상화되기 이전의 하늘, 땅, 사람의 순서로 완성되면서 새로운 하나를 이룬다. 이 새로운 하나는 한정도 없고 테두리도 없다. 이 새로운 하나가 바로 형상화된 하늘과 땅과 사람이다. 형상화되기 이전의 하늘, 땅, 사람과 형상화된 하늘 땅 사람이 어울리면서 음과 양, 겉과 속, 안과 밖이 생겨난다. 하늘에는 밤과 낮이 있고 땅에는 물과 뭍이 있으며, 사람에게는 남녀가 있어서 이 둘의 조화를 통해 천지는 운행을 하고 사람과 만물은 성장․발달해 나간다. 이렇듯 하늘과 땅과 사람이 원래의 근본상태, 형상화되기 이전의 상태, 형상화된 상태, 형상화되기 이전과 형상화된 상태가 어울려 작용하는 상태, 이 네 단계를 거쳐 우주만물이 완성되며, 우주 만물은 본래 따로 뗄 수 없는 한 덩어리다. 이렇게 하나가 묘하게 피어나 우주 만물이 형성되며 그 쓰임은 무수히 변하나 근본은 다함이 없다.
마음의 근본과 우주만물의 근본이 하나로 통할 때 일체가 밝아진다. 이렇게 마음을 밝힌 사람에게는 하늘과 땅이 하나로 녹아 들어가 있다. 우주 만물은 하나로 돌아가고 하나에서 끝이 나지만, 이 하나는 하나라고 이름 붙이기 이전의 하나이며 끝이 없는 하나이다.
2. 황부중경
1) 발귀리의 천제송문
2) 자부선생의 칠정운천도(七政運天圖)- 칠성력의 시작
3) 삼일신고
4) 환역, 희역, 환희역 - 숫자와 환역상수( 녹도 가림다 )
5) 팔괘중론 창기소의 오행치수법
3. 삼황내문경
《삼황내문경》은 자부선생이 헌원에게 주어 그로 하여금 맘을 씻고 의(義)에 돌아오게 한 것이다. 선생은 일찍이 삼청궁(三淸宮)에 사셨으니 궁전은 청구국(靑邱國) 대풍산(大風山)의 남쪽에 있었다. 헌원이 몸소 치우를 배알했는데 가는 길에 명화(名華)를 거치게 되어 소문을 듣게 된 것이다.
경문은 신시(神市)의 녹서(鹿書)로 기록되어 세 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추연(推演)하고 주(註)를 더하여 따로 신선음부(神仙陰符)의 설이라고 한 것이다. 주나라․진나라 이래로 도가(道家)의 무리들에 의지하는 바가 되어 민간에 연단복식(鍊丹服食)하는 자가 생기고 허다한 방술(方術)의 설이 어지럽게 마구 나와서 의혹에 빠지는 자가 많았다.
서복(徐福)에 이르러 한(韓)나라는 망했지만 역시 회사(淮泗)의 출신이기에 평소 진나라을 배반할 뜻이 있었으니, 이에 바다로 들어가 신선을 찾는다고 말로는 하고 도망쳐 들어가지 않았다.
일본의 기이(紀伊)에 서불(徐巿)이라는 제명(題名)의 각자가 있다. 이국(伊國)의 신궁(新宮)에는 서불(徐巿)의 묘지요 사당이 있다. 서복은 일명 서불이니 불(巿)은 복(福)의 음이 혼동된 것이다.
4. 황제중경 ( 단군임검시대)
태자는 도산에 이르러 일들을 주관했다. 곧 회합하여 번한을 통해서 우사공(虞司空)에게 가로되, 「나는 북극 수정(水精)의 아들이니라. 그대의 왕이 나에게 청하기를 물과 땅을 다스려서 백성들을 도와 이를 구하려 한다 했는데 삼신상제(三神上帝)는 내가 가서 돕는 것을 기꺼워하시므로 내가 오게 된 것」이라고 했다. 마침내 천자의 땅의 글이 새겨진 천부왕인(天符王印)을 보이시면서 말하기를 「이것을 패용하면 곧 능히 험준한 곳을 다녀도 위험이 없을 것이며 흉한 일을 만나도 피해가 없을 것이다. 또 여기 신침(神針) 하나가 있나니 능히 물 깊고 얕음을 측정할 수 있고 변화가 무궁무진할 것이다. 또 황거종(皇鋸宗)의 보물이 있는데 대저 험요의 물, 이것을 진압시켜 오래도록 평안케 하리라. 이 삼보(三寶)를 그대에게 주노라. 천제의 아들의 대훈에 어긋남이 없으면 마침내 큰 공을 이룰지니라」고 하였다.
이에 우나라 사공은 삼륙구배(三六九拜)를 하고 나아가 아뢰기를,「천제 아드님의 명을 게으름 없이 업으로 삼아 우리 우나라 순임금의 정치를 힘써 도와 삼신께 보답함은 크게 기꺼운 일로 반드시 그리하리이다」라고 하였다.
태자 부루로부터 금간옥첩(金簡玉牒)을 받으니 대저 오행은 치수의 요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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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시때 발귀리의 제천송문
대일(大一) 그 극(極)은 이를 이름하여 양기(良氣)라 하니,
없음과 있음이 섞여서, 빈 듯 하면서도 갖추어 묘함이 있도다.
삼일(三一)은 그 체(體)는 일(一)이요, 그 용(用)은 삼(三)이라.
혼묘(混妙)가 한 둘레에 있으니 체(體)와 용(用)은 따로 갈라질 수 없도다.
대허(大虛)에 빛 있음이여, 이것은 신(神)의 형상(像)이고
대기(大氣)의 오래도록 존재함이여, 이는 신(神)의 화(化)로서
참 목숨이 근원으로 만물이 여기서 나는 도다.
