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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른 복음이 섞인 설교 홍수' 속에서 참예수 복음을 전하는 Noah Bak 전도자입니다!"
* 원제목1: 양태론은 또다른 삼위일체!
* 원제목2: 한분 하나님이 구약. 중간기. 신약에 세 모양으로 나타난 양태론은
* 원제목3: 1신 같으나 3신이다!
♤23분 메시지, https://buly.kr/9BTHzpu
☞ 수십 가지의 "한글성경(우리말 번역본)" 찾아보기: https://buly.kr/C07PPTB
☞ 노아박 추가 메시지 참여하기 / "삼위일체의 거짓" (삼위일체 반대론자는 양태론이 "또다른 삼위일체"임을 분별하고, 양태론의 거짓도 함께 드러내야 한다!): https://is.gd/GTjaNi
[청각장애우를 위한 한글 텍스트]
안녕하십니까? 노아박 전도자입니다. 지난 시간에 삼위일체와 양태론이 왜 3신인지 설명드리면서, 양태론은 "또다른 삼위일체"라는 별칭을 붙여서 전해 드렸습니다. 삼위일체는 성부와 성자가 다르고, 성자와 성령이 다르다!인 반면에, 양태론은 성부와 성자가 같고, 성자와 성령이 같다!입니다. 그리고, 양자론은 성부와 성령만 같다!입니다.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들이 하는 일만 각자 분담해서 일을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 분 하나님이 한분이 되셔서 1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신구약 성경을 다 뒤져봐도 이런 하나님은 안계시던데, 국내외 한국 개신교 약 70%가 이상하게 믿고 있습니다. 삼위일체를 가르치는 신학교 출신 목사들이 회중에게 설교시간에 가르치고, 예배 순서에 삼위일체를 넣어 사용하다 보니까. 그 교회를 떠나지 않는 한, 삼위일체의 포로가 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목사 그룹의 강요로 삼위일체로 불리우는 가톨릭의 신관을 교단 교파 교회 단체별로 덮어놓고 회중이 믿어 버리는 케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되면, 성경에서 나는 나다! 나 여호와 외에 다른 신이 없다!라고 말씀하신 "창조주 여호와 한분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반대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삼위일체가 중세 가톨릭의 교리라고 전해 주어도 듣지 않는 영혼들이 이구동성으로 천국 영생을 누린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건지려고 전하는 것이니, 예수 성령 안에서 성구를 찾아 스스로 검증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힘들고 어렵다면, 그냥 제가 전해드리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집중하여 듣다 보면, 영과 말씀 분별이 생길 것입니다. 결국,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않아서 분별이 안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부터, 성부와 성자는 가톨릭의 종교 용어이니 사용하지 마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인데, 가톨릭에서 아버지를 성부로! 아들을 예수로! 성령은 그냥 성령 그대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실제적인 가톨릭의 삼위일체는 성부 자리에 교황이 앉아 있고, 성자 자리에 아기 예수가 앉아 있으며,
성령의 자리에 마리아가 앉아 있습니다. 사위일체로 나누는 경우는 교황, 아기 예수, 성령, 마리아로 분류하기도 하지요. 잘아시겠지만, 가톨릭은 "성"자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제 말이 아니라, 가톨릭만큼 거룩할 "성(聖)"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종교도 없다는 견해를 가톨릭 스스로 밝힐 정도입니다. 세속과 구별하는 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아무튼 개신교 또는 개신교를 이탈한 가나안 여러분들은 제발 "성부와 성자"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요한일서 5장 6절 7절 8절을 삼위일체 개념으로 우리말 번역해 놓은 성경이 99.9999%입니다. 추후에 0.0001% 우리말 바른 번역을 발견하면, 꼭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요한일서 5장 6절 7절 8절을 개역한글과 개역개정 순으로 읽겠습니다. 먼저, 개역한글입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자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거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이어서 개역개정입니다.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어떻습니까? 물과 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가 성령이시라는 뜻을 바르게 말하다가, 증언하는 분이 물과 피와 성령! 