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생 (외 1편)
강수경
연한 배춧잎 뒤
아기 달팽이
녹색 똥 싸며
열심히 배를 채운다
먹어봐야 얼마나 먹는다고
너그럽게 봐 주다가도
너덜너덜해진 배춧잎 보면
무찔러야 할 적이 되고 마는데
너도 먹고 나도 먹고,
나눠 먹고 살자고 하면서도
애가 단다
달팽이가 싼 똥 정도야
인간이 싸는 똥에 비할까
상사화 꽃대는 더디 올라왔다
상사화 꽃대는 더디 올라왔다
하루에도 몇 통씩 불안을 안고 메시지가 왔다
입하 지나서는 댓바람에
“오늘 6시 32분 서울지역에 경계경보 발령”이
아침을 흔들었고
오보로 끝났지만
우리는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안전안내문자가
양치기 소년을 연상시켰다
대책 없고 책임 없는 난발은
폭우와 폭염이 예상될 때마다 무성했고
장마철 수많은 문자가 곳곳에서 공수표로 날아들었다
예방할 수 있었던 오송지하차도는
삽시간에 불어난 물로 침수되어 사지로 변했고
예천에서는 안전장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나섰던
해병대원이 주검으로 돌아왔다
상사화 꽃대는 더디 올라왔고
꽃이 피고 질 무렵
4만 명이 참석했다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 대원들은
새만금에서 생존게임을 하다
태풍 카눈으로 탈출했고
상암 월드컵경기장 뽑혀 나간 잔디처럼
스카우트 정신은 훼손된 채
급조된 K팝 공연이 폐영식을 대체했다
2023년 여름,
꽃은 희망 없이 지고
―시집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 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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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경 / 강원 평창 진부에서 태어나 2010년 《부천시인》, 2018년 《미래시학》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어제 비가 내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웃었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