해와 달의 아들은 천신의 충(衷)에 있음으로써 비추이고
이로써 원각(圓覺)을 긋고 능히 크게 세상에 내려오니
뭇 중생이 그 무리를 이룬다.
원(圓)은 일(一)이 되어 무극(無極)이고
방(方)은 이(二)가 되어 반극(反極)이며
각(角)은 삼(三)이 되어 태극(太極)이라.
무릇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함이란 천제 한웅에게 주어진 바니
일신(一神)은 내려와 충만하사 성(性)은 광명(光明)에 통(通)하고
재세이화(在世理化), 홍익인간(弘益人間)함은 이를 신시(神市)가 단군조선에 전하신 바이라.
2. 원방각원리
환역(桓易)의 체(體 : 모습, 외형)는 원(圓)이며 용(用 : 쓰임)은 방(方)이다. 모양 없음으로부터 실(實)을 알게 되니 이것이 하늘의 이치(理)다. 희역(羲易)의 체(體)는 방(方)이며 용(用)은 원(圓)이다.
모양 있는 것에서 그 변화를 아니 이것이 하늘의 체(體)이다. 지금의 역(易)은 서로 체(體)이면서 용(用)이니, 스스로 원(圓)이면서 원(圓)하고, 스스로 방(方)이면서 방(方), 스스로 각(角)이면서 각(角)이라. 이것이 하늘의 명(命)이다. 그러나 하늘의 원(圓)은 스스로 이것이 하나의 커다란 허무의 공(空)일 뿐이니 어찌 체(體)가 있다 하겠는가. 하늘은 스스로 본래 체(體)가 없으면서 스물 여덟 가지의 별자리를 체(體)로 한다. 대개 천하의 사물은 모두 이름을 갖고 이름 있는 것은 곧 모두 수(數)를 가진다. 수(數)가 있으면 곧 모두 힘을 가진다. 이미 수(數)가 있다고 말함은 곧 유한(有限)과 무한(無限)의 틀리는 바 있음이고, 또 힘이 있다고 함은 곧 유형(有形)과 무형(無形)의 구별이 있음이니, 고로 천하의 사물은 말(言)이 있으면 모두 있는 것이고, 말(言)이 없으면 곧 없는 것이다.
3. 삼일신고(총366자)
제1장 허공(36자)
帝曰爾五加衆아 蒼蒼이 非天이며 玄玄이 非天이라 天은 無形質하며 無端倪하며
제왈이오가중 창창 비천 현현 비천 천 무형질 무단예
無上下四方하고 虛虛空空하야 無不在하며 無不容이니라.
무상하사방 허허공공 무부재 무불용
제 가로되,「너희들 오가의 무리들아. 파아란 것이 하늘이 아니며 까아만 것이라고 하늘인 것은 아니다. 하늘은 얼굴(形)과 바탕(質)이 없으며 첫끝(端)과 맞끝(倪)도 없으며, 위 아래와 사방도 없고 겉은 황하며 속은 텅하여 있지 않은 데가 없으며, 싸지 않은 것이 없나니라.
제2장 일신(51자)
神은 在無上一位하사 有大德大慧大力하사
신 재무상일위 유대덕대혜대력
生天하시며 主無數世界하시고 造兟兟物하시니
생천 주무수세계 조신신물
纖塵無漏하며 昭昭靈靈하야 不敢名量이라
섬진무루 소소영영 불감명량
聲氣願禱하면 絶親見이니 自性求子하라 降在爾腦시니라.
성기원도 절친견 자성구자 강재이뇌
신은 위 없는 첫 자리에 계시사 큰 덕과 큰 슬기와 큰 힘을 가지사 하늘을 내시며, 셈없는 세계를 차지하시고 많고 많은 물건을 만드셨나니 티끌만치도 빠진 것이 없으며, 밝고도 영하여 감히 이름하여 헤아릴 수가 없다. 소리, 김으로 원하여 빌어도 친히 보임을 끊나니 성품으로부터 씨를 찾으라. 너의 머리끝에 내려 계시나니라.
제3장 천궁(40자)
天은 神國이라 有天宮하야 階萬善하며 門萬德하니 一神攸居오
천 신국 유천궁 계만선 문만덕 일신유거
群靈諸哲이 護侍하니 大吉祥大光明處라. 惟性通功完자라야 朝하야 永得快樂이리라.
군령제철 호시 대길상대광명처 . 유성통공완 조 영득쾌락
천은 신국이라, 천궁(天宮)이 있어서 온갖 착함으로 섬돌을 삼고 온갖 덕으로 문을 삼나니 일신께서 계시는 곳이요, 신장(군령(群靈)과 선관((諸哲)들이 모셨나니 크게 좋으며 크게 빛난 곳이라. 오직 성품을 트고 공적을
이룬 이라야 널리 영원토록 쾌락을 얻을지니라.
제4장 세계(72자)
爾觀森列星辰하라 數無盡하고 大小明暗苦樂이 不同하니라.
이관삼열성신 수무진 대소명암고락 부동
一神이 造群世界하시고 神이 勅日世界使者하사 轄七百世界하시니 爾地自大나 一丸世界니라.
일신 조군세계 신 칙일세계사자 할칠백세계 이지자대 일환세계
中火震盪하야 海幻陸遷하야 乃成見象하니라.
중화진탕 해환육천 내성현상.
神이 呵氣包底하시고 煦日色熱하시니 行翥化游裁物이 繁殖하니라.
