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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 1-2항 이행의 현주소
강정구
I. 머리말
분단 55년 만에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평양에서 열렸다. 김대중 대통령을 환영하는 60만 북측주민들의 환호 속에 평양도 울고 서울도 울었다. 단순한 민족주의 열정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민족분단사에서 분수령을 가져올 민족대장전인 6․15공동선언을 일구어 내었다. 이러한 남과 북의 통일 지향적인 움직임은 지구촌을 감격시켰다. 이로써 우리는 본격적인 통일시대로 진입했다. 곧, 통일성취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6․15공동선언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남북 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이 통일헌장인 6․15공동선언이 7․4남북공동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와 같이 서류상의 합의로 끝날 수는 없다. 이미 남과 북은 이 공동선언의 합의를 구체적으로 이행시키는 통일문을 여는 단계에 들어갔다. 통일은 이제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통일문은 아직 제대로 열리지 않고 있다. 우리는 이제 6․15공동선언을 이행해 통일의 구체적 역사행로를 일구어내는 과업에 매진해야 할 때다.
이에 이 글은 6․15공동선언가운데 통일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1항의 자주와 2항의 통일방안에 초점을 맞추어 공동선언 이행의 현주소를 평가하고, 이행을 위한 과제를 제시하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구체적으로 2절은 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를 논하고, 3절은 공동선언 1항인 민족자주 이행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4절에서는 공동선언 자주이행의 합의와는 정반대로 한미군사동맹이 기존의 예속․방어 동맹에서 예속심화 침략동맹으로 변질되는 역사의 퇴행을 점검하고, 5절은 이 반 자주적인 반역의 길이 아닌 역사 순응의 행로인 한미관계의 탈군사동맹화와 우호협력관계로의 변환을 촉구한다. 이에는 주한미군의 전면철군과 탈미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의 태동을 포함한다. 6절은 중국과 미국사이에 예견되는 동북아신냉전질서의 형성이 가져올 반통일적 외적정세에 대처하는 방안으로서 공동선언 2항의 통일사적 의의를 평가하고, 7절에서 이 통일방안을 구체적으로 이행하는 청사진을 제시한다. 곧, 6․15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확충하는 방향에서 통일방안을 모색 및 제안하겠다..
II. 6․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와 과제
통일민족사의 교지(敎旨)라고 볼 수 있는 6․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는, 첫째, 정상회담이 자주적으로 이뤄졌듯이 6․15공동선언 또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미 확인 한 민족자주의 원칙을 재확인하였다. 둘째, 통일방안에 합의함으로써 기존의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의 이분법적 대립을 극복시키고 민족사적 핵심과제인 통일에 대한 이정표를 제공했다. 셋째, 화해와 협력의 장을 열어 남북 간 군사긴장 저하로 한반도 평화를 내부적으로 증진시켰다. 넷째, 비전향장기수 송환과 이산가족의 상봉 등으로 화해와 인도주의의 길을 열었다. 다섯째,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경제공동체 형성은 남북의 하나됨을 공고히 하여 남북관계가 비가역적으로 되게 하는 걸게 역할(서해공단, 금강신사업, 경의선, 경원선)의 물꼬를 텄다.
이 같은 역사적 의의를 담고 있는 6․15공동선언을 이행 및 발전시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획기적 진전을 기하는 것이 우리 민족사의 과제였다. 곧 남북화해의 진전으로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남북협력으로 북한의 역량을 높이면서 상호의존성을 높여 남북관계를 일시적 긴장에 의해 뒷걸음질치지 않는 비가역적-불가분적 관계로 전환시키고, 냉전체제를 해소하고 평화체제를 이룩하여 우리 모두와 민족의 생명권을 도모하면서 동시에 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제를 구축하여 통일외적 조건을 다지고, 이러한 내외적 통일기반을 발판으로 미국과 중국사이 2030년경에 도래할 것으로 예견되는 동북아신냉전 이전에 비록 상징적이고 형식적인 차원이지만 부분통일이라도 이루어 지구촌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일 테다.
이러한 점에서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단계 연방제를 결합한 통일방안 합의는 통일의 과제에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다. 이는 지역정부에 의한 정치․외교․군사․경제체제유지 등에서 ‘독자적 행사‘라는 연합제의 특성을 살리면서 낮은 단계(또는 느슨한) 연방제의 특성인 비록 상징적 수준이나마 민족통일기구의 수립이라는 연방정부라는 상징적 통일정부를 수립하여 전세계에 우리가 통일국가임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절묘한 접목이라 볼 수 있다.
세계사적으로는 탈냉전, 민족사적으로는 통일시대를 맞아 이 민족사적 금자탑을 구현하여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것이 시대사적 요청이었고 당면과제이다. 이러한 과제의 수행에서 우리는 2003년을 기해 새로운 전기를 맞는 듯 했다. 그것은 기존 주류와 친미사대주의를 대변하는 이회창 대통령후보를 누르고 비주류인 노무현 '참여정부'의 출범이었다. 그러나 참여정부의 1년여의 집권은 이러한 시대사적 요구를 외면한 채 방향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이는 '미국에 할 말은 하겠다'는 공약으로 출범한 참여정부가 6․15공동선언 1항인 민족문제를 자주적으로 펼쳐나가지 못하고 국민의 정부보다 더 예속화되었기 때문이다.
III. 민족자주의 현주소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남과 북은 6․15공동선언제 1항에서 굳게 합의했다. 이 민족자주 기조는 클린턴 정권 말기 조명록 차수의 방미를 계기로 이뤄진 10․12북미공동성명으로 순탄한 출발을 기하는 듯 했다. 그러나 부시정부가 들어서면서 심대한 제약을 받게 되더니 참여정부에서는 주한미군의 재편과 재배치 및 미래한미군사동맹으로 민족자주의 기반은 완전히 허물어질 위험에 처해 있다.
1. 국민의 정부와 민족자주
국민의 정부 하에서 이뤄진 남북정상회담 그 자체가 민족자주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기조는 10․12북미공동성명이라는 순풍을 맞았으나 제대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주춤해지고 말았다. 첫 번째는 부시정부 출범과 더불어 이뤄진 2001년 3월 초의 한미정상회담에서였고 두 번째는 2002년 10월의 아셈회의에서 한반도평화 지지선언과 한일정상의 공동성명 이후 미국이 터트린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핵무기개발’ 의혹이다.
2001년 한미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자주외교 시도와 민족자주 행보는 미국에 의해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2001년 2월 방한한 푸틴 러시아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7개항의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1972년 미국과 소련간에 체결된 미사일요격방어체제반대(ABM)조약을 보존하고 강화하는 데 합의하고 미국이 주도하는 미사일기술수출통제체제(MTCR)에 대항해 러시아가 추진하고 있는 세계미사일통제체제(GCS)를 언급하였다. 이는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MD체제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인식에 바탕한 것으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국의 당연한 입장표명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미국의 신패권주의에 비판적인 러시아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외교정책은 그야말로 남한 50년 사에 우뚝 솟을 자주외교의 표상이다.
이에 미국은 ‘격렬한 분노’를 표시하며 패터슨 미 국가안보회의(NSC) 선임보좌관이 유명환 주미공사에게 “부시대통령이 NMD추진에 최우선순위를 두고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과 같은 동맹국이 러시아와 함께 ABM조약을 지지하는 내용을 발표한 것은 정말로 분탕질하는 것이다(really disturbing). …라이스 보좌관은 물론 부시 대통령도 화가 나 있다(upset)”고 전했다. 그리고는 “다음 주 (한미)정상회담이 좋은 분위기에서 진행될 수 있도록 한국정부가 3월 2일 예정된 NSC회의 후 다음과 같은 발표문안으로 입장을 발표해 달라”며 5개항의 발표문안까지 작성해 강요했다(ꡔ한국일보ꡕ 2001. 6. 15).
오늘날의 세계는 냉전시대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억제와 방어에 대한 우리의 접근법도 변화가 필요하다.
부시 대통령은 대량살상무기와 운반수단으로서의 미사일 위협이 점증하고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해 왔으며,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리더십을 신뢰하고 있다.
미사일방어는 이런 반응의 중요한 요소다. 우리는 미국이 이 점에 대해 합당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점을 인정하며, 특히 우리 군과 영토 방위를 위해 효과적인 [미사일] 방어망을 배치할 필요를 인정한다.
이러한 요구에 대해 한국은 3월 2일 다음과 같이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첫째와 둘째의 미국 ‘지시명령문’은 그대로 옮겨졌다. 그러나 셋째는 “필요를 인정한다”는 미국요구 대신 “국제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고 자주적인 입장을 천명했다.
오늘날 세계 안보상황은 냉전시대와 다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접근도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접근방법을 추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있어 부시 대통령의 지도력을 신뢰하는 바이다.
우리는 미국정부가 국제 평화와 안전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동맹국 및 관련국가들과 충분한 협의를 통해 이 문제에 대처해 나가기를 바란다.
