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 축일: 가해
오늘은 성가정 축일이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는 참으로 위대한 신비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가정이라는 공동체의 체험을 거쳐 우리의 형제가 되셨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강생의 신비는 이 가정이라고 하는 실체도 취하여 거기에 더욱 깊은 의미를 부여하고 하느님 사랑의 표지와 구원의 도구로 삼는다. 오늘 축일은 가정이 강생의 신비를 통해 구원을 위한 공간이 됨을 상기시켜줄 뿐 아니라, 하느님 사랑의 신비에 대해 체험을 했던 나자렛 가정을 우리에게 구체적인 모범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즉 교회는 오늘 나자렛 가정의 구체적 체험을 거행하고자 하며, 그 체험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모범으로 제시하려는 것이다.
집회서의 내용은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너는 네 아비가 늙었을 때 잘 보살피고 그가 설혹 노망을 부리더라도 잘 참아 받고 네가 젊고 힘 있다고 그를 업신여기지 말아라”(집회 3,12-13). 이 말씀은 너무나 쉽게 노인들에게 무관심해 버리고, 마치 그들을 무슨 짐처럼 여기며 그들을 사회공공기관에 맡겨버리는 것이 잘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오늘의 우리에게 하는 말 같다.
복음: 마태 2,13-15.19-23: 이집트 피난
오늘 복음의 내용은 한 가정이 겪는 고통스럽고도 극적인 사건들에 집중되고 있다. 요셉이나 마리아 혹은 아기 예수가 주인공이 아니라, 한 가정의 이야기로 전개되고 있다. 천사가 요셉에게 하는 말은 한결같이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13.20절)라고 하고 있다. 이는 어느 것도 따로 생각할 수 없는 단일한 결합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분위기는 복음 전체에 흐르고 있다(14-15절.21절). 여기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다. 즉 나자렛 가정의 가족들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감정과 행동의 완전한 일치를 강조하고 있다. 서로 간의 봉사와 보호와 도움이 필요한 아기 예수에 대한 사랑이다.
아기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지만 인간적으로 나이 때문에, 또 그의 사명 때문에 닥치는 어려움에 대해 보호와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 부모들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징표들을 알아듣고자 하는 마음 자세로써 아기를 보호하고 도와주고자 애쓴다. 즉 하느님의 구원계획이 그리스도를 통해 실현되게 하도록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사람의 협력관계를 볼 수 있다. 가족들 상호간의 사랑과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로 이 가정의 삶이 전개되고 있다.
나자렛 성가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이것이다. 우선, 가정의 참된 의미는 오직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를 깊이 나눌 수 있는 곳에만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기고, 영혼과 육신을 결합해주며, 사랑은 삶의 극적인 어려움까지도 극복하도록 해준다. 사랑이 없으면 가정은 무너지고 말며, 사랑이 식어 가는 가정에는 법적 조치도 사회적 대책도 아무 소용이 없다. 가정은 사랑과 그 사랑의 요구가 회복될 때만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두 번째 사실은 가정이 하느님의 계획의 일부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정은 바로 사랑의 최대 표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가정이 진정한 의미의 가정이 되려면, 나자렛 가정과 같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빛과 영감에 항상 개방되어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가정이 근본적으로 종교적 차원을 가져야 하며 하느님께 대한 감각을 양성해야 할 의무도 있다.
세 번째는 나자렛 성가정이 사랑과 헌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았고 하느님께 온전히 개방되어있었기에 이 세상과 인간적인 문제에 개방되어있다는 점이다. 즉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람이며, 마리아는 예수님이 형제들의 어려운 처지를 알고 느끼게 해주는 협력자 역할을 할 것임을 말해줄 것이다. “그를 나자렛 사람이라 부르리라”(23절). 이 말씀은 나자렛이 아무런 명성도 없는 보잘것없는 동네이다(참조: 요한 1,46). 이 동네와 예수님을 연결하는 것은 당신의 겸손을 의미할 뿐 아니라, 모든 사람과의 결합을 입증하는 것이다. 가정은 개방된 공동체이다. 그것은 가정이 사랑에서 생기고 사랑 안에 자라기 때문이다. 사랑은 그 안에 폐쇄될 수 없다. 그렇다면 사랑이 아닐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가정 안에서의 행동규범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한다. 이것은 모든 어려움과 긴장 그리고 세대 간의 긴장 등을 안고 있는 가정생활이 처해있는 분위기에 대한 것이다(참조:콜로 3,18-21). 한 가정을 이루는 남편과 아내를 한 몸(창세 2,24)이라고 할 때, 그리고 부모와 자식을 연결해주는 사랑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의 몸으로 실현되어야 한다. 이 그리스도의 몸이란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이 담겨있는 것으로써, 하느님의 말씀과의 항구한 일치가 가족들 모두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사랑 속에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러한 가정들과의 만남으로 서로 가르치고 충고함으로써 현대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즉 혼인의 의미, 부부 사랑, 생명의 가치, 자녀들의 가치, 자녀들의 교육, 부부 상호간의 신뢰 등에 대한 문제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것이 개방된 가정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부부간의 넘치는 사랑과 자녀들의 기쁨에 찬, 웃음이 끊이지 않는 가정, 한평생 이루어졌으면 하는 이 놀라운 기적은 인간들의 깨어지기 쉬운 사랑을 감싸주고 하느님의 사랑의 징표로 바꾸어놓는 하늘로부터의 축복에 의해서만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이러한 가정을 실제로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가정 축일은 오늘의 가정이 지녀야 할 모든 가치 즉, 사랑, 헌신, 희생, 정덕, 생명 존중, 노동, 평화, 환희 등을 알아들을 수 있는 열쇠를 던져주고 있다고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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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나자렛 성가정을 모범삼아 열심히 살아내는 가정이 늘어나길 주님 은총 청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