신 가기포저 후일색열 행저화유재물 번식
너희들 총총히 벌린 별들을 보라. 셈이 다함이 없고 크고 적음과 밝고 어두움과 괴로움과 즐거움이 서로 같지 않으니라. 일신께서 뭇 세계를 만드시고 또 일세계(日世界)의 사자를 시켜 700세계를 거느리게 하시니, 너희 땅이 스스로 큰 듯 하나 한 둥그런 세계이니라. 땅속 불이 울리어서 바다가 변하여 육지가 되었고 이에 보이는 모양을 이루었느니라. 일신께서 김(氣)을 불어 싸시고 밑까지 해의 빛과 더움을 쪼이시니, 기고 날고 되고 심는 물건들이 번식하니라.
제5장 인물(167자)
人物이 同受三眞하니 曰性命精이라 人은 全之하고 物은 偏之니라.
인물 동수삼진 왈성명정 인 전지 물 편지
眞性은 無善惡하니 上哲이 通하고 眞命은 無淸濁하니 中哲이 知하고
진성 무선악 상철 통 진명 무청탁 중철 지
眞精은 無厚薄하니 下哲이 保하나니 返眞하야 一神이니라.
진정 무후박 하철 보 반진 일신
惟衆은 迷地에 三妄이 着根하니 曰心氣身이라 心은 依性하야 有善惡하니 善福惡禍하고
유중 미지 삼망 착근 왈심기신 심 의성 유선악 선복악화
氣는 依命하야 有淸濁하니 淸壽濁妖하고 身은 依精하야 有厚薄하니 厚貴薄賤이니라.
기 의명 유청탁 청수탁요 신 의정 유후박 후귀박천.
眞妄이 對作三途하니 曰感息觸이라 轉成十八境하니 感엔 喜懼哀怒貪厭이오
진망 대작삼도 왈감식촉 전성십팔경 감 희구애노탐염
息엔 芬蘭寒熱震濕이오 觸엔 聲色臭味淫抵니라.
식 분란한열진습 촉 성색취미음저
衆은 善惡淸濁厚薄을 相雜하야 從境途任走하야 墮生長消病歿의 苦하고
중 선악청탁후박 상잡 종경도임주 타생장소병몰 고
哲은 止感하며 調息하며 禁觸하야 一意化行하야 返妄卽眞하야 發大神機하나니 性通功完이시니라.
철 지감 조식 금촉 일의화행 반망즉진 발대신기 성통공완
4. 신지비사(神誌秘詞)
《신지비사(神誌秘詞)》는 단군 달문(達門) 때의 사람 신지(神誌) 발리(發理)가 지은 것이다.
본래 삼신께 올리는 옛 제사에서 서원의 글이다.
저 상고제천(上古祭天)의 참뜻은 백성을 위하여 복을 기원하고 신을 축복하여 나라를 일으킴에 있다. 지금 호사가는《신지비사(神誌秘詞)》를 가지고 도참(圖讖) 성점(星占)과 서로 혼돈시키고 수(數)를 추리하여 부연해서 말하기를 그것은《진단구변도(震檀九變圖)》라고 하며, 또 어떤 사람은 구결(口訣)로 예언하는 것의 본보기라고 하는데 잘못된 말이다.
말하기를「저울대는 부소량(扶蘇樑)이다」라고 했으니 곧 진한의 옛 서울을 말한다. 역시 곧 단군 조선이 도읍한 곳으로서 아사달이 그곳이니, 즉 지금의 송화강(松花江)의 하르빈이다. 또「저울의 추는 오덕지(五德地)라 함은 번한의 옛 서울을 말함이니 지금 개평부(開平府) 동북 70리에 있는 탕지보(湯池堡)가 그곳이다. 또 고려사에 말하기를「저울 그릇은 백아강이라」고 했으니 이는 마한의 옛 도읍지를 말하며지금의 대동강(大洞江)이다. 곧 마한의 웅백다(熊伯多)가 하늘을 마한산에서 제사했다 함은 곧 이것이다. 삼가 삼한의 지세로써 여러 가지 형석(衡石)에 비유해 보면 부소량은 나라의 저울대와 같고, 오덕지는 나라의 추와 같고, 백아강은 나라의 저울그릇과 같으니, 세 가지 가운데 하나를 빼면 저울은 물건을 달 수 없고 나라는 백성을 보존치 못하리니, 삼신고제(三神古祭)의 서원은 다만 삼한의 관경에 있는 백성을 기쁘게 하는데 뜻이 있다. 《신지비사》의 전하는 바도 역시 이에 벗어나는 말은 아닐 것이다. 즉 나라를 위하여 뜻을 하나로 하고 아울러 충성과 옳음을 함께 장려하고, 제사하여 신을 기쁘게 하여 복이 내리기를 빈다면, 신은 반드시 가득히 내리고 복은 반드시 나라를 행하게 할 것이다. 진실로써 행한다면 일을 함에 있어서, 실행하여 이루지 못하였다고 추궁할 수가 없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추궁함과 이루는 것이라, 어느 것을 공이라 할 것인가?
5. 각종의 서체
「신시에는 녹서(鹿書)가 있고 자부(紫府)에겐 우서(雨書)가 있고 치우(蚩尤)에게는 화서(花書)가 있어, 투전문(鬪佃文) 등은 즉 그 남은 흔적이다. 복희(伏羲)에겐 용서(龍書)가 있었고 단군에겐 신전(神篆)이 있었으니 이들 글자들은 널리 백산․흑수․청구․구려에 쓰여졌다」고 했다.