나이 많은 김대중 대통령이 부시에게 ‘뺨맞은’ 이유는 NMD 지지와 참여를 강요하는 미국에 대해 ‘동맹국 및 관련국가들과 충분한 협의’가 요구된다는 수준에 머물자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라고 한다. 이 결과 김대통령은 한미정상회담을 마치자마자 한․러정상회담에서 공동성명으로 발표한 ABM조약 준수와 강화에 대한 한국의 합의는 잘못된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더 나아가 이미 북한과 막후 절충이 이뤄졌고, 2001년 연중 사업목표로 설정되고, 국민에게 약속한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의 ‘한반도평화선언’을 하룻밤 사이에 뒤집어 기본합의서로 대체할 것을 발표했다. 이로써 평화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냉전해체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중의 원대한 구상은 한미정상회담에서 미국의 강요로 좌초되고 말았다.
주권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한국 땅이 아닌 미국 땅에서, 그것도 외무장관이 아닌 최고통수권자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마치자 부랴부랴 유감성명을 직접적으로 발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민족적 굴욕과 주권의 훼손, 바로 이 관계, 곧 미국은 식민지적인 지배와 예속의 관계를 끊임없이 강제하고 우리는 당하기만 하는 것이 한미관계의 엄연한 현주소였다.
이후 부시행정부는 대북정책 기조로 ‘한반도 평화선언 불가론’ ‘북한의 재래식무기 선(先)감축론’ ‘북한군 후방배치론’ ‘북한빌미 MD추진론’ ‘전쟁위협론’ ‘일방적 양보 불가론’ ‘엄격한 상호주의론’ ‘철저한 검증론’ 등을 펼쳐 6․15공동선언을 계기로 태동한 민족자주의 길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정책을 펼쳤다.1)
이러한 김대중 정부의 자주외교와 민족자주 행보라는 고육지계에 대해 함께 힘을 실어주기는커녕 한국의 주류신문과 주류정치세력 및 국제정치전문가들은 외교실책론을 외치면서 정부를 질타했다. 특히 한나라당은 “ABM 강조는 결국 NMD 반대로 볼 수밖에 없다”면서 “미국 측은 김대중 대통령이 민족주의로 흐른다고 볼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한․미간의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ꡔ문화일보ꡕ 2001. 3. 1). 당시 이를 주도했다 이들의 집중포화를 맞고 사직했던 이정빈 외교부장관은 이임사에서 “미국의 언론이 동으로 가면 한국의 언론도 동으로 가고 미국의 언론이 서로가면 한국의 언론도 서로 간다”라고 질타했다.
언제나 미국을 하늘처럼 떠받치는 노예근성에 매몰된 이들 자발적 노예주의자인 한국사회의 주류는 실재 미국이 동으로 가면 한국은 극동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미국보다 더 미국인다운 한국인이었다. 이들은 ‘노벨평화상 탐욕론’, ‘북한 불변론’, ‘속도조절론’, ‘북한 퍼주기론’, ‘김정일 과거사 사죄론’, ‘상호주의론’ 등의 반통일 및 반민족적인 정책을 옹호하고 주도했다. 여기에다 경상도 중심의 지역분열주의가 무조건 반DJ주의로 치달아 냉전지역주의가 되고 이를 주류언론이 부채질하고 여기에 주류정치세력이 편승하면서, 행위와 구조의 상호작용으로 상승되어 나갔다. 이 결과 김대중 정권의 권력기반 취약이 아우러지면서 통일정세는 서서히 탄력성을 잃어 갔다.
두 번째 김대중 정부의 자주행보가 가시화된 적은 2002년 7-10월이었다. 2002년 6월 2차 서해교전이후 암울하던 남북관계가 7월에 접어들면서 완전 복원되고, 7․1경제관리개선조치와 김정일위원장의 상하이 방문과 신사고 선언 등이 북한 내부의 개방과 개혁을 촉진하고, 9월에는 북․일 정상회담이 열리고 평양선언이 합의되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셈에서 열린 김대중 대통령과 고이즈미 수상은 정상회담에서 "남북대화, 일북대화와 함께 미북대화를 병행, 추진해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미북대화가 조속히 재개되기를 기대한다"고 미국을 한 목소리로 압박했다.
한․일 공조로 미국에 대한 압박을 전개한 것은 남한과 일본의 현대 외교역사에 전례 없는 대미 자주적인 외교 행보였다. 26개국 정상이 참여한 아셈회의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철의 실크로드'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화답한 아셈회의는 햇볕정책 지지와 평화적 조미관계를 권유하는 `한반도 평화선언'을 발표하게 이르렀다. 이제 세계적 수준에서 한반도와 동북아문제에 대한 이해와 공조를 확보한 셈이다.
또한 북․러 간에 한해에 두 번의 정상회담이 열리고, ‘철의 실크로드’가 논의되고, 북일 정상회담에 대한 러시아의 막후 지원이 이루어졌다. 경의선과 동해선으로 남북종단철로가 열리고 이것이 시베리아횡단철로로 연결되면 부산에서 파리 및 스칸디나비아까지 이어지는 철의 실크로드가 뚫리게 된다. 동시에 시베리아 송유관도 논의되었다.
이와 더불어 남한에서는 여중생 압살사건을 계기로 반미촛불시위라는 주권되찾기가 활발히 전개되고, 미국에 비판적이고 대등한 한미관계를 역설해 왔던 노무현이 집권 여당의 대통령후보로 확정되는 등의 새로운 움직임이 시민사회 수준에서 전개되기 시작했다.
이들 남북한과 동북아에서 동시에 일어난 큰 흐름은 남북한 개별적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일본, 러시아, 중국 등과 합주곡을 울린 결과였고, 동북아라는 큰 지각의 총체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었으며, 앞으로 미국의 일방주의가 지배하는 동북아에서 벗어나 탈미의 동북아시아경제평화협력체제의 서막일 수 있었다. 한반도 평화를 동북아평화체제의 구도 속에 통일적으로 추구하는 구상인 동북아협력체의 태동은 냉전이후 동북아에서 압도적인 미국의 패권에 위협으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시점에서 미국은 갑자기 켈리특사를 북한에 보내 시인하지도 않은 우라늄핵무기개발의혹을 퍼뜨리면서 역공을 취했다. 이로써 2003년부터 한반도전쟁위기가 전개되고 동북아협력체 구상은 태동과 더불어 중단되게 되었다. 곧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민족자주행보는 미국의 역포위 전략으로 중단되고 말았다.
2. 참여정부의 대미 ‘자발적’ 노예주의
참여정부의 출범은 민족자주라는 민족사적 대의에 부응하는 듯 했다. 2003년 2월 중순 부시 행정부가 노무현 정권에 영변 기습폭격을 타진하는 등 새해 초부터 등장하는 미국의 노골적인 대북한 전쟁위협에 노무현 대통령당선자는 거의 공개적으로 전쟁위협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북폭은 물론이고 북폭 시나리오 자체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2003년 2월 13일 한국노총을 방문한 당선자로서 노무현의 발언에서 명백해진다.
언론이 미국과 다르다고 하는데 안 다르면 결과적으로 전쟁을 감수하자는 것이냐. 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 다른 것은 달라야 한다. 다른 것을 조율해 전쟁 위기를 막아야 한다...왜 퍼주고 싶겠느냐. 퍼주기가 아니다.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미래 동북아 시대는 남북 문제 해결 없이는 안 된다. 살자고 하는 것이고, 미래와 희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미국이 이래저래 말하면 어렵겠지만 한국민이 확고한 의지를 가져야 한다. 다 죽는 것보다는 어려운 게 낫다. 한국 경제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굳은 결심을 해야 한다.
집권 직후인 3월 3일 <뉴스위크> 회견에서 노대통령은 "북한을 범죄자가 아닌 협상 상대로 대해야 한다"고 촉구했고, 3월 5일 영국의 <타임스> 회견에서 "(북한의 미 정찰기 위협사건에 대해) 미국에 대해 너무 앞서가지 말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확고함은 3월 9일 민주당 지도부 만찬에서 아래와 같이 언급한 데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공개적으로 전쟁을 반대하지 않으면 연일 전쟁 불안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경제가 어찌되겠는가. 한국정부가 명확하게 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폭격 가능성과 불안감을 줄이려 한다. 그런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서 미국과의 공조를 하겠다...한-미 입장이 똑같을 수 없는 상황에서 겉으론 이견이 없는 것처럼 쉬쉬하며 가느냐, 공개적으로 이견을 나타내느냐는 선택의 문제가 있다. 세계 여론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공개적으로 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적인 대미자주 기조는 미국의 이라크침략전쟁을 계기로 전환하더니 5월 1차 한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예속적 대미외교로 회귀되어 오히려 김대중 정권의 자주지향의 맹아마저도 상실한 채 마치 자발적 노예주의를 연출하는 듯 했다. 출범과 동시에 반통일적인 ‘대북송금툭별법’을 수용하는 데서부터 의아스럽던 참여정부는 미국의 대북한 압박과 봉쇄정책에 질질 끌리면서 핵과 경협을 연계시키는 정책에 합의했고, 이라크파병으로 미국의 야만적인 학살전쟁에 하위 공범자로 참여하는 등으로 실망과 배신의 행보를 지속해왔다.2)
첫째, 한미정상회담은 무엇보다 한반도 전쟁위기를 해소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미국의 대북한 전쟁획책에 절대불가라는 우리의 목소리를 분명히 천명하고 선언하는 자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미국은 부시의 전화약속과는 달리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구절을 공동성명에 포함시키자고 해 전쟁위협을 노골화했고, 이에 노 대통령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에 대한 위협이 증대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조치의 검토가 이뤄지게 될 것이라는데 유의(한다)”에 합의했다. 더 나아가 그는 P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지도자들은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보여준 군사적 능력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 “미 공격위협 북핵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하면서 "한국의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해결이 여의치 않을 때는 미국과 협의해 다음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써 그는 미국과 함께 전쟁을 주도할 듯한 위험 천만한 정책을 피력한 셈이다. 이러고도 노 대통령은 부시로부터 수사적인 평화해결을 공동선언에서 합의 받았다고 정상회담의 성공 운운했다.
