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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보지 못할지라도...
오늘은 베트남의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의 기념일입니다. 베트남 가톨릭교회는 여러모로 특별합니다.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 이후, 가톨릭교회가 큰 타격을 입었지만, 경제 개방과 더불어 강경했던 공산 정권의 교회에 대한 규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교세가 가파르게 성장해왔습니다.
현재 베트남의 가톨릭 신자율은 8퍼센트를 넘어선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트남의 인구가 올해로 1억명을 돌파했으니, 가톨릭 신자수는 800만명을 넘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직도 주교 임명이나 사제서품 대상자 숫자를 정부가 관여하거나 통제하고 있는 등 제약이 많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점진적인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중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베트남 가톨릭교회 성장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공산 정권이 들어선 다음 13년간 수감 생활을 거친 후 바티칸으로 추방되셨지만, 그 혹독한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베트남 가톨릭 신자들을 영적으로 동반하셨던 반투안 추기경님 같은 걸출한 사목자의 역할도 크리라고 확신합니다.
반 투안 추기경님께서 독방에 투옥되고 난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경제 상태가 극도로 열악했던 당시, 공산 정권은 재소자들의 식량이나 생필품 지급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재소자들은 가족이나 친지들의 경제적 지원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른 재소자들은 가족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대부분 식품이나 담요, 생필품을 보내 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런데 반 투안 추기경님은 ‘위장약으로 사용할 포도주 한 병’을 청했답니다.
교우들은 즉시 반 투안 추기경님의 의중을 알아차렸습니다. 포도주 병 겉에다가 다음과 같은 메모를 붙였습니다. ‘위염 치료를 위한 약품.’ 그리고 옷가지 속에다가는 제병을 잘 숨겨서 소포를 보냈습니다.
소포를 받아든 반 투안 추기경님은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습니다. 그 순간의 기쁨을 이렇게 회상하셨습니다.
“그 동안 교도소 안에서 제가 지니고 있었던 가장 큰 두려움은 언제 다시 미사를 봉헌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포도주와 제병을 받았을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손바닥에 포도주 세 방울과 물 한 방울을 떨어뜨려서 매일 미사를 드렸습니다. 바로 그때 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파블로 도밍게스, 마지막 피정, 성바오로)
뿐만 아니라 베트남 가톨릭 교회는 오랜 박해의 세월 속에서 탄생한 무수한 순교자들의 후광을 업고 있습니다. 1533년 최초로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이래, 1625~1886년까지 총 53차례의 박해가 계속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13만명 가량의 선교사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순교의 영예를 얻었습니다.
그 가운데 총 117분명의 순교자들이 1988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 격인 안드레아 둥락 사제를 필두로 26명의 베트남 사제들, 59명의 평신도들, 8명의 외국인 주교들, 그리고 13명의 외국인 사제들이 시성의 영광을 획득했습니다.
박해가 한창이던 1843년 목숨을 무릅쓰고 전교에 열중하던 바울로 레바오틴 신부님께서 모국에 있는 신학생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그들이 얼마나 영웅적인 순교자들이었는지를 생생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제가 지금 갇혀 있는 감옥은 영원한 지옥에 비길 만하니, 족쇄, 쇠사슬, 포승 등 온갖 종류의 잔인한 형벌과 더불어 미움, 복수, 비방, 폭언, 불평, 악행, 거짓 맹세, 저주와 궁핍과 근심 등이 가득합니다.
그러나 옛적에 세 소년을 불가마에서 구원하신 하느님께서 언제나 함께 계시면서 나를 이 고난에서 구하시고, 이 고난을 달게 받게 하여 주셨습니다. 그분의 자비는 영원하십니다.
우리의 스승이신 그분은 그 무거운 십자가를 전적으로 지시고, 저에게는 겨우 한쪽 끝부분만 지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제 싸움을 구경만 하시지 않고, 친히 싸우시고 승리하시며 모든 번민을 이기십니다. 그 까닭으로 그분은 머리에 승리의 관을 쓰셨으며, 그분의 지체들은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됩니다.
주님, 주님의 권능을 보여 주시고, 저를 구원하시며 붙들어 주시어, 제 연약함 안에 주님의 능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주님께 영광을 드리게 하소서. 그리하여 행여나 제가 고난의 도정에서 비틀거려 원수들이 거만하게 머리를 쳐들지 못하게 하여 주소서.
저는 이 폭풍우 가운데서 제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하느님의 옥좌에 희망의 닻을 던집니다. 여러분은 제가 당당하게 싸우도록, 훌륭하게 싸우고 끝까지 싸우며 달릴 길을 다 달리도록 기도로 저를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비록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보지 못할지라도, 후세에서는 흠 없는 어린양의 옥좌 앞에서 승리의 기쁨에 넘쳐, 한마음으로 영원토록 그분을 찬양하는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 아멘.”
- 양승국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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