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1897년 대한 제국 황제로 즉위하며,
천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용도로 조성한 환구단 (구 원구단) 을
1913년 환구우만 남기고 밀어 버리고 철도 호텔 (현 웨스틴 조선) 을 지음.
고종 시절 저렇게 건물이 빽빽히 들어찼던 경복궁 건물을 털어
1910년경부터 경매를 통해 일반인에게 팔기 시작했고,
(한일 두 나라에서 80명 정도가 구매)
1915년 조선 물산 공진회 박람회 전시장으로 쓰기 위해
건물들을 부수고, 조선 총독부를 짓기 위해
경복궁의 99%를 파괴, 2019년까지 경복궁 재건율은 10% 에 불과함.
경복궁은 일제 강점기에만 무려 5회에 걸쳐 박람회가 열렸음.
더우기 경복궁 근정전에서 일제 침탈 이후 우리 의병들에게 맞아
죽은 왜놈 순사와 헌병, 군속의 위령을 기리는 초혼제를
1916년부터 무려 20년동안 지냄... (샹놈의 세키들..)
조선 총독 사이토 마코토 (齋藤實) 놈이 무엄하게도
근정전 옥좌에 앉아 훈시나 시상식을 개최함.
기분 내킬때마다 수시로 근정전 옥좌에 앉았음.
1926년, 각종 박람회로 경회루까지 술판으로 변질된 경복궁을
정비한다는 명목으로 조선 총독부 건물이 들어섬.
이 건물은 광복 이후에도 미군정, 중앙청으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씌여지다 1995년이 되어서야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철거됨.
이때 청와대 여론 조사에서 근대 유산이므로
철거하면 안된다는 개xxxxx 들이 31%, 철거 찬성이 51.3% 였음
1945년 광복 후 1995년 철거하기까지 무려 50년이 걸렸음.
철거 후 조선일보는 총독부를 철거하고 나니
시야가 트이고 전망이 깨끗해졌다며
경복궁 중건은 이대로 하지 말고 그냥 두자는 게소리 사설 시전...
얘기가 조선총독부로 잠깐 흘렀는데,
위 사진은 일제가 용산에 지은 조선 총독의 관저임. 으리으리...
조선 총독부 건물을 1926년 짓기 이전, 1905년 을사조약으로
총독의 이전 명칭 통감이 조선으로 부임하며 행정부로
지어진 조선 통감부 건물. 통감이라는 명칭은
1905년부터 1910년까지 사용되었고 그 이후 총독으로 변경.
역시 용산에 지어진 조선주둔군 사령관저..
현재 서울 시청 구건물인 경성부 (1926년 완공)
1910년 515년간 사용되던 한성부는 일제에 의해 경성부로 이름이 바뀜.
일본인들이 장악했던 혼마치 (오늘날 명동)
이밖에도 구 서울역사, 503이 리모델링하려던 일제 하사관 숙소,
구 한국은행 본점, 서울 시의회 건물등 아직까지도
서울의 곳곳에 일제가 지은 건물들이 남아 있음.
근대 유산이라는 명분으로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주장을 하며
보전하자는 사람들도 있고, 다 없애 버리고 박물관에 남겨 놓고
역사 교육이나 제대로 시키라는 사람들도 있는 현실.
그러나 적어도 민족의 정기에 해당하는 부분까지도
우리가 건물과 흔적을 남겨 놓고 가야 하는지는 아닌것 같다는 생각을 함.
울산, 포항, 군산, 목포등 왜인들에 의해 지어진 건물들도 많은데,
이걸 울산시처럼 축제로 만들어서 유카타 체험 학습하며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건 미친 짓이라고 생각함.
우리의 역사관이 공고하다면 반드시 답이 나올것이라 생각함.
장충단 공원은 원래 고종이 의병들과 민비 시해를 막다
숨진 군인들을 위한 충절을 기리는 대한제국의 현충원이었음.
이걸 이토가 뒤진 이후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
(Yes, 이등박문의 박문사임) 사당을 만들고
그 대문을 경희궁에서 떼어 왔음.
해방후 이병철이 일부 토지를 불하 받아 신라 호텔을 지었는데,
이 신라 호텔을 설계한 사람이 딴 사람도 아닌 박문사를 설계한
일본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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