둘째,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민족공조를 취해 미국이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시켜야 하고 당사국으로서 남한의 주도적 역할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김대중 국민의 정부와 같이 대북 정경분리정책을 취해 남북협력과 화해를 미국의 대북 핵정책에 상관없이 진척시킬 수 있는 근거를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공동성명은 핵․경협연계론을 채택함으로써 민족공조를 통한 전쟁위기 해소와 통일기반 조성에 먹구름을 드리웠고 남한 주도를 포기해 버린 셈이다.
더 나아가 그는 원초적인 대북 적대를 노골화했다. "미국이 53년 전 (한국전쟁에서) 도와주지 않았다면 나는 (북한 체제 하에서) 정치범수용소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코리아 소사이이어티 주최 만찬에서 막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 미국이 이 땅에 점령군으로 오지 않았다면 우리의 분단도 전쟁도 없었을 것이라는 현대사 입문조차도 모르는가 보다. PBS와의 인터뷰에서는 점점 더 점입가경으로 치달았다.
"나는 북한이 믿을만한 파트너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 정권에 동의하지도 않는다"
"북한은 낡은 체제를 고집하고 있으며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는 북한 주민들의 이익에 맞지 않는다. 그들의 행동과 요구는 국제사회로부터 받아들여질 수 없다"
필자는 이 말들이 ‘악의 축’ 이후 한국을 방문해 도라산에서 북한을 향해 내뱉은 전쟁광 부시의 발언인 줄 착각했다. 한국 대통령의 말이라곤 상상도 못했다. 그가 2월 13일 한국노총에서 한 말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불과 3개월 사이에 이렇게 표변할 수 있는지 완전히 배신당한 느낌이었다. “왜 퍼주고 싶겠느냐. 퍼주기가 아니다. 더 이상 퍼주더라도 투자를 해야 한다. 미래 동북아 시대는 남북 문제 해결 없이는 안 된다. 살자고 하는 것이고, 미래와 희망을 만들자는 것이다.” 그는 정작 해야 할 “미국에도 말할 것은 말해야 한다'에서 `북한에게 말할 것은 말해야 한다'는 것으로 갑자기 표적을 바꾼 것이다.
셋째, ‘한미동맹’ 50주년을 맞아 지난 예속적 한미관계의 표본인 방위조약, 소파협정, 전시작전통제권 등의 개정과 환수와 한반도 불씨의 근원인 주한미군 철군, 냉전체제 해체, 평화협정 체결 등을 위한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논의는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한반도 및 아태지역에서의 미군의 강력한 전진 주둔” “기술력을 활용하여 양국 군을 변혁시키고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위협에 대한 대처 능력을 제고”하고 “한․미 동맹을 현대화”하기로 했다.
이러한 ‘미래한미군사동맹’은 주한미군을 동아시아와 세계의 지역군으로 재편 및 재배치하고 미사일방어체제로 현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로써 주한미군의 '영구주둔'이 허용되고, 동북아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어 한반도의 자주, 평화, 통일 행로가 원천적으로 또 장기적으로 가로막힐 민족적 위기에 처해질 위험을 안게 되었다.
넷째, 이로써 노 정권은 민족통일도 또 그가 시정목표로 제시한 ‘동북아평화번영의 중심국’이라는 한반도 미래상에 대해서도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다. 동북아평화번영 중심국은 미국의 단순한 지지선언으로 달성되는 것이 아니다.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없이는 동북아경제협력체 형성, 이들을 바탕으로 한 동북아평화협력체 등이 모두 물거품이 되기 십상이다. 그 자신이 "모든 상황을 감안하면, 남북한이 단일 정치공동체 또는 경제공동체가 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본다"(워싱턴타임스 회견)라고 함으로써 그는 아예 한반도 통일도 동북아평화번영 구상도 포기한 한 듯했다. 이러고도 동북아중심국이라는 그의 목표에 미국이 지지했다고 어이없는 자랑을 펼쳤다.
21세기 초입에 한반도의 미래 위상을 정립시킬 과제를 짊어지고 참여정부는 출범했다. 그러나 우리의 절박한 과제인 민족자주와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통일구도 정착은 오히려 역행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의 해외주둔미군재배치계획(Global Defense Posture Review), 신군사전략, 주한미군재편과 재배치에 따라 한미관계는 기존의 예속방어동맹에서 새로운 예속침략동맹으로 변환되면서 오히려 자주성은 더욱 훼손될 수밖에 없게 구조화되고 있다.
이런데도 불구하고 주류정치세력인 한나라당과 조중동 등 주류신문은 노무현 정부가 대미외교 만큼은 잘 했다고 극구 찬사를 보냈다. 이들 주류의 맹목적 숭배대상인 미국의 한반도 인식이 정작 어떠한지를 부시정부를 좌지우지하던 대표적 네오콘인 데이빗 프럼 (David Frum)과 리차드 펄 (Richard Perle)의 2003년 연말 발간 책(<악의 종말: 테러와의 전쟁을 이기는 방법>)을 통해 확인해보자.
첫째,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단 1달러라도 새로 받기 전에 모든 핵물질을 즉각적으로 내놓아야 한다. 그 전에는 북한과의 어떤 합의도 소용없다. 북한의 단계적이거나 점차적인 항복이 아니라 전체적이고 완전한 항복이라야 한다. 둘째, 북한은 미사일 기지를 폐쇄해야 한다. 셋째, 국제원자력기구 조사단이 북한에 영구적으로 주둔해야 한다. 이 조사단원들은 북한에 머무르며 언제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하고, 북한의 핵물리학자들과 그 가족들을 중립 지대로 옮겨 거기서 자유롭게 면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에서라면 북한이 미국을 속이기 어렵겠지만 북한이 이런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결정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결정적 행동은 북한에 대해 완전한 공중 및 해상 봉쇄로 시작해야 한다. 모든 항해 및 모든 국제 비행은 중지시켜야 하며 남한과의 모든 교류도 중지시킨다...주한미군이 북한 대포나 단거리 로켓들의 사정권에서 벗어나도록 주한미군 이전 및 재배치를 가속화해야 한다... 주한미군을 재배치하면서 북한 핵시설을 선제 공격하기 위한 구체적 계획을 짜야 한다... 미국이 찾을 수 있는 핵폭탄 공장을 폭격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IV. 한미군사동맹의 변환
: 예속․방어 동맹에서 예속․침략 동맹으로
이 땅에 미군이 주둔한지도 내년이면 60년이 된다. 이는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군대를 주둔시킨 17년을 훨씬 초과하고 최장기록인 일본군 주둔 41년을 능가한다. 미국은 용산기지를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주한미군의 재편과 재배치를 단행하고, 미 국방고위당국자의 말처럼 50년 이상 이 땅에 미군을 주둔할 계획으로 이를 추진하고 있다. 또한 ‘전력투사중추기지’(PPH)와 ‘주요작전기지’(MOB)의 중간급 기지나 주요작전기지로 삼아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 가능성을 열어 놓고 있다. 여기에다 주한미군은 상호방위조약의 한반도 역내의 방어동맹범주를 뛰어넘어 동북아지역군화하여 주한미군이 침략군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동시에 한국군을 하위 동맹자로 편입시켜 침략동맹의 성격을 띠게 하고 있다.