6. 구서지문(九誓之文)
어느 날 단제께서는 꿈에 천제의 가르침을 얻고 다스림을 크게 바꾸고자 하여, 천제묘의 마당에 큰 나무를 세우고 북을 매달도록 하였다. 3․7일을 기한으로 연령순으로 서로 술을 마시면서 서로 권하여 덕화를 이루자는 내용을 책으로 만들었다. 이 모임을 구서지회(九誓之會)라 하였고, 그 때 서로 맹세한 내용을 ‘구서지문(九誓之文)’이라 하였습니다.
7. 참전계경
《참전계경》이 세상에 전해진 것은 을파소 선생이 전한 것이라 한다. 선생은 일찍이 백운산(白雲山)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고 천서(天書)를 얻으니 이를《참전계경》이라 했다.「대시(大始)에 철인(哲人)은 위에 계시사 인간의 360여 사(事)를 주재하시었다. 그 강령에 8조(條)가 있나니 성(誠)․신(信)․애(愛)․제(濟)․화(禍)․복(福)․보(報)․응(應)이라 한다. 성(誠)은 충심(衷心)이 발하는 것으로서 진실(眞實)에서 나오는 정성(精誠)을 관장하는 곳이라, 6체(體) 47용(用)이 있고, 신(信)은 천리의 필합(天理之必合)으로서 인사의 필성(人事之必成)이라, 5단(團) 35부(部)가 있다. 애(愛)는 자심의 자연(慈心之自然)으로 인성의 본질(仁性之本)이다. 6범(梵) 43위(圍)가 있다.
제(濟)는 덕의 겸선(德之兼善)으로서 도가 잘 미치는 것(道之賴及有)이라, 4규(規) 32모(模)가 있다. 화(禍)는 악이 부르는 것(惡之所召有)이다. 6조(條) 42목(目)이 있다. 복(福)은 선의 여경(善之餘慶有)이다. 6문(門) 45호(戶)가 있다. 보(報)는 천신(天神)이 하는것으로 악인에 보하는데 있어서는 화로써 하고(惡人以禍報) 선인에 보하는 데 있어서는 복으로 한다(善人以福有). 6계(階)와 30급(及)이 있다. 응(應)이란 악은 악보를 받고(惡受惡報) 선은 선보를 받음이라(善受善報有). 6과(果) 39형(形)이 있다. 고로 하늘은 비록 말은
없으나 척강(陟降)하여 두루 보호한다. 나를 아는 자 이를 열심히 찾아서 열매를 맺으리니, 하나같이 온전함에 이르고 모든 서람이 계(戒)를 받음이라.」
을파소가 덧붙여서 말했다.
「신시이화(神市理化)의 세상은 8훈으로써 경(經)을 삼고 5사를 위(緯)로 삼아 교화가 크게 행해져 홍익제물(弘益濟物)하였으니, 참전(參佺)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금의 사람들은 이 전계(佺戒)에 의해 더욱 더 스스로에 힘쓸지면, 백성들을 잘살게 하는 일이 어찌 어려운 일로 될까보냐?」감로 27년 겨울 경진에 요는 동경 중대성을 쳐서 동단국도 없앴다.
6. 인류최고(最高)의 천문역학(환역) 정립
1) 인류문명의 유래?
말이 현재의 모습을 가지게 되기 까지에는 6천만년이 걸렸다.
개미의 조상은 1억 5천만년 전에 살았는데 현재와 별로 다를 게 없다.
이에 비해 인류는 고작 200만년 동안에 해상과 육상, 공중뿐만 아니라 우주를 날 수 있게 되었다.
인류의 획기적인 진화에 비해 인류의 친척쯤 되는 원숭이들이 아직도 나무에서 나무로 뛰어다니고 있는 것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같은 사실로 보아 인류는 존재가 밝혀지지 않은 다른 문명, 즉 인류의 조상보다 수백만년이나 더 나이를 먹은
다른 은하문명에 의해 특수한 유전적 재산을 물려받았거나 진화의 속도가 촉진되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는 것이다.
특히 인류의 기억속에 남겨진 문명의 잔재를 살펴보면 인류 스스로의 힘만으로 진화하여 왔다는데 대해서
회의적인 입장을 가지게 된다.
인류는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역사를 고작 6천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대 인도의 브라만은 우주의 존속기간을 43억 2천만년으로 계산하였다.
레바논의 드루스파는 천지 창조의 시작을 34억 3천만년 전으로 설정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63만년 동안 천체 관찰의 기록을 계속하였다.
고대 그리이스의 천문학자 하파프코스는, 앗시리아의 연대기는 27만년전으로 소급된다고 하였다.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게네스는 이집트의 천문학 기록은 B.C 49219년에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곳에 373회의 일식과 832회의 월식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비잔틴의 역사가 싱켈루스는 이집트의 여러 파라오의 연대기는 36525년 동안 모든 일이 기록되어 있다고 하였다.
카펠라는 이집트의 현자들이 세계에 지식을 나누어 주기 전에 4만년이상 몰래 천문학을 연구하였다는 기록을 남겼다.
바빌로니아아의 태음력과 이집트의 태양력의 시작은 기원전 11542년에 일치되어 있다.
인도의 달력은 기원전 11652년부터 시작되었다.
플라톤에 의하면 아틀란티스가 가라앉은 시기는 기원전 9850년이라고 했는데
조로아스터교의 책에는 시간의 시작이 기원전 9600년에 있었다고 하였다.
보통 나일강 유역에 최초로 국가가 세워진 연대를 기원전 4천년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역사가 헤로도투스와 동시대 사람들은 1만7천년 전의 것으로 보이는 이집트의 고문서를 보존하고
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이집트의 역사를 서술한 이집트의 신관 마네톤은 그의 저서에서 기원전 1만 7천년보다
훨씬 오래된 책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그리고 비잔틴의 역사가 스넬리우스는 이집트의 신관들이 3만 6천 5백 12년 이라는 오랜 세월에 걸쳐 쓴
{고대연대기}라는 고문서에 대해서도 썼다.
