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일이 있었다. 헨리 나웬(Henri Nouwen) 박사는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는 신학자이며 하버드대학 교수로서 많은 보수와 명예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 그가 하버드대학을 사임하고 매사추세츠에 있는 작은 정신지체자 시설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 학원의 직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정신 지체자들의 용변 지도와 행동 교정, 그리고 식사, 세수, 옷 입히는 훈련 등 구질구질하고 고생스러운 일을 맡아 했다. 전 세계가 그에게 "왜 그러느냐?"라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하여 나웬 박사는 대답 대신 책 한 권을 썼다. <예수의 이름으로(In the Name of Jesus)>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여기에서 나웬 박사는 "예수를 정말 아는 길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또한 "예수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을 아는 길이 무엇인가?"하고 묻는다. 그의 결론은 예수를 아는 길은 '내리막길을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가 보여 주신 종의 모습, 곧 복음의 교훈은 내리막길에서만 체험된다는 것이다. 나웬 박사 자신은 그 동안 올라가는 길만 추구해 왔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 해 신동이라 추앙되었고, 하버드대학의 교수가 되었으며, 20여 권의 저서는 모두가 베스트셀러이고, 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보기 원하는 사람이 전 세계에 깔려 있다. 나웬은 말한다. "나는 그 동안 작은 성공의 외로운 꼭대기를 향하여 작은 인기, 작은 권력의 꼭대기를 향하여 오르막길만을 추구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담(정신지체자인 한 청년)군 곁에 앉았을 때, 나는 이런 인간들의 고통에 동참하는 내리막길을 통해서만이 진정으로 예수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르막길에서는 예수가 보이지 않는다. 오직 내리막길에서만이 복음서의 진정한 예수를 만날 수 있다."
당신은 예수를 알기위해 지금껏 어떤 것을 추구해 오셨습니까? 말씀과 기도속에서 그 분을 알기위해 머물고 계시지는 않으셨습니까?
고전 1:9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1. 카페지기의 찬양전도 사역과 영혼을 치유하는 사역을 위해 중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사역하는 이곳 창원은 거리두기 4단계가 적용되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아외사역을 전면 중단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놓였습니다. 1인 시위 외에는 버스킹을 포함한 모든 행사나 공연을 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 델타가 무력화 되어 이곳 코로나가 3단계 이하로 내려갈 수 있도록 힘써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어제 확진자 수가 59명으로 또 늘었습니다.
2. 카페지기의 시력회복(백내장 치유)을 위해서 기도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3. 코로나가 다시 확산세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무력화 되어 모든 일상들이 정상으로 회복되길 기도해 주시길 바라며 정부에서 이제 코로나에 대한 대처와 제한이 델타변이 에 맞춰 제대로 이루어지길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교제와 참여함 본문 : 고후 1:7
참여한다는 것은 어떤 일에 뜻을 같이하여 동참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사업을 하는 일에 뜻을 같이하여 참여합니다. 정치가들은 정치하는 일에 뜻을 함께하여 참여합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은 성도들 안에서 뜻을 같이하여 그리스도의 교제를 나누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간에 불신과 분열을 결코 원치 않으시며 함께 교제하는 가운데 주의 일에 참여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하나님의 거룩함에 참여함(히12:10)
1) 예배를 참여해야 합니다. 성도는 먼저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거룩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실 뿐 아니라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 또한 거룩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성도는 성도다워야 한다는 말입니다. 성도라는 직분은 갖고 싶다고 누구나 갖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이 부여해 준 직책도 아닙니다. 성도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직임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거룩해야 하며 그것은 예배를 통하여 가능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성도의 특권이며, 성도가 참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를 통하여 성도가 주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며 교제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배를 통하여 주의 거룩함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룩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2) 전도에 참여해야 합니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철머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1:15).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는 두 번째 방법은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믿지 않는 영혼들도 그리스도의 구원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동참 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전도에 최선을 다하여 참여해야 합니다. 전도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에 참여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빚을 진 성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널리 전파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도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 즉 전도하기 위함이었으며 마지막으로 명하신 말씀 또한 전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가 부탁한 전도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와 함께 함(히3:14)
1) 고난에 참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고난에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비천한 곳에서 태어나 그를 따르던 사람에 의해 은 삼십에 팔렸으며 가장 사랑하던 제자에게 배반을 당하는 어려움을 겪었을 뿐 아니라 인간의 고난에 참여하기 위하여 몸소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은 성도는 주의 고난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성도는 주의 고난에 참여할 때 예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직장이든 가정이든 내가 있는 그 곳에서 나 자신은 십자가에 못박고 나로 인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의 조롱이나 비난을 받을 수도 있으며 많은 훈련과 인내와 자신을 절제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로 이일을 담당하도록 강권하고 있습니다.
2)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부활에 참여해야 합니다. 주님을 부인하여 실망을 안겨 준 베드로는 성령을 받은 후에 주의 복음을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가 소아시아 교회에 보낸 편지인 베드로 전후서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소망이라 함은 미래에 속한 불확실한 것이기도 합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산 소망을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산 소망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우리가 주의 고난에 동참하여 고난을 받아 죽을지언정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를 믿는 자는 부활의 소망을 갖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산 소망을 가진 자라야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성도의 교제에 참여함(빌4:14)
1) 믿음의 반열에 참여해야 합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의 공통점 가운데 한 가지는 담대한 믿음이었습니다. '아브라'이 '아브라함'이 되었던 것도, 에녹이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긴 것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증거라고 하였습니다(히11:1). 성도에게 있어 믿음은 하나님을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길입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믿음의 선조들을 본받아 믿음의 반열에 참여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반열에 섰을 때 믿음의 선조들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경험하였던 것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성도들이 믿음의 반열에 참여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도 안에서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반열에 설 때에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2) 어려움과 즐거움에 참여해야 합니다. "마음의 고통은 자기가 알고 마음의 즐거움도 타인이 참여하지 못하느니라"(잠14:10)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남이 나의 기쁨이나 슬픔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옛 말에 슬픔을 나누면 반으로 줄고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옛 속담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그들의 이웃이 어려울 때나 기쁠 때나 언제든지 함께하는 진정한 교제의 참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와 같이 서로의 어려움과 즐거움에 참여할 때 진정한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결론 즐거움에 참여하기는 쉽지만 고난이나 슬픔을 당할 때 함께 참여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참여는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고 있을 때 정신적, 경제적인 원조를 해준 빌립보 교회처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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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환난과 역경의 환경을 초월하여 자신을 부인하고 내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소망하고 따라가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건강해요 예수사랑
감사합니다
r공감과 함께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함께하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