이는 주한미군이 한반도 역내역할에 한정되고, 방어적이고, 평화정신을 기조로 하는 예속․방어동맹체제를 기조로 하는 성격에서 벗어나는 질적 변환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 변환의 성격은 주한미군의 최소한 110년 또는 ‘영구적’ 주둔, 예속동맹구조의 심화, 주한미군기지의 미국침략전쟁의 발진기지화, 이라크파병과 같은 미국의 침략전쟁에 한국군이 동참하게 되는 침략동맹화, 지난 3월에 개정 발효된 한미상호군수지원협정에 의해 한반도 역외의 미국의 침략전쟁의 군수품 제공 등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가진 미래한미군사동맹체제가 공고화될 경우 이는 한국이 15세기 동유럽이 겪었던 ‘제2의 농노기’를 맞게 되는 셈이다.3)
예속․방어 동맹에서 예속․침략 동맹으로의 질적 전환을 기하는 주한미군의 변환을 맞아 한국사회는 응당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철군 등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해야 한다. 그러나 참여정부와 한국사회 주류는 이러한 근본적 문제제기는커녕 오로지 부안사태의 재발이 생기지 않도록 평택기지이전을 원만하게 추진하는 것에만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미래한미군사동맹체제는 미국의 신군사전략의 규범적 범주에 의해 규정되므로 신군사전략의 속성을 먼저 파악할 필요가 있다. 2001년 9월 30일 발표된 4개년국방보고서(QDR 2001-Quadrennial Defence Report 2001)이 제시한 안보정책 4가지 기본방향은 미국의 전략중심축을 유럽(對소련)에서 아시아(對중국)로 이동하고, 전통적인 전방배치전력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대신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전력투사능력"(Projection Ability)을 강화하고, 정보체계의 절대적 우위를 확보하고, 군사전력의 기동성화-경량화-유연화 등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른 미국의 신군사적략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에 따라 미군의 재편과 재배치로 미군을 신속기동 대응군 체제로 변화시키면서 경량화-신속화-유연화를 갖추고, 육해공군의 합동작전체제화를 기하고, 핵무기와 비핵무기를 구분하지 않는 통합적 작전수행으로 핵무기 사용가능성을 높이고, 미래전투시스템’으로 무장된 미래형 ‘다목적군’으로 재편해 기존의 중무장 여단보다 강한 전투력과 여러 작전에 투여될 수 있는 신축성을 확보하고, 해외기지 어디에 배치되던지 상관없이 다른 지역에 언제라도 파견되어 신속한 작전이 가능하도록 변화시키고, 동맹국의 군대를 다국적군 구성의 연합군 형태의 합동작전이 가능하도록 통합시키고, 동맹국 군대에 대해 무기체계 등 기술적 호환성에 국한하지 않고 군사조직과, 과정, 전문영역 등에까지 호환성을 높이고, 이를 위해 동맹국에 대한 미국산 첨단과학무기를 구입하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다 신롤백 정책의 일환으로 선제공격 독트린을 도입해 기존의 원상회복과 봉쇄를 위주로 한 전쟁성격에서 신속하게 군사력을 이동해 곧바로 전쟁에 투입하여 조기에 전쟁을 끝내고는 적국 점령과 정권교체까지도 목표로 삼고 있고, 실제 이라크전쟁에서 이를 이행했다. 이러한 기조를 띠고 진행되고 있는 신군사전략은 '해외주둔 미군 재배치계획(GPR)과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이 지적하듯이 ‘군인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군사력’이 중요한 것으로 군인 수는 줄이면서 오히려 군대의 이동․작전 속도와 기민성, 조합성 능력을 향상시키고 있다(서재정, 2004).
미래한미군사동맹은 이와 같은 미국의 21세기 세계패권전략과 신군사전략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아래와 같은 특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어, 비록 병력은 12500명을 2005년 말까지 철군시키지만 미군 전력을 한층 강화되어 민족의 자주권, 평화권, 통일권을 원천적으로 가로막고 있다.
첫째, 평택기지 건설로 최소한 50년 이상 미군이 주둔할 ‘전력투사중추기지’(PPH)와 ‘주요작전기지’(MOB)의 중간급 기지나 주요작전기지로 삼아 주한미군의 영구 주둔 가능성을 열어 놓아 민족자주권을 원천적으로 훼손한다.
둘째, 동아시아 및 지구촌 전체의 지역군으로 주한미군의 재편, 역할 재조정, 전력증강은 MD체제 추진과 더불어 미국의 동북아 패권의 물적 토대를 구축하는 것으로 동북아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는 5월 25일 캠블 한미연합사 참모장 겸 미 8군사령관이 국방부 기자단에게 "한-미 동맹은 195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안전보장이 목적이었지만, 올해부터는 지역안보를 제공하는, 신뢰할 수 있고 상호운용 가능한 동맹으로 변화하고...한미 연합군은 인도주의 작전뿐 아니라 동북아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셋째, 주한미군을 보병중심의 전통적 지상군에서 신속기동군이나 미래형 다목적군으로 재편하고, 110억 달러를 투입하여 전력증강 함으로써4) 미군의 전력투사능력(Projection Ability)을 강화시켜 한반도 역내나 역외에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고 전쟁위험성의 증가로 나타난다.
군사전문 주간지〈디펜스뉴스〉는 2004년 6월 1일자에서 “한국을 (병력 전개의) 중추로 활용하는 것은 전 세계에 임무수행을 위한 거점들을 구축한다는 미 국방부의 새로운 목표를 예시하는 것ꡓ이라고 밝혔다. 이 잡지는 미군 재배치의 기본목표는 지난해 기밀 분류된 ‘작전가능성연구‘라는 보고서에서 구체화됐는데 미 국방부는 이 보고서에서ꡐ10일 내에 원거리 전장으로 병력을 배치하고 30일 이내에 적을 격퇴하며 그로부터 30일 이내에 또 다시 전투할 준비를 갖춘다ꡑ는 목표를 제시했다고 전했다. 더구나 한국은 과거 50년 이상 주한미군이 있어 한국군과 조율을 했기 때문에 이런 거점으로서 적실성이 있다고 한다(<한겨레> 040603).
이 같은 맥락에서 2004년 6월 6일 49회 현충일 추념식에서 노 대통령이, "상호동맹이나 집단안보체제는 이미 세계의 보편적 질서"며 "세계 여러 나라가 자주와 동맹을 지키기 위해 상호동맹을 맺고 집단안보체제를 운영해 나가고 있다"라면서, "한미동맹관계도 잘 가꾸어 나가겠으며 자주와 동맹은 배타적인 게 아니라 상호보완의 개념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집단안보체제' 발언은 미국의 해외주둔 미군재배치계획(GPR)에 따라 주한미군을 한반도 밖의 작전수행을 위해 차출하려는 미 행정부의 구상까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 볼 수 있다. 미행정부 고위당국자도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북핵문제를 다자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처럼 한국의 안보문제도 단지 한국과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 및 동북아정세가 연결된 다자적 문제"라면서 "기존의 한미간 양자동맹은 다자틀 속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겨레> 040606).
넷째, 미군기지를 한강 이남권역인 평택으로 이전해 북한의 전방배치 장사정포 1만기의 사정권에 벗어나 선제공격과 공중타격에 유리한 전략지대 구축으로 한반도 전쟁위기 조성의 구조화가 이뤄진다.
여기에다 2004년 9월부터 이지스체제를 갖춘 최첨단 전투함인 알리 버크급 구축함을 상시 동해안에 배치해 해상미사일 1단계를 완료하게 되어 대공, 대함, 대잠 전천후 작전수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제2단계는 2005년 순양함에 단-중거리 미사일 요격 'SM-3 블록 1 미사일' 10기 장착하고 3단계는 2006년 15척의 구축함-3척의 순양함 동해에 배치해 "사실상 세계 어느 곳으로부터" 날아오는 탄도미사일도 요격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한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를 남한과 북한의 해안에 집중 배치함으로써 한반도와 동북아가 더욱 더 전재위협에 노출됨을 의미한다.
다섯째, 미2사단 휘하 부대를 ‘미래전투시스템’으로 무장된 미래형 ‘다목적군으로 재편해 가벼운 무기체계로 무장되어 C17 수송기나 군함으로의 수송이 쉬운 공군 기지와 항만을 끼고 있는 오산․평택을 기지화 함으로써 북한의 전방과 후방을 동시에 타격할 수 있는 이상적 기지를 확보했으며, 동시에 동북아지역군으로서의 주한미군의 기동성과 유연성을 현격히 높여 주한미군기지가 대만사태 등 미국의 침략전쟁의 발진 및 지휘-통제 기지화 된다(서재정, 2004).
여섯째, ‘비젼 2020’이 동맹국과의 연합합동작전이 가능하도록 무기체계와 작전-조직체계의 상호호환성을 꾀하고 있어 현존의 한미연합지휘체제보다 더 강도 높게 한국군이 군사하위체제로 편입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미국의 동북아지역군에 한국군이 하위체계로 편입되어 미국 지역군의 병참지원 및 후방지원 역할을 담당하여 군사적 대미 예속성이 구조적으로 강화되는 것으로 자주권과 평화권의 심각한 제약을 초래하게 된다.
이미 이러한 예속체제는 구체화되고 있다. 한미양국이 2004년 2월 24일 서명하고 3월 3일 후속절차를 완료함으로써 발효된 '한미상호군수지원협정'이 바로 이것이다. 이 협정의 개정 내용에는 상호지원 적용지역을 한반도 및 북미지역에서 전 세계로 확대하고, 대상 품목에 항공수송이용 및 비살상 군사장비의 임차 추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국의 강요에 굴복해 개정된 이 협정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위반하여 미국이 전세계에서 벌이는 침략전쟁에 한국군을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어 위헌적이고 방위조약의 법리를 위배하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이런데도 참여정부를 표방하는 노무현 정부는 어떤 국민적 논의나 동의 절차 없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처리함으로써 한국을 더욱더 미국에 예속시키고 있다.
또한 앞에서도 지적했지만 캠블 한미연합사 참모장은 한-미 연합군의 역할분담을 미군이 △전력 투입군 △정밀 공격 △압도적인 해․공군력 △정보 우위 △압도적인 기동력 등을, 한국군이 △육군의 개전초기 근접전 수행 △고도 능력의 특수전부대 △근해로 발돋움하는 해군 △현대화가 진행되는 공군 등을 설정하고 있어 한국군이 더욱 통합 및 예속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대미예속군사체제로의 진전은 마치 일본이 미국의 군사행동을 극동의 범위를 넘어선 지역으로 확대하는데 의무적으로 지원 및 동참하게 되는 것과 같은 한국판 미․일신방위협력지침과 유사법제로 이행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든 미국의 침략전쟁 지원을 해야하는 끔찍한 상황으로 발전될 소지가 크다.