뿐만 아니라 그리스의 역사가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는 알렉산더 대왕보다 4만 8천 8백 6십 3년이나
오래된 기록을 이집트의 신관들이 보관하였다고 썼다.
이러한 사실을 허무맹랑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약 5만년전에 인류가 벌써 문자를 사용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문자가 사용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문명이 번창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분명 우리는 현 인류의 문명의 역사는 고작 6천년밖에 되지 않았고,
그 이전의 역사는 역사라고도 할 수 없는 원시상태였다고만 배워왔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가 얼마나 오래 되었나에 대해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이러한 증거들은 최소한 인류의 문명이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것 이상으로 오래 되었음을 입증한다.
또한 잊혀진 문명의 잔해들이 보여주는 문명 발달의 정도는 현대 인류에게 과거에 대한 깊은 관심과
정확한 인식을 요구한다.
현재보다 훨씬 발달한 문명이 고대에 존재했었고, 어떤 이유로 일순간에 멸망해 버렸다는 증거들이
곳곳에 남겨져 있기 때문에 적어도 현대 인류가 6천년동안 이룩해 온 문명의 성과에 대해
오만해져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고대문명에서 읽게 된다.
즉, 현재의 인류문명이전에도 고도로 발달했던 고대문명이 다수 있었다는 것이고 우리는 그 후예들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 문명의 출발은 어디서부터 왔는가 ?
현재 대수는 다아윈의 진화론에 의하여 인류문명을 해석하고 있다. 물론 이외의 소수론으로 외계의 유입설을 고수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천부도지와 환단고기에서 각기 독특한 우주론적인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한류문명의 두가지 우주론외에 현재 인류의 석학들이 제가한 우주론으로는 아래와같이 다양한 관점을 제기하고 있다.
- 황화문명의 우주론( 주역)
- 이집트문명의 우주론(피라미드)
- 인도문명의 우주론( 인도교와 석가모니)
- 마야문명의 우주론( 마야달력)
- 피타고라스의 우주론
- 파르메니데스의 우주론( 일다사상)
- 헤라클레이토스의 우주론( 운동론)
- 플라톤의 우주론
- 프톨레마이오스 우주론(알마게스트)
- 종교우주론(기독교 불교 인도교 도교 등)
물리학적 우주론으로는...
고전물리우주론과 현대물리학적인 양자역학의 우주론이 있다.
아무튼 안데스 산중에는 티아와나코라는 폐허가 된 고대도시가 있다.
이곳은 해발 4천미터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해발에서는 인간이 생활하기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이곳에서 항구의 흔적이나 조개껍질 등 바다동물의 화석 따위가 발견되었다.
즉 이 도시가 일찍이 바다근처에 있었거나 바다와 같은 높이에 있었음을 말한다.
이 티아와나코의 근처인 티티카카호수에서는 깊이 8미터 지점에서 하나의 무게가 200톤이나 되는
거대한 돌덩이로 만든 벽의 파편과 건물 파편 등이 인양된 바 있었다.
벽은 포장된 도로 양측을 따라 1킬로 이상이나 뻗어 있었다.
타이와나코의 고고학연구소 소장 루벤윌레이 교수는 그 유적을 귀족의 장례식이 행해졌던 해안사원이라고 단정지었다.
인도에는 흑파고다라는 이름의 사원이 있는데 이 사원의 높이는 75미터이며 지붕은 2,000톤이 넘는 돌로 만들어져 있다.
이 정도의 무게를 들어 올리려면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기중기의 10배 이상의 힘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다.
이보다 더 큰 건물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이다. 이 등대는 기원전 3세기경에 프롤레마이오스 황제의 명령에 의해
팔로스 섬 위에 세워졌는데 그 높이가 150~200미터에 달하였다.
대략 16층 정도의 건물의 높이와 맞먹는 셈이다.
인류가 이렇게 높은 건물을 만드는데 필요한 건축술을 익힌 것은 20세기 이후의 일이다.
그외에 소멸된 고대문명의 거석 건축물은 많다.
이집트의 피라밋, 레바논의 바르베크에 있는 4백만 파운드에 달하는 쥬피터 신전의 토대, 영국의 스톤 헨지의 규질사암열석군, 그래스톤베리 주위에 있는 30마일에 달하는 석조 12궁 칼렌더, 바다 속까지 뻗어 있는 프랑스의 카르나크의 거대한 입석열주, 페루의 삭크사이와만에 있는 거대하지만 완전히 다듬어 만든 성채등이 있다.
고대 마야인들은 수레바퀴를 알지 못했으며 도자기나 철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정확하게 천체의 회전 주기를 알고 있었다.
지구가 태양주위를 회전하는 시간은 그레고리오력에 의하면 365.242500일인데 비해
마야인들은 365.24219일이라고 계산하였다.
대단히 정확한 천문기기를 갖춘 오늘날에는 1년의 길이를 365.242198일로 보고 있다.
또한 그들은 태음력의 길이도 0.0004일의 오차밖에 나지 않을 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이러한 정확한 고도의 지식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이 대단히 먼 과거로부터 지식이 축적되었음이 틀림없다.
디오게네스 라엘티오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의 역사에는 일식이 373회, 월식이 832회 있었다고 한다.
이 정도 횟수의 일식과 월식을 기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만년 이상에 걸친 관측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보다 훨씬 앞선 시대에 천체관측이 시작되었음을 밝히는 자료도 발견되고 있다.
오늘날 춘분 무렵에 태양은 별자리중 물고기자리 속에 있다. 그러나 2천년 전에는 양자리속에 있었다.
