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안의 궁' 건청궁 乾淸宮 다녀오다
23, 08, 17
경복궁 내에 여러 궁이 있지만
건청궁 乾淸宮이
어디 있는지 어떤 궁이었는지 몰랐다.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그런데 광복절에 근세사 관련 자료를 찾다가
건천궁을 광복절부터 9월 18일(화)까지
특별 개방 전시한다는데
명성황후(민비)가 일본인들에 의해 시해 당한 곳,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로 전기를
가설한 곳이라는 사실이 발걸음을 끌었다.
폭염주의보가 내린 염천 하지만 우리 국민보다한복을 차려입은 외국인들이 더 많아 보였다.
고종의 거처 건청궁 장안당 長安堂
(長安 : 오랫동안 평안하게 지내다)
추수부용루(秋水芙蓉樓 -
秋水芙蓉 : 가을 물속의 연꽃)
건청궁(乾淸宮 - 乾淸 : 하늘은 맑다)
경복궁이 중건되고 5년이 지나서
고종 10년(1873년)에 와서 지어진 건물이다.
경복궁에서 가장 북쪽 한적한 곳에 있다.
왕과 왕비가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면서
거처할 목적으로 지어졌다.
건청궁 앞에는 향원지라는 큰 연못을 파고
연못 가운데 정자를 꾸몄다.
건물은 민간 사대부 집의 형태를 따르면서
화려하고 섬세한 치장을 가미하여 지었다.
왕이 사용하는 장안당 長安堂과
왕비가 머무는 곤녕합 坤寧閤,
그리고 장안당 뒤에 서재로 관문각을 지어서
마치 사대부가의 사랑채, 안채, 서재를
연상시키는 구성을 하였다.
궁궐 안에는 왕과 관리들의 정무 시설,
왕족들의 생활 공간,
휴식을 위한 후원 공간이 조성되었다.
또한 왕비의 중궁, 세자의 동궁,
고종이 만든 건청궁 등
궁궐 안에 다시 여러 작은 궁들이
복잡하게 모인 곳이기도 하다
고종은 이곳을 좋아하여 왕비와 함께 자주 머물렀다.왕과 왕비가 거처하지 않을 때에는
역대 임금의 초상화를 모시기도 하였다.그러나 한가롭게 휴식할 목적과는 달리이 건물은 조선 말기 정치적 혼란의 장소가 되고 말았다.
고종은 이곳에서 미국, 영국, 러시아 등의
공사들을 접견하면서여러 정치적인 문제들을 처리해야 했다.그 사이에 서재인 관문각은 러시아인에 의해서2층 벽돌조 건물로 개조되기도 하였다.
또 최초로 전등이 설치된 곳이기도 하다.
고종이 거주한 장안당
四時香樓라는 좋은 이름과 달리
명성황후 (민비)가 시해 당한 옥호루 玉壺樓
1895년 일본인들이 궁궐을 습격해서
명성황후(민비)를 시해한 것은이 건물 곤녕합의 누마루인
옥호루(玉壺樓 - 玉壺 : 옥으로 만든 호리병)였다.이 사건 이후 건물은
한동안 방치되었다가 철거되고 말았으며,2006년에 와서 다시 옛 모습대로 복원되었다.
(문화재청 경복궁 전시 자료 참조)
흐르는 곡- 자클린의 눈물
출처: ♣ 이동활의 음악정원 ♣ 원문보기 글쓴이: 아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