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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대사가 대북 전단 살포를 두고 “우리는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 아니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이해한다”라고 하면서 “그 측면에 대해 약간의 주의를 하기를 희망한다”라고 하여 사실상 반대의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2일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이 국방부 청사를 방문해 신원식 국방부장관을 만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제동을 걸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러캐머라 사령관은 방송 재개를 결정하게 된 과정을 묻고 이로 인한 한반도 긴장 고조를 우려했다고 합니다. 러캐머라 사령관과 신 장관은 5월 30일에도 회담을 했었는데 이례적으로 2주 만에 다시 만난 것입니다. 그만큼 미국이 지금 상황을 심각하게 본 듯합니다. 반면 국방부는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해명했고 유엔사는 “확인해 줄 수 없다”라고 답했습니다.
하루가 지난 13일엔 유엔군사령부가 최근 남북 접경지역에서 발생한 사안들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북한의 대남 오물 풍선,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침’한 일,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이 포함됐다고 합니다. 유엔사는 “우리의 행동은 정전협정을 엄격히 준수하며,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보장을 위해 상황을 완화하고자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대화로 돌아올 것을 계속 촉구하고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런데 유엔사는 북한을 조사할 수 없습니다. 유엔사가 조사할 수 있는 곳은 우리 군뿐입니다. 결국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주된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유엔사는 2016년 11월에도 우리 군의 확성기 설치 계획을 보고받고 확성기 위치와 방송 내용을 검토해 승인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이번에도 대북 확성기가 어느 위치에 있었고, 어느 시간에 사용됐고, 출력이 어느 정도였고,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등을 조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자연스레 의문이 떠오릅니다. 2016년에는 국방부가 대북 확성기 계획을 유엔사에 미리 보고해서 승인을 얻었는데 이번에는 왜 사후 조사를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네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미국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지시했는데 막상 문제가 될 것 같으니 갑자기 발뺌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둘째는 미국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국방부가 단독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진행했고 나중에 보도를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한 미국이 발끈한 것일 수 있습니다.
셋째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한 적이 없고 국방부가 언론을 통해 자국민을 상대로 심리전을 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조사를 하겠다고 했을 수 있습니다.
넷째는 국방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계획을 유엔사에 보고했고 미국이 반대했는데 국방부가 강행해 미국이 격노했을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무엇이 맞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유엔사가 “우리는 역내 평화와 안정 보장을 위해 상황을 완화하고자 한다”라며 조사 목적을 밝힌 것과, 앞서 주한미대사와 유엔군사령관의 발언으로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입니다. 과정이 어쨌든 국방부는 한반도 긴장감을 높였고 미국은 긴장을 누그러뜨리려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한국과 미국의 호흡이 척척 맞아떨어진다면 이런 조사는 불필요할 것입니다. 한미가 뭔가 엇박자를 내고 있습니다.
미국이 지시나 승인을 했든 안 했든 이번에 우리 군의 대북 대응은 실패로 보입니다.
윤석열 정부는 평소에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반을 둔 압도적 대응을 통해 북한이 감내할 수 없는 타격을 입히겠다고 이야기해 왔습니다. 만약 대북 확성기 방송이 이런 취지에서 진행한 것이라면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가 승기를 잡아야 하며 북한이 꼬리를 내려야 합니다.
또 우리 군이 미국에 미리 보고를 안 했거나 승인을 안 받고 강행한 것이더라도 대응 작전이 성공한 것이므로 미국이 손뼉 치고 찬사를 보내며 표창장을 주고 연회를 베풀 것입니다. 유엔사 조사 따위는 불필요합니다.
그러나 한미의 분위기는 어수선합니다. 아무래도 대북 대응에 실패한 느낌이 듭니다. 지금 상황에 관한 위기의식은 북한이 아닌 미국이 느끼고 있습니다.
주한미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이 동시에 직접 나선 것은 백악관이 움직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백악관이 “역내 평화와 안정 보장을 위해 상황을 완화”하려고 한다는 건 윤석열 정부를 압박해 대북 강경책을 저지하겠다는 뜻입니다.
이상합니다. 백악관이 언제부터 ‘친북’이 되었나요? 그게 아니라 윤석열 정부의 대응이 성공했으면 환영했을 텐데 역효과가 나니까 그런 것입니다.
그런데 역효과라고 해도 사실 북한이 대남 오물 풍선을 날리고 대남 확성기 방송을 준비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김여정 조선노동당 부부장이 담화로 “새로운 우리의 대응”을 언급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로 미국이 긴장해서 주한미대사와 주한미군사령관을 동원해 윤석열 정부를 압박하고 유엔사 조사까지 벌일 일은 아닙니다. 우리가 모르는 다른 뭔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남쪽에서 대북 전단을 보냈다가 오물 풍선이 날아왔고,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진행했는데도 다시 오물 풍선이 날아오고, 또 대북 전단 살포와 확성기 방송을 병행하면 ‘새로운 대응’을 하겠다는 경고가 나왔습니다. 그 후 한미 사이에 어수선한 모습이 나타났고 미국이 한국을 통제합니다. 대북 전단 살포나 확성기 방송은 이번에 처음 한 게 아닙니다. 전에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한미 간 엇박자가 이렇게까지 난 적은 없습니다.
무엇이 바뀐 걸까요?
주한미군사령관이 대북 확성기 방송에 제동을 걸고 유엔사가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는 보도를 두고 국방부는 “대북 확성기는 자위권 차원에서 판단하고 시행하는 정책적 사안”이라고 항변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니 조사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태도가 아니라 억울하다는 투입니다.
또 “유엔사 측으로부터 조사 통보를 받지 않았다”라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이 다시 ‘조사가 진행 중임을 재확인’하며 국방부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동맹국의 상급자인 국방부장관의 정당한 조치에 연합사령관이 제동을 걸었다는 것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사항”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원식 장관이 주한미군사령관의 상급자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자랑하더니 갑자기 이런 이상한 얘기를 합니다. 지금 힘자랑하는 건가요? 세상이 다 아는 종속적 한미관계를 두고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국방부가 자존심이 상해서 역편향이 일어난 듯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 날리면’ 재판입니다.
이걸 보면 윤석열 정부는 대북 대응을 세게 하고 싶은데 미국이 통제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번 남북대결 과정에서 윤석열 정부가 완전히 꼬리를 내리고 깨갱거린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극우 유튜버들도 대북 확성기 방송을 2시간밖에 안 한 걸 두고 북한에 겁을 먹었냐며 비판합니다.
굳건한 한미동맹에 기초해 압도적 대응으로 북한을 제압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이 이번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한미 사이에 공공연한 균열이 발생한 게 노출됐습니다. 미국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집권 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될 것으로 지목된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전 부차관보가 ‘미국의 확장억제 전략은 엉터리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한국을 지킬 수 없으니 알아서 해라’라며 한국을 향해 ‘환상을 깨라’고 합니다.
이쯤 되면 한국의 대북 정책은 골간부터 총파산한 것 아닌가요? 국민은 대단히 불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