이렇게 태양은 2만 5천 9백 20년에 걸쳐서 천체를 일주한다.
그런데 2만 5천 9백 20년이라는 숫자를 수메르의 수많은 고문서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은 수메르인들이 2만 5천 9백여년 이상 천체관측을 했음을 알리는 간접적인 증거가 된다.
또한 18세기에 {걸리버 여행기}를 쓴 영국소설가 스위프트는 화성에 2개의 위성이 있다고 발표하였다.
그는 고대 학문과 고대서적 및 사본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였고, 이것들을 연구하는 도중에 그러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더구나 이 당시에는 태양계의 행성에 위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분명히 볼 수 있는 성능 좋은 망원경도 없었다.
이후 156년이 지난 1877년에야 천문학자들에 의해 이 사실이 증명되었다.
나아가 스위프트가 2개 이상의 회전시간과 성격에 대해 밝힌 내용은 후에 얻어진 정확한 정보와 많은 유사점을 가졌다.
소위 보이니크 사본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뉴욕의 고대 유물 수집가 보이니크가 로마에 가까운 어떤 옛성에서 자물쇠로 잠겨 있는 상자속에서
이 사본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그 사본에 붙어있는 종이에는 아리송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 이같은 스핑크스는 그 주인 이외의 명령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고.
이 사본은 암호해독가에 의해서도 컴퓨터에 의해서도 완전히 해독되지 못하였다.
이 사본은 13세기 혹은 15세기에 씌어진 것이라고 하는데, 알아 볼 수 있는 내용만으로도 식물학적, 천문학적,
생물학적 문제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이 기록 중에는 현미경을 사용해야만 관찰할 수 있을 정도의 잎이나 뿌리의 횡단면을 그린 그림이 있는가하면,
페가수스의 중심과 안드로메다의 띠와 카시오페아자리 등에 대한 그림이 있다고 한다.
1920년대에 이 그림을 연구한 펜실베니아 대학의 둘리틀은 그 그림이 틀림없이 성운을 표시한다고 단정짓기에 이르렀다.
1946년 프랑스 인류학자 그리올과 디틀렌은 당시 서부아프리카 말리공화국의 반디아가라 고원과
홈보리산 일대에 살고 있던 22만 명 정도의 도곤족과 인근의 세 종족의 전설을 4년여간 수집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1951년 {수단 계통의 시리우스 시스템}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의 보고는 1976년 언어학자이며 천문학자인 템플에 의해 도곤족의 전설이 천문학적으로 입증되었다.
도곤족은 50년마다 한 번씩 시구이 축제를 벌인다.
이 축제의 날짜는 포 톨로라는 별을 보고 정하는데, 이 별은 약 50년을 주기로 제자리에 돌아오는 별인 것이다.
포라는 말은 도곤족이 먹는 곡식중 가장 알맹이가 작은 것의 이름이다.
{ 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게 빛나는 별을 50년에 한 번씩 돈다. 그러나 그 별은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별이다.
포는 별들중에서 가장 무거운 별이며 사람의 눈에 잘 보이는 별의 주위를 돌면서 그 별의 궤도를 결정하는 별이다 }
우리는 남쪽 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을 알고 있다. 그것은 일명 개의 별, 천랑성이라고 불리는 시리우스이다.
고대부터 알려진 시리우스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19세기의 천문학자 베쎌은 1834년 시리우스의 궤도가
마치 뱀이 기어가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발견하였다.
그 후 12년에 걸쳐 시리우스를 관찰한 결과 시리우스의 궤도가 미지의 천체의 인력으로 주기적인 영향을 받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 미지의 별에 시리우스 -B라는 이름을 붙이고 예상되는 위치를 끈질기에 찾았지만
당시의 최고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도 끝내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나 1862년에 대형 망원경으로 제작으로 유명한 클라크에 의해 제작된 73cm짜리 망원경으로 확인되었다.
바로 이 별이 도곤족들 사이에서 전설로 전해 내려오는 별, 포이다.
오지에 사는 이들에게 누가 천문학적 지식을 알려 주었겠는가 ?
그들의 추장 오고템메리는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놈모의 후예라고 한다.
하늘 나라에서 놈모는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의 섬유를 가지고 지구에 왔다고 한다.
그는 땅을 만들고 식물과 동물을 만든 다음 사람을 창조했는데,
이들로부터 지상의 여덟개 종족이 생겨났으며 그들은 끝없이 오랜세월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전설의 사실이라면 그들은 시리우스 -B에서 온 외계인의 후예라는 말이 된다.
시리우스 별까지의 거리는 7, 8 광년이다. 현재의 과학으로도 시리우스까지의 비행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곤족들은 놈모를 기리는 축제를 50년마다 벌이고 있다.
1633년 종교재판의 재판관들은 고문실에 갈릴레오 갈릴레이를 취조하였다.
그것은 갈릴레이가 지구는 둥글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가 우주공간을 회전하는 구라는 사실은 이미 인류사의 여명기에도 인도, 이집트, 아메리카 각지의 경전과
고문서 속에 씌어 있었다.
특히 이집트인들은 이러한 사실이외 〉 지구가 다른 행성들과 같은 법칙에 따라서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천문기기나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는데 필요한 지식도 없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플라톤은 지구는 공과 같고 그것이 회전하기 때문에 낮과 밤이 있다고 말했으며,
유대의 경전 {카바라}에는 인간이 사는 지구는 원처럼 회전하고 있기 때문에 지구의 어떤 지역이 밤일 때
다른 어떤 지역은 낮이라고 적혀있고 그 근거로 태고의 서적을 들고 있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지동설을 처음으로 주장한 코페르니쿠스가 자봐뗏탕 로마 교황에게 제출한 논문의
서문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고대인들이 쓴 책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고대인들은 조수의 간만이 달과 관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빌로니아의 천문학자 셀레우코스는 바다의 간만을 달의 인력에 의한 것이라고 정확하게 설명하였다.