각각 세분이라는 삼위일체로 해석해 버립니다. 200주년 기념 신약성경으로 읽는 요한일서 5장 6절 7절 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물과 피를 통해서 오신 분이십니다. 물만 거쳐 오신 것이 아니라, 물과 피를 거쳐 오셨습니다. 영이 증언하는 분이시니, 사실 영은 진리이십니다. 증언자는 셋이 있으니, 곧 영과 물과 피이며, 이 셋은 일치합니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지고 맙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에서, 아버지 따로! 아들 따로! 성령 따로!로 삼위일체적인 해석을 해서, 삼위일체의 성부. 성자. 성령으로
가르치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삼위일체 신관을 가진 우리말 번역자가, 물 따로! 피 따로! 성령 따로!로 보고 세분인데 합쳐서 하나라는 식으로 자의적인 해석을 해버립니다. 우리말 성경으로 요한일서 5장 8절을 읽어보면, 물과 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성령이 증거하신다! 여기까지는 바른 복음입니다. "성령과 물과 피! 이 셋이 서로 일치합니다." 성령. 물. 피를 따로 따로 보고 셋이라 했고, 셋이 하나라는 삼위일체로 번역했습니다. 현대어 성경도 물. 피. 성령을 세 분의 음성으로 표현했고,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물. 피. 성령은 세 분의 증인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영어성경도 보니까, 물과 피와 성령에 대해 세분 개념의 그것들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가톨릭의 라틴어성경에서 영어성경으로 번역하는 과정에 삼위일체 교리 번역자의 사고방식이 개입했다고 저는 봅니다. 그리스도인 사역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은 서로 다른 분입니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본래 성령과 말씀 자체로 계신 분인데, 구약의 예언대로 여호와께서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 예수이시기 때문에, 예수와 성령은 동일한 존재이십니다. 그럼에도, 물. 피. 성령이 마치 세분 신격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나같이 우리말 번역이 그렇게 되어 있고, NIV. KJV. NASB를 비롯하여, 미국성서공회에서 출간한 CEV 영어성경에서도 물과 피와 성령을 "그들" 또는 "세분"으로 번역하면서, 그들이 동의했다! 그들은 합쳤다! 세분이 하나다! 이 셋은 일치한다!식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14세기 중세 암흑 시대에 라틴어 성경을 영어성경으로 번역을 합니다. 가톨릭에서도 말로는 원어 사본을 라틴어로 번역했다고 주장하지만, 일부분을 오역했습니다. 특히, The King James Version! 곧, KJV성경은 정말 재미있습니다. "하늘에 기록하신 이는 세 분이시니, 곧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니, 이 세 분은 하나이십니다. 그리고, 땅에서도 증거하는 세 분이 계시니, 곧 성령과 물과 피이니, 이 세 분은 하나이십니다." 삼위일체 스타일로 가톨릭 번역자들이 영어번역해 버린 것입니다. 삼위일체 신봉 번역자들이 태양신 바알 3신의 니므롯. 담무스.
세미라미스를 성경과 접목시켜서, 아버지. 아들. 성령도 삼위일체 세분 3신 신격으로! 물. 피. 성령도 삼위일체 세분 3신 신격으로!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런 잘못된 해석에 저항하는 마음을 가지고 제가 늘 입버릇처럼 고백하는 것이 있는데, "여호와 예수 성령"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입니다. 마찬가지로 바르게 설명드린다면, 물. 피. 성령도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는 것이다!입니다. 요한일서 5장 6절 7절을 보면 옳고 바르게 쓰여져 있는데, 8절에서 성령을 물과 피와 합쳐 3신으로 풀어버린 것입니다. 어느 이웃교회 설교자가 얼마나 속이 터지고 답답했으면, 여호와. 예수. 성령이 어떤 분이냐면, 그 분이 그 분이고 그 분이 그분입니다!라고 했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괄호를 열어 그 분이 그 분이고 그 분이 그분이다! 그런 다음에 괄호를 닫으면, 성경을 읽는 사람이 "사이다 우리말 번역"이라고 극찬할 것인데 말입니다. 여기에 동의하시겠습니까? 사실, 오늘 메시지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대로, 삼위일체는 성부. 성자. 성령이 각각 다르다!인 반면에, 양태론은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같다!였습니다. 그리고, 양자론은 성부와 성령만 같다!입니다. 양태론의 경우,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같다! 여기까지만 보면 1신처럼 보입니다. 