일곱째, 한국군의 자주국방에 의한 대대적인 전력증강 역시 대북과잉억지력을 견지하고 있는 실정을 감안하면 미국의 동북아지역군보조로서의 역할로 재편성됨을 의미하고 이 결과로 주한미군과의 연합합동작전이 가능하도록 무기-작전-조직체계의 상호호환성을 위해서 첨단병기의 구입이 강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지스함, 조기경보통제기(AWACS), 공중급유기 등 첨단무기의 한국판매를 통제해 온 기존의 정책에서 대전환을 의미하는 것으로 참여정부의 ‘협력적 자주국방’ 정책과 미국의 신군사전략이 긴밀히 연동되었음을 의미한다.5) 아래의 민주노동당 4․15총선 공약자료집의 ‘신무기도입 등 국방예산 감축’ 도표에 의하면 자주국방이란 명분으로 무려 42조 이상의 신군사무기를 도입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역시 평화권과 통일권의 제약요소다.
여덟째, 일본 역시 새로운 '방어계획지침(Defense Planning Guidance) '1-4-2-1군사전략에서 4의 전진억제 지역인 동북아에 한국과 함께 속해지고, ‘전력투사중추기지’(PPH)와 ‘주요작전기지’(MOB)의 중간급 기지나 주요작전기지로 분류되어 있어 한․일간의 군사협력과 통합훈련 등이 미군을 매개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 한․미․일 군사동맹의 강화로 귀결될 것이다.
2004년 3월 2일 교도통신에 의하면 워싱턴주 포트루이스에 있는 미육군 제1군단 사령부를 일본 가나가와에 있는 `캠프 자마'로 이전하는 방안을 일본 정부에 타진했다한다. 이렇게 되면 주한 미군도 제1군단 휘하에 편입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제1군단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전역에 대비하고 있어 "일본 영토의 공동방위와 극동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기지제공"을 규정하고 있는 미․일 안보조약의 범위를 이탈하는 것이고 물론 한미방위조약도 위배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한․미․일의 군사동맹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야말로 동북아의 해양세력과 대륙세력간의 적대관계를 고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아홉째, 2030-40년경에 도래할 것으로 예견되는 미국과 중국사이 동북아냉전의 군사적 토대로서 주한미군과 기지가 활용되어 동북아신냉전체제를 촉진하고 고착화시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의 결정적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이 밖에도 미래한미군사동맹체제는 여러 가지 헌법 및 법률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평택기지가 미국의 ‘전력투사중추기지’(PPH)와 ‘주요작전기지’(MOB)의 중간급 기지나 주요작전기지로 되면 그 역할이 “대규모 병력. 장비 전개 근거지” 또는 "영구기지 역할로서 강력하고 튼튼한 군사력을 유지하면서 훈련도 가능하고 미군의 고위 상위랭크 사령부 존재로 규정하고" 있어 주한미군기지가 대만이나 남사군도의 분쟁이나 전쟁의 사령부나 발진기지로 악용되는 것을 허용하는 셈이 된다. 곧 미국의 침략전쟁의 사령탑과 발진기지로 되는 것은 평화를 규정한 우리의 헌법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의 법리에 배치된다. 방위조약 3조는 “각 당사국은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있는 영토와 각 당사국이 타 당사국의 행정 지배하에 합법적으로 들어갔다고 인정하는 금후의 영토에 있어서 타 당사국에 대한 태평양 지역에 있어서의 무력공격을 자국의 평화와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라고 인정하고..” 대처할 것을 규정하고 있기에 주한미군의 역할과 임무가 한반도로 제한된 점을 위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의 역할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에서 이미 합의(양해)한 것은 국방부나 외교부의 월권행위로서 위헌 및 조약위배 요소가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이번 주한미군 1개 여단의 이라크차출은 주한미군이 침략전쟁인 이라크전쟁에 직접 발진하는 것으로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는 상호방위조약의 법리에 위배되는 것이다. 응당 미국으로 철수했다 다시 미국에서 이라크로 파병되는 형식을 취해야 한다. 그래야만 주한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일본의 오키나와미군기지가 미국의 침략전쟁의 발판이 되는 것과 같은 전철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신군사전략에 의한 미군의 재편과 재배치는 해외주둔 미군이 신속 전개군으로서 국경을 초월해 ‘세계화된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도록 성격전환 하고 있는데 있다.
이제 미국의 신군사전략과 밀접히 연동되어 추진되고 있는 미래한미군사동맹체제가 우리 민족의 핵심과제인 자주-평화-통일의 역사행로에 얼마나 가로막기 역할을 할 것인지는 분명한 것 같다. 기존의 예속적인 한미동맹이 환갑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또 다시 더 예속적이면서 침략동맹의 성격을 띠는 신군사동맹체제로 대체되어 더욱 더 우리의 평화와 통일을 본질적으로 저해하는 규범적 범주로 되는‘‘제2의 농노화의 길’(Second Serfdom)’을 택할 것이 아니라 6․15공동선언 1항의 합의에 따라 자주와 자존 지향의 민족사를 모색해야 한다. “
V. 한미관계의 자주적 변환
: 군사동맹체제에서 우호협력체제로
6․15공동선언 이후 조성된 한반도의 평화통일 행로를 단순화한다면 외적으로는 미․소간 또는 북․미간의 냉전적대체제, 내적으로는 남북 간의 분단적대체제라는 2중의 적대체제에서 미․소간의 냉전체제 소멸과 북․미간의 續냉전체제와 남북 간의 脫분단체제로의 이행이었다. 그래서 남과 북의 하기 여하에 따라서는 북미간의 續냉전체제를 완화 및 해소시킬 수 있어 통일시대를 민족 스스로 열 수 있는 구도를 만든 셈이다. 이 점에서 6․15공동선언은 민족사의 대장전이라고 볼 수 있고 그래서 우리 민족은 응당 이 선언을 신주 모시듯 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부시정권 출범과 남한의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북․미간의 續냉전은 극단적인 極냉전체제 속에 빠져 있고, 서서히 미국의 대북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열전으로 나아가는 듯하다. 이에 연동되어 남북 간의 脫분단체제는 의도하지 않게 再분단체제로 이행할 것을 강요당하고 있다. 여기에다 미․소간의 냉전체제 대신 미․중간의 동북아 新냉전이 서서히 점화되기 시작하고 있다. 여기에 노무현정부가 제 위치를 상실한 채 ‘협력적 자주국방’과 미래한미군사동맹으로 나아감으로써 부시정권이 주조하는 이들 極 냉전체제, 新 냉전체제, 再 분단체제 형성에 추종하고 있는 셈이다.
일본 또한 북일정상회담을 계기로 서막을 열어가든 동북아협력체의 기조에서 벗어나 유사3법제라는 실질적인 전시대비법을 의결해 전쟁국가화 함으로써 미국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의 첨병역할을 하고는 미국과 함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을 굳히고 있다. 이 결과 미국의 동북아신냉전패권전략을 위한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이 급격히 강화되면서 한반도에는 전쟁위기가 가속화되고 동북아에는 장기적 군사긴장이 점등되고 있으며 한반도의 통일전망은 장막이 드리워지고 있다.
이러한 미래한미군사동맹이 노무현정권의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합의되고 ‘미래한미동맹 정책구상회의’에서 구체화되고 있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를 잠재적인 적국으로 상정하여 21세기에 동북아신냉전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동북아 및 세계 지배전략에 한국을 철저히 예속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더욱 심화된 한국의 대미 예속과 침략동맹 및 군비증강으로 이어져 필연적으로 동북아군비경쟁, 군사적 긴장, 전쟁위기를 유발시켜 한반도의 자주적 행보나 평화와 통일을 가로막게 될 것이다.
이제 기존의 한미군사관계는 물론 미래한미군사동맹 구상 역시 근본적으로 폐기 및 재편되어야 하고, 주한미군은 전면 철군되어 한미관계가 민족자주와 평화통일을 방해하지 않는 관계로 새롭게 설정되어야 한다. 그 요인을 다시 한번 서술하겠다.
첫째, 방위조약을 중심으로 한 한미군사동맹은 동서냉전과 남북 분단적대체제의 산물이나 지금은 동서냉전이 해체되고 남북 간에는 脫분단체제가 가시화되고 있다. 脫냉전과 脫분단체제 하에서 미래한미군사동맹과 주한미군은 한반도를 또다시 과거의 냉전적대체제로 '영구히' 되돌리는 물적토대가 된다. 이 경우 민족의 숙원인 자주․평화․통일은 원천적으로 가로막히게 될 것이다.
둘째, 한반도 전쟁위기의 주범은 미국과 주한미군이다. 한미군사동맹과 주한미군의 근본적 폐기와 철수가 관철되지 않는 한 이러한 미국의 전쟁몰이는 계속될 것이고, 우리 민족의 생명권은 계속 위협받게 될 위험에 놓이게 된다.