중국에서도 해면 상승의 원인이 달의 인력이라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다.
로마의 시저도 만월 때 조수가 만조가 된다고 기록하였으며,
영국에 상륙하기 위해 조수가 만조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16세기의 위대한 천문학자 케플러가 조수의 간만은 달에 의해 일어난다는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는 몹시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반박할 수 없었다.
친척 중 한 사람이 마녀라는 이유로 화형에 처해졌고 그의 어머니는 감옥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죽었기 때문이다.
슬라브인들은 먼 옛날 이 세상에는 물밖에 없었고 훗날 땅이 생겼다고 하였다.
인도의 {리그베다}도 세계는 우주를 가득 채운 엄청난 물에서 탄생하였다고 썼다.
중국의 고문서는 태초에 땅은 모두 물로 뒤덮여 있었고 후에 이 대양에 생명이 탄생하였다고 말한다.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오의 경전 {포플 부흐}에는 이런 귀절이 있다.
"한 명의 사람도 없었다. 한 마리의 동물도 없었다. 새도 없었다.
물고기도, 게도, 나무도, 돌도, 계곡도, 풀도 없었다.
존재하는 것은 하늘뿐이었다. 육지의 표면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존재하는 것은 차가운 바다와 끝없이 펼쳐진 하늘뿐이었다.
이러한 생각이 세계 각지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다고는 보기 어렵다.
그러나 달력에도 이러한 일치가 나타난다. 수메르, 바빌론, 고대이집트, 고대 인도에서는 1년을 12개월로 나누었다.
그리고 마야에서는 1년이 360일이었고 이밖에 불행의 날, 이름이 없는 날로서 5일이 더 있었다.
이 동안은 법이 적용되지 않았다. 무엇이든 나쁜 짓을 할 수 있었다.
이와 똑같은 관습이 고대 이집트와 바빌론뿐만 아니라 인도에도 있었다.
2) 인류역사상 가장 정교한 천문학- 환역과 금척
인류가 문명을 건설하자면 우선 태양계를 중심으로 하는 우주행성들의 운동과정을 물리학적으로 정립해야한다.
즉 시간을 정하고 계결의 주기를 정하는 문제를 가장 우선적으로 정하는 것이고 이러한 지혜를 우리는 천문학이라고 한다.
천문학은 아무지역에서난 생기지 않는다 천문학이 필요한 지역일 것이다.
천문학은 농사지역에서 우선 발생하게된다.
그런데 위에서 밝혀진 바와같이 한강유역이 인류최초의 벼농사지역임이 밝혀졌다.
지금은 한국의 김포 일산 청주의 지역에 해당하는 데 이 지역에서 발견된 쌀이 현재 인류의 최고의 주식인 것이다.
그렇다면 인류의 최초의 사회의 공동체의 시발지로서의 확실한 물적인 증거가된다.
한반도 한강유역의 벼농사가 인류의 문명의 영혼인 천문학의 발달을 고무하는 동력이 되었다고 하는 가설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가 있을 것이다.
벼농사는 천문학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인 것인데 그렇다면 그러한 사례들이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매우 궁금한 일일 것이다.
사실 한류문명의 역사는 인류문명사에서 잃어버린 역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순수한 학자적인 양심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현재의 한류문화를 정확하게 분석해보면 찬란한 문명사의 흔적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고조선이 망한이후의 한류문명사는 고대문명사의 존재성이 부인되고 있다.
현재에도 기존의 4대문명과 여기에 마야문명이 추가될 뿐이다.
그런데 2014년에 한반도의 청주 부근인 하진리에서 초고대의 구석기시대의 놀라운 돌멩이가 발견되었다.
하진리 눈끔자 닮은비
이 둘멩이의 년도를 측정해보니 아래의 돌멩이가 문명의 증거로 내놓고 있는데...
"만9000년前 한반도의 하진리에서 닮은비의 상수가...
▲ 하진리에서 출토된 ‘줄새김 자갈돌’.
오늘날 루트 2라고 하는 수를 돌에 새금질한 것이다.
과연 이 둘멜이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대부분의 학자들은 ㅗ무지 알 수가 없는 것으로 인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가장 저명한 역사학자인 신용하교수는
"만9000년前 한반도 눈금돌… 10진법으로 발전해 동방에 퍼졌다"
라고 하시는데...
위 돌멩이는 진법정도의 수준이 아니라고 봅니다.
위 ‘줄새김돌’이 ‘길이의 척도’임은 다음의 사실에서 확인된다.
수학적으로 정밀하게 수치를 계산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시에 정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설계를 했다는 것인데...
다음수치는 아주 객관적인 수치라는 의미이지요
첫째, 하진리 ‘줄새김돌’의 21개 줄의 ‘눈금’ ‘사이 길이’가 평균 0.4141㎝로 균일하다.
둘째, 하진리 ‘줄새김돌’의 자갈돌 전체 길이는 20.6㎝ 인데, 중앙에 새겨진 눈금칸 20개의 총 길이는 8.2816㎝에 불과하고, 좌우(또는 상하)에 10㎝ 이상의 긴 여백이 남아 있다.
이것은 눈금을 30개 이상 새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20개 눈금칸만을 새긴 것으로서, ‘20개 눈금칸’을 1단위로 한 8.2816㎝의 자 ‘척(尺)’(즉 1尺)을 사용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그런데 돌멩이의 전체길이= 20.6㎝
중앙에 새겨진 눈금칸 20개의 총 길이 = 8.2816㎝
돌멩이의 20.6㎝의 길이를 큰것이라고 하고
눈금칸 20개의 총 길이 = 8.2816㎝를 작은 것이라고 하면
서로는 닯은비와 황금비의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연산법으로 정리하면
우선 더하기 빼기의 연산을 하면...