삼위일체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유일신 아닙니까? 왜냐하면, 유대교가 여호와만 인정하고 예수를 부인하는 유일신 종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신구약의 창조주는 "여호와 한분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데, 왜 삼위일체론자들은 "셋인데 하나이신 한분 하나님"이라는 기괴한 신의 이름들을 만들어 부르는지 잘모르겠습니다. 약 30%가 양태론을 믿고 있습니다. 양태론은 삼위일체가 틀렸다!면서 다른 각도로 본, 또다른 삼위일체 신관입니다. 구약에 여호와라는 하나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안계신다! 구약과 신약의 중간기인 33년 예수시대에는 예수라는 하나님이 계셨으나 지금은 안계신다! 신약시대에는 오직 성령만 한분 하나님으로 계신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태양은 빛. 열. 본체(둥근 형체)를 가지고 있듯이, 태양이라는 둥근 형체가 빛과 열을 내는데 서로 다른 것 같지만 하나이다!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태양 본체에서 내는 빛과 열이라면, 태양 본체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열과 빛"이라는 파생 에너지 이야기인데, 태양 본체와 빛과 열이 같다는 것이 억지 주장 논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물의 모양에 따라, 액체. 기체. 고체로 나눈 개념으로 양태론을 설명합니다. 액체 상태의 물! 액체 상태의 물이 증발하는 수증기! 물이 얼어 고체 상태가 된 얼음! 물. 수증기. 얼음이 서로 다른 형태임에도, 왜 같은 것이라고 합니까? 물의 형체가 분명히 3가지 인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양태론을 3신이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끝으로, 아마 비유로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로는, 집안의 가장이 누구에게는 아버지이고, 누구에게는 회사 부장이며, 누구에게는 남편이라는 양태론입니다. 사람은 한 명인데, 자녀에게는 아버지이고, 회사 직원에게는 부장이며, 아내에게는 남편이라는 것인데, 자녀 입장에서 본
그사람이 다르고, 회사 직원 입장에서 본 그 사람이 다르며, 아내 입장에서 본 남편이 서로 다른데, 어떻게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성부 성자라는 말을 안쓰고 양태론을 이야기해 보면, 구약에만 존재한 아버지! 중간기에만 존재한 아들! 신약에만 존재하는 성령은 시대별로 각각 다른데, 어떻게 같다고 주장하면서, 지금의 신약 시대에 활동하시는 성령 한분만 "한분 하나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까? 만약, 아버지. 아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로 동일하다면, 구약시대에도 아버지. 아들. 성령! 중간기에도 아버지. 아들. 성령! 신약시대에도 아버지. 아들. 성령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양태론자들이 주장하는 신관의 내용은 50%는 맞고, 50%는 틀린 주장이 됩니다. 한편, 삼위일체의 신관은 아버지. 아들. 성령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닐 뿐더러, 서로 각각 다르다! 그러나, 아버지. 아들. 성령께서 각각 하는 일을 나누어 분담하기로 하면서 하나가 되자고 했고 한분처럼 일하시기 때문에
3신이 아니라, 1신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특히 삼위일체의 경우를 보면, 억지로 꿰어 맞추어 1신처럼 보이기 위한 우스꽝스럽고 어설픈 논리라는 생각은 안드시는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양태론도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정말이지 억지이다 못해서 궁색하게 1신을 만들어 우리가 1신이라고 합시다! 으쌰으쌰하는 식의 1신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성직자라는 종교인만 되면 어떻게 그런 식으로 돌아가버리는 것인지, 성경의 "여호와. 예수. 성령"과 다르게, "성부. 성자. 성령 3신1체 삼위일체" 또는 "성부. 성자. 성령 1신3태 양태론"이라는 각자 신관 노선의 길을 따르다 보니까, 성경의 네비에서 한참 벗어나서,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은 길로 일단 가고 보자는 식은 아닌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 바울이 믿었던 "창조주 여호와. 예수. 성령이신 한분 하나님"과, 삼위일체 또는 양태론은 전혀 다릅니다. "한분 하나님" 신관을 잘못 믿고도 영생 천국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합니다. 개신교로 불리우는