셋째, 지금 주한미군은 재편과 재배치에 들어갔다. 더 나아가 주한미군 전력증강으로 110억 달러를 미국이 투입하고, 참여정부는 자주국방이라는 빌미로 대대적인 군비증액을 통해서 미국의 MD체제에 한국군을 완전 편입시키려고 한다. 지금도 한미연합방위체제에 의해 작전통제권이 없는 우리의 대통령은 이 땅에서 벌어지는 한미군사훈련의 중단이나 사소한 장소이전까지도 단행할 권한도 행사할 수 없다. 그야말로 세계 역사에 유례가 없는 군사주권의 노예 상태인 셈이다. 그런데 앞으로 재배치와 재편이 이뤄지면 주한미군이 북한의 사정권 밖에 나가 미국의 대북한전쟁을 용이하게 만든다. 또 무려 110년 이상 이 땅에 외국군이 주둔하여 우리 민족사에 전례가 없는 외국군 주둔과 더 극단화된 군사주권 상실로 이어질 것이다.
넷째, 대만독립 선언을 계기로 촉발될 중국과 미국간 ‘제2의청일전쟁’을 막기 위해서도 한미군사동맹은 폐기되고 주한미군은 철수되어야 한다.
다섯째, 미래한미군사동맹은 한․미․일군사동맹체제의 재강화, ‘유사법제 체제’에 의한 일본의 전쟁국가화, 미국의 ‘동북아 사령부 신설 구상과 직결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21세기 중국을 포위하는 미국의 동북아신냉전구상의 군사적 토대를 구축하는 데 철저하게 한국이 편입․통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경우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6․15공동선언 1항의 자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주한미군의 전면적 철군과 군사동맹체제에서 탈군사 우호협력관계로 한미관계의 근본적 변환이 요구된다. 이는 결코 비관적이지만 않다. 여중생압살사건과 촛불행진을 계기로 한국대중의 인식은 기존의 주한미군 불가피론에서 미군철군 당위론으로 바뀌고 있다. 개인과 민족의 생명을 지키려는 생명권, 불평등하고 비정상적인 한미관계를 대등한 한미관계로 바꾸자는 평등권, 한강 독극물 등 대한 환경권, 국제 폭격장이 되어버려 주민들의 삶이 원천적으로 파괴된 데 대한 생활권, 주한미군 범죄에 희생된 한국인의 인권, 외국군을 철군시켜 군사작전권을 되찾고 자주권을 높이자는 주권,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미군을 철군하자는 통일권, 주한미군이 전쟁 억지력을 행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한반도를 전쟁으로 몰아가는 장본인이라고 철군을 주장하는 평화권과 생명유지권, 주한미군의 존재 때문에 우리의 군사체제가 주한미군에 종속되어 자주국방이나 자주적 무기체계가 훼손된다는 군사기술적 자주권, 우리 땅을 되찾아 땅주인이 되겠다는 재산권 등의 차원에서 철군당위론은 그 위세를 얻고 있다.
이제 반미운동과 주한미군 철군운동은 미시적 삶의 차원과 자주적 민족사 행로라는 거시적 차원의 문제의식이 결합되어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고 한국사회에서 상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주목할 점은 사회운동단체 뿐 아니라 의정부나 평택의 주민들이 그들의 생활권이나 생존권 같은 미시적 차원에서 반미와 주한미군 철수운동에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평택주민과 미육군 제1군단을 이전하려고 하는 일본의 자마시와 사가미하라시의 민중들 사이 지역적 국제연대가 이루어져 공동투쟁에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래한미군사동맹, 주한미군의 재편과 재배치, 자주국방이란 빌미로 한국군의 전력증강, 일본의 전쟁국가화 등이 미국의 21세기 세계패권전략의 기조와 한국의 맹목적 숭미주의 주류들의 지원에 힘입어 강고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사회의 반미 및 주한미군 철군운동 역시 새로운 전기를 맞아 미시성과 거시성이 결합되어 대중성을 획득하고 있다. 또 무엇보다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이란 민족사적 과제에 대한 민족주의 정서가 확산되고 있어 그 장기적 전망은 밝다고 볼 수 있다. 럼스펠드나 키신저 등이 가장 우려하듯이 민족통일과 민족정체성과 자주성을 추구하는 민족주의가 6․15공동선언 이후 발흥하고 있는 한 이 땅에 있는 미국과 주한미군은 역시 허물어질 수밖에 없는 낙관적 전망을 가질 수 있다. 아니 가져야 한다.
이와 더불어서 한반도의 전쟁위기 해소와 평화정착 구도를 한반도 차원을 뛰어넘어 동북아 지평으로 확대하여야 한다. 한반도 평화를 동북아평화체제의 구도 속에 통일적으로 추구하는 구상은 이미 2002년 가을 그 출발을 기했으나 미국의 ‘북핵위기’ 조작에 의한 역포위 전략으로 현재는 중단되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남북한과 중․러․일은 또 다시 이를 가동시켜 동북아가 경제협력체를 바탕으로 평화협력체로 나아가는 독자적 역사행보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VI. 동북아신냉전과 6․15공동선언 2항의 민족사적 의의
역사적인 6․15남북정상회담과 8․15이산가족상봉을 계기로 통일성취시대가 열렸다. 이제 통일은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고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이제 우리 모두의 역사적 과제는 통일터전을 마련하는 데 그 일익을 담당하는 통일일꾼으로 나아가 통일집짓기에 나서는 것이다. 이에 구체적인 통일방안과 궁극적인 통일나라의 상을 구상하고 다듬어 나갈 것을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따라 통일행로에 제기되는 핵심문제를 중심으로 단편적으로나마 그 방향을 모색해보겠다.
1. 외적 통일정세와 부분통일의 긴요성
우리는 과거 미소냉전과 우리 민족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또다시 지구촌이나 동북아에서 신냉전이 발생하게 되면, 우리 민족이 아무리 남북공조를 취하여 통일을 이룩하려 노력하더라도 이 신냉전에서 오는 강제력 때문에 민족통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말 것이라는 점이다. 통일에만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잘못하면 다시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까지 강요당할지도 모른다.
앞으로 2025년경이면 중국의 국민총생산액(GNP)이 미국을 능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 때면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일방적인 동북아 패권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곧, 중국의 중화민족주의와 미국의 일방적 패권주의가 충돌하게 되고 그 결과 동북아에서 중국과 미국간에 신냉전이 도래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만약 그 시점까지 우리가 통일을 이룩하지 못한다면 남과 북은 또 다시 과거 미소냉전시대와 같이 북은 중국에, 남은 미국에 종속되어, 민족의 재통일은 거의 불가능하게 되고, 민족분단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과 북은 신냉전 도래 이전에 부분통일이라도 이루어 이 지구촌에서 한반도의 통일을 기정 사실화하여 우리의 통일을 굳히는 작업을 시급히 추진하여야 한다.
2. 내적 통일정세와 통일딜레마
이 같이 통일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는 통일외적 조건과는 대조적으로 통일의 대내적 조건은 이를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하고 있다. 2002년 경제규모를 나타내는 명목 국민총소득(GNI)은 남한이 5430억 달러로 세계 11위이나 이북은 200억 달러 미만 수준이고(<한겨레> 04.05.25), 2000년의 국민총소득(GNI)이 각기 4552억달러(514조6천억원)와 168억 달러(18조9천억원)가 보여주듯이 27:1의 큰 격차를 보여 왔다. 지난 6월 8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바에 의하면 2003년 GNI기준 남과 북은 각기 6061억 달러와 184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어 그 격차는 33배에 이를 정도로 심화되었다. 또한 1999년 6월 서해교전이나 최근 국방부의 국방백서 발간 유예결정에서 보여주는 이북 주적론 철폐 논쟁에서6) 확인한 것처럼 대북 적대가 높고, 이북을 동등한 통일동반자로 수용하지 않아 통일성숙도가 미약하다. 남북정상회담 이후 적대관계가 상당히 완화되었지만 이는 아직까지 국가보안법 철폐와 같은 제도와 구조적 차원으로 발전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내적 통일기반이 저조한 조건에서 급박한 독일식의 통합적 통일을 이루었을 경우, 이는 이북을 내부 식민지화하는 민족 분열적 통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곧, 남북간의 역량차이가 너무 심대하고, 이남 의 통일역량이 이북을 민족공동체로 수용하기보다는 흡수의 대상으로 삼고 있고, 적대의식이 아직 만연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6․15공동선언이 발표된 현재의 시점에서도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대해 최소한도의 책임을 통감하여야 할 정치인에게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영해와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이북 선박을 교전수칙에 따라 조치해야 한다고 했더니 정부와 여당은 총을 쏘고 전쟁을 일으키라는 것이냐고 말했다’라고 하기도 하고, 이북을 여전히 남측 군의 주적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이렇게 이북을 통일동반자로 수용하는 통일성숙도가 낮은 상태에서 1국가1정부1경제체제의 급박한 완전 통합식 통일은 필연적으로 이북을 내부식민지의 대상으로 전락시킬 것이다.
이에 우리는 이북이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추도록 하고, 남북 간에 ‘제2 자연화’와 같은 적대관계를 완화하고, 이북을 통일동반자와 상호주체자로서 인식하는 통일성숙도를 높여서 내적 통일기반 조성을 서둘러야 한다. 이래야만 지배와 예속의 민족 분열적 통일을 막는 역사행로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완전한 통합적 통일은 가급적 지연해야 한다. 그러나 동북아신냉전의 도래라는 외적 통일정세는 통일을 서두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통일외적 조건의 통일긴박성을 통일 내적 조건이 제대로 따르지 못하는 불균형 상태, 이 현상이 바로 통일딜레마로 나타나게 된다.
