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존재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루"가 있을 수 있을까? 빛은 첫째날에 ,태양은 넷째날에 각각 창조됐다. 첫째날부터 셋째날까지 태양이 없는 상태에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고 성경은 밝히고 각각의 하루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이미 코페루니쿠스에 의해 증명했다. 하루의 길이는 태양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지축을 중심으로 한 자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이 코페루니쿠스보다 3천년 앞섰음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빛이 먼저 창조되고 나중에 태양이 창조된 것은 빛이 태양일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다. 모든 빛과 생명의 근원이 태양이 아니고 하나님 자신임을 인간에게 강조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태양은 언젠가는 소멸되며 달은 지구로부터 한해에 3cm씩 멀어지고 있어 중력이 무너지게 되는 날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것들이 무너짐은 두려워하면서 이 것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당신은 왜 두려워하지 않는가 ?
[골 1:16-17]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 날씨가 추워지고 있습니다. 주님의시선 회원님들께서 건강하게 올 겨울도 사역과 생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저는 일 주일에 4번 야외 찬양사역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번 겨울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영적인 은혜속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목 : 예수를 바라보자 성경 : 히 12:2-3
믿음의 주여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 12:2).
많은 교육자들은 부모들에게 자녀로 하여금 위인들의 전기에 관한 책을 읽게 할 것을 권한다. 그 이유는 위인전을 읽은 아이가 인상에 남는 위인과 같이 뚜렷한 삶의 목표를 가지고 살게 하기 위함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성경을 가르쳤다(신6:4-9). 그들은 나라를 잃은 2000여년 동안에 세계 각처에 흩어져 살면서도 자녀들의 교육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 결과로 오늘날 세계의 경제와 정치계에 유대인들이 진출하여 막강한 힘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들어와서 성령의 불길이 치솟을 때 미신이 타파되고 믿는 자들의 수가 놀랍게 늘어났다. 그런데 현재에 이르러 오늘의 교회는 세상을 변화시키기보다는 세상을 따라간다. 이런 현상은 교회가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상실해 가고 있는 증거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왜 예수님을 바라보는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은혜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첫째, 예수님은 믿음의 대상이 되어주신 분이다. 예수님이 우리 믿음의 대상이라는 말은 그가 우리의 예배 대상이라는 의미이다. 예수님이 우리의 예배 대상이시면 우리로부터 경외와 사랑과 충성을 받아 마땅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인정하면서도 그를 향해 돌려드려야 할 경외와 사랑과 충성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당연히 받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은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당하면 아우성을 치면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했다. 우리는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는 바울의 고백을 매우 좋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그 구절을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구절 앞에서 바울은 고난을 극복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 것은 고난 가운데서 자족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런 신앙의 자세를 가진 성도가 예수님을 온전한 믿음의 대상으로 섬길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도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며 승리의 생활하는 성도가 되기 바란다.
둘째, 예수님은 소망의 대상이 되어주신 분이다. 우리가 예수님만을 바라본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의 참된 소망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 땅에서 부자가 되거나 권세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같은 부활의 몸을 입고 부활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께 소망을 둠으로써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업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좌절과 실패를 당하게 된다. 솔로몬 왕이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어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왕상 3:5)고 말씀하셨다. 이때 솔로몬은 백성들에게 올바른 재판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다. 이러한 솔로몬의 요구는 그가 이 땅에 소망을 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소망을 두며 하나님만을 의지했음을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예수님을 바라보고 살면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의 것에 소망을 두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자 신도 희망을 가지고 주님 바라보며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셋째, 예수님은 고난의 모범을 보여주신 분이다. 동방의 의인 욥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환난을 당하게 되었다. 그의 아내조차도 그가 당하는 고난에 동참하지 않고 떠나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았다. 이때 욥은 귀로만 들어 알고있던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욥은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라고 고백했다. 이러한 욥의 신앙자세는 예수께서 보이신 고난의 모범을 따르는 것과 같다. 사도바울도 복음 전도를 위해 수없이 많은 고뇌와 핍박을 받았다. 바울은 그런 가운데서도 자신의 고난을 기쁘게 받아들이면서 복음전도에 전념했다.
그래서 그는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갈6:17)고 고백할 수 있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온전한 믿음 위에서 예수를 바라보는 삶을 살 때에 이 세상의 것으로 인해 염려하거나 근심하지 않는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고 권면하시면서 그 근거로 하나님 나라에 거할 곳이 많음을 말씀하셨다(요14:1-2). 우리는 예수님을 온전한 믿음의 대상으로 섬기며 그 분만을 바라보며 그를 본받는 삶을 살 때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문제가 봉착되더라도 주님만 바라보며 승리로 삶을 이끌어 나가는 성도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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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충만한 가운데 상담과 치료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은 예측할 뿐이지요
항상정답은 하나님만 알고계시구요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감사합니다
오늘에 주신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예수 사랑 목사님, 평안 장로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