세상종교를 속히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십시오! 374개 교단의 개신교에서 결정한 이단 사이비 종교단체를 지체하지 말고 떠나, 가나안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곳에 머물러 있다가는, 돈. 시간. 젊음. 인생. 가족. 부모. 자녀. 친구. 노후까지도 잃게 됩니다. 부지런히 저축하여 노후를 철저하게 대비하십시오! 디모데후서 6장 10절 말씀!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여러분은 초대교회에 활동했던 사도 바울이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때 당시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했는지 살펴보겠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마약과 같은 종교에 미쳐서 염세주의에 빠지고, 종교의 조직 직분 봉사 관련한 쓰레기를, 가정. 사업장, 직장까지 끌여 들여와 종교놀이하는 한, 사회적인 직업없는 목사 그룹이 돈을 끌어 모으면서도 돈을 사랑하지 말라는 해괴망측한 교리의 늪으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재물 쌓으라!는 목사의 특이한 가르침을 받는 한,
모든 소득의 십일조및 각종헌금. 건축헌금. 임직헌금. 일천번제 헌금. 가짜절기 헌금 등을 일생동안 바쳐가면서 교회에다 털어 바치는 한, 나중에 노인세대가 되면 자녀들에게 경제적 고통 준 것을 가슴 아프게 생각하게 됩니다. 자녀들도 경제적인 불만을 부모한테 가질수 있습니다. 서민 성도들을 기준으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나중에 노인이 되어서 건강만 보장받아도 좋은데, 나름 예수 잘믿어도 몸이 아픕니다. 여러분이 가난으로 죽어 나가도 교회는 여러분들을 돕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민 성도가 교회와 목사를 먹여 살릴 아무런 책임이 없습니다. 목사도 사회적인 자기 직업가지고 자기 가족들 먹여 살려야 할 책임이 있는데, 성경에 존재하지도 않는 목사를 교사에다 살짝 보태어 "목사와 교사"로 둔갑시켰으니, 가톨릭의 라틴어 성경 번역시에 그런 오역을 했거나, 그렇지 않으면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할 때로 봐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 예수. 성령"께서 그리스도인 누구라도 교사로 불러서 말씀을 전하도록 하시면 사역을 하게 됩니다.
예수 성령의 의도적인 계획에 의하여, 유대교에서 예수교로 개종한 사도 바울이, 왜 돈을 사랑하지 말라고 디모데에게 가르치는 설교문을 보냈는지, 2천년 전의 시대적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때는 지금보다도 훨씬더 가난한 시절인데, 돈을 사랑하고 말것도 없는 형편들일텐데, 그런 말을 했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아무튼, 먹고 살기 위해서 직장을 다니고 사업을 경영하고 장사하는 것을 두고 돈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근면절약하면서 자기 가족들 부양하며 저축하는 것을 두고 돈을 사랑한다고 가르치려는 자가 있다면, 귀싸대기를 당장 올리고 싶습니다. 더더욱, 세상 은행에 돈을 쌓지 말고, 존재하지도 않는 하늘 천국은행에다 최대한 돈을 쌓으라고 가르치는 목사나 장로 또는 집사한테는 얼굴에 침을 뱉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재물이 아니라 보물로 되어 있는데, 이를 현대교회에서는 재물 곧, 돈으로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신명기 8장 18절 말씀을 통하여
다음과같이 말씀하십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재물얻을 능"은 주시지만, 성도의 긴박한 돈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합니다. 유명 목사가 세미나 또는 광고를 통하여 돈 이야기를 말하고 기도로 부르짖으면, 돈이 여기저기에서 모아져 급한 경제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간증이라고 하는데, 374개 교단 교파 교회 조직에서 헌금 바치는 시스템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 조금만 안다면, 이런 틀과 구조에 길들여진 호구 직분자들이 척척 갖다 바치기 때문에, 금방 그 돈이 모아지는 것뿐입니다. 창조주 여호와께서 그 돈을 모아 주셨다고 믿는다면, 서민 성도들의 금전적인 문제가 전혀 해결 안되는 것은 무엇으로 설명할는지 모르겠습니다. 돈은 창조주와 상관이 없고, 관심도 없으십니다. 서민 성도들은 돈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기 위하여 동분서주 정신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종교놀이할 시간이 많은 목사 그룹이 사회적 직업도 없이 성도들에게 민폐를 끼치면서