3. 6․15공동선언 2항과 통일조감도
이러한 통일딜레마를 해소할 수 있는 해결책을 바로 6․15공동선언 2항이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6․15공동선언의 민족사적 의의는 지대하다. 이 2항은 연합제와 낮은단계의 연방제가 결합한 통일방안에 합의함으로써 이북을 내부 식민지화할 민족 분열적인 완전 통합적 통일을 막고 부분통일을 가능하게 하여 이 통일딜레마에 대한 돌파구를 연 셈이다. 동시에 공동선언 2항은 남측 공식적 통일방안의 기본적 문제점인 흡수통일을 배제하고, 북측 통일방안의 기본적인 문제점인 단기간의 군사 및 외교권의 통합이라는 비현실성을 극복했다. 이로써 통일이야기만 나오면 남과 북이 서로 경계하는 흡수통일과 적화통일의 우려가 극복된 셈이다.
그래서 우리의 통일기획은 기본적으로 6․15공동선언 2항에 근거해야 하고 그 경로는 아래와 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내외적 통일기반 조성
내적기반: 남북적대 해소, 이북역량 증진, 남북 통일성숙도 고양,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와
평화보장체제 구축,
외적 기반: 동북아경제평화협력체 진전, 주한미군 철수와 비동맹 중립화
민족연합과 민족연합성연방 단계로 이행하여 부분통일의 과제 추진
--->민족통일과 사회통합 병행 추진
부분통일(민족연합성연방과 높은 단계의 민족연방) =민족통일
--->민족․사회통합 진전
--->체계통합
민족통합(1통일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
----> 사회통합의 지속적 추진7)
<그림 1> 통일조감도
4. 연합제와 연방제의 접목인 부분통일을 통일경로의 핵으로
앞에서 살펴 본대로 동북아신냉전이 도래하기 이전에 부분통일이라도 이루어 지구촌에서 우리의 민족통일을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현시점에서 우리에게 직면한 긴요한 과제이다. 아니면 우리 민족은 분단고착화로 나아가 통일의 기회를 또다시 50년이나 1백년동안 놓치게 될 민족위기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절박한 조건 하에서 지나친 이상주의는 현실이 뒷받침되지 않아 공허할 뿐 아니라 쉽게 좌절하기 쉽다. 또 지나친 현실주의는 장기적 전망을 상실하여 중도하차하기 마련이다. 이상주의적 전망과 현실주의적 구체성이 접목되는 가운데 외세에 의해 강제된 분단은 서서히 극복되고, 통일행로는 비가역적인 속도를 갖게 되어 지속가능하고 발전 가능한 통일역정이 되는 것이다. 통일방안도 이러한 접목의 접지를 찾는 고뇌와 실천의 과정이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6․15공동선언의 2항은 이상과 현실을 잘 조화시킨 것이다. 현실론에 입각하여 남측의 연합제가 수용되었다. 곧, 두 지역정부가 각기 군사권과 외교권 및 사회경제체제권을 보유하여 지금 현재와 같이 별개의 주권국가로서의 위치를 실질적으로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연합제 하의 남과 북은 마치 현재의 유럽연합이 통일국가가 아니듯이 결코 통일된 국가는 아니다.
그러나 연방제 안은, 비록 낮은 단계라 할지라도 이상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질적으로 어떠하든 간에 형식적으로는 연방정부가 구성되어 1국가2정부2체제의 통일국가에 진입하게 되어 한반도를 통틀어 단일 통일주권국가가 상징적 수준에서 창설되는 것을 의미한다. 비록 연합제와 연방제가 결합한 이 연합성연방국가가 지극히 상징적 수준에 머문다 하드라도 외부적으로는 통일국가라는 이미지를 제시하고, 장기적으로는 통일을 이끄는 상징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한반도에는 때로는 한 개의 통일주권국가, 때로는 두 개의 별개의 주권국가, 또 때로는 세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하게 되는 과도기적 현상이 조성되기도 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이러한 과도기적 과정이 필연적이다.
이 연합성연방국가는 처음에는 실질적인 역량행사에 한계가 있다 할지라도 부분통일을 이루었다는 상징성을 갖게 되어 지구촌에서 우리의 통일을 기정사실화 할 수 있는 형식성을 갖추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통일성숙도가 높아짐에 따라 연합성연방국가의 역할과 권한도 증가시켜 통합성을 추진시켜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연합성연방국가의 구성은 여러 가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연방정부, 연방의회, 연방내각, 연방지방의회 등 행정부와 의회 수준의 민족통일기구를 두어야 한다. 사법부는 연방의 실질적인 권한이 약하므로 시기 상조이나 법 통합에 따라 조정되어야 한다. 이들 수반을 비롯하여 각 의회나 내각의 구성원은 남과 북이 함께 추앙하는 원로급으로 옹립할 수도 있고, 아니면 남과 북의 현직 수반들이 2년 정도씩 순번제로 맡을 수도 있다. 이 연합성연방단계에서 국방, 외교, 경제체제 영역은 통합의 정도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지역정부가 그 관할권을 대부분 행사하게 되어 두 개 독자정부로서의 위상이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체육 문화, 관광 등의 영역은 강력한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중앙정부가 관할하여 2탈정부와 1준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또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공동사업인 경의선, 경원선, 개성공단, 금강산관광특구 등의 경제영역도 상당부문 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하게 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통일중앙정부의 영역을 확대하게 되면 부분통일의 엄연한 물적토대가 된다.8)
바로 이러한 접목이 가능한 구도를 문익환 목사가 1989년 4․2공동선언에서 북측과 합의한 점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4․2공동성명 4항이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 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한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고 함으로써 6․15공동선언에서 북의 ‘낮은단계의 연방제’와 남의 연합제의 접목을 가능하게 하는 기초를 이미 닦아 놓았다던 것이다(강정구, 2003c). 이제 우리의 과제는 바로 4․2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이 일구어 놓은 훌륭한 방도의 지침을 실천하는 것이다. 바로 이 맥락에서 필자는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 4단계 통일방안을 제안한다.
VII. 6․15공동선언 2항 이행방안의 모색
: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의 4단계통일방안
우리의 통일방안은 남쪽의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흡수통일 지향성과 북쪽의 고려민주연방제통일방안의 현실적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우리 민족의 한결 같은 과제인 민족자주, 평화, 민족화합을 통한 민족공동체 구현을 지향하는 것이어야 한다. 동시에 우리의 통일과정은 한반도평화체제 구축과 함께 동북아 및 세계평화체제에 기여 및 접목하고, 남북의 민중이 함께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이러한 요구를 담은 통일방안을 필자는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의 4단계 통일방안’으로 이름짓고자 한다.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에서의 ‘아리랑’은 남과 북의 민족성원 어느 누구에게도 쉽게 일체감과 공속의식을 자아내게 하는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남과 북의 적대관계를 넘어서서 쉽게 동의할 수 있는 상징어이다. 동시에 우리 민족의 역사 속 한과 얼이 무형적으로 녹아 담겨진 상징어로서 각고 속에서 ‘우리 됨’을 확인할 수 있어 소아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진정한 일체감과 화해와 협력을 자아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4단계 통일방안은 통일준비단계인 민족연합(2주권국가 2정부 2경제체제), 부분통일단계인 민족연합성연방(1준주권연방국가 2탈국가지향 지역정부 2경제체제), 국가통일단계인 민족연방(1연방주권국가 2지역정부 1준통합복합경제체제), 민족통합 단계인 민족통일국가로(1연방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 구성된다.
민족연합단계는 통일진입을 위한 준비단계이자 남북기본합의서 및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는 단계로, 2개의 완벽한 주권국가, 2경제체제, 2주권국가적 정부로서 5년 정도로 설정한다. 민족연합은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관계'에 있는 남북 양 사회가 민족연합성연방인 부분통일에 진입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 즉 냉전적대적 법․제도의 청산, 남․북․미 3자의 평화협정 체결, 남북화해와 협력의 증진, 민족경제의 기초 형성 등을 이루는 단계이다. 이 민족연합단계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서 '국가연합'이 장기간의 분단질서 관리기 또는 흡수통합 여건 조성기로 설정된 것과는 달리 부분통일기인 연합성연방단계로 이행하기 위한 준비단계이다.
이 과정을 주도적으로 추진할 조직은 당국자회의와 전 민족회의이다. 당국자회의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제시되어 있는 남북합의서와 6․15공동선언 이행기구로서 정례적인 남북 정상회의, 각료회의, 의원회의, 남북 상주대표부, 화해공동위원회, 군사공동위원회, 핵 통제위원회 등이 포함된다. 전 민족회의는 남북정당사회단체공동회의로서 통일과정이 당국간의 주도만 아니라 민중과 시민 등이 동시에 주도하는 과정으로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양자간의 관계는 원칙적으로 당국자회의의 안건을 모두 전 민족회의에서 논의를 거쳐 동의, 개정, 폐기 등을 결의하고 이를 당국자 회의와 공동으로 다루도록 하여 실질적인 주체로서 역할을 하게 한다. 물론 당국자회의에서 다루지 않는 독자적 안건을 결의하고 이를 당국자회의에서 수용하도록 하는 자율성을 가진다.
