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오늘은 스코틀란드 여정 중에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습니다.
영국 종교개혁 시대의 순교의 현장을 둘러 본 것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의 순교자들은 타 종교나 무신론자들에 의하여 순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교회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왔습니다.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은 스코틀랜드 왕가의 후손이요 상위 귀족의 아들이었는데, 스코틀랜드에서 ‘이신칭의’(以信稱義) 교리를 이해한 최초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으로 스코틀랜드를 개혁하려다가 1528년 불과 24세 나이에 가톨릭 교 지도자들에 의해 이단으로 몰려 순교하였습니다.
패트릭 해밀턴이 순교한 후 스코틀랜드 시민들 사이에 개혁신앙을 수호하고 왕실과 교회 당국에 항거하려는 움직임이 확대되기 시작했는데, 조지 위샤트(George Wishart)가 이러한 개혁운동의 주동으로 지목되어 1546년 3월 1일 세인트앤드류에서 33세에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그 후 종교개혁이 성취되기까지 30여 년간 20여 명에 달하는 개혁파들이 화형당했습니다.
스코틀란드의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순교자들의 현장을 둘러 보는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순교자의 흔적이 너무 초라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패트릭 해밀턴(Patrick Hamilton)이 처형 당한 곳에는 길바닥에 동판으로 된 자그만 표시 (PH)가 있을 따름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무심히 그 위를 밟고 다녔습니다.
조지 위샤트가 처형당했던 바닷가에도 화형당했던 곳에 표시 (GW)가 있었는데,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 위였습니다.
스코틀랜드 종교개혁의 중심이었던 존 낙스(John Knox, 1514-1572년) 의 시신이 묻힌 자리도 지금 주차장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심란한 중에 갑자기 그 분들이 하늘에서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히 12:1) 로서 저를 지켜보시는 것이 느껴져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랬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과 동행하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다가 본향인 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기념되고 높임받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불과 이십대와 삼십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위하여 저들의 생명을 조금도 아깝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믿는 복음과 진리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면 어떤 심정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 생각을 하니 직업적 종교인이 되어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너무나 부끄럽고 안타까왔습니다.
에딘버러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그러나 현대식 건물들 사이 골목길에는 종교 개혁 시대 흘렸던 믿음의 증인들의 핏소리가 율법주의적인 종교 생활을 하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 향해 ‘정신 바짝 차리라’고 외치는 듯 했습니다.
전국 방방곡곡과 열방을 다니며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예수님과 친밀히 동행하자!’ 외치는 예수동행운동을 펼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 종교개혁자들의 순교 현장을 둘러 보면서 결코 ‘힘들다’, ‘어렵다’, ‘부담 된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깊이 깨달아졌습니다.
우리에겐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