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건축가가 대기업에서 수십년 간 일해오다가 은퇴할 나이가 되었다. 은퇴 전 고용주는 그에게 집을 하나 지어줄 것을 요구했다.
건축가는 그 일이 이 회사에서의 마지막 작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이 떠나 있었기 때문에 대충 설계했다. 질 낮은 재료와 서툰 일꾼들을 이용했다. 목재는 열악했고 마무리도 소홀했다. 드디어 집이 완공됐다. 고용주는 그에게 다가와 집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그 동안 나를 위해 일해줘서 정말 고맙소. 그 선물로 이 열쇠를 준비했소. 이 집은 이제 당신 것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라오.”
건축가는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최상의 재료와 유능한 일꾼을 쓰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화가 그랜마 모제스는 인생의 마지막에 다다랐을 때 “나는 내 인생의 훌륭한 작품이다. 난 그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당신은 명품이다.
당신은 항상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일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까?.
딤후 4:7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1. 기온이 많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시선 회원님들께서 올 겨울도 건강하게 사역과 생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저는 일 주일에 4번 야외 찬양사역을 나가고 있습니다. 이 번 겨울도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시고 영적인 은혜속에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제목 : 성도와 최후의 승리 본문 : 요16:33
경기나 싸움은 참여하는 데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참여 그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으나 인생의 달음질, 신앙의 싸움은 절대적으로 승리가 중요합니다. 결승점에서 웃게 되느냐 울게 되느냐에 따라 인생을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승자요, 결승점에서 우는 자가 패자입니다.
1. 여러 가지 환난(행14:22)
1)경건에 따르는 환난 록키 산이나 에베레스트 산과 같이 높은 산에 오르려면 난코스가 많고 여러 가지 위함이 따릅니다. 그래서 꿈을 가지고 등정에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오기도 했으며, 만년설 속에 묻혀 버리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길도 이와 같습니다. 환경이나 여건에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길은 평탄합니다. 그러나 의롭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길은 순탄치 못합니다. 많은 대적들을 만나게 되고, 여러 가지 장애 요인들에 부딪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러한 환난을 피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둔 사람들은 불가피하게 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게 해줍니다. 하나는 이 세상이 악하고 불의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다른 하나는 성도의 길이 험하다는 것입니다. 이 길을 찾는 자들이 적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2)기업을 잇기 위한 시련 성도가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이나 핍박을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난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약은 누구의 입에나 쓴 법이고, 매는 누구에게나 아프게 마련입니다. 성도라고 해서 환난이 고통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것을 피하지 않고 감내할 수 있음은 성도의 고난이 특별한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의미를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로서 기업을 잇는 것과 관련지었습니다(롬8:17).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입니다. 따라서 그분과 함께 영광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와 함께 영광받기를 원치 않으면 얼마든지 피할 길은 있으나 그 길은 멸망의 길입니다.
2. 함께 하시는 그리스도(마28:19,20)
1)그리스도와 권세 똑같은 환경, 동일한 여건 속에서 싸우면서도 어떤 사람은 기쁨이 충만하고, 반면에 어떤 사람은 전혀 그렇지가 못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인가를 알지 못하거나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도인 우리는 혼자서 이 싸움을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주님의 말씀이므로 언제, 어디에 있든지 이 약속은 유효합니다. 성경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가르쳐 줍니다. 이 권세에는 마귀와 그밖에 다른 적대 세력들을 다스리는 권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고의 권세자가 우리와 함께 싸우십니다.
2)그리스도의 능력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 자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다수가 싸움에 패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충분히 승리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이 부여되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성경을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요, 절대 권위의 책으로 인정하면서도 많은 성도들이 이와 같은 약속을 개인의 삶에 적용시키고 구체화하는 데는 머뭇거린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실패하는 요인입니다. 우리에게 믿음만 있다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외칠 수 있습니다(빌4:13)
3. 마귀의 일을 멸하신 주(요일3:8,9)
1)마귀의 실체 마귀는 지금까지도 당당하게 활동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성도들 중에도 그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같은 현상은 마귀라는 존재에 대해 무지하여 그를 과대평가하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우리는 그의 실체를 바로 파악해야 하겠습니다. 욥기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전능자와 비길 만한 절대적 권위를 가진 신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일개 도구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은 임의로 할 수 있으되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두려워할 대상이 전혀 되지 못합니다. 마귀의 권세가 대단해 보여도 하나님의 주권 아래 속한 것이요, 그리스도께 패한 권세입니다.
2)성도가 대적하면 피함 요한은 주님께서 이 땅 가운데에 오신 목적이 '마귀의 일을 멸하기'위함이라고 증거했습니다(요일3:8). 이것은 아주 중요한 사실입니다. 마귀는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로 죽기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일생 동안 그에게 종노릇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심으로 그의 일은 폐한 바 되었습니다. 더 이상 그는 우리를 다스릴 권세가 없습니다. 비록 그가 성난 사자같이 두루 다니면서 성도들을 노리고 위협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이미 주께서 그의 일을 멸하셨으므로 우리가 대적하면 피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도는 환경적인 어려움이나 시련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과감히 부딪쳐 싸우면 승리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도전할 때 마귀는 더 이상 역사하지 못하고 피하게 됩니다.
결론 인생의 실패는 최악의 불행입니다. 그것은 두 번 주어질 수 없는 것이기에 더욱 소중합니다. 비록 우리가 가는 길에 시련과 환난이 많을지라도 최후에 웃는 자가 되도록 힘써서 싸워야 하겠습니다. 승패는 환난의 많고 적음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선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중요하며, 믿음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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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항상 최선를 다하며살자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사랑과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 감기 예방 잘하시고 건강하게 사역 감담하 하시길 기도합니다 샬롬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존재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