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레사 수녀를 가까이 하는 사람마다 그녀의 인격에 순결한 감동을 받습니다. 특별히 그녀가 질투 없이 살아가는 그 삶의 모습이 주변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도전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 테레사와 함께 살고 있었던 한 분이 그녀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그때 마침 테레사는 한 어린이의 고름을 만지면서 치료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이 분이 그녀 곁에 다가서서 이런 질문을 합니다. "수녀님. 당신은 잘 사는 사람.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리고 높은 자리에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사람들을 바라볼 때에 시기심이 안 생깁니까. 이런 삶으로 만족하십니까." 이 질문을 받았을때 테레사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읍니다. "허리를 굽히고 섬기는 사람에게는 위를 쳐다볼 수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섬김의 지혜를 터득한. 섬김의 자부심을 터득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가 있읍니다. 하늘 나라의 스타는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섬기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우리가 주 앞에 서는 날 주님은 "네가 몇 사람을 밟았는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는 얼마나 어깨에 폼을 재면서 삶을 살았는가." 라는 질문이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날 주님께서 물으실 질문을 생각하십시오. "너는 몇 사람을 섬겼느냐."
당신의 삶은 얼마나 이 섬김의 향기와 섬김의 자질로 가득차 있읍니까?
계 2:19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1. 이제 무서운 추위는 물러간 듯 합니다. 한 낮에는 기온이 많이 올라가고 있습니다. 움추렸던 몸에 기지게를 펴고 봄을 향한 사역을 미리 기도하며 준지해야 할 것 같습니다.
2. 카페지기의 거리에서 찬양하며 영혼을 구원하는 사역이 하나님의 은혜속에 잘 이루어지고 지경을 넓혀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목 : 섬김과 봉사 본문 : 막10:45
사람들은 섬기기보다 섬김 받기를 원합니다. 라반이 두 딸 레아와 라벨을 주면서까지 야곱을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그의 섬김을 받기 위함이었습니다(창29:25). 열 가지 재앙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면서도 바로 왕이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던 이유도 그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출5:12). 공중 권세를 잡은 사단도 또한 사람들을 죄의 노예로 삼아 섬김 받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죄의 노예가 되어 있는 우리를 구원하고, 섬기기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사 죽으심으로 섬김의 도를 이루셨습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이러한 섬김의 의미를 상고해 보고 성도가 갖추어야 할 봉사의 의미를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하나님만을 섬김(마4:9,10)
1)부름받아 섬김 존 가드너는 '사람은 섬기고 있을 때 그 삶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하였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고 있던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은 그의 삶을 축복해 주셨습니다(창22:18). 모세 또한 미디안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무의미하게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서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렇듯 죄인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셔서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삼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의 삶은 더욱 복된 은혜로 충만해집니다.
2)삶 전체를 통해 섬김 시편 기자는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삶 전체를 통해 기쁨 가운데 그 앞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시100:2). 다니엘은 위험한 환경속에서도 매일 무릎꿇고 기쁨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기도했습니다. 그의 신앙을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이 다리오 왕에게 참소하여 사자굴에 던져 넣게 했습니다. 그때 왕이 다니엘에게 말했습니다.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시리라"(단6:16). 그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는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섬긴 다니엘을 구해 주셨고, 다니엘은 기쁨의 찬송을 부를 수 있었습니다(단6:22-24). 바울은 삶 전체를 드려 하나님을 섬기던 중 옥에 갇혔으나, 기도와 찬미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옥문이 열리는 은총을 체험하였습니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굴하지 않고 삶 전체를 통해 하나님을 믿고 섬길 대 기쁨으로 찬미하게 되는 은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2. 섬기기 위해 오신 주님(마20:27,28)
1)자원하여 섬기심 이 땅에 오신 주님을 자원하여 섬김의 사역을 수행하셨습니다. 주께서 제자들을 택하신 이유도 복음 전파를 통해 세상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고보와 요한은 이러한 주님의 뜻을 오해하고 주님께서 영광중에 오실 때 주님의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책망하시면서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는 것이 섬기러 오신 주님의 생각이셨기 때문입니다(막10:35-44).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며 섬김의 본을 보이셨던 주님은 자원하여 십자가의 짐을 지셨습니다. 그로 인해 제자들도 섬김의 사역을 실천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자원하여 섬김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해야 합니다.
2)희생으로 섬기심 주님의 섬김은 야곱이 라반을 위하여 봉사한 섬김이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왕을 위해 봉사한 섬김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완전히 희생하신 섬김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피 흘리시고 대속의 제물로 죽기까지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을 위해 얼마나 섬기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어느 마을에서 공습으로 손이 잘린 예수님의 동상을 보수하려다 그냥 두고 다음과 같은 글을 써 붙였다고 합니다. '우리를 섬기러 오셔서 고통당하신 주님을 위해 우리가 주님의 손이 됩시다.' 우리는 주님의 손과 발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고 영혼 구원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여 희생으로 섬기는 삶을 실천하였습니다. 순교까지는 아니지만 우리의 일부를 희생함으로 주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주님의 손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3. 복음 전파를 위해 섬김(요12:25,26)
1)하나됨으로 섬김 나단 소더브룸은 '교리는 분열되게 하나 섬김은 하나 되게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섬김받는 자가 많을수록 교회는 분열되고, 섬기는 자가 많을수록 교회가 하나되고 부흥합니다. 성령 안에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미국 여행중에 생긴 일입니다.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서 속수무책일 때 땀 흘리며 도와준 착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너무도 고마워 사례하려고 하였더니 사양했습니다. 그 이유는 이 다음에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만날 대 외면하지 않고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자신에 대한 사례라고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서로 돕는 작은 섬김의 도 안에서 온 인류가 하나되고 세계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섬김안에서 하나되기를 원하십니다. 사랑 안에서 하나되게 하는 섬김이야말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참된 섬김이요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2)나눔으로 섬김 하나님을 부인하며 이웃에게 무관심한 삶이 곧 사단을 섬기는 삶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단을 우리가 섬길 때, 사단은 섬겨야 할 이웃을 경쟁자로 만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서로 섬기게 될 때 이웃은 더 이상 경쟁자나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닌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값을 치르고 산 사람들로 성도들이 섬겨야 할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체험한 성도는 받은 바 은혜의 달란트를 활용하여 서로 섬기고 나누는 삶을 살게 됩니다(고전12:4-31).
결론 세계적인 봉사 단체인 '국제 로타리클럽'의 좌우명은 '최고로 섬기는 이가 최대의 유익을 얻는다'입니다. 우리는 최고로 섬기는 봉사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성도, 최대의 은총을 나누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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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샬롬~!!~ㅎㅎㅇㅇ
오늘도 주안에서 성령의 도움으로 주님의 영광과 복음과 섬김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소서 샬롬
감사합니다.
오늘도 함께해 주신 평안 장로님, 예수 사랑 목사님, 만경강 목사님 감사를 드립니다.