민족연합은 통일 준비단계임에도 불구하고 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제대로 가질 수 없어 통일단계는 아니다. 그러므로 단 기간에 국한되어야 하고, 이 기간 남북의 최우선 정책은 상징적 및 실질적 통일기반 조성에 주어져야 한다.
민족연합성연방단계는 부분통일 단계로 역내 국경이 존재하는 1 준주권 연방국가 2 탈국가지향 지역정부 2경제체제이고 15년 정도를 상정한다. 이 단계는 연합제의 요체인 외교, 군사, 사회경제체제의 독자권을 각기 남북정부가 갖는 것과, ‘낮은 단계 연방제’의 요체인 상징적 수준의 민족통일기구인 연방통일중앙정부 구성을 접목시킨 단계이다. 심화되어 있는 남북간 이질성 및 이해차이 등의 요인 때문에 군사․외교권을 지닌 강력한 통일중앙정부를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 실질적인 정치통합이 이루어지는 높은 단계의 연방제는 남북의 각각의 경제체제와 사회체제의 상호 적대성이 완화 및 소멸되어 상호접목의 토대가 마련되고, 민족경제 등을 발판으로 상호의존성이 강화되어야 가능하다.
이 연합성연방단계의 초기에는 국방, 외교, 경제체제 영역은 통합의 정도가 느슨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편으로는 지역정부가 그 관할권을 대부분 행사하게 되어 두 개의 독자적 주권정부로서의 위상이 아직 강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 체육, 문화, 관광, 민족경제 등의 영역은 강력한 연방통일정부로의 통합이 가능하기 때문에 통합가능성의 정도에 따라 연방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하여 2탈국가적 지역정부와 1 준주권 연방통일국가로서의 위상을 가지게 된다. 또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공동사업인 경의선, 경원선, 개성공단, 금강관광특구 등의 경제영역도 상당부문 통일중앙정부가 관할하게 된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연방통일중앙정부의 영역을 확대하게 되면 2탈국가 지역정부와 1준주권 연방통일국가의 형성이 강화되어 부분통일의 엄연한 물적토대가 된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이 단계의 초기에는 체육부문은 7-80%의 통합을, 문화부문에는 50%정도의 통합을, 관광부문에는 30%정도의 부분통합을 일구어 낸 셈이지만 중간이나 말기에는 체육부문은 100%통합으로 완전통합을 일구고, 문화부문에는 80%정도 등으로 진척 및 확대시키게 된다. 또한 이 기간 상호협력과 화해와 교류 및 통일 지향적 정책의 수행으로 군사, 외교, 경제 등 초기에 통합을 일구기가 힘든 영역에서도 통합정도를 높여 나가 부분통합도를 30-40% 등으로 증진시켜 나가 완전통합의 물적토대와 공동기반을 계속 확충시켜 나가 민족연방으로 이행할 채비를 갖춘다.
민족연방단계로의 진입은 민족연합성연방단계에서 남북적대가 거의 해소되고, 이북의 역량이 현저히 증가되어 이북주민의 경제수준이 이남 의 60%정도가 되고, 한반도 평화체제가 실질적으로 구현되고,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사회경제체제간 상호 통합성이 증가되고, 여타 사회통합 부문의 진전이 상당정도 이행되는 시점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민족연방단계는 국가통일단계로 역내 국경이 폐지된 1연방주권국가 2탈국가적 지역자치정부 1준통합복합경제체제로 1국가1준체제2탈정부 단계이다. 민족연방단계는 정치통합이 이뤄진 단계로서, 입법․사법․행정․군사․외교 등이 대부분 민족연방국가에 의해 행사된다. 따라서 남북의 각 지역자치정부는 독자적 주권이 약화되어 기존의 주권 국가적 성격이 현저히 퇴색하여 강한 탈 국가적 지역정부의 수준에 머물게 된다.
민족연방 단계의 사회경제체제는 민족경제의 진전으로 남북의 상호의존성과 통합성이 증가되어 기존의 고정된 개념인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이분법적인 구분이 무색하게 된다(박순성, 1999). 경제의 기본적 작동기제는 시장경제가 주축이 되겠지만 공적영역에 대한 중앙정부와 지역정부의 소유 및 통제의 폭은 현재 이남의 정도를 능가하여 이북이 지속해 왔던 사회주의적 요소가운데 사회권에 해당되는 부문이 지속되는 사회경제체제가 되어야 한다. 또한 노동계급의 공동결정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탈 자본주의를 지양해야 한다. 탈 자본주의성이나 탈 사회주의성의 정도는 상당부문 지역정부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또 남북주민들의 합의를 최대한 이끌어내는 방향에서 자율적으로 조정되어야 한다.
4단계의 민족통일(합)단계는 국가통일단계인 민족연방에서 사회․민족적 통합이 진척되어 독일과는 달리 이북지역이 내부식민지화나 2등 지역 및 2등 시민으로 전락되는 불균형관계가 거의 사라지는 단계이다. 이를 위해서는 장기간의 민족연방단계 동안 남과 북이 상호주체성을 바탕으로 통합의 기초를 쌓는 오랜 기간을 필요로 한다. 통일독일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통합과 민족통일(합)에는 시간적 격차가 존재한다. 민족의 이질성을 극복하는 민족통합은 정치통합이 이뤄지고 나서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과제가 된다. 민족통합이 거의 이루어진 시점에서 민족연방국가는 민족통일국가로 이행하여 국가통일에서 민족통일(합)로 이행하게 된다. 이 단계의 정치체제는 지역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할 수 있는 지역자치권이 보장되고 다양한 사회세력이 연대나 연합을 통하여 정치권력을 구성하는 내각책임제를 채택한다.
분단 55년 동안 심화된 남북간 이질성과 적대성으로 인하여 과도적 단계로서의 연방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재 분리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연방체계는 완성된 통일국가의 형태로는 부적합하다. 따라서 민족의 동질성이 회복되고 사회통합이 진척된 민족통일국가 단계에서는 1연방주권국가 2단순지역정부 1통합복합경제체제의 형태를 취하지만 지역정부는 단순한 지역자치 정부의 수준에 머물게 하여야 한다. 아울러 이 단계에서는 권력구조가 대통령중심제에서 내각책임제로 변화될 필요가 있다. 민족연방단계까지는 강력하면서도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지도력과 정책결정의 효율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족통일국가 지향 등의 문제를 고려할 때, 대통령중심제가 상대적으로 통일과업을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사회․민족통합단계인 민족통일국가단계에서는 이해관계나 정견의 다양화를 고려할 때, 위계적인 지도력보다는 합의적 지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의회의 구성체계도 양원제가 단원제보다 상대적으로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VIII. 맺음말
통일성취시대를 맞은 현 시점에서 우리가 논의해야 할 통일담론은 당연히 ‘통일은 왜 해야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통일을 이룰 것인가’에 모아져야 한다. 또한 ‘때가 오면’ 되겠지 가 아니라 ‘지금 때를 놓치면’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은 또다시 반세기를 넘기게 된다는데 모아져야 한다. 이러한 확고한 의지를 갖게 되면 아리랑통일민주공화국과 같은 통일방안으로 부분통일을 달성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우리 모두는 지난 반세기 이상 강요된 침묵과 망각에서 벗어나 기억의 역사와 실천의 광장으로 힘차게 나아가야 할 것이다. 40여 년 전 4․19혁명 당시 우리의 통일일꾼들과 민중은 ‘통일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쳤다. 당시 최악의 경제상황에서 통일을 통해 남북간의 유무상통의 옛 경제순환구도를 회복하는 것만이 경제적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그 후 40 여 년이 지난 이 시점에서도 우리는 다시 ‘통일만이 살길이다’라고 더욱 세차게 외치지 않을 수 없다. 탈냉전과 평화의 시기라고 일컫는 90년대 이후 오늘 날 까지 한반도는 무려 8번의 전쟁위기를 겪고 있다(강정구, 2003b). 이제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인 생명권이 외세에 의해 이렇게 농락 당하는 기막힌 형극의 길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도 ‘통일만이 살길이다’라는 기치아래 우리 모두는 일어서야 한다. 우리 개개인과 민족은 전쟁과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권리와 자유를 소유한다. 이 해방과 자유를 구현하는 것은 우리의 신성한 권리이다.
우리의 분단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세에 의해 주어지고 강제되었지만 우리의 통일은 외세에 의해 시혜적으로 주어지거나 저절로 자연스럽게 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통일은 우리 모두의 목적 의식적인 투쟁과 실행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정상회담의 주체가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냉전구조 해체의 역군이 되는 통일일꾼으로 승화될 때에만 냉전이라는 역사의 간계에 의하여 강제된 우리 조국의 분단은 극복되고, 우리와 우리 민족의 고귀한 생명권은 확보되고, 민족통일은 성취될 것이다. 또 이러한 통일이야말로 통일된 조국의 안과 밖이 외세의 얼룩이 가셔진 우리의 형상을 제대로 가진 우리다운 우리의 통일조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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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는 동국대 교수이다.
* 이 글은, 통일연대가 7월 22일 개최한 「2004 통일 심포지엄」에서 필자가 발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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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그림이 뜨지 않네요.
다음은 다른 데서 떠온 그림이 잘 안뜨는 배타성이 강하죠.
문맥에 어려움은 없네요
아리랑 통일민주 공화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