지껄여대는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모든 소득에 대한 국가 세금을 다 냈는데, 뭐 미쳤다고 교회에다 모든 소득의 세금을 이중과세로 바칩니까? 회개하기 전의 세리장 삭개오같은 목사 그룹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런 이유만으로도 당장 교회를 떠나십시오! 쪽박차기 딱 좋게 만드는데가 여러분들이 몸담고 있는 제도권 교회입니다. 가장 올바른 우리말 성경 한권을 찾으시고, 성령 안에서 바르게 설명한 주석 한권가지고 성령 안에서 독학하십시오! 어떤 이들은 우리말 번역 성경을 한 권만 보지 말고, 여러 권을 구입해서 비교해 가면서 가장 성경적인 것을 찾아내야 한다고 설명하던데, 매우 일리있는 조언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이런 말이 전혀 나쁜 건 아니지만, 현실을 부정하게 만들고 종교에 미치게 만드는 말로 사용하고 있는 기독교계 현실을 40년 동안 겪으면서, 이 말은 근본적으로 그런 뜻이 아니라고 재해석하는 입장입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에게, 네 재산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 후에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을 때, 심히 근심어린 마음으로 돌아갔다고 나오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그 청년에게 모든 재산을 다 팔고 오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영생을 말씀한 것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니까 예수님께 대한 실망과 돈사랑 때문에 떠나버린 것입니다. 한국 개신교에서 예수님을 돈보다 더 사랑하게끔 목사가 바른 성경에 근거한 복음적인 교리를 전합니까? 절대로 아닙니다. 예수 복음보다는 돈을 사랑하는 직업목사 그룹이 대다수입니다. 그래서, 제가 목사의 사회적 직업이 없음을 항상 지적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나 양태론을 가르치는 신학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다 보탤 많은 거짓 스승들의 가르침만 가득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놀이 잘하는 법을 배워서 가르치면 그것이 예수복음을 잘 가르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맞습니다. 설교한다고, 교회 책임자라고, 돈받고 하는 것은 신약성경과는 맞지 않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10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 이것을 욕심내는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방황하다가 많은 슬픔으로 자신들을 찔렀도다." 이 말씀은 당시에 예수복음을 아무리 전해주어도 듣지 않는 심령 속에 가지고 있는 마음 상태가 저렇다!로 이해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도 예수 복음을 받지 않는 사람들의 뇌와 마음이 돈사랑으로 꽉 차 있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2천년 당시, 에베소에서 사역했던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보낸 편지식 복음서가 디모데 전후서인데, 당시 에베소는 무역의 중심지로서, 소아시아의 가장 큰 항구도시로 동서양 문화의 교류지역이었고, 구라파(유럽)에서 올 때 아시아의 관문이었다고 합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돈을 부자 청년만큼이나 사랑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돈에 환장한 사람들이 많이 모인 도시가 에베소로 보여집니다. 한편, 서민 성도들의 등골을 휘게 만들면서 모든 소득의 십일조와 각종 헌금을 가지고 오도록 하는 목사 그룹이, 돈을 사랑하지 말라!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이다!라고 성경말씀을
오남용하여 착취한다는 것을, 지금 이시점에서는 확실하게 알아야 합니다. 속으면 바보천치가 되고, 호구 성도만 됩니다. 신약에는 연보 즉, 기부금만 존재합니다. 여기까지입니다. 한국 개신교및 기독교 종교단체를 떠나기로 작정한 가나안 예비 성도 여러분과 이미 가나안 성도가 되신 분들을 위한 링크 하나를 하단에 걸어두었으니, 로그인없이 바른 복음 메시지를 찾아 들으시기 바랍니다. 청각장애우 여러분께는 한글 텍스트가 많은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이상으로 비영리, 비인기 그리스도인 유튜버 노아박 전도자 메시지를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뵙겠습니다.
끝까지, 청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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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나안 성도를 위한 "인터넷 실시간 말씀 참여하기": https://cafe.naver.com/bakno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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