아래의 수치가 나옵니다.
20.6㎝ - 8.2816㎝ = 12.3184㎝
20.6㎝+ 8.2816㎝ = 28.8816㎝
12.3184㎝ + 28.8816㎝ = 41.2 , 41.2 ×2 = 82.4
곱셈과 나눗셈으로 하면
20.6 = 8.2816 × 2.48744204018547140649 (소수점 20자리까지)
4+8+7+4+4+2+0+4+0+1+8+5+4+7+1+4+0+6+4+9 = 82
82+ 2= 84 ( 48의 역수 )
위의 두수치의 빼기 값 12
위 두수의 더하기값 28
위 두수의 곱하기 나누기값= 2. 48...
12- 28- 48 - 88의 별자리 수열과 일정한 비례관계를 가짐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일까요?
28은 28숙이고 88은 별자리의 수입니다.
28숙은 태백일사의 소도경전에도 나오는 가상체의 수입니다.
그리고 훈민정음의 수이고...
돌멩이의 수치가 바로 원방각의 수열을 의미하는 것이고 환역의 역학의 모형도임을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결국 천문학의 상수모형인 환역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환역이 바로 오늘날 윷판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환역을 경전식으로 정립한 것이 바로 천부경이고 환웅의 구구단인 셈이다.
특히 천문경이 현대인에게 인식된 것이 1900년데 초에 불과하다.
그동안 아무런 가치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의미인데.... 왜 천부경이라고 하는 것일까?
아무튼 이를근거로 하여 환단문명의 천문학이 정립된 것이고 이 천문학을 통하여 환단문명이 이룩된 것이다.
환역의 천문학은 환단문명의 영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데 이 천문학은 고대의 어떠한 천문학과 비교를 해도 아주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떠한 특징이 있는 것일까?
한달을 28일로 하고 1년을 13달로 한다는 점이다.
물론 13달이 지나면 자동으로 1일을 추가한다.
그래서 1년은 364+1= 365의 계산법으로 한다.
특히 놀라운 것은 하루의 자전주기를 86164의 수값으로 정하고 있는데 이점에서 대부분의 문명들이 정하는 86400과도 다르다.
오늘날과 비교를 해도 놀라운 정도더 더 정밀한 값이다.
과연 한강문명의 천문학은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
환역모형
지석리 고인돌(좌)와 원화리 고인돌(우) 별자리 실측도
▲ 황해남도 은천군 정동리 우녕동 별자리 고인돌, 북두칠성이 선명하게 보인다.
만물의 구구단과 환역놀이
마방진
주령구 (酒令具)
세계 최고의 천문도와 칠정산
주비산경 周髀算經
천부도지(징심록일부)
환단고기
훈민정음과 김시습의 징심록 추기(澄心錄 追記)
국보 70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에 있는 앙부일구의 모습
금척 대훈장(대한제국)
환조선문명의 상징
1. 식의주 (쌀과 콩, 김치,간장, 된장, 고추장, 가축, 수저, 부루단지(항아리), 토기, 한복, 건축, 집, 등)
2. 하진리 눈끔자돌멩이
3. 천문도( 성혈 고인돌, 윷판 천문석각총 고분릉)
4. 천부경
5. 마니산 천제단과 요하제단 : (천제 예술, 노래(어아가, 아리랑), 움악, 춤 ,놀이)
6. 활, 검, 청동경, 종, 방울
7. 환역놀이: 윷, 화투(투전), 장기, 바둑 ,주령구, 마방진
8. 환단문자(성법체와 상수58자)
9. 곡옥(팔찌 귀고리 항아리 등)
10. 음악: 옥적 거문고 등 악기
11. 칠정운천도(주비산경), 명도전
12.천제송문(103)과 삼일신고(370)
13. 징심록(천부도지) 징심록 추기
14. 환단고기, 환단신화(378)
15. 고구려 유물(천문도, 장군총 왕릉 항아리 등)
16. 백제 유물
17. 신라유물( 포석사 ,석굴암, 왕관, 옥대, 만파식적, 첨성대 - 왕릉- 장례)
18. 팔만대장경( 삼보문양, 108염주, 불탑, 불단지)
19. 일월 오봉도, 천상열차 분야 지도, 금척무
20. 이향의 측우기, 앙부일구, 자격루, 신기화차, 칠정산 내외편
21. 훈민정음: 아악, 갑인자, 도량형, 농사직설, 의방유취, 동국병감
22. 환구단과 황궁우
23. 태극기와 금척대훈장
금척 작품 17
1. 하진리 눈끔자 돌멩이
2. 천부경(피라미드, 윷판과 원방각 모형)
3. 곡옥과 옥저(피리)
4. 천제 송문
5. 삼일신고
6 청동경 ( 명도전)
7. 환역놀이: 환역상수 ( 윷놀이, 화투, 장기, 바둑, 마방진, 주령구,활쏘기, 연날리기)
8. 칠정운천도(주비산경)
9. 천부도지(징심록 15권중 첫째)
10. 환단고기( 삼성기 1,2 태백일사)
11 환단신화( 삼보문양, 108염주, 팔만대장경, 불탑, 보살)
12. 일월오봉도 천상열차 분야지도, 금척무
13 칠정산내외편 ( 이향측우기 앙부일구 신기전화차 등)
14. 훈민정음, 황종척
15. 징심록 추기
16 태극기 ( 황궁우와 환구단)
17 금척대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