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불합리와 모순은 그에게 크나큰 시련이었다 침묵은 입을 다물기보다 귀를 기울이기를 원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무엇보다 완전한 침묵 속에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침묵을 관리하는 일은 수많은 침묵의 소란을 견뎌내는 일이었다’
- 조용미 詩『침묵 사제』
- 시집〈초록의 어두운 부분〉문학과지성사 | 2024
몸가짐에 대해서라면 아버지는 더없이 엄격하셨다. 자주 듣던 꾸중은 ‘수다하다’였다. 말이 많으면 말실수를 하게 된다. 돌이킬 수 없다. 아버지의 지적은 온당하다. 하지만 인제 와서야 나는 아버지로부터 오해를 받았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나는 수다하지 않다. 침묵에 서툴 뿐이다.
나는 퍽 예민한 아이였다. 작은 일에도 쉽게 상처를 받았다. 덕분에 무리 짓는 일에 어려움이 많았다. 혼자 있는 것이 좋았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는 나 자신이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는 어색함이 없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이러저러한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누군가를 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관계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단단해지기 마련일 텐데, 아무리 뒤적여도 내겐 내어줄 것이 없는 것만 같다. 나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다. 당황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수다스러워진다. 그래 놓고선 헤어져 돌아서는 순간부터 내내 후회를 거듭한다. 침묵 앞에 서툰 자신을 어떻게 길들여야 하는 것일까.
침묵은 입을 다물고 있는 행위가 아니다. 귀를 내어주는 행위다. 들으면서 말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입을 다물고 맞은편에 있는 상대의 말을 끈기 있게 듣기만 해도 나는 수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뒤돌아 후회하는 일도 사라지겠지. 침묵에 익숙해지고 싶다. 참고 견디는 그 일이 쉬울 리 없다. 대신 익숙해지는 그 순간부터 마음은 한껏 가볍고 여유로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