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어른이 되었다.
어느새 서른 살을 넘겼고 중반으로 가고 있다.
혼기가 찬 것이다.
부모 세대인 우리들 기준으로 보면 약간 늦은 나이지만, 요즘 MZ 세대들의 기준으로 보면 딱 맞는 적령기다.
내 자식들도 진작에 대학을 졸업했고 사회에 진출해 열심히 살고 있다.
각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
우리 부부에게 자신의 짝을 소개하면서 평생을 함께 하기로 결정했단다.
나는 그들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했고, 힘찬 박수를 건네며 응원했다.
2023년 봄부터 가족 모임은 4명에서 5명이 되었고, 금년 봄부터는 6명으로 늘었다.
과거엔 네 명이 만나 식사하며 웃고 떠들었는데 어느새 6명으로 풀세팅이 된 것이다.
나는 부모로서 흡족했고 감사했다.
언제부턴가 장성한 자녀들의 혼사 때나 또는 매년 돌아오는 그들의 기념일에 들려주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그래서 그때 그때 메모를 해 두었다.
먼저, 2022년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향년 51세)의 결혼에 대한 일성이었다.
그가 말했다.
"어머니가 30년에 걸쳐 작은 아들을 남자로 키워 놓으면 어느날 갑자기 다른 여자가 나타나 30분 만에 그 남자를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사랑이자 결혼이다"라고 했다.
'프루스트'의 말은 정말로 함축적인 '촌철살인'이었다.
'사랑'은 그랬다.
번갯불 같은 뜨거움과 설렘이 사랑이었다.
하지만 결혼은 달랐다.
'결혼'은 같은 사람과 여러 번에 걸쳐 사랑에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30년도, 50년도, 70년까지도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동행할 수 있었다.
지속적으로 잔잔한 사랑에 빠지며 긴 세월을 동고동락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자녀들 각 커플에게 축복의 인사를 건네주려 한다.
또 하나, 내 마음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는 문장이 있다.
운명이 다하는 날까지 서로 사랑하며 동반하는 삶이 '판타지'가 되어 버린 세태다.
이혼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결행해 버리는 세상이니까.
그래도 사랑과 배려, 상대에 대한 존중으로 평생을 해로하는 삶이 우리네 인생의 '영원한 테마'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랑은 뜨겁게 불타오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서로가 고이 간직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완성되는 것이기에 그렇다.
또한 아무리 AI로 인해 세상이 바뀌고 시대가 변할지라도 끝까지 변치 않는 최후의 축복과 선물은 '사랑과 생명' 뿐임을 두 커플에게 당부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영화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우디 엘런'의 고백을 메모해 두었다.
그는 이렇게 썼다.
"There are three rings involved with marriage. The engagement ring. The wedding ring. The suffering"
그의 말에 따르면 결혼에는 3개의 반지가 있는데 '약혼반지', '결혼반지', '고통반지'라고 했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하고 동의하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엘런'의 고백에 동의하지 않는다.
'에덴동산'은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 티벳의 '샹그릴라'가 제 아무리 황홀하다고 해도 직접 가보라.
가보면 가슴으로 깨닫게 된다.
자연은 아름답지만 그곳은 높고, 불편한 오지이며 '고산증세'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이다.
호흡도 잘 터지지 않아 걷지 못하고 주저앉기 일쑤였다.
'샹그릴라' 얘기를 듣고 찾아왔던 수많은 관광객들이 무척 힘겨워하는 모습을 나도 많이 목격했다.
사진으로 보기엔 무척 아름답지만 온 몸이 쑤시고 결리는 무지 팍팍한 땅이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찾아 헤매는 '엘도라도'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지구 상엔 없다.
각자의 마음 속에 있다.
'고통반지'를 '행복반지'나 '감사반지'로 바꾸는 것도 각자가 할 바고, 전적으로 본인 몫이 아니던가.
오랜 기다림과 배려 그리고 존중과 성실로 각 가정을 '에덴동산'으로 만들어 가길 기도할 뿐이다.
이미 어른이 된 자녀들에게 더 이상 무슨 첨언이나 당부가 필요하겠는가.
주님의 은총이 젊은 청춘들에게 충만하게 임재